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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귀염이가 붙잡고 우는 이유

초록 등불 2012. 12. 19. 04:19

 [천사 이야기] 귀염이가 붙잡고 우는 이유

 

하루 이런저런 일들로 저녁 운동 시간이 많이 늦어져 버렸습니다. 시계를 보니 밤 9시를 가리키고 있더군요. 하지만 요사이 며칠 날씨가 좋지 않아서 운동을 하지 못하였기에 잠시라도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산책 겸 운동을 나갔습니다.


운동을 마치려고 들어오려고 하는데, 최근에 보이기 시작한 ‘귀염이’라고 이름을 붙인 천사가 저더러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귀염아, 왜? 왜 그러는데?”영으로 조용히 물어보았습니다.


“귀염아, 왜? 왜 그래?..”


저는 어쩌다가 주님께서 영의 세계를 열어서 보여주시며 가르치시고 또한 배우게 익히게 하셔서 조금은 특수한 영에 속한 사역을 하게 되면서, 저의 경험과 아울러 또한 사역과 상담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하여, 영의 세계에 속한 평범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영의 어두운 역사들을 많이 보게 되고 듣습니다.


이 글의 주제가 아니라서 여기서 그 부분을 깊이 적지는 않지만, 어두움의 영들에 사로잡혀 고생하시는 분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어렵고 힘든 영적 현상 등으로 얼마나 어려움을 겪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 실제적 상황을 보면 영적 전쟁은 이 세상의 전쟁과 하등 다를 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계에 속한 사투임을 보게 됩니다.


이런 영적 전쟁을 실제적으로 영 안에서 싸워보지 않았거나 관념적으로만 아시는 분들은 아주 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어둠의 영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분들을 다루고 만나고 대화를 하며 사역을 하다보면 그것이 결코 호락한 싸움이 아닌 것을 실제적으로 알게 됩니다.


이러한 사역을 실제로 해 보신 분들은 대화를 나누어보면 대부분 생각의 일치를 보게 되지요. 하지만 관념적으로만 아시는 분들은 아주 쉽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6.25 동란 등 전쟁을 치러 보신 분과 관념적으로만 막연히 전쟁을 아는 사람과의 차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았던 루시퍼의 능력이 우리가 생각하듯 전혀 초라한 것이라면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았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둠의 나라에도 반열에 따라 낮은 능력을 가진 존재부터 우리가 아닌 하늘의 천사장이나 주님이 직접 다루셔야 하는 반열까지 어둠의 세력들도 결코 만만한 상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나름 영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니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에 불과하겠지요.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하지만 사역을 해보면 이 영적 전쟁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분들이 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영적 전쟁의 어려움은 어둠의 영들의 능력의 강함이 아닌, 우리 인간의 타락한 본성과 연약성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근원적으로는 인류의 원죄, 그리고 가계를 타고 흘러오는 조상의 죄의 유전이나 자신의 죄나 그리고 살아가면서 받는 숱한 상처, 그리고 삶의 수고로움과 이런저런 한계적 어려움 속에서 우리의 의식이 자꾸만 어둠으로만 떨어지니 그 통로를 타고 사단에 속한 어두움의 영들이 집요하게 우리를 붙잡고 사망의 나락으로 함께 떨어지자고 하는 것이지요.


사형이 확정된 죄수처럼, 이미 영원한 불 못이 그들의 마지막 운명이라는 것을 아는 어둠의 영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께는 대항할 힘이 없으니, 하나님이 온 천하 만물보다 사랑하는 우리의 한 영혼이라도 함께 그 불 못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최후의 발악을 하며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며 그 상대를 발견하면 집요하도록 가지가지의 방법으로 무너뜨리려 하는 것인 것이지요.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5: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이 오신 것은 이러한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지요. 마귀는 그들의 마지막 때의 운명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마8:29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그리고 주님께서 오셔서 이러한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여인의 후손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고, 합법적의로 우리에게 구속과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만, 주님이 주신 그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그 싸움에서 싸워야하는 것은 하지만 우리의 몫인 것입니다.


