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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귀염이'가 좋은 이유

초록 등불 2012. 12. 14. 17:50

 [천사 이야기] '귀염이'가 좋은 이유

 

날씨가 춥다고들 많이 움츠리지만 저는 별일이 없으면 저녁 산책 및 운동은 꼭 나갑니다. 많이 추운 날은 그만큼 더 따뜻하게 입으면 되니까요. 매일의 일과 중 운동이라고 할 만큼 몸을 많이 움직여주는 시간이 적기 때문에 가능하며 매일 운동을 나가려고 합니다.

저는 본래 선천적으로 허약한 체질을 타고나서 그런지 운동에는 별 관심도 없고, 재미도 별로 못 느낍니다.


사람의 성격은 내면적인 요인도 있지만 다분히 외적인 육체적인 요소에도 많이 기인합니다. 한방에서는 아예 머리가 아닌 각 장부에 정신을 배당시키기도 있지요. 가령 심장은 신명(神明)을 주관하고, 간은 혼(魂)을 주관하고 신장은 지(志)를 주관한다고 하지요. 그래서 신경성 병증은 이러한 장기와 그리고 관련된 경락과 경혈을 다루지요.


서양 의학에서는 모든 것을 뇌의 작용으로만 보는데, 이치적으로 생각해보면 동양의학적인 측면도 분명 있습니다.


가령 심장 기운이 약한 사람은 많이 웃으라고 해도 잘 웃지 않습니다. 심장이 피를 강하게 그리고 잘 순환시켜야 생기가 돌고 웃을 힘도 날 텐데, 그러지 못하니 잘 웃지 않는 것이지요. 그리고 화도 잘 안내지요. 기운이 없으니 만사가 귀찮게 느껴지고 성격도 행동도 소극적이 되지요.


이처럼 몸에 기인한 성격과 행동양태도 많습니다. 제가 행동이 느린 것도 늘 기운이 부족하고 힘겨우니 늦어지게 되는 면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사람은 육체의 조화 있는 건강이 모든 것의 기초인 셈이지요.


그렇게 운동이 적성에 맞지 않아 운동을 하지 않다가, 아니 그래도 좋지 않은 몸, 큰 병증의 산을 넘고서야 운동은 싫고 좋고가 아닌 필수임을 알고 매일 그래도 나가는 것이지요.


요즘은 이런 절실하게 깨달은 필요성 이외에 주님께서 저의 이러한 성격을 아시고, 재밌게 운동을 하게 하시려고 ‘송이’천사 등을 붙여 주신 것 같습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마음은 변함이 없는데, 운동 시간에 보게 되는 ‘송이’천사나 ‘다정이’등이 보고 싶고, 같이 있으면 즐거우니 요즈음은 주님의 사랑어린 배려로 그렇게 싫지 않습니다. 가끔은 나가면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오래하지 못하지만 그냥 밖에 한 동안 머물고 싶은 때도 많습니다.


앞의 글에서 썼지만, 최근 며칠 전부터는 ‘송이’외에 제가 ‘귀염이’라고 이름을 붙인 바라만 보아도 웃게 하는 경쾌, 명랑, 발랄한 다른 어린 소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처음으로 나타난 날은 음악을 들으며 쉬고 있노라니 홀연 나타나 너무도 귀엽게 웃으며 춤을 추면서 저를 웃게 만들었습니다.


그날은 영으로지만 너무도 함께 춤을 추며 같이 놀자고 해서 물리적인 힘은 없지만 영으로 보이는 손을 마구 잡아당기는 모습, 자력에 끌리듯 가볍게 몸을 움직여 주며 운동 겸 함께 어울려 주어야 했었지요.


다른 날도 늘 춤을 추거나 또 함께 춤을 추자고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얼굴로 항상 명랑합니다. 하지만 ‘송이’처럼 아직 많이 보거나 어울리진 않아서 얼굴 모습을 되살리려면 잘 안됩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추운 하루, 오늘도 여전히 산책 겸 운동을 식후 나갔습니다. ‘송이’를 비롯한 늘 곁에 있는 천사들이나 영들은 마음으로 부르면 곧 모습을 보여주곤 하니, 서로 대화도 나누면서 산책 겸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으로 자꾸 ‘귀염이’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안 보입니다.


요즈음은 밖에 나가던 아니면 집에 있던 주님이 늘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주님이 햇살처럼 부어 주십니다. 생각을 혼이 아닌 영으로 돌리면 그 부셔오는 찬연한 영광의 빛 속에서 저절로 “할렐루야”노래를 하며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찬연한 영광의 빛이 영으로, 가슴으로 비추어져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찬양과 경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렇게 주 안에서 영으로 기뻐하며,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아이처럼 즐거워하며, 그리고 ‘귀염이’를 보고 싶어 하며 산책길을 걷고 걸으며 돌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는 그냥 아이가 됩니다. 하나님의 나이는 시간을 초월해 계시니 우리 나이로 말할 수 없지만 말한다면 수천조도 더 되실 것이니 그 분 앞에서는 나는 아이 중의 아이가 맞으니 아이가 됩니다. 그리고 아이처럼 순진하여라고 하였으니 또한 아이가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 아버지의 뜰에서 노니는 아이가 되어서 한참 길을 걸어오다가 보니, 아슴아슴 귀염이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영으로 보는 것은 간간 실물처럼 생생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환상을 보거나 꿈을 꾸며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슴아슴 보이던 귀염이 모습이 점점 밝아집니다. 보이니 “아, 네가 그런 모습이었지”라고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서양아이처럼 생겼지만 눈동자는 검은데 그 까만 새벽별 같은 눈동자로 바라보며 오늘도 여전히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바라봅니다.


