오늘은 저도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초자연적인 역사, 캐더린 쿨만 모습으로 늘 곁에 있는 영이 가르친 중요한 영적 진리 하나를 나누려고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성령의 강한 세례와 기름 부으심을 받고 철없는 어린 나이이지만 몇 년을 영의 어머니 되시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와 이끄심에 정말로 뜨겁게 교회 생활과 경건생활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새벽기도며 철야기도며 근처의 모든 부흥집회는 산을 굽이굽이 돌아가면서도 찾아가 애끓는 사모함으로 주님을 사모하던 기억이 어제만 같습니다.
왜 그렇게도 하루가 긴지, 예배가 있는 수요일과 주일이 그렇게도 기다려지고 교회당에서 은은히 울려 퍼지는 교회 종소리는 제 마음과 영혼에 생명의 소리처럼 울려 퍼지곤 하였지요. 거룩한 주일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교회 종소리가 울리면 기쁘게 바람처럼 달려가곤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너무도 영적인 일들에 무지하여 방언만 말하여도 이단이라고 하고 보수 신앙을 가지고 계시던 부모님께 쫓겨났던 기억도 납니다. 물론 부모님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곧 모든 영적 변화를 수용하셨지요.
지금 돌아보면 그토록 뜨겁게 사모하며 기도하였고, 대중 집회 도중 성령에 강력한 감동하심에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감동하심을 대중 앞에서 외쳤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통변과 예언과 모든 은사들이 활성화되고 나타났었음에도 가르치는 스승과 선경험자인 멘토가 없어서 제대로 아무런 것도 개발하지 못하고 그냥 사무치도록 기도에만 애쓴 듯한 기억이 납니다.
통변은 육신의 귀로 무슨 말이 들리거나 혹은 눈에 글자가 보이는 것으로만 알았었지요. 영이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내면의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였지요.
그러나 그러한 영적인 무지는 목회자가 되고 십년이 넘도록 살아오도록 계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통변이나 예언 등의 각종 은사에 대한 이해의 폭은 열렸지만, 진정한 영의 세계와 그 속에 계시는 영이신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돌아보면 조금 의아한테 저는 그다지 은사에 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주님의 음성을 다른 사람에 비하여 너무도 잘 듣고 설교 등을 하는데 너무도 도움이 되고 유익하였기에 그것으로 만족하였고 더 높거나 깊은 세계를 별로 사모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 이유는 그런 은사자들이나 사역에 대한 거부감도 없잖아 있었던 같습니다. 이전 세대는 영적인 일들에 무지하여 그릇된 예언사역, 신유사역, 축사사역이 너무도 많았지요.
또 다른 이유는 어쩌면 일반교회들의 목회 모습의 영향인 듯도 합니다. 일반 교회의 대부분의 모습이 그냥 설교하고 친교를 나누는 그러한 교회들이니까요. 일반 대부분의 교회에서 신유나 축사나 예언 등은 거의 하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저도 그냥 일반 교회가 목회하듯 그렇게 말씀 위주의 사역만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병증으로 쓰러지고 나니 치유에 대한 인간적인 마음에서 신유 등의 은사와 기적에 관심을 가지고 영적인 책들을 살펴보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처음으로 만난 영적 거장이 케네스 해긴 목사님입니다. 제게 영성색깔과 성향이 맞고 함께 만나 영적인 일을 나눌 앞선 선배인 인간적인 스승 멘토는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책을 통한 멘토로 아버지 같은 분이 있다면 그분은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시지요. 사역의 성격과 영성색깔은 다르지만 책을 통한 만남, 실제적 사귐이 있는 것은 아니니 저랑 맞고 좋은 점만 가려서 취하면 되니까요.