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막16: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약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속한 그 나라의 의의 병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고후6: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그렇게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권세와 능력으로 마귀를 대적하면서 의의 병기가 되어 이겨야 하지만, 우리의 타락한 본성과 죄성, 그리고 삶 속의 수많은 죄와 숱한 상처로 말미암아 도리어 사단에게 합법적으로 역사할 통로를 만들어 주면서 여전히 억압과 포로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집회에 그렇게 삶의 상처투성이 속에서 어둠의 영에게 서서히 사로잡혀 가는 한 가여운 영혼이 왔었습니다. 영으로 살펴보니 전혀 상처가 다루어지지 않아서 어둠의 영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본인은 물론 가족들과 사역자들의 많은 사랑이 필요해보였지만, 여러 가지 정황 상 싸움이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젊은 분인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설령 내적치유가 잘 되어 축사를 해서 악한 영을 쫓아낸다고 하여도 살아오면서 받은 많은 마음의 상처는 삶의 쓴 뿌리로 남아서 남은 생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 뿌리가 남아 있으면 언제고 악한 영은 다시 들어올 통로가 있고, 그 숱한 삶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싶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집회 다음 날에는 상담을 요청해 오신 또 다른 어떤 분이 너무도 어둠의 영에 힘겨움을 당하고 계셨습니다. 실타래처럼 엉킨 영적인 여러 가지 요인 속에서 너무도 힘겨움을 당하고 계셨습니다. 영에 속한 일들을 나누며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나누기도 하였지만,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의 영역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이 또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곤한 몸 잠들었다가 다음 날 오후에 눈을 뜨니, 이런저런 또 삶의 힘겨운 일들로 상담을 문자로 요청해 오신 분들이 몇 분 계셨습니다.


정신을 차려서 상담을 요청해 오신 몇 분들과 신앙적 대화와 상담을 해 드리고, 병원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요즈음은 다소 늦게 잠이 들고 늦게 일어나다 보니 주간의 일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소 늦었지만 따뜻하게 차려입고 병원진료를 잠시 다녀왔습니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자전거로 병원을 다녀오는 길, 만남과 대화를 통하여 듣는 너무도 숱한 삶의 아픔을 겪는 분들, 어둠의 영들에 속고 눌려서 고통당하는 분들, 너무도 이 세상의 삶이 아프게만 다가왔습니다.


사역을 하면서 요즘 세상과 인생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을 해보니, 생이란 본질적으로 수고로움이요, 아픔이요, 슬픔이더군요.


영을 좇아 사는 삶 가운데 심령 속 참 평안과 행복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한 것처럼 날마다 육신과 자아를 쳐서 죽여야 하는 쉽지 않은 십자가의 수고로움이 있는 것이요, 육을 좇아 사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잠시 그 시간의 쾌락 뿐, 영도 육도 곤고하고 사망으로 떨어지는 더욱 곤고한 삶이더군요.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어리석게도 다들 혼적인 겉 욕망에 사로잡혀서 죄와 욕망 가운데 살아가면서 더욱 어두움의 포로가 되어가지요.


집으로 돌아와 다시 어려움을 겪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필요한 분들에게는 적절한 사역 장소도 소개해 드리고 그렇게 저녁을 먹다보니 시간이 다소 늦어버렸더군요.


그리고 집회의 피로와 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그들의 삶의 무게와 아픔에 저도 마음이 다소 무겁더군요.


병원의 의사들이 아픈 분들만 상대하다보면 온 세상이 아픈 사람들뿐인 것처럼 보이는 것처럼, 영성사역을 하다보면 이 세상이 얼마나 흑암의 세력이 가득하고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며 살아가는지를 보게 됩니다. 정말 우리와 만물은 온전한 구속의 그날까지 신음하고 탄식하며 힘겨워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도 조금은 마음에 기쁨이 없고 힘겨웠습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자신의 삶의 무게만 해도 적지 않게 힘든 것이 인생인데, 사역을 하면서 많은 힘겨운 분들을 대하다 보면 그들의 아픔이 제게도 다가와 주 안에서 마음이 함께 아프고 힘겨워짐을 느끼게 되곤 하지요.


물론 목회자로써 부름 받았으니 기쁘게 감당해야 하는 중보의 십자가이지만, 사람이기에 가끔은 그들로 인하여 마음이 무겁거나 아프지요.


이런 사역을 해보니 의사의 보람과 기쁨이 환자의 치유이듯이, 그렇게 영적 전쟁과 현실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분들을 보는 것인데, 쉽지 않은 우리네 생의 문제들, 이기시는 분들보다는 져서 어둠 속으로 떠나가시는 분들을 더욱 많이 보기에 더욱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 져서 어둠 속으로 떠나가십니다.


그렇게 다소 아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운동과 산책을 나갔습니다. 마음의 상태가 그러하니 의식도 혼적으로 많이 기울어서 늘 보이는 천사들의 모습도 다소 아슴합니다. 저의 의식 상태가 기쁨을 잃고 다소 혼으로 기울었기 때문이지요.


