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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초록 등불 2012. 7. 24. 18:13

 

  

  [영성의 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 말하면서 실상은 입술의 헛된 고백일 뿐 대부분은 자기 사랑 그 이상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신앙의 성숙과 영적 성장이란 바로 이러한 자기 사랑의 모습에서 진정한 하나님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마가복음 10장 35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결국은 이러한 자기 사랑, 곧 자기의 영광과 이익만을 구하는 것일 뿐인 우리의 모습의 거울이 나오지요.


35절의 앞선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어져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고, 고난을 당하게 된 후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10: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막10: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공관복음서의 여러 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인간 예수님으로써 엄청난 고통 앞에서 사람의 몸을 입은 연약함 속에서 무척이나 고뇌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마가복음 10장에서는 이러한 인간적인 고뇌하시는 모습은 말씀하고 있지 않지만, 아마도 예수님의 심정은 힘들지 않으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당신의 얼굴에도 그런 힘겨움이 조금은 묻어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무척이나 사랑하고 아끼었던 제자들 중의 야고보와 요한은 그런 예수님의 모습은 전혀 살펴 헤아리지 못하고, 예수님 사랑이 아닌 자기 사랑과 유익만을 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의 영광을 자기들에게 주기를 간청한 것이지요.


막10: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막10: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막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막10: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막10:39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막10: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그 때 대답하신 예수님의 대답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쩌면 철없어 보이는 그 제자들의 질문 앞에 “너희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바로 답을 찾을 수 있지요.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는 것이지요.


세상에서도 이치가 그런 줄 알면서도 우리는 영적인 것들에 관해서는 이러한 이치를 무시하고 고난의 잔과 세례는 무시한 채 그 뒤의 영광만을 구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가령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고 존귀한 자리에 앉은 이 세상의 사람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청난 땀 흘림의 시간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지요. 올림픽과 같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선수의 영광 뒤에는 그 누구도 알기 어려운 엄청난 훈련과 연습의 땀 흘림의 시간이 있지요.


영적인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구할 때, 어떤 영광을 구할 때 그곳에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우편에 앉으려면 주님의 우편에 앉을 만한 고통의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주님의 좌편에 앉으려면 그 영광에 부끄럽지 않는 고난의 십자가, 곧 대가를 지불하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서 영적인 것이던 세상에 속한 것이든 영광을 많이 구합니다. 세상에 속한 것들로는 풍요로운 재물과 권세와 명예를 구하기도 합니다. 영적으로는 더 높은 권세와 더 강한 능력을 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우리의 간구 앞에 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동일합니다. “네가 구하는 것에 상응하는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겠느냐?”라는 것이지요.


오늘 글의 주제는 세상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권세와 능력에 있으니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말씀을 기록해 봅니다.


일반 그리스도인이시던지 목회자 반열의 분들이시던지 우리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능력, 곧 성령 안에서 주시는 은사와 능력을 사모합니다. 그렇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부분 구하는 동기에서 잘못된 것을 우리 자신들에게서 발견하곤 합니다.


어떤 경우는 자기만족이나 과시를 위하여 은사나 능력이나 큰 체험을 구하기도 하고, 목회자 반열 분들의 경우는 그러한 능력이 나타나면 교회 성장을 통하여 자신의 삶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동기도 많을 것입니다.


실제도 많은 목회자분들이 현실적 목회의 어려움, 교회의 어려움 앞에서 탈출구로 은사와 능력을 구하고 찾아다니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목회자 분들이거나 평신도 분들이거나 어떤 동기에서거나 하나님의 능력과 은사를 덧입어야 능력적 사역이나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으니 그런 것들을 사모하며 찾아다니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처럼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주님께서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는 말씀은 구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구하는 그것의 이면에는 그것에 상응하는 아픔과 고난과 시련과 눈물과 중보의 십자가 삶이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알고 구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지요?


