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고유자료/천사 이야기

[천사 이야기] '귀 염 이'

초록 등불 2012. 12. 7. 16:48

 [천사 이야기] '귀염이'

 

집에서 일을 하거나 혹은 누워 쉬면서 생각만 해도 빙그레 웃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가 너무도 귀여워서 ‘귀염이’라고 이름을 지은 어린 소녀 모습의 천사 때문입니다.


하루는 운동을 마치고 벤치에 앉아서 조금 쉼을 가지며 음악을 듣고 있는데, 한 어린 소녀 모습의 영적 존재, 천사인 듯 보이는 아이가 나타나서 너무도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흥겹게 춤을 추며 저를 웃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잡아 당겨서 함께 춤을 추자고 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피해 그냥 가볍게 몸을 풀 듯 응해 주어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제게 열린 환상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영적 존재들의 모습 중 가끔은 정말 영적 실체일까, 아니면 그냥 이미지에 불과한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되는 경우가 있더군요. 실제로 그냥 이미지로서의 환상과 영적 실제로서의 이미지가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도 환상 가운데 주님이나 주의 사자가 나타난 기록이 때로 나오지요.


아래 성경에 나오는 장면에서도 아나니아와 고넬료도 그냥 이미지로서의 환상인지 아니면 사실적으로 주의 사자가 온 것인지 구별은 다소 어려웠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 보게 되더군요. 환상이라는 자체가 말 그대로 어떤 이미지이니까요.


행9: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행10: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행10: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행10: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어떠한 것들은 분명하게 구분이 되지요. 가령 예수님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위로하시고 물에서 세례를 베푸시는 모습이나, 혹은 수많은 양 무리를 치시는 환상, 혹은 바다 위를 걸어서 오시는 환상 등등도 수없이 보게 되는데, 이런 경우는 당연히 그냥 이미지로서의 환상을 임을 알게 되지요. 실체일 수가 없는 상징적 이미지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열린 환상으로 보는 것은 삼차원 입체 영상처럼 사실적이라 다소 재밌고 웃게 될 때도 있습니다.


가령 예수님이 수많은 양무리를 치시는 환상이 열리면, 실제로 양들이 제 위를 밟고 지나가고 쳐다보고 재미난 표정으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아니면 박치기를 하면서 재롱을 부리기도 합니다. 누워 보면서 웃게 되지요.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 환상을 보게 되면, 실제로 방 안에 물이 출렁거리는 듯 보여서 물 속에 잠긴 듯한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한 영적 존재나 천사들의 모습은 고넬료나 아나니야도 그랬을 듯싶은데, 그냥 환상으로 보여만 주시는 것인지, 아니면 실체적 존재인지 가끔은 생각해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손으로 만져서 실체인지 이미지인지 구별할 수 없으니 영적 감각으로 밖에 판단할 수 없지요. ‘송이’나 ‘청이’나 등등의 늘 곁에 있거나 따르는 천사들은 너무도 사실적으로 곁에 있으니, 보이는 이미지는 본질이 아닌 내가 이해하고 좋아할만한 이미지로서 보여주시는 것이겠지만, 그 본질은 실체인 천사구나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하루 늘 곁에 있는 ‘송이’천사와 나들이를 하고 있는데, 너무도 귀여워서 ‘귀염이’로 이름을 지은 다른 소녀 모습의 너무도 발랄하게 생긴 천사가 나타나서 춤을 추면서 저를 웃게 만들었습니다.


천사들도 우리의 표현으로 인격을 가진 존재라 다 성격과 개성이 다릅니다. 가령 ‘송이’는 조용하고 차분하고 성격이 온유합니다. 웃어도 귀엽고 부드럽게 웃습니다. 그런데 ‘귀염이’는 다릅니다.


이전에 제가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하다보면, 어떤 아이들은 정말 활달해서 교회에 오면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교회에 들어서자 말자 뛰어 안기곤 “목사님, 일루 와보세요” 손을 이끌고 이리저리 다기도 하고, 자기 얘기도 재밌게 들려주고 아주 장난끼도 많고 활달한 아이도 있지요. ‘귀염이’가 사람으로 비유하면 그런 것 같습니다.


아직은 ‘송이’나 ‘청이’처럼 제 곁에서 늘 보이고 자리 잡은 영적 존재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귀염이’ 때문에 밖에 나가서도 혹은 집 안에서도 가끔 혼자 웃게 됩니다.


