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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진리] 회개, 생명의 문

초록 등불 2012. 7. 17. 03:40

 

  

  [핵심진리] 회개, 생명의 문

 

주님께 혹독한 시련과 연단과 당신의 자비하신 그저 주시는 은혜 가운데 영적인 삶에 대하여 성령 안에서 새롭게 다림줄을 받고 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녕 원하시는 것은 거룩함입니다. (영적 실증적 간증은 뒷부분에 있습니다. 꼭! 끝까지 읽어보십시요.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레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목회자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은사와 능력을 많이 구합니다. 저 역시도 성경의 말씀을 따라 그러한 부분을 사모합니다. 영의 세계는 한편 그 본질이 영적 능력의 대결인바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권세와 능력 없이는 참된 사역을 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이것은 육신으로 말하면 겉사람이고 본질은 아닙니다.


속사람에 해당하고 본질은 의와 정결함과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이것이고 이것이 본질입니다. 은사와 능력도 반드시 이 바탕 위에서 나타나고 행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거룩하지 못한 부분을 타고서 사단이 겉사람의 육정이 움직이는 바, 실족하여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마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많은 사람들이 목회자나 일반 그리스도인이 은사와 능력이 나타나면 신령하고 영적인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아닙니다. 사람이 아닌 주님께 고독한 영적 피정의 시간 가운데 한 걸음씩 혹독한 시련과 은혜, 지팡이와 막대기로 배우고 보니 진정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거룩함이고, 또 진정 신령하고 영적인 사람은 의와 정결의 거룩한 사람입니다.


은사와 능력은 하나님의 은혜로 실족하고 넘어져도 거두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많은 은사자들이 껍질인 은사만 덩그마니 남고 거룩한 임재는 잃어버려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가는 재앙의 길을 걷기도 하는 것입니다.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또한 능력은 성령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과 어둠에 속한 영들도 강력한 능력을 행합니다. 애굽의 술사들을 보면 그 능력을 알 수 있지요. 사단도 하나님이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게 지은 영적 피조물 중의 하나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무능력한 존재가 아닙니다.


어둠의 영에 속한 사단의 능력 중 염동작양술(telekinesis)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어 사전을 살펴보면 이것을 “the power to move something by thinking about it without the application of physical force”이라고 정의합니다.


해석해보면 물리적인 어떤 힘이나 작용을 가하지 않고 생각, 곧 염력으로 어떤 물체를 움직이는 힘이지요. 하나님은 자연계의 법칙을 존중하시기에 이러한 역사는 잘 일으키지 않지만, 사단은 무법자이기에 이런 역사까지 일으키곤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과 어둠의 영에 속한 사람 중 과거의 죄는 어둠에 속한 사람들이 더 잘 알아맞힙니다. 이는 성령님은 인격적이시고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바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죄를 보게 하시고 세우게 하시지만, 사단은 참소자이기에 죄악을 밝히고 드러내어 참소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사 능력 위주로 보는 관점을 가지면 미혹되고 현혹되기 쉽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추구해야 하는 선본질도 하나님 앞에서의 의와 정결함의 거룩함이요, 교회나 사역의 영분별의 기초도 은사능력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열매인 의와 정결함과 거룩함을 먼저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글은 그것이 주제가 아니니 깊이 논할 수 없지만, 영의 세계는 들어갈수록 얼마나 분별이 쉽지 않고 혼미한지 모릅니다.


사단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합니다. 정말 영성 사역 전문가도 구별이 쉽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은사와 능력의 관점으로 신령함이나 영성의 측량자로 삼는다면 반드시 미혹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선본질인 의와 정결의 거룩함을 좇아야 하고, 교회나 사역지의 영분별도 그것을 다림줄과 측량자로 삼아야 속거나 미혹당하지 않습니다.


마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마7: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영이신 하나님의 속성은 한 마디로 ‘거룩함’입니다. 우리에게 원하시는 본질도 의와 정결함의 거룩함입니다. 사람은 때를 따라 영적 상태가 일렁이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신령하고 영적인 때가 있을 뿐이지 사람은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만, 어쨌거나 진정으로 신령하고 영적인 사람은 은사와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는 사람이 아니라, 의와 정결함의 거룩함이 나타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영적 감각이 깨어나면 생각만 해도 보기만 해도 그 사람의 내면적 상태가 느껴지곤 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 내면을 가장 잘 담아내는 것이 바로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영적 감각이 깨어나지 않아 영으로 그러한 부분을 느낄 수 없다면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말에는 영의 에너지가 담겨서 흐르며 그 에너지는 자신이 누리는 영적 단계 수준의 에너지가 정확히 흘러나옵니다. 말을 귀로 듣지 말고 영으로 들어보며 그 느낌을 살펴보면 됩니다.