또 그것은 자신의 이익이나 영광을 위하는 자기 사랑적 삶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닌, 오직 그러한 욕망이나 자아를 다 버리고 십자가에서 죽으려는 비우고 낮아진 마음에서, 오직 주님을 생명 다해 사랑하며 충성되이 일하는 자에게 아버지께서 주시는 상급인데, 구하는 동기가 옳으냐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본질적인 부분을 제대로 알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껍질인 은사와 능력을 우리는 많은 경우 사모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사와 능력에 선행하며 선행하여야 하는 이런 본질적인 부분, 진정한 하나님 사랑, 진정한 자기 부인, 의와 정결의 거룩한 삶,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 사랑’ 이라는 마음 앞에서 다 내려놓을 줄 아는 이런 본질적인 부분은 뒤로 한 채, 그저 영광만 구한 야고보과 요한처럼 우리도 많은 경우 같은 모습인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런 대가나 바람이 없이 순전한 나드 옥합을 깨뜨려 자신의 머리털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주님의 장례를 예비한 마리아와 같이 되지 못하고, 그러한 마리아를 책망하고 오직 영광의 주님의 좌우편에 앉으려고 서로 다투던 제자들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여전함을 많이 보게 됩니다.


막14: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막14:4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막14: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막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막14: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막14:8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화려한 경험과 놀라운 은사와 능력을 경험하거나 받아 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러한 우리에게 “네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주는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라고 물어 보십니다.


영적 경험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믿음이 연약한 자를 붙잡고 세워주시려 함이지요. 이런 차원의 경험은 누구나 성령의 세례를 받으면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체험들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기에 하나님은 모두에게 나름의 특별한 영적 경험을 하게 하시는 것지이요.


두 번째 영적 경험의 의미는 장차 다가올 사명과 십자가의 무게를 의미합니다. 장차 감당하여야 할 사명의 무게가 무거우면 그 무게를 지탱하고 감당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더 깊고 다양한 영적 체험을 하게 하십니다. 그런 영적 경험의 화려함이 소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힘겨움을 견디어내게 해 주는 한편 내적인 힘이 되기 때문이지요.


다른 한편 영적 경험이 깊고 화려하면 그 소명도 크고 중한 바, 하나님은 그 소명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혹독한 시련과 연단의 시간 속으로 그 삶을 일반적으로 이끄십니다. 결코 짧지 않은 광야의 아프고 고독하고 힘겨운 시간, 때로는 죽음처럼 무겁고 아픈 눈물의 골짜기를 거닐게도 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시련과 고난의 연단 없이는 내적인 힘이 키워지지 않고 성숙함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우신 것이지요.


히5: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그러므로 모두에게 주시는 낮은 차원의 영적 경험의 화려함이 아닌 소명을 위한 화려한 경험을 하는 경우는, 이미 죽음과도 같은 혹독한 시련의 시간을 걸어온 사람이거나 아니면 앞으로 그러한 혹독한 성숙을 위한 시련과 연단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미 거쳐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남은 시간 온전히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주님만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자기 부인과 죽음의 삶만이 남아 있는 것이지요.


이와 더불어 강한 능력의 기름 부으심 또한 혼자 기분 좋고 능력 과시 등의 자기중심적 의미에서 주시는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우리에게 오심은 그 권능으로 말미암아 능력있는 복음 증거자의 삶을 위해서 오시는 것이며, 능력의 기름부으심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


가령 신유의 강력한 기름부으심이 있으면, 처음에는 기도하면 병이 나으니 신기도 하고 기분이 좋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느낌은 잠시, 그러한 신기함은 점점 무덤덤해져가고 수많은 병자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끌어않고 기도하는 힘겨운 십자가 중보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유의 은사가 임하면 그냥 손만 얹거나 등으로 기도하면 병이 낫는 줄로 압니다. 손만 척 갖다대면 병이 무조건 낫고 자신은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흠흠!”할 수 있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지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지요. 병이 찾아온 원인이 무엇인지 영적으로 분별하여 진단하여 함께 중보하고 기도하며 옳은 길로 인도하여야 하고,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그 아픈 증상을 함께 전이되어서 느끼며 그 고통을 함께 지고 울기도 하여야 하고, 점진적 치유가 일반적인바 수도 없이 기도와 힘겨운 상담의 시간을 가져야 하며, 그 사람의 치유 후 사후관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정말로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헌신의 아픔과 중보의 십자가가 요청되는 사역이지요.