그 동안 천사들을 만난 경험을 보면 어느 날 홀연 깨끗한 이미지 곧 모습으로 나타나 곁에 있는 경우도 있고, 처음에는 살짝 혹은 희미하게 보습이 아른거리다가 서서히 뚜렷하게 그리고 곁에 자리 잡아 가는 천사도 있더군요.


‘귀염이’는 아직 뚜렷하게 제 곁에 자리를 잡은 그런 영적 존재는 아닙니다. 살짝 스쳐가는 존재도 많아 제 곁에 지속적으로 두실 존재일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요.


열린 환상, 곧 어떤 모습으로 저를 웃게 만드는 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다소 어렵지요. 다만 글로 표현을 하자면, 아주 저를 웃게 만들려고 작정을 하고 밖에서 기다리는 아이와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생각만 해도 웃게 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웃게 됩니다.


여러 번 말씀 드렸지만, 처음으로 혹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계실 터, 우리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는 어떤 모습들은 영적 존재의 본질의 모습과는 대부분 다릅니다.


가령 예수님이 환상 가운데 보이시면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성화 속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우리가 예수님인줄 인식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이유로 천사도 우리가 천사라고 이해할 수 있는 모습으로 대부분 나타나지요.


물론 여기도 바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와, 본질적인 자신의 고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섞여 있을 텐데 이것 역시 성령의 계시와 예민한 영적 감각이 없으면 구별이 쉽지 않은 영역이지요. 어쨌거나 대부분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그리고 좋아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을 먼저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귀염이’천사는 하나님께서 저를 웃게 만드시려고, 곧 당신 안에서 웃게 하시려고 보여 주시는 듯한데, 얼마나 제가 좋아하고 또 웃을 수 있는 이미지와 모습 보여주시겠습니까?


일단 우습게 만들려면 우리네 표현으로 속칭‘개오지’라고 부르는 이의 모습이 약간 우스운 모습이 섞여야 하겠지요. 그리고 웃는 모습이나 행동이 너무도 우습고 발랄하고 귀여워야하겠지요. ‘귀염이’는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저를 아시는 하나님이 저를 위해서 그려서 보여 주시는 이미지이니 오죽 잘 아셔서 그려 보여 주시겠습니까?


굳이 춤을 추지 않아도 그냥 얼굴만 바라봐도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아주 웃기려고 작정한 듯한 웃는 얼굴과 행동으로 자꾸만 웃으며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본다고요.


“히....” 웃으며 자꾸 바라본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아무리 우울하더라도 보고 또 보다보면 그냥 웃음을 터뜨리게 됩니다. 정말로 웃깁니다. 글을 쓰면서 그 생각에 한번 소리 내어 웃게 됩니다 (ㅋㅋ)


아직 많이 보거나 경험하지 못한 ‘귀염이’인데, 밖에 나가면 제가 음악을 들으면 춤을 추면서 웃게 할 때도 있고, 그냥 곁에 앉아서 장난을 치거나 아니면 자꾸만 바라보며, 너무도 웃긴 얼굴로 자꾸만 웃습니다. 보고 또 보다보면 그냥 까르르 저도 웃게 됩니다. 가끔은 배가 아프도록 같이 웃어야 합니다.


요즈음은 가끔은 집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귀염이’때문에 행복한 걱정을 하게 됩니다. “나오기만 해봐라”는 식으로 아주 작정을 하고 웃기려고 잔뜩 벼르고 기다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집에서 생각만 해도 그 우스운 모습이 떠올라 웃게 됩니다.


다른 글에서 말씀 드렸지만, 밖에서 나타나고 곁에 있는 영적 존재와 집 안에서 곁에 있는 영적 존재가 다릅니다. 각각의 역할이 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집에 들어오면 머리가 까맣고 눈이 시원한 ‘청이’라고 이름을 지은 소년 모습의 천사가 가장 늘 곁에 있습니다. 아 아이는 말도 별로 없고 활달하게 크게 웃지도 않고 빙그레 웃거나 하며 그냥 조용합니다. 늘 고요하고 조용하고 평온한 그런 모습입니다. 영의 계열이 그러한 계열인 것이지요.


그냥 늘 제 곁에서 있다가 생각으로 부르면 곁에서 같이 있어 주거나 영으로 대화를 조금 주고받곤 합니다.