영은 본질이라 속이나 꾸밀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표현으로 위장을 한다 하여도 에너지의 흐름은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의 흐름 속에 의와 정결함이 흐르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15: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마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사람은 보이는 겉모습인 육이 본질이 아니라 영의 본질이고 생명이며, 그 영적 생명의 흐름은 마음과 생각으로 흐르며 말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우리는 은사와 능력 이전에 먼저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은사와 능력의 기름부음이 나타나야 제대로 된 영성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은사와 능력은 불법을 행하는 보잘것없는 것과는 빛과 색채가 다른 하늘빛 영광이 담긴 거룩하고 아름다운 은사요, 능력인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께 이러한 다루심을 받고서 자주 반복하여 읽는 성경이 레위기와 민수기입니다. 이전에는 복잡한 제사 등 난해하여 지나치곤 하였는데, 하나님께 신앙의 본질과 영적 본질인 거룩함에 대하여 조명하심을 받고 보니, 그러한 부분의 보화를 담고 있는 성경이 바로 이곳들입니다. 깊은 영성의 삶에 대하여 적지 않은 조명하심을 주는 부분이 바로 이곳입니다.


레위기 6장을 보면 번제에 관한 말씀이 나오는데 그곳을 보면 “단의 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6:12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를지며

레6:13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의와 정결한 삶에 대한 깊은 단초를 제공합니다. 저는 성정이 다소 ‘모’ 아니면 ‘도’ 식이라 거룩함에 대하여 다루심을 받고 정말 온전하게 살려고 발버둥을 쳐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사람, 타락한 본성과 육성을 지닌 사람이 그것은 불가능하더군요. 절망과 좌절도 많이 했습니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람은 누구도 완전하게 죄를 짓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우리를 죄를 대신하여 소나 양 등의 제물이 되었고, 마침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희생제물이 되사 당신의 거룩한 보혈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그러나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자유하여 방종하게 살라는 의도는 전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듯 생명의 성령의 법은 율법의 의를 상위합니다. 율법의 멍에에서 자유함으로 이제는 성령 안에서 참된 생명의 법을 좇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부단히 의와 정결한 삶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하지 아니하고 자유를 방종으로 착각하고 마음대로 사는 자에게는 분명한 경고의 말씀이 주어져 있습니다.


히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히10: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히10: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히10: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이 말씀은 불신자를 향하여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주시고 이르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주신 구원의 은혜를 값싸게 취급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자유함을 방종함으로 나아가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단히 의와 정결한 삶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탄식처럼 우리는 결코 완전하게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온전한 삶을 위해 몸부림을 쳐도 각 사람의 영적인 단계와 수준에서 영과 육의 치열한 싸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싸움에서 질 때마다 좌절하고 낙망해야 할까요. 그것은 전혀 아닙니다. 우리를 좌절하고 낙망하게 하는 것은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참소하고 우리의 불의를 드러내기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마음에 속는 것은 사단에게 속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하여야 하는 것은 의와 경건을 위한 싸움을 하되, 또 한편 단위의 불을 꺼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구약시대 성막의 단은 속죄의 제사가 이루어진 곳입니다. 물두멍은 속죄의 제사 이후의 성결함으로 나아가는 것을 상징하지요.


그러므로 단위의 불을 끄지 말라는 것은, 신약적 의미로 살펴보면 속죄하는 마음, 죄를 회개하는 마음의 불을 꺼지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온전하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이를 아시고 우리를 위하여 속죄의 십자가를 예비해 두신 것입니다. 온전하게 살 수 없다면 차선은 애쓰고 노력하다가 알고나 부지중에 죄를 짓게 되면 바로 회개의 제사, 곧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 거룩한 보혈의 능력이 우리를 새롭게 빚는 것입니다.


히9: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히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다시 말씀드리면 죄를 짓지 않으려는 의와 경건의 노력과 싸움은 있어야 하지만, 결코 완전하게 살 수는 없는 터, 때때로 그런 싸움에서 지게 되면 사단이 주는 마음의 자책하거나 좌절에 묶이지 말고, 곧 바로 회개의 기도로 즉시로 그 죄에서 깨끗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보며 들으며 끊이지 않는 수많은 생각들 속에서 깊은 차원에서 살펴보면 시시때때로 죄를 짓는 바, 구약의 속죄의 단의 불이 꺼지지 않았듯, 우리 마음에 회개의 단의 불을 늘 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시라도 누군가 미운 마음이 들면 즉시로 회개해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적 생각이 머리에 깃들면 즉시로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그 생각과 마음을 씻어내며 즉시로 회복하고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경험해보면 죄를 짓고 바로 회개의 기도로 엎드리면 하나님은 쉽게 용서해 주십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용서를 받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이는 죄는 영적 질병이고 어둠이 틈탄 것인바 두면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죄는 자라는 생명체이며 어둠의 통로입니다. 하지만 즉시로 회개하면 자리를 잡지 못하였기에 쉽게 용서함을 받고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은 영안이 열리지 못해 보지 못함으로 죄를 가볍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님께서 이러한 부분을 알리라고 보여 주시기에 죄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심각한 것이며, 어둠의 통로가 되는지 압니다.