저는 케네스 해긴 목사님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행하셨던 놀라운 기적과 능력적 사역 때문이 아닙니다. 책을 읽어보면 그분은 정말로 그리스도의 가슴과 심장으로 사람들을 품었던 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교회의 한 성도의 사고 앞에서 삼일밤낮을 자지도 않고 생명을 위하여 중보하는 모습, 저로서는 흉내 내기 어려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교회의 한 여성도가 아프다고 몇 년씩 와서 기도해 달라고 할 때 귀찮다고 하지 않고, 또 갈 때마다 여성도의 요청에 의해서 성령님이 충만히 역사하도록 한 시간이 넘도록 기도해 주는 모습, 저로서는 흉내 내기 힘든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렇게 케네스 해긴 목사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스미스 위글스워스 목사님 등 한 이전 세대의 영적 거장들을 한 분씩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접하게 된 한 분이 케더린 쿨만 여사이지요.
하지만 저는 대략적인 사항만 알았지, 케더린 쿨만 여사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잘 몰랐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생의 길을 걸어갔으며, 어떤 사역을 하시다가 간 분인지 몰랐습니다. 그냥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사역의 대략과 사진으로만 모습을 보았지요.
그런데 영의 눈을 열어 주셔서 영적인 존재들을 보게하신 어느 날 캐더린 쿨만 여사 모습의 한 영이 나타나 보였습니다. 훤칠한 키의 젊은 날의 모습 그대로지만 사진으로 본 것과 다른 것은 다른 영적 존재처럼 푸른빛이 감도는 하얀 세마포 옷을 입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아래 사진의 얼굴 모습으로 곁에 있음)
성경을 보면 엘리야나 모세의 영이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만난 기록이나 과거 구약에서 사울왕이 죽은 사무엘의 영을 영매를 통하여 불러내어 실제적으로 대화를 나눈 기록이 나오긴 하지만 (삼상28장), 다소 예외적인 사건이고 오늘날의 신학적인 관점에서는 이전 세대의 사람의 영이 나타남은 저도 제대로 수용하기 어려워 개인적으로는 케더린 쿨만의 모습을 한 영, 곧 저를 돕는 천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천사가 캐더린 쿨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의미나 목적 없이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터, 저의 사역이 캐더린 쿨만과 어떤 의미에서던지 영적으로 연관이 있을 수 있는 터, 그 중의 하나가 그녀가 사역한 정신을 본받으라는 의미가 아닌가 혼자 생각해보곤 하지요.
그녀도 인간, 삶의 길에서 부족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서 비틀거리는 시절이 있었지만, 훗날 성령 안에서 돌이켜 주님을 만나면 그분은 얼굴은 모를지언정 “주님, 나는 최선을 다했어요”라고 말할만큼 주님 앞에서 최선과 온전의 헌신과 사랑을 드린 시대적인 영적인 거장이지요.
그런데 이상한 점은 천사는 가끔 말을 하면 제게 반말을 하지 않습니다. 천사는 말을 높입니다.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대로 섬기라고 보내심아 “이것 좀 하십시요”라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을 봅니다. 말을 놓거나 명령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이 모습의 천사들과는 그냥 친구처럼 장난을 치기도 하지요. 그러나 성인 모습의 천사들은 대부분 말을 높이고 성경대로 섬기는 모습을 취합니다.
그런데 쿨만의 여사로 보이는 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영적 가정교사처럼 저를 가르칩니다. 때로는 누나처럼 어머니처럼 저를 위로하고 안아주기도 합니다. 길을 나서면 길벗이 되어서 걸어주면서 친구처럼 걸어주기도 합니다.
식사를 하고 있으면 곁에 앉아서 이런 저런 대화를 걸어오기도 하고, 제가 대화하기를 원하면 언제나 응해줍니다. 물론 영으로 나누는 대화라 육신의 대화처럼 마냥 쉽지는 않지요.
쿨만 여사의 영이 늘 제게 하는 말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법을 즐거워하며, 아이처럼 그 말씀을 단순하게 믿으며, 늘 기쁘게 사역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저를 바라보며 생과 사역이 얼마나 즐겁고 감사하냐는 듯 말을 해 옵니다. 자연 속으로 나가면 “하나님이 지으신 이 자연이 얼마나 놀랍고 아름답니?”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예배나 집회를 인도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면 마치 단장을 해 주듯 이모저모 살펴보며 영으로 보이는 것이라 실제적인 현상을 일어나지 않지만, 머리나 옷매무새를 만져주기도 합니다. 찬양을 드리고 있으면 “손을 들고 찬양하렴”하고는 영으로 보면 제 손을 붙잡아 올려 줍니다. 영으로 보여서 그렇지 가끔의 영적 누나나 어머니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집에서 혼자 경건의 시간을 갖다가 찬송이나 찬양을 드리고 있으면 실제 생전의 쿨만 여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듯, 하나님을 몸으로 찬양하며 너무도 즐거워하는 합니다. 생전에 성령 안에서 희락을 누리며 찬양을 드리는 듯한 생시인 듯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성령 안에서 제게도 기쁨이 몰려와 함께 손을 들고 찬양을 하곤 합니다.