한 두 사람이라면 쉬 감당도 하련만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이 세상, 숱한 병자들을 위하여 중보하고 기도하며 그들의 치유를 위해서 부름 받은 직임으로서의 신유사역자의 삶은 말 그대로 사랑의 십자가요, 아름다운 고난의 삶인 것입니다. 축사나 다른 모든 영역의 능력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평범하지 않은 화려한 경험은 다가올 시련과 연단의 깊이와 감당하아여 할 사명의 무거움을 말해주는 것인 것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능력의 임함 역시 평범하지 않은 삶의 시련과 아픔과 걸어가야 할 중보의 십자가의 무게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좌우편의 영광만을 구했던 야고보와 요한처럼 그 화려함과 영광만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부 목회자분들의 경우는 참으로 아프게도 능력을 주심의 본질과 본질적 의미를 알지 못하시고, 교회부흥과 자신의 삶의 유익을 위하여 “오직 은사! 오직 능력!”에만 매달려 이곳저곳을 전정하시다가 소중하지만 본질인 아닌 껍질인 은사만 전이 받아서, 말씀대로의 삶은 부족하고 능력만 나타나서 불법을 행하는 능력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잘못된 영을 전이 받아서 평신도들에게 악한 영을 넣어주는 무서운 형벌의 참람한 사역자가 되기도 하는 것을 실제로 많이 보게 됩니다.


적지 않은 악한 영의 통로가 그러한 불법 능력 사역자의 안수로 인한 것임을 종종 보고 듣게 됩니다. 본질의 바른 세워짐이 없이 은사와 능력만을 추구하다 보니, 아직 처리되지 못한 어둠의 영역을 타고 악한 영이 더불어 역사, 양신 역사의 사역을 하면서 때때로 다른 사람들에게 악한 영, 곧 귀신을 전이시키는 무서운 사역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분명한 확신과 경종의 의미로 소리높여 말씀드립니다. “오직 은사와 능력과 현상과 표적만을 구하는 사람은 목회자이시든지 일반 성도님이시던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반드시 미혹의 영에 빠져서 영적으로 잘못됩니다”


왜냐하면 바른 본질과 본질의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우리가 구하는 바의 참된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은사와 능력을 구한다면, “주님, 정말도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역과 복음증거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려니 당신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내게 그 능력을 주시옵소서. 어떤 눈물과 시련의 골짜기라도 그 사명의 길이 죽음의 십자가 길이라도 오직 주님 사랑, 상사일념 일사각오로 주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하고 정말로 마음 또한 그러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이러하다면 하나님은 애써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때때로 화려한 영적 경험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또 당신의 능력의 갑옷으로 무장시켜 주셔서 능히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그렇게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도 귀하기 때문입니다.


사역자도 스승은 많으나 아비는 적으며, 모두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영광만을 대부분 구하기 때문입니다.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지만 참된 일꾼은 너무도 찾기 힘드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만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먼저는 저 자신을 위한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 진정으로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또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의 길을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말없이 묵묵히 걸어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이제는 더 이상 우리의 영광을 구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들의 참된 의미를 알고 구하고, 그리고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처럼 기꺼이 아무런 대가의 바람 없이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다른 이유가 아닌 그저 주님을 사랑하기에 당신 앞에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려 애쓰는 우리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하늘 영광의 빛을 어찌 보게하지 않으시며, 어찌 강력한 능력의 기름부으심을 허락하시지 않겠습니까? 할렐루야! 아멘.


막10: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막10: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막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막10: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막10:39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막10: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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