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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진리] 육의 의사, 영의 의사

초록 등불 2012. 10. 17. 07:11

 

   

 [핵심 진리] 육의 의사, 영의 의사

 

많은 목회자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여 보고 싶어 은사를 많이 사모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신유, 축사, 예언의 은사를 많이 사모하지요. 이는 은사 중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나타내는 대표적인 화려한 영광의 은사이기 때문이지요.


그러한 이면에는 능력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우리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자아의 욕망이 표면적으로 혹은 이면적으로 숨어 있는 경우도 많지요. 목회자의 경우는 그러한 은사 능력을 통하여 교회 성장이나 능력 있는 종이라는 주위의 평판을 듣고 싶은 경우도 많지요.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러한 자아적인 마음은 철저하게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는 능력의 주체는 우리가 아닌 주님이시고, 우리가 참되게 우리 자신을 내려놓아야만 더욱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내려놓지 않으면 그러한 마음이 사단의 한 통로가 되어서 성령의 역사와 더불어 악한 영도 역사하는 양신역사나 혹은 미혹되어 불법을 행하는 사역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사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분들은 주님의 사역을 위하여 사모는 하시되, 이러한 은사사역의 위험성도 또한 알기에, 아무 지식이 없이 순진한 아이처럼 그러한 자기 경험이나 자기 과시적인 마음으로 사모는 하지 않게 되지요.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지요.


때로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의 힘겨움을 경험하거나 공격도 당해보시며 기피하시는 분들도 생기기도 하고, 중단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은 실제 능력 대결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신유나 축사 등의 은사를 구하거나 초기에 경험할 때는 경험의 환희에 기쁘기도 하지만, 매양 피고름과 악취를 풍기는 육체의 환자나 다양한 귀신들림의 분들을 상대하다보면 그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것이 결코 영광의 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임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은사 능력 이전에 십자가 사랑의 영이 부어지지 아니하면 힘든 일임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막10: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하나님의 나라의 법칙에서는 영광의 이면에는 반드시 자신이 마셔야 하는 고난의 잔이 있습니다. 그 잔을 마신 후에야 영광의 세계가 열리며, 동전의 양면처럼 고난과 영광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법칙도 그러하듯이 대가를 지불함이 없이 영광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사의 세계를 주의 깊게 살펴보니, 육신의 질병을 고치는 육의 의사나 영의 치유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영의 의사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환자의 아픔을 자신도 함께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며, 잘못하면 자신이 그 환자의 문제에 감염되고 전이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십자가와 고난의 잔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육의 의사들이야 대부분 어쩌면 환자의 아픔보다는 물질을 추구하지만 진정한 의사라면 그 아픔을 공유하지요. 하지만 성령 안에서의 영의 사역은 십자가, 곧 중보자의 사역이기에 많은 경우 그 아픔을 자신도 감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은사 세계를 잘 알지 못하시는 분들은 신유의 은사라면 그냥 간단히 손만 얹고 기도하거나, 축사의 경우도 그냥 간단히 명령하거나 안수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전파를 위한 복음 전도자의 집회에서는 그런 경우도 많이 일어나지만, 실상 그러한 복음 전도자들도 그러한 역사를 일으키기 위하여 자신의 삶에 있어서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어 주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복음 전도자의 집회가 아닌, 일반 교회나 사역지에서는 그러한 순간적인 치유나 회복보다는 점진적인 치유가 일반적입니다.

왜냐하면 복음 전도자의 집회에서는 표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목적이지만, 일반 사역지에서의 하나님의 관심은 육신의 치유나 문제 해결이 아닌, 그러한 문제 해결의 과정 속에서 영을 바르게 세우시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세워짐과 강건해짐이 먼저요, 그 다음에 문제 해결이 따라오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유나 축사의 사역의 경우 오랜 시간의 헌신이 많은 경우 필요한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상담하고 권면하고 힘을 북돋우고 기도해 주는 등의 십자가의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요삼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그러므로 일반 사역지에서는 대부분 신유나 축사나 예언의 경우, 피사역자의 아픔과 문제를 같이 안고 고민하고, 때로는 영의 전이로 그 아픔을 같이 느끼며, 중보의 십자가를 지는 사역인 것입니다.


예언의 경우는 오류가 있으니 성경이 분별하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데도 자신의 생이 아니라고 분별없이 남발하여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치거나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고전14: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때로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의도적 예언 등을 하시는 분들도 있지요. 그런 사역자의 경우는 진정한 사역자라고 볼 수 없는 것이며, 그 책임은 장차 주님 앞에서 무섭게 지게 되겠지요.