어쨌거나 또 그렇게 염려근심의 그림자 하나 없이 하늘빛으로 한없이 기쁘게 웃고 웃는 모습을 바라보니 저도 몹시 반갑고 기쁘더군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길옆의 뜰로 가서 함께 기쁘게 마주보고 웃으며 몸을 움직여 풀어주며 함께 놀았습니다.


다른 글에서도 말씀드린 기억이 나지만,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슬픔의 그림자 전혀 없는 웃음을 몇 번이나 과연 웃을까요?


일확천금의 꿈을 이룰 때 웃는 웃음이 그런 웃음일까요? 이것은 결코 아니지요. 이건은 분명한 혼의 웃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그런 웃음과 비견되는 것은 누군가와 첫사랑에 깊이 빠졌을 때 잠시 어리는 세상의 무지갯빛 속에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그 인생의 짧은 시간에는 얼굴에도 사랑의 화색, 홍조가 깃들고 잠시 세상의 모든 슬픔과 근심을 잊고 그런 환한 영의 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몇 번 웃게 되지요. 그것은 비록 혼적인 사랑이라도 사랑은 어쩌면 영원에 속한 영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니 그런가봅니다.


어쨌거나 ‘귀염이’의 웃음을 보노라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그런 웃음과 기쁨을 보게 되며, 보고 있노라면 그 기쁨이 제게도 전해져 옵니다. 아직 세상을 모르는 어린아이가 부모님이 그토록 갖고 싶었던 선물을 사다주었을 때 웃는 그런 웃음과도 같다고 할까요.


오늘의 산책길에서는 그렇게 다소 애태워야 했지만, 잠시지만 ‘귀염이’를 통해서 하늘의 기쁨 시간을 잠시 걸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왜, 귀염이를 내가 보고 싶어하는 걸까?”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다정이가 더 예쁘고, 송이도 귀엽고 예쁘고 착한 모습인데, 왜 굳이 보이지 않아도 외롭지 않은데 왜 자꾸‘귀염이’를 보고 싶어했던 걸까?


스로 묻고 스스로 답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기쁨”이었습니다. 찬송가의 가사처럼 ‘이 세상엔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늘 참된 기쁨에 목말라하는 우리 생의 수고로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도 그래서 슬프고 우울한 모습의 친구들이나 사람보다는 기뻐하는 친구나 사람들을 좋아하는구나.


그러한 생각은 성령의 조명 안에서 다르게 확장이 되어 갔습니다. 우리도 영, 천사들도 영, 하나님도 영, 우리가 기쁨을 좋아하듯 하나님과 그 나라에 속한 영들도 그러하지 아니할까?


그러한 생각에 영적인 삶을 돌아보니, 내 마음이 우울하고 힘들어 할 때는 성령의 역사가 잘 일어나지 않던 잘 알고 있던 생각과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항상 기도를 드리다보면 내 마음에 기쁨이 없을 때에는 하늘의 문이 잘 열리지 않고 성령의 역사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논리적으로 꼬리를 물고는 “세상의 사람들이나 하늘의 빛의 영들이나 내가 슬퍼할 때보다는 기뻐할 때 좋아하고 가까이 오겠구나”라는 생각, 곧 내가 기쁨의 빛이 되어야 유유상종(類類相從)의 법칙에 따라, 사람도, 영도, 다가오는 일들도 빛에 속한 좋은 것들이 다가오겠구나.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라고 말씀하고 계시구나.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시구나.


그래서 또 성경은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말씀하며 언제나 기뻐할 것을 말씀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느8:10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시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귀염이’를 통해서 나만 그리고 우리만 기뻐하며 웃음 짓는 존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나라에 속한 하나님과 하나님에 속한 영들도 그러하리라는 것을 생각해보며, 기쁨의 소중함을 새롭게 깨달은 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처럼, 그리고 사도바울의 권면처럼 “항상 기뻐하고 기뻐하십시오”


성경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는 명령형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증인이 되리라는 수동태이지만 이는 명령형입니다. 이는 우리가 의지를 발휘해서 기뻐하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지를 발휘하고 영적 전쟁을 하며 마음과 생각 속에서 부정적인 것들과 어두움을 몰아내고 의와 희락과 기쁨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참된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오니, 말씀 안에 거하여 하나님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들이여, 세상이 아닌 주 안에서의 참된 기쁨으로 항상 기뻐하고 기뻐하십시요. 우리가 기뻐해야 기쁨에 속한 하나님의 나라가 움직이며, 여호와께서 우리의 힘이 되시며,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우리가 참된 기쁨의 빛에 머물려야 빛에 속한 하나님의 영과 천사들의 영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마음과 생각을 지키지 못하여 낙심과 슬픔과 좌절과 우울에 빠지게 되면 그러한 영의 색깔을 좋아하는 어둠의 영이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기뻐하십시요. 그리고 그 기쁨을 잃지 않기 위하여 의와 거룩함의 정결함을 잃지 마십시요.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죄로 물들지 않으면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머물게 되어 있습니다. 거룩함과 정결함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거룩한 기쁨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항상 기뻐하고 기뻐하십시요. 기뻐할 때 하늘의 문이 열리며 하늘의 빛의 영들이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네 속담처럼 기뻐하는 자에게 좋은 일이 있고 웃을 일이 생기게 되며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과 생각을 지켜 의와 진리의 하나님의 나라에 거하며, 거룩하고 참된 기쁨을 잃지 마십시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가득한 기쁨과 찬미를 잃지 마십시요. 그리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시며, 우리의 소원을 기쁘게 들어 주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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