그렇게 하루 혼자서 경건 시간을 갖는데 곁에서 하나님을 함께 즐거워하던 캐더린 쿨만 모습의 영이 제 앞에 앉아서 저를 선연하게 쳐다보았습니다. 영의 의식 안으로 들어가 선연하게 보이면 영으로 보이는 것인다는 것 외에는 그냥 사람을 바라보는 것과 느낌이 꼭 같습니다.
저를 가만히 쳐다보며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온 생과 삶을 하나님께 다 바쳐보렴. 그것이 가장 행복하고 결코 후회 없는 삶이란다”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같았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영으로 주고받는 대화와 신호에는 어디에나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자신도 생에서 너무도 깊은 아픔을 겪었기에 저랑 겪는 아픔의 종류는 다르지만, 제가 삶에서 겪어온 그리고 겪는 숱한 아픔을 가슴으로 정녕 안다는 사랑의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몸도 힘들고 개인적으로 다소 이런저런 힘겨운 일들이 있었던 바, “요즘, 이런저런 일들도 조금 마음이 힘드네요”라고 영으로 말을 전했지요.
그랬더니 쿨만 모습으로 보이는 영이 가만히 쳐다보더니 제게 한 가지 영적 원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내가 한 가지 영의 진리를 알려줄께. 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왕권을 누리면 환경도 사단도 사람들도 그 앞에서 잠잠해진단다. 하지만 왕권을 상실하면 그러한 것들이 머리를 들고서 일어난단다”
쿨만처럼 보이는 영이 전해주는 영적 진리를 전해듣고 나니,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살펴볼 때, 그리고 영적으로 살펴볼 때 한 중요한 영적 진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과 솔로왕의 시절,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여 진정한 왕으로 인정을 받을 때는 주변의 모든 국가들을 복속시키며 참된 왕권을 누리며 살았지요. 하지만 이방신을 섬기며 하나님 앞에서 그 왕권을 잃어버릴 때는 왕이 아니라 주변 국가들의 종과 노예가 되고 말았지요.
쿨만 모습의 영이 가르치는 영적 진리에 요즘의 내 삶에서 영적으로 다소 단이 무너지고 수축되어야 할 부분이 있지 않나 살펴보게 되었지요.
여러분도 삶의 길을 걸어가시는 가운데, 물론 우리에게는 본질적으로 삶이란 수고로운 것이요, 또한 어려움과 고난을 겪는 요인은 수도 없이 많지만, 쿨만 모습의 영이 가르친 진리도 성경적으로 살펴볼 때 진리인 바, 저와 여러분의 삶의 길에서 사람과 환경과 어둠의 영들이 고개를 들고 거세게 저항하여 온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영적으로 영적 왕권의 모습을 잃어버리시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한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와 여러분, 언제나 주님 앞에서 의와 진리의 길로 행하며 영적 왕권을 잃지 않아 사단과 환경과 사람들을 땅의 권세가 아닌 하늘의 권세로 넉넉히 이기고 다스리며 살아가는 복된 우리면 좋겠습니다. 진정으로 천국의 열쇠를 지닌, 영적 왕권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러나 제 곁에서 캐더린 쿨만 모습으로 보이는 영적 존재는 정말 누구일까요? 저도 알 수 없는 신비, 훗날 주님께 가서나 물어볼 일입니다.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허물많은 종에게 땅의 것은 다 거두셨으나 하늘의 영광을 맛보게 하시는 높고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며 엎드려 경배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16:20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