제가 수많은 자료를 살펴보고 저의 작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예언은 많이 틀립니다. 반드시 분별하셔야 하고, 자신의 마음에 확증이나 성령의 내적증거를 얻지 못하면 따르면 아니 됩니다. 자신의 생이니 자신의 책임 하에 주도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잘못된 예언으로 생이 망가지고 난 후에 그 예언자를 원망해보았자 때늦은 후회인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영적 지식은, 육신의 질병을 다루는 의사가 가령 결핵과 같은 질병을 다루면서 자신의 관리를 잘 못하면 그 질병의 균이 자신에게 옮겨와 자신이 고통을 당하게 되듯이, 영의 문제를 다루는 영의 의사도 자신의 관리에 실패하면 때로는 환자의 아픔과 귀신들림을 자신이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를 ‘영적 손상’이라고 일반적으로 부르는데, 얕은 경우는 영적으로 침체되거나 무기력해지는 정도이지만, 심각하게 영적 손상을 당하면 사역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나, 때로는 병균이 옮겨오듯 질병이나 귀신들림의 피사역자의 문제가 자신에게 옮겨와 오히려 자신이 괴로움을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잘못하면 피사역자의 질병이나 귀신들림을 자신이 떠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유나 축사 등의 사역 시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육신의 질병의 의사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되지요.


첫째는 육신의 의사가 소독을 철저히 하지 못하여 감염의 통로를 열어두면 자신에게도 병이 옮겨 오겠지요. 영의 의사인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영의 의사의 경우 소독이란, 늘 말씀대로 살아가려 애쓰며 늘 예수님의 보혈로 자신의 거룩하고 정결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병균도 통로가 없으면 오지 못하듯 악한 것들도 통로가 없으면 오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역시 반드시 보호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통한 사단의 묶임의 명령과 보혈의 피 뿌림을 통한 보호와 성령의 불의 능력의 지키심과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을 요청하는 등의 기도를 통하여 반드시 보호기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으시며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영의 한 기본 원리 중의 하나이지요. 왜냐하면 이 세상은 사단에게 내어준 바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 없이는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던지 항상 기도로 요청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눅4: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눅4: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겔36: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그리고 자신의 영적 등의 상태가 좋지 못할 때에는 사역을 조금 미루는 것도 한 방편입니다.


둘째는 세상의 의사도 지식을 갖추고 해야 하듯이 영의 의사도 영적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가끔은 귀신들림의 축사 사역을 하다가 해를 당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환자가 흉기를 휘둘러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지요. 때로는 사역의 영적 지식이 없이 하다가 환자를 무리하게 다루어 사역자가 목숨을 잃게도 하지요.


축사에 관한 글이 아니니 상세하게 적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축사 사역은 다양한 돌발 상황이 있을 수 있으므로 주 사역자 외에 보조 사역자인 돕는 이를 두는 협력사역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는 세상의 의사도 전문가가 되고 능력이 있어야 하듯이 영의 의사도 마찬가지인데, 영적인 세계의 능력은 우리가 아닌 주님, 곧 성령님이시니 늘 경건한 삶, 말씀과 기도에 힘쓰며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겠지요.


성령의 충만함은 능력의 충만함이 될 뿐만 아니라 악한 것들이 결코 들어올 수 없는 영적 면역체계의 강력함도 동시에 되는 것이지요.


넷째는 육신의 의사도 아무리 지식이 많고 능력이 있다하더라도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듯이, 영적 사역자도 사역을 하게 되면 영의 에너지나 체력 등이 소진되므로 적절한 휴식을 통하여 영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보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육이 하나인 유기체이므로 영과 아울러 마음과 육체의 늘 밝고 건강함을 위해서도 노력하며 자기 관리를 잘 하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신유나 축사 사역의 조건과 힘겨움이나 자기관리의 필요성을 알기에, 몸의 연약함과 체력의 부족함을 안고 그러한 사역에 무리하게 욕심을 내거나 하지 않는 것입니다. 때로는 긴 시간과 엄청난 영력, 정신력, 체력이 소진되는 사역의 방법은 욕심내지 않는 것입니다. 사역을 하더라도 주님께 더욱 맡긴 채 체력 소모가 적은 형태로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역의 능력은 결코 우리의 육신의 힘이나 의지가 아닌 오직 주님의 능력이므로, 주님께서 명령하시거나 성령께서 감동하시면 ‘오직 믿음’으로 자신 있게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능력과 역사는 나타납니다. 사도바울도 육신의 연약함을 안고 놀라운 능력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저 역시 그러한 믿음으로 체력적 소모가 적은 저만의 방법으로 사역을 하고, 결과는 주님께 맡긴 채 말씀대로 행하려 애쓰지요. 짧게라도 아픈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대중적 선포형식으로 사역을 하곤 하지요.


