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간증을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목사님께서 하루 한 시간가량 방언으로 기도하니 사단이 생각으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기도를 왜 한 시간이나 무의미하게 하느냐?” 속삭입니다.
그래서 해긴 목사님은 그 속삭임에 승리하려고 두 시간, 세 시간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니 또 다시 사단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기도를 바보처럼 늘려서 더 하네”라고 속삭입니다.
그래서 해긴 목사님은 그 속삭임에 승리하려고 하루 다섯 시간 이상씩 방언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다가 보니 어느 날 깊은 영의 샘이 터지고 계시의 샘이 터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말씀을 많이 보아야 한다”라는 말들을 너무도 자주 듣고 우리 자신도 해가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우리가 주고받는 수준의 그런 의미가 아닌 정말로 깊은 기도와 말씀의 샘을 터뜨려야 합니다.
여러 번 말씀드려 기억을 하시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저는 아주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에 성령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돌아보면 미미한 그런 것이 아니라 아주 강력하고 뜨겁게 성령의 세례를 받았었습니다. 어쩌면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제게는 다메섹 사건과도 같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삶의 우여곡절 끝에 목회자의 발걸음을 걸으면서도 나름 기도의 생활은 하였습니다. 삶의 여정 가운데서도 나름 기도생활을 해 오며 살아왔습니다. 가령 집회에 참여하거나 하면 대부분 끝까지 남아서 기도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능력방언이라고 명명한 일반적인 수준의 방언이 아닌 어떤 다른 능력과 권세가 느껴지는 방언의 은사는 집요하게 2여년에 걸친 기도생활 가운데 주어졌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지식이 없어서 잘 알지도 못했지만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기도생활도 아직 물가를 밟는 얕은 기도일 뿐입니다.
저의 경우는 깊은 기도의 샘을 터뜨리게 된 것은, 자랑할 것도 전혀 없는, 혹독한 고난과 시련 곧 육신의 질고의 큰 위기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매달리게 되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큰 위기 앞에서 부르짖듯이 저도 사람이다 보니 생의 큰 위기 앞에서 생의 아픔을 안고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앞도 뒤도 다 막히고 사방도 다 막혀 오직 하늘로만 열려 있으니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밖에 할 것이 없었습니다. 오직 홀로의 고독한 시간과 아픔의 시간,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주님께 기도할 것 밖에 없으니 주님께 집요하게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정말 집요하게 기도하였습니다.
일년을 넘어 이 년여 가까운 세월을 간간 쉬어가면서 기도했으니 온전한 철야는 아니지만, 적어도 하루 3시간 길게는 7-8 시간가량을 밤을 새며 집요하게 기도하였습니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그나마 그런 기도를 통하여 저는 기도의 깊은 샘을 터뜨리게 되었었습니다.
저의 신앙의 여정과 그런 경험을 통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 평범하고 얕은 수준의 기도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런 기도이기에 별스런 역사와 응답을 가져오지 못하는 기도요, 어쩌면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기도생활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훈련과 다림을 받고 보니, 정말로 신앙생활을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마냥 편하고 수월하게 느끼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저의 경험상 아직 영의 세계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깊은 기도와 말씀의 샘을 터뜨리지 못한 분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영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고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혹은 성령세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주님께 깊은 다루심을 받지 못한 분들은 저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기도생활에 근간을 둔 우리의 신앙생활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정말 집요하다고 할 정도의 기도의 삶과 온 삶이라 할 만큼 말씀에 젖어 사는 삶이 아니면 제대로 된 영성생활이 쉽지 않으며, 제대로 된 영성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삶이 아니며,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집요하게 애써도 때때로 지건만 아니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지요.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신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신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30: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영적 세계의 실상을 알지 못하는 분들은 아주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굳이 영의 세계가 아니라도 역사를 돌아보십시요. 그렇게 신앙생활이 단순한지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신앙의 미명 아래 얼마나 역사 속에서 숱하게 악행이 저질러졌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대교는 얼마나 많은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습니까?
눅11: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눅11: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십자군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천주교와 기독교, 기독교 내에서도 말씀에 대한 이견으로 얼마나 많은 잔인한 살육이 있었습니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바른 신앙생활과 영적 생활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혼미한 역사의 배경에는 누가 있습니까? 바로 미혹의 영이요, 거짓의 아비인 사단이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믿는 신앙의 영의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거나 간단명료하지 않습니다.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의 영 아래 수없이 많은 영적 존재들이 있으며, 또한 수없이 많은 사단과 그 무리의 악한 영들이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교회와 신앙계와 세상계의 모든 영역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으며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깨어 경성하지 아니하면, 정말로 깊은 기도의 샘을 터뜨리고 말씀의 깊은 샘을 마시지 아니하면 우리는 결코 이 험난하고 혼미복잡한 영의 세계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영의 좇는 삶에는 “생명과 평안”이 있다고 말합니다. 의와 희락과 기쁨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삶에서 그러한 것들을 실제로 얼마나 누립니까?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우리의 삶의 수고로움과 생활의 염려와 근심, 타락한 본성을 유혹하는 온 세상 가득한 죄의 환경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깊고 넉넉한 기도의 삶과 말씀의 삶 그리고 육을 거슬러 싸워야 하는 영의 삶, 그 싸움에서 대부분 져서 사망과 곤고를 누리는 우리들의 실존이 결코 제대로 된 신앙생활과 영성의 삶이 쉽지 않음을 명백하게 증거하지요.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마음을 다하고 힘들 다하고 뜻을 다하고 나아가 목숨까지 다하지 아니하면” 결코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의 신약의 모형이라고 말들을 하지요. 맞습니다. 그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살펴보십시요. 얼마나 많은 율법에 매여 온 삶과 시간을 하나님의 계명들에 주의하며 살아야 했는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입술로만 나아가지만, 그들은 그 계명을 어길 때마다 얼마나 많은 재산들을 희생 제물로 드려야만 했는지.