작은 죄라도 실족하고 나면 바로 그것을 틈타고 악한 영들이 다가오거나 온 것이 보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주 작고 사소한 죄입니다.


그러한 악한 영이 선연하게 보이면 빛의 존재들이 선연하게 보이듯 마치 생시처럼 보이는데 얼마나 더럽고 흉물스럽고 더러운지 모릅니다. 적지 않은 나이, 산전수전 다 겪고 더러운 영들도 다양한 통로로 자주 보다 보니, 이제는 보이면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그냥 가라고 하지만, 여러분이 처음 보게 되시면 소스라치게 비명을 지를 것입니다. 그렇게 더럽고 흉물스럽고 괴기스럽게들 생겼습니다.

아주 사소한 죄에도 그러할진대 그냥 믿노라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전혀 경건의 삶에 대한 경각심과 도전이 없이 살아가는 분이라면 영의 눈이 열리면 사방 천지에 그 죄를 통로로 합법적으로 자신과 가정과 환경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활동하는 그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여러분에게 공포감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경각심과 의와 정결한 삶에 대한 도전을 주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복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루 또 저의 연약함 때문에 주님 앞에서 다소 의롭게 살지 못하였습니다. 역시나 그것을 틈타고 악한 영이 곁에 보이기 시작하고 선연하게 두 엇 나타나 보기 흉하더군요.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주님 앞에 엎드려 속죄의 단의 꺼지지 않는 불씨를 새롭게 불며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의 거룩하신 능력의 보혈이 저의 온 몸과 마음과 영에 흘러내리게 하였습니다.


그러고 있으니 즉시로 회개하면 용서도 빠른 법, 조금씩 빛이 임하여 어둠의 영들과 흔적들은 점점 사라져 가고, 눈부신 빛의 존재들인 천사들만 가득히 보이는 가운데 천사들이 저의 몸을 닦아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하얀 옷을 입혀 주는 것이 영으로 보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가 새롭게 되고 의롭게 되고 의의 세마포를 입게 됨을 영적 상징으로 보여주신 것이겠지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영이신 하나님의 속성은 거룩함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모든 것들이 결국은 죄를 다루고 있는 바, 하나님은 우리가 정말로 의와 정결의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의와 정결의 거룩한 삶을 위해서 싸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또한 때때로 실족하여 넘어질지라도 새롭게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셨습니다.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능히 어떤 죄라도 사하며 정결하게 하고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의 보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하나는 의와 정결함을 위한 거룩한 싸움을 멈추지 말아야 하며, 또 한편 우리에게서 어둠과 죄를 거두어 내는 속죄의 단의 불, 곧 회개하는 마음과 기도를 끊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부지중에 또는 알면서도 늘상 크고 작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죄의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양심이 무디어져 많은 경우 큰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아주 사소하고 작은 죄라도 다 처리하여야 합니다. 그 작은 죄가 뿌리 내리고 자라서 우리를 어둠으로 끌어가며, 그 작은 죄도 사단의 통로가 되어서 어둠의 영, 곧 악한 영들이 다가옵니다.


레위기와 민수기를 다시금 차분히 읽어보십시요. 정결법과 부정법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요. 얼마나 까다롭고 복잡한지 읽어 보십시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주의하며 살아갔을까 생각해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죄를 얼마나 중히 다루시는지 살펴보십시요.


정결법과 부정법은 비록 율법은 폐하여졌지만 영과 육을 분별하며 살아갈 것을 요청하는 신약 시대의 상징인 바, 우리는 깨어 그러한 영적 감각과 분별력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죄를 두려워하며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죄는 죽음과 저주를 가지고 오는 독소입니다. 영혼육과 우리의 환경의 그 모든 것들을 파괴하게 하는 어둠과 재앙의 씨앗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영적으로는 용서하지만 현실의 삶에서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에서 떠나게 하시려는 사랑의 시련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다루심은 사람의 다루심과 같지 않아서 그 시간은 때때로 혹독하고 가혹한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출32:34 이제 너는 가서 내가 너에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여라. 내 천사가 네 앞서 갈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들의 죄에 대하여 내가 그들을 벌하겠다.

출32:35 이와 같이 아론이 만든 송아지를 백성들이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무서운 전염병으로 치셨다.


제가 짧지 않은 시간 애쓰며 기록한 이 글과 말씀이 저 스스로와 여러분에게 죄에 대한 경각심과 의로운 삶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되기를 정말로 간절히 바래봅니다.


의와 정결함의 거룩한 삶, 이것이 하나님이 진정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며, 그것의 시작은 바로 '지금' 그리고 '오늘' 새롭게 깨달아 돌이키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생명의 문과 입구이며 영적인 삶의 여정의 시작입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합니다. 의와 정결의 거룩한 삶을 위해서 날마다 더 높이 날아오르는 저와 여러분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해 봅니다. 샬롬!


마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레6:12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를지며

레6:13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히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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