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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외로운 이유

초록 등불 2012. 11. 13. 15:01

 [영성의 글] 외로운 이유

 

저녁을 먹고 운동 겸 산책을 나섰습니다. 요즈음은 기온변화도 심하고 다소 쌀쌀하여 저녁 산책은 나가지 못했는데, 그래도 운동을 조금 해야 할 듯싶어 따뜻하게 차려입고 운동을 나갔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던지 주님이 곁에 두신 천사에게 항상 물어봅니다. 요즈음은 천사를 통하여 말씀하시기에 주님의 뜻을 천사를 통해서 들으니까요.


올 한 해 제가 생각하기에 감기몸살에 걸렸을 시간대가 한 3번 가량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때마다 천사가 시키는 대로 해서 무사히 넘기곤 하였습니다. 가령 어떤 날은 다소 곤한데도 기도 말씀을 하고 자려고 하면 그냥 무조건 속히 자라고 합니다. 그러면 앓이를 하지 않고 무사히 넘기곤 하였지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항상 성령의 내적 증거를 따라 행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께 물어보고 무슨 말씀이 있으면 따르고, 말씀이 없을 때는 성령과 말씀 안에서 자신의 연단된 영의 분별력 안에서 행하여야 하는 것이지요.


‘라피엘’천사에게 물어보니 산책과 운동을 나가도 좋다는 증거가 옵니다. 요즘 제게 주님의 지시를 전하는 천사는 ‘라피엘’인데 특이하게 모습을 늘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모습이 늘 보이는 천사는 정말 아름답게 생긴 천사 ‘린’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지시를 전하는 천사를 ‘라피엘’입니다.


숨어 계시는 하나님처럼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나 들려오는 음성이 ‘라피엘’에게서 오는 것은 압니다.


우리는 영적 감각을 기도와 훈련과 경험을 통하여 예민하게 하는 것을 배워가야 합니다. 가령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의 음성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고, 다양한 천사들의 음성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험해보니 영적 교통은 성삼위 하나님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 악한 영들, 그리고 사람도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 교통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영적 감각이 예민하게 살아나면 동물이나 식물들과의 교감도 가능해 보입니다. 그것이 본래 타락하기 이전에 만물의 영장이었던 인간이 가졌던 능력이니까요.


다소 따뜻하게 차려 입고 밖을 나가니 날씨도 그다지 추운 날씨는 아니어서 선선한 가을을 가슴으로 느껴보며 조용히 주 안에서 산책을 하였습니다.


저의 일과는 대부분 혼자 주 안에서 지냅니다. 경건시간을 갖거나 혹을 일을 하거나 하는 시간 외에도 주님이 당신 안에서 고요하게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냥 주님 안에서 홀로 고요하게 있습니다. 그렇게 있다 잠이 들 때도 있지만 쉴 때도 그냥 주님 안에서 혼자 조용히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잦은 만남이나 연락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성령 안에서 영의 다양한 감각들이 살아나면 모든 것들에 에너지와 같은 영의 흐름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나 하고 대화를 하거나 만남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혼적이고 육적인 만남과 사귐에 다소 흥미를 잃어갑니다. 힘겹기만 하니까요.


그래서 사역의 일이나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들도 별스레 만나지 않고 대화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시간 그냥 주님과 함께 그리고 주님 안에서 홀로 지냅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그렇게 저의 삶을 지금은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별스레 의미 없는 혼적인 잦은 만남은 다소 절제하더라도 세상을 구원하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 구원을 위한 세상을 품는 일에는 다소 힘겨워도 중보의 십자가를 마음에 안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겠지요.


주님과의 사귐을 위하여 때로 주님 앞에서 홀로인 영적 피정의 고독한 영성과 아울러 세상을 품는 영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겠지요.


밖으로 나선 산책길, 오늘은 다소 조금 넉넉히 산책을 하고 가을 안에서 쉬고 가라는 천사를 통한 주님의 내적 증거, 그래서 평소보다 다소 먼 길을 걸으며 산책을 하였습니다. 언제나 마음의 고요함을 잃지 않기를 원하셔서 길을 걸을 때도 대부분 조용히 걷습니다.


원래 성격을 발랄하고 명랑한 편인데, 주님 안에서 모든 것들이 점점 고요해져 감을 느낍니다. 점점 고요함과 조용함이 좋아져갑니다. 주님이 그렇게 이끄시네요.


그렇게 산책을 하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서 쉬며, 제 곁은 늘 따르는 ‘린’ 천사를 가만히 바라다보았습니다. ‘린’도 가만히 저를 바라봅니다.


