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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영성의 삶, 고요의 삶

초록 등불 2012. 8. 16. 22:03

 

 [영성의 글] 영성의 삶, 고요의 삶

 

집회를 마친 날은 모든 일은 잠시 접고 그냥 푹 쉬거나 개인 취미생활을 하면서 조금 휴식을 취합니다. 그렇게 오늘은 종일 푹 잤습니다.


눈을 뜨면 성령님께 “지금은 무엇을 할까요?”라고 습관이 되어 버린 버릇, 해거름에 눈을 떠서 물어보니 요즘은 천사를 통하여 지시를 하시는 바 영으로 들려오는 음성, “주님 안에서 그냥 조용히 조금 더 쉬십시요”.


“운동은?”하고 물어보니, 들려오는 음성 “고요히 주님의 임재 안에서 걸으며 운동은 조금 하시던지요”. 그래서 저녁 식후에 가을밤의 정취가 조금씩 묻어나는 여름 밤길을 혼자 조용히 걸으며 다녀왔습니다.


늘 주님과 교통하는 습관, 길을 걸으면서도 계속 교통을 하고 있으니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요”라고 들려오는 음성, 그래서 “주님을 기뻐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을 하며 두 팔을 벌려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는 되지 못하지만 땅을 거니는 자유로운 새가 되어 보기도 했습니다.


최근 들어서 저를 다루시는 주님의 손길이 많이 변하였습니다. 그것은 ‘고요’입니다. 이전에는 ‘열정’으로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고 다소 열정적으로 행하게 많이 하셨는데, 요즈음은 그런 부분도 없잖아 있긴 하지만, 대부분 ‘고요’함으로 인도하십니다.


많은 경우는 아무 기도도 하지 않고 그냥 주님의 임재 안에서 고요하게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경우는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주님의 임재 안에서 조용히 아주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있습니다. 이미지로 보이는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이나 주님, 그리고 각종 천사들의 영들과 간간 마음으로 교감하며 그냥 조용히 있습니다.


그렇게 고요함의 훈련을 점점 받아가다 보니 저의 성정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정도 말수가 적어지고 행동도 고요해져 가고 모든 부분에서 고요하게 변해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가령 바늘귀에 실을 끼는데 눈이 어두워서 잘 끼어지지 않으면 한 번, 두 번, 세 번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한 십여 번 정도까지는 참으로 잘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정도 하다가도 안 되면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곤 하지요. 성정이 날카로운 사람은 홱! 던져버리겠지요.


하지만 요즘 저의 모습은 아마 삼십 여분 가량 잘 바늘귀에 실이 잘 들어가지 않아도 옆 사람이 보면 미련하다 싶을 정도 또 시도하고 또 시도하며 그냥 처음인 듯 계속할 듯 합니다. 끝내 안 되면 그냥 포기를 하지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거나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혹독한 주님의 시련과 연단의 시간, 그리고 주님의 임재 안에서 고요함의 훈련을 지속적으로 받다보니 성정과 내면도 고요해져갑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만히 영적으로 살펴보니 이러한 삶이 곧 가슴으로 사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혼이 있고 영이 있는데 영의 일은 한편 신비라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혼의 기능은 머리의 생각하는 것과 관련이 있고, 영은 가슴의 감동하심과 관련이 있다고 하지요.


그래서 혼적 상태에서 지적인 설교를 하시는 분들은 머리로 전하지만, 영적 상태에서 영적인 설교를 하시는 분들은 가슴으로 설교를 하지요.


그런데 고요함의 가슴을 따르는 영의 삶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머리의 생각이란 칠색조보다 더 요란하고 변화무쌍합니다. 시간 아니 분초마다 생각의 물결위엔 이런저런 파랑이 일렁거립니다. 생각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분요하며 달떠있습니다.


영으로 사는 삶은 훈련과 기도를 통하여 그러한 혼적인 생각의 분요로움을 잠재우고 고요히 가슴으로 사는 삶인 것입니다. 주님은 제게 이런 훈련을 시키기 위하여 요즈음은 제게 고요함을 배우게 하시고 익히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 앞에서 내 안에서 고요하게 있으라”


그렇게 주님 앞에서 고요함의 훈련을 바다보면 바다가 겉 표면은 수도 없이 출렁거리고 온도 등 변화가 무쌍하지만 깊은 심연은 언제나 고요하고 잔잔하듯 저의 내면에서도 그러한 것들을 느끼게 됩니다. 저도 아직 한참 배우며 자라가고 있지만요.


영성의 삶은 한편 이러한 고요함과 평안함을 배워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딤전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그런 고요함을 배워가다 보면 어느새 세상의 것들과 일들에 그리 연연해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주님 안에서 나름 영의 고요함과 평안함을 누리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주님이 당신 안에서 주시겠다고 하신 쉼이 무엇인지를 배워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그러한 고요함 가운데 영으로 주님과 함께 걷는 조용한 산책길, 한 3-4살가량의 여자아이모습의 영적 존재가 나타나 곁에 다가옵니다. 영의 세계는 생각으로 교감하는 세계, 생각으로 등에 업어주니 좋아라 합니다.


“나 한테 해 줄 말은 없어?”라고 물어니, 혀 짧은 소리처럼 “사랑해”를 “따랑해”라는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새치 뽑아 줄까?” 그러는 것 같았습니다. “안돼, 그러면 목사님 옆 대머리 돼!”라고 말해주니 우스워 죽겠다는 듯 까르르 웃어댑니다.


주님 안에서 흐르는 가슴의 고요함과 그 속의 평강, 그리고 아기 천사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가운데서 지금 제가 걷는 밤길이 다름 아닌 천국의 황금길이요, 수정바다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언제나 혼으로 육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닌, 가슴 곧 영으로 살아가는 경건함과 단정한 삶 속에서 마음의 고요함과 평강을 누리면 언제나 마음 속에 천국을 누리는 우리 모두면 참 좋겠습니다. 주 안의 고요한 참 평강 전합니다. 샬롬 !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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