그동안 간간 가지는 아직은 그리 많지 않은 집회를 인도하면서 악한 영들이나 귀신의 드러남은 몇 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체력적 연약함을 주님이 아셔서 그런지, 육신의 고통과 아픔의 전이는 잘 시키시지 않으시는데, 영적 눌림이나 그러한 부분은 영이 맑을 때면 늘 전이시켜 느끼게 하십니다. 영적으로 눌린 분들이 오시면 전이 되어 제가 눌림을 느끼고 다소 힘겹지요.


그런 경우 그 눌림이 해소될 때까지 강력하게 선포를 하곤 하는데, 얕은 귀신들림이나 눌림은 그러한 선포형식으로도 대부분 떠나고 풀어집니다. 글로 표현하기 다소 그런 귀신이나 악한 영들이 나갈 때의 육체적 현상이 있거나 혹은 악한 영들이 제 눈앞에 와서 저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가곤 합니다.


왜 와서 저를 가만히 쳐다보고 가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귀신의 형상은 많이 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저승사자의 모습으로 강단에 서 있는 저를 가만히 쳐다보고 가던 악한 영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꼭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저승사자와 똑 같이 생겼더군요.


그런데 그러한 악한 영의 드러남 가운데, 한번은 주님께서 직접적인 치유사역을 명령하셨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와서 씻고 있는데 주님께서 ‘라피엘’이라고 이름을 밝힌 대천사처럼 보이는 천사를 통하여 “그 사람은 네가 다루어라”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명령하시니 “네”라고 대답은 하였지만, 축사사역은 다양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에 내심 인간적인 걱정도 마음에 자리를 잡더군요.


위에서 말씀드린 이유로 일대일의 체력적 소모가 심한 강력한 축사 사역은 전화 사역 한번 외에는 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전화로 누군가 악한 영의 들림으로 인한 호소하기에 강력하게 십 여분이 넘게 명령을 한 적이 있는데, 잘 나가지도 않고 저의 체력 상 탈진이 되어버리더군요. 기도한 후 피곤해서 쭉 뻗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잘 나가지 않은 것이 그 분의 내적치유가 먼저인데, 그것의 다룸이 없어서 인 듯싶습니다. 죄와 상처에 뿌리를 내린 악한 영들은 그 뿌리가 없어지지 아니하면 나가지 않습니다. 그 뿌리가 제거되면 가벼운 축사나 혹은 축사를 하지 않아도 나갑니다.


시간이 길거나 강하게 사로잡힌 경우는 본인의 의지가 장악을 당하였기에 강력한 능력 사역자를 만나지 않으면 축사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본인의 의지로도 뿌리를 제거하면 악한 영들은 약화되고 결국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쨌거나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소리를 강력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지식이 부족하여 그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다가 지쳐버린 것이지요. 하지만 체력이 된다면 약한 소리보다는 강력하고 단호하게 명령하는 것이 좋겠지요.


하지만 영력은 꼭 물리적 힘은 아니니 큰 소리로만 사역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만 실려 나간다면 소리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역사는 일어납니다.


어쨌거나 그런 경험 이후로 더욱 그런 체력적 소모가 심한 축사 사역의 방법은 하지 않게 되었는데, 갑자기 일대일 사역을 말씀하시니 다소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명령 이후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축사 기도를 해 주기까지 내내 그 악한 영에 의한 영적 현상이 제게도 전이되어 몹시 힘겨웠습니다. 마치 눈에 모래가 들어간 것처럼 제 영 안에서 불편한 거슬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악한 영의 들림이나 나감에 따르는 불편한 육체적 현상도 간간 동반되었습니다. 지내는 시간과 자리가 가시방석인 듯 아주 불편하고 힘겨웠습니다.


그리고 눈만 뜨면 그 분 속의 악한 영들이 공간을 초월하여 공간 저편에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두머리인 듯한 영은 다소 큰 형상으로, 그리고 졸개들인 듯 한 영들은 작은 형상으로 보였습니다. 악한 영들의 형상은 그분을 배려하여 기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명령이시니 축사에 관한 이론서도 살펴 지식도 쌓은 후, 그러한 시간 후 연락을 취해서 축사를 위해 기도해 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분이 기도를 받으러 오는 시간, 인간적인 우려가 잠시 마음에 자리를 잡더군요. “쉽게 끝날까? 잘 나갈까?”그러한 생각들이지요.