다시 무슨 하고픈 말이 있으면 하라는 마음으로 수정 같기도 하고 맑은 호수 같기도 하고 하늘 빛 같기도 한 너무도 맑고 곱고 예쁜 ‘린’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영적 존재들과는 그냥 영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모습을 보며 교감을 할 때는 눈으로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렇게 눈동자로 그 마음을 읽어보니, ‘린’의 눈동자에 깊이 어려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말할 수 없이 깊고도 깊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사랑하세요”,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사랑하세요” 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랑은 이 세상에 속한 어떤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롭고 영원한 속성을 담은 그런 아가페의 영원하고도 본질적인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모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게 하는 그런 눈빛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산책을 하다가 성부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조금은 참 귀한 말씀을 들은 저녁이기도 했었습니다. 산책을 하다가 “아버지, 하실 말씀 있으세요?”라고 물어보았을 때 성령님처럼 모성적인 목소리는 아니지만 부성적 음성으로 “사랑한다” 문득 말씀해 주셨거든요.


성부 하나님께 그런 말씀을 들은 것은 처음 같습니다. 늘 “거룩하거라”, “강하고 담대하여라”라는 말씀이 일반적으로 이르시는 말씀의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자애로운 말씀을 해 주셨는데, 당신 안에서 늘 사랑하시겠지만 나름 하루 주의 일에 애쓴 제게 주시는 격려의 말씀 같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다시 조용히 주 안에서 누워 있노라니, 문득 인간적인 외로움이 찾아왔습니다. 너무도 감사한 하늘 품의 사랑도 한없이 따사롭고 과분하지만 사람이다 보니 인간적인 외로움이 마음에 깃들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사람들과의 만남도 다소 힘겨운 면도 있고, 별스레 위로를 위한 사람들과의 만남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지만, 그런 일반적인 의미의 외로움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본질적인 고독이 마음에 느껴졌습니다.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무료도 하고, 그렇다고 별스레 세상에 속한 다른 하고 싶은 일도 없고, 그냥 주님 안에서 조용히 누워서 본질적인 고독감을 느끼며 그냥 조용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감 속에서 제법 외롭더군요.


그렇게 누워 가만히 있노라니 언제나 열려 보이는 하늘 위의 하늘의 은은한 푸른 빛 아래 큰 천사의 형상이 보이더군요. 열린 환상으로 보는 것은 말 그대로 환상이라 꿈보다는 다소 생생하지만 아슴한 부분도 많기 때문에, 처음에는 누구인지 모르고 조용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니 다름 아닌 ‘라피엘’천사더군요. ‘라피엘’ 천사는 왠지는 모르지만 나타나면 모습이 꽤 큽니다.


요즈음은 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데, 며칠 만에 다시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제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을 알았는지 눈으로 전해주는 언어가 있더군요. 그것은 ‘하늘 빛 평화와 말씀의 진리 안의 참된 빛과 기쁨’이었습니다. 인간적이고 혼적인 감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이었지요.


그래도 마음의 다소 외로운 느낌이 사라지지 않더군요. 그런 가운데 ‘라피엘’을 중심으로 수많은 천사들이 저를 둘러싸고 바라보며 “사랑해요, 기뻐해요” 모두 환하게 웃으며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자주 보이고 늘 곁에 있는 천사들의 이야기만 기록해서 그렇지 영의 눈이 열려서 보니, 그리스도인인 주변에는 숱한 천사들이 있으며 오갑니다. 그 숱한 천사들이 무리를 지어서 제게 평안과 기쁨을 전해주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도 마음의 다소 외로운 느낌이 사라지지 않더군요. 외롭다 보니 살아오면서 사랑하고 정들었던 사람들, 친구들도 생각이 나곤 하더군요. 그래서 ‘라피엘’에게 투정 아닌 투정도 부려보았지요.


“라피엘, 그래도 나 외로워, 맘이 힘들어”


‘라피엘’은 성정이 차분하고 고요하고 편한데 그래서 쉼과 안식을 많이 전해 주는데, 그래서 때로 힘들면 ‘라피엘’을 많이 찾지요. 그냥 언제나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친구 같기도 하고 그런 느낌이라 힘들면 ‘라피엘’ 천사를 많이 찾고 부릅니다.


그렇게 ‘라피엘’천사나 다른 천사들과 교감을 나누다가, 주님은 지금의 내가 느끼는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의 느낌에 뭐라고 말씀하시나 영으로 주님을 불렀습니다. 주님께서 모습을 보이시며 나타나시더군요.


그런데 조금 깜짝 놀랬습니다. 평소에 영으로 보이는 영적 존재들의 모습은 대형 교회의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뒤에 스크린으로 그 모습을 비추지만, 너무 그 모습이 생생하면 설교를 듣는 것에 다소 방해가 될까 다소 희미하게 처리하여 대략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는데, 때로는 너무도 생생하게 보이거나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갑자기 주님이 이 땅에 실존하는 사람을 보듯 생생하게 그것도 제법 큰 모습으로 붉은 홍포가 곁들인 옷을 입고 나타나시니 조금 놀랬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주님이시지만, 여러분도 갑자기 여러분 앞에 실제 사람처럼 나타나시면 처음엔 놀랩니다. “주님, 놀랬잖아요”


그런 놀램을 뒤로 하고 주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주님, 외롭네요. 사람은 왜 이렇게 자주 외로움을 느끼나요?”