이처럼 바른 신앙생활과 영성의 삶, 다른 의미에서 영적 전쟁이 결코 쉽지 않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하고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그 이상의 혹독한 시련과 고난입니다.
인지상정, 우리네 편에서 보면 그럴 만도 하건만 이스라엘 열 두 탐정이 돌아와 그 중 열명이 부정적인 생각을 말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통곡할 때 하나님은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40여년의 광야의 시간을 걷게 하십니다.
레위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그리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거듭하여 완전 숫자인 7을 언급하시며, 칠배의 형벌과 징계가 다가올 것을 말씀하는 구절도 있습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시며 전쟁 속에서 자신의 자녀들을 먹기까지 하는 잔혹한 시련을 주시지요.
레26:18 너희가 그렇게 되어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면 너희 죄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칠 배나 더 징치할지라
레26:23 이런 일을 당하여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를 대항할진대
레26:24 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를 인하여 너희를 칠 배나 더 칠지라
레26:27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레26:28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 죄를 인하여 칠 배나 더 징책하리니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죄를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돌리라” 아무 것도 모른 채 외쳐댔던 이스라엘 백성의 후손에 다가온 징계는 혹독한 2000여년의 방황생활과 2차 대전을 통한 수백만명의 죽음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심은 사람의 성정과 달리 혹독하고 깊습니다. 왜 그러실까요? 그것은 뿌리 깊은 원죄적 우리의 타락한 깊은 본성과 육성과 죄성을 깨뜨리시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처럼 사망과 저주를 불러오는 죄에 대한 경각심을 아주 각인시켜서 우리로 하여금 의와 정결과 거룩함의 새로운 피조물로 빚으시려는 것이지요. 영이신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살리는 영이 중요하지, 육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마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상, 그리고 본능적으로 육을 좇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속성을 아시므로, 우리의 자아와 죄성과 육성을 깨뜨리고, 깊은 기도와 말씀의 샘으로 나아오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혹독한 시련과 고난의 과정을 걷게 하시는 것입니다.
저도 아직도 그리고 연약한 인간이기에 언제나 부족하겠지만, 지금 저의 이 글이 가슴으로 구구절절 와 닿지 않으시는 분은 아직 하나님의 깊은 다루심을 받지 못한 사람이요, 깊은 기도와 말씀의 샘을 터뜨리지 못한 분입니다.
정말로 제대로 된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영적 전쟁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저의 목회 경험상 구원은 받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쟁에서 집니다. 대부분 다 져서 구원의 기쁨도, 생의 활력도, 영의 능력도 없이 무기력한 패잔병의 모습으로, 슬픔과 낙심과 무력함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이러한 성경의 진리를 제대로 알아 깊은 기도를 향한 무릎을 꿇는 삶으로 나아가십시요.
저는 이러한 영적 진리를 알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죄를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다루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게도 되지만, 한편 하나님을 또한 정녕 두려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지 아니하는 모습도 아직 깊은 다루심과 깊은 샘을 터뜨리지 못한 증거이지만, 한편 하나님을 정녕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의 삭은 저주입니다”, “죄의 삯은 재앙입니다”, “죄의 삯은 후대까지 흘러가는 재앙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별스런 생각 없이 주의 말씀과 율례, 법도와 규례를 가볍게 여기며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죄의 시간은 반드시 내일의 혹독한 시련과 재앙의 씨앗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 또한 우리의 영을 살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것마저 없으면 버려진 사생자입니다.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히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영이신 하나님의 마음에는 영원한 생명과 죽음을 결정짓는 영의 삶이 중요하지, 아침 안개와도 같고 이슬과도 같은 우리 육신의 삶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육신을 입어 육의 일에 울고 웃고 하지만 하나님은 오직 우리의 영의 생명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의 생명과 회복을 위하여 육신을 가혹하게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사생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십시요. 여러분도 두려워하며 경외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 자녀들에게도 철저하게 가르치십시요. 우리는 학업성적 등에는 전전긍긍하지만 정작 축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자녀들의 영적인 삶에는 무관심합니다. 아닙니다. 모든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앞서 말씀으로 자녀들을 길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깊은 기도의 샘과 말씀의 샘을 터뜨려야 합니다. 그러한 삶은 하루 몇 시간 기도하거나 성경을 보거나 하는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온 시간과 삶과 마음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 기도요, 삶이 말씀이요, 삶이 제사인 삶입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저와 여러분 이러한 영적 진리를 바르게 알아, 정말로 깊은 기도의 샘을 터뜨리고 말씀으로 심령에 언제나 가득 흐르게 하여, 엄위하시지만 또한 자애로우신 아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마침내 가득 받아 누리며 그 나라와 영생을 소유하면 모두면 참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십시요. 죄를 멀리하시며 돌이켜 속히 회개하시고 말씀대로 살아갑시요. 그것을 위하여 깊고도 깊은 기도의 샘과 말씀의 샘을 터뜨리십시요. 할레루야! 아멘!
시42: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