순간 곁에 서 있는 ‘라피엘’ 천사가 강력하게 “강하고 담대하세요”라고 말을 전해 주어 그 말에 용기를 내어서 한번도 경험이 없는 개인 축사를 했습니다.


경험과 지식이 없는 많은 분들이 실수하고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몇 초 해보고 안 되면 그냥 포기한다는 것이지요. 축사나 신유 등의 기도를 할 때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몇 십 분까지 인내하며 기도하며 명령을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체력 소모가 심한 면도 있지요.


주님께서 저의 체력적인 부분도 고려하셔서인지 그리 오래지 않아 드러나게 하시고, 영으로 지식의 말씀을 들으며 상황에 따라 명령하여, 저나 피사역자나 그다지 힘들지 않은 방법으로 악한 영들이 떠나가게 하셨습니다. 사역을 해보니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면 명령하는 대로 악한 영들은 순종을 하더군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하늘과 땅과 땅 아래 모든 것들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지신 권능자이심을 경험을 통하여 새삼 배웠지요.


빌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축사의 방법은 여러 형태로 할 수 있는데, 저의 경우는 드러내어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기도하면 그들이 하는 말들이 영으로 가끔 들러옵니다. 그러한 말 중에 기억나는 말의 하나는 “나는 이 사람이 나를 내보기 원하지 않기 때문에 안나가도 돼!”라는 말입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피사역자 자신이 죄를 돌이키거나 용서하거나 사단의 통로가 되는 것을 버리려는 강력한 의지가 없이는 결코 축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경험으로 배웠지요.


어쨌거나 주님께 순종하여 축사 기도를 한 후에는 며칠이고 힘겨웠던 그러한 영의 불편함이 사라졌습니다. 눈에 불편하던 모래알이 빠져나간 것 같았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신유나 축사 사역의 조건과 힘겨움을 알기에 자기 관리를 위하여 아직은 무리하게 그러한 사역에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명령으로 한 번 이를 행하게 하신 것은 그런 경험을 통하여 영의 일들의 실제에 대하여 배우게 하시려는 배려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경험한 힘겨움은 앞에서 말씀드린 신유나 축사나 그 무엇이나 영의 일들은 영광만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 반드시 져야 하는 중보의 십자가나 마셔야 하는 고난의 잔이 있음의 경험이지요. 그러므로 그러한 힘겨움은 소명과 사역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다른 사람의 육체의 병증이 전이되어 아픔을 느낀다면 그 분을 위하여 중보하거나 치유사역을 하거나 등의 영적 신호가 몸으로 온 것이지요. 악한 영들이 전이 되어 힘겨움을 느낀다면 역시 그런 계열의 사역의 영적 신호가 몸으로 온 것이지요.


누군가를 위한 중보의 마음이 임하여 힘겨운 경우는 중보의 영이 임한 경우인데, 이는 중보 기도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영의 신호인 것이지요. 다른 모든 영적 전이 현상도 영분별을 하여 분별하여야 하지만, 몸으로 전해주는 주님의 신호, 곧 영의 신호인 것입니다.


가끔 누군가를 위하여 중보 기도를 드리다보면 중보 기도자의 소명이 있는 분들의 경우는 그 영이 제게 전이되면 때로는 정말 힘겹습니다. 중보 기도의 소명의 무게만큼 세상과 영혼 구원을 위한 무게로 무거운 신음과 탄식을 하게 되는데, 자신에게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면 중보 기도자로서의 소명이 있는 것이지요.


찰스 피니의 집회의 중보 기도자로서 알려진 ‘다니엘 내쉬’와 같은 분이 이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오늘은 저의 작은 경험도 나누며 이론만으로가 아닌 실제로도 배운 영의 일들의 영광의 이면의 중보의 십자가와 그리고 마셔야 하는 고난의 잔이 있음에 대하여 함께 나누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영성 사역에 있어서의 영적 손상을 막기 위한 알고 꼭 지켜야 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나누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유익한 영적 지식들도 곁들여 보았습니다.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는지 모르지만 나름 중요한 지식이니 꼭 기억하시고, 은사와 능력을 사모하시되 바른 가치관으로 사모하시고, 또한 자기관리에도 충실하여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해 봅니다. 비록 힘겨운 일이나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한 거룩한 싸움이니 우리 모두 주님의 손에 붙들린 아름다운 사랑의 중보자이길 기도해 봅니다.


그리고 꼭 기억하십시요. 모든 삶과 사역의 바탕은 영광이 아닌 십자가이며 중보입니다. 곧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고난의 잔을 마신 후에 썩지 않는 하늘 영광이 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고전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고전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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