주님이 한 마디 말씀하셨습니다. 짧은 한마디 뿐이였지만 외로움에 대한 정답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주님의 한 마디 대답은 다름 아닌 이것이었습니다.


“주님, 왜 인간은 이렇게 자주 외로움을 느끼나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존!”


주님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대답을 듣고 보니, 그것이 이미 내가 알고 있기도 한 것이며, 성경이 전하는 진리였습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게 지음을 받은 존재인데, 그 하나님을 등지도 돌아서면서 고독과 더불어 많은 어려움을 본질적으로 안게 된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근원적으로 그런 때로의 고독감과 마음과 영의 뿌리 깊은 수고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제가 언젠가 저의 시가에서 “사랑이 곁에 있으면 외롭지 않으랴!, 재물이 넉넉하면 염려가 없으랴!”라고 적은 것처럼 이 근원적이고 뿌리 깊은 고독과 마음의 수고로움은 온전히 하나님 안에서 그분과 생명의 연합을 이룰 때에만 비로소 근원적인 해갈을 맛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 땅에서 부분적으로 우리가 성령 안에서 그 모든 것에 넉넉한 평안과 기쁨을 누리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나님의 나라에서야 성취될 소망이지요.


그러므로 이 땅의 길을 거니는 동안 때로 그러한 인간 실존의 근원적인 고독감이나 마음과 영의 곤고함을 때로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비록 그럴지언정 그래도 그 근원적인 마음과 영의 근원적인 수고로움을 해결하는 길은 역시 주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떠난 실존’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된 실존’을 향해서 늘 애쓰는 삶이 지혜로운 것인 것이지요.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렇게 주님의 말씀 속에서 새롭게 진리를 가슴에 새기는 밤을 보내다가 새벽 즈음에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눈을 뜨니 시간은 10시 가까운 늦은 9시, 시간을 헤아려 보니 수면시간이 다소 모자란 듯도 싶고 몸도 곤하여 더 쉬거나 잠을 자려다 습관처럼 ‘라피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지금 나 뭐해? 더 자?”


들려오는 의외의 음성, “일어나세요”


“나 새벽 즈음에 늦게 잤는데, 조금 피곤한데..”


“글쎄, 일어나세요”


영분별을 해보니 분명한 주님의 뜻 같아서 눈을 뜨고 불을 켰습니다. 그리고 조금 조용히 누워 쉬면서 늘 곁에 있는 소년 천사 ‘청이’에게 무심코 물어보았습니다.


“청이야, 지금 날씨는 어때?”


“맑아요!”


“응? 일기예보에 오늘도 비가 온다고 되어 있던데..”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으로 실시간 날씨를 보니 ‘구름에 비가 오는 표시’, “핸드폰 기상도 흐리고 비가 온다고 되어 있는데..”


다시 영으로 들려오는 청이의 목소리, “맑아요!”


그래서 제 방의 커튼을 열고 밖을 내어다 보니 비가 오지는 않지만 흐릿한 날씨 같았습니다. 확실하게 확인을 하려고 거실을 지나 베란다 창으로 내어다보니 청이와 대화를 주고 받은 그 시간에는 확실하게 이곳에는 비도 오지 않고 저의 집은 응달이라 아직 비추이지 않지만 저편 양지에는 맑은 햇살이 비추이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천사를 통하여 "일어 나라"고 한 뒤 "일을 하세요"라고 해서 조금 곤하지만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은 조금 비도 내리고 간간 빗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지만 청이와 대답을 주고받은 그 시간에는 분명히 청이의 말처럼 날씨가 맑고 햇살이 비추이고 있었습니다.


오늘과 같은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영적인 존재들과의 영적 교감은 마치 혼자 주고받는 독백이나 내레이션처럼 느껴지지만, 단순한 혼자의 독백이 아닌 영적 실재인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어가지요.


하나님과 그 말씀도 진리요, 영의 세계도 실재요, 천사들이나 다양한 영적 존재들도 실재요, 영원한 생명의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사망의 심판의 지옥도 실재인 것이지요.


오늘의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땅의 길을 거니는 동안 때로 그러한 인간 실존의 근원적인 고독감이나 마음과 영의 곤고함을 다소 감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 실존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온전한 하나 됨을 맛보며 가득한 영의 기쁨과 생명을 누리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성취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피조물인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나님의 나라에서 온전히 성취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록 그럴지언정 그래도 그 근원적인 마음과 영의 근원적인 수고로움을 해결하는 길은 역시 주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떠난 실존’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된 실존’을 향해서 늘 애쓰는 삶이 지혜로운 것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비록 저와 여러분 때때로 외로우며, 때때로 수고로우며, 때때로 홀로 눈물지을 수밖에 없는 실존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러한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과 하나 되는 실존을 향하여 나아가며 그분 안에서 심령 천국을 잃지 않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하나 됨 속에서 온전한 생명과 기쁨의 그 날은 결코 그리 멀지 않으니까요. 샬롬 !


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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