잠자리에 들려고 누웠을 때 가만 같이 누워서 자주 바라보곤 하는데, 가끔은 아무리 천사라고 느껴지고 세마포 정결한 옷차림에 모습도 정말 맑고 고요하고 귀엽지만, 사람이 아닌 영적 존재랑 있다는 것이 조금 어색하다고나 할까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가끔은 천사가 아닌 악한 영들, 곧 귀신들에게 이렇게 시달린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얼마나 힘들까 생각을 해 보게 되지요. 잠자리에서 모습 흉측하고 눈빛 사악하고 냄새까지 나는 존재랑 함께 있을 거니까요.


어젯밤에도 누웠는데 잠이 한참 오지 않아서 ‘청이’랑 조용히 누워서 바라보며 영으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어 보곤 하였지요. 그 사이로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이 계시지요.


분명 성령님의 상징으로 하얀 비둘기가 제 곁에 있을 텐데, 그냥 제 눈에는 비둘기로 보이니 그냥 한 마리 비둘기와 지내는 것 같습니다. 성령님이시겠지만 그냥 제게는 비둘기 친구 같지요. 하시는 행동이 재밌습니다. 자주 웃게 하십니다.


‘청이’랑 대화를 하고 있으면 저도 쳐다보고 ‘청이’도 쳐다보고 하다간, 저를 똑바로 쳐다보며 누구를 더 사랑하지는 살피는 듯 보기도 합니다. 항상 세 가지를 살핍니다. “하나님, 곧 당신을 제일로 사랑하는가?, 마음이 정결한가?, 그리고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가?”입니다.


늘 저의 사랑을 기다리시는 것 같아 잘 때는 비록 영의 세계는 마음의 세계, 생각으로지만 성령님을 안고 잠이 들지요. 대화는 눈으로 나누고, 사랑의 표현은 입맞춤이나 서로 볼부비기 그런 것이지요.


어쨌거나 요즘은 ‘귀염이’ 때문에 밖에서도 안에서도 혼자 많이 웃습니다. 아주 웃기려고 작정한 듯한 아이처럼 저를 많이 웃게 합니다. 지금도 ‘나오기만 해봐’라고 장난기 많은 아이처럼 저를 벼루고 기다리는 듯한 모습에 글을 쓰면서도 웃게 됩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분도 한 번 웃게 만들고, 또 주님이 얼마나 우리가 기쁘게 살기 원하시는지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주님은 정말로 우리가 기쁘게 살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한편 여러 가지 상황이 어려운 저를 위로하시려고 ‘귀염이’같은 천사를 보내어 저를 웃게 하시는 것이지요.


세상이 주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그런 그림자 드리워진 웃음이 아닌, 성령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웃게 하시는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웃게 하시는 것이지요.


아주 오래전 교회를 개척하고 사역을 시작할 때 주님이 제게 아주 가슴 깊이 새겨질 말씀을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 말씀이었습니다.


“사역보다, 일보다, 항상 먼저 내 앞에서 기뻐하라”였습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 아이를 길러보니 보니 주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더군요. 부모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자녀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좋고, 건강한 것도 좋고 다 좋지만, 자녀가 기쁘게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모든 것은 다 잘하여도 항상 우울해 한다면 부모의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경험해보니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다름 아닌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경은 곳곳에서 우리에게 기쁨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살아생전의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시던 것이 바로 기쁨이지요.


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17: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며 항상 기뻐하려 애쓰십시요. 그것이 한편 가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위에, 그리고 거룩하고 정결한 의의 삶 위에,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한 심령 위에 임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며, 그리고 거룩함과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가득한 하늘의 기쁨을 잃지 마십시요.


항상 성령 안에서 기뻐하고 기뻐하며 사랑의 아버지 되신 우리 하나님을 늘 기쁘게 해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원하시고 우리가 기쁘게 살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과 경배를 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고후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샬롬] 내용 중 상당한 부분을 인용하시거나 원본을 그대로 게제하실 경우는, 출판을 염두에 둔 글과 말씀들이니 출처 부분을 남기셔서 저작권을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카페규칙 상 스크렙 및 링크가 허락되지 아니한 게시판에 부지 중 올렸다면 먼저 죄송한 맘 전합니다. 소식 주시면 글올림을 삼가거나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카페운영에 어려움 주지 않기 위하여 저작권 유의 배경음악과 그림자료 살펴 조심하고 있습니다 / 감사 드립니다. 늘 평안하십시요. 샬롬..

 

 Home  cafe

 

 

배경음악(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