시간도 늦었고 몸도 다소 곤하여 조금만 운동을 하고 몸을 풀고 들어오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천사들의 모습은 아슴한데 유독 늘 하늘의 웃음으로 저를 웃게 만드는 ‘귀염이’천사만 나타나 저를 바라보고 계속 웃습니다.


아마도 기쁨의 회복이 필요한 상태라 다른 천사들, 곧 영들보다는 기쁨의 영인 ‘귀염이’만 강하게 보여주시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천사들도 늘 보다보니 일상이 되고 ‘귀염이’도 몇 번 보고 나니 아무리 앞에서 귀엽고 예쁘게 웃는 모습으로 저를 기쁘게 해 주려고 하고 있어도 이 날은 마음과 기분이 별로 달라지지 않더군요. 그냥 덤덤한 마음으로 ‘귀염이’ 웃는 모습도 바라보며 몸을 좀 풀어주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존재라 사람들처럼 아주 구체적인 행동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귀염이’가 제가 집으로 가는 것을 막으며 잡는 것을 느꼈습니다.


영적인 존재들은 보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아서인지 거리 등의 개념을 초월해서 보입니다. 이곳을 바라보면 이곳에 보이고 저곳을 바라보면 저곳에 보입니다. 그러니 언듯언듯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듯 보이곤 하지요.


가끔은 영적인 개념으로 가장 가까이 두시는 영적존재들은 실제 사람을 보듯 뚜렷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는 영으로 보는 차이 외에 육신의 사람을 보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언듯언듯 보이는 ‘귀염이’가 왠지 제 발걸음을 막고 집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손을 잡고 끌며 가는 길을 붙잡는 것이 언듯언듯 보여서, 멈추어 섰습니다.


그리고 ‘귀염이’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가만히 서서 한 곳을 바라볼 때는 천사들도 그곳에 가만히 서서 저를 바라봅니다.


눈으로 교감을 하니 그 눈을 가만히 바라보며 영으로 물었습니다.


“귀염아, 왜? 왜 그러는데?”


“왜 집으로 못 가게 하는 거야? 왜 그래?..”


늘 밝고 기쁨만 가득했던 까만 눈동자에 저의 마음의 힘겨움을 위로하는 듯한 슬픔이 어려 보였습니다. 그리고 눈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기쁨을 회복하고 들어가야지. 그냥 들어가면 어떡해?..”


그리고는 제 품으로 와락 달려들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치 딸아이가 수심에 잠긴 아버지를 기쁘게 해 주려 애쓰다가 끝내 아버지가 밝은 모습을 보이지 않자, 울음을 터뜨리듯 그렇게 제 품으로 와락 달려들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니 그래도 힘겨운 사람들로 인하여 제 마음이 아픈데, 그토록 밝고 명랑하기만 하던 ‘귀염이’가 저를 위로하고 기쁨을 회복시켜 주려다 잘 되지 않자, 딸아이처럼 안겨 울어버리니 저도 그만 밤이 깊어가는 아무도 없는 숲길에서 소리 없이 울어버렸습니다.


소리 없이 ‘귀염이’를 안고 저도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아버지, 제가 울어 이 땅의 슬픔들이 조금이라도 거두어 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다소 울먹이며 곁에 늘 보려하며 보이는 캐더린 쿨만 모습의 돕는 영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귀염이가 이렇게 기뻐하라는데, 어떻게 하면 기쁨을 회복할까요?”


쿨만 모습의 영이 가만히 바라보며, “오직, 하나님 사랑”이라고 말해 주더군요. 쿨만 모습의 돕는 영의 말처럼 이 땅에서 참 기쁨을 누리는 길도, 다시 회복하는 길도 오직 하나님 사랑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연인이 어떤 일로 서로 마주 울고 난 후 눈물을 훔치고 서로 바라보듯 그렇게 ‘귀염이’를 다시 바라보며, 귀염이’에게 기뻐할 것을 약속하서야 집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집 계단까지 따라와 “기뻐해야 해”라고 영으로 뒤에서 말하는 ‘귀염이’의 모습을 보며,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다른 글에서도 말했듯이 밖에서 나타나고 돕는 천사들은 집 안에서는 영으로 보려면 볼 수는 있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영적 존재가 안 됩니다. 집에 오면 ‘청이’라고 이름 지은 소년 모습의 세마포를 입은 아이가 늘 곁에 있습니다. 언제나 조용하고 말도 별로 없고 잔잔히 미소만 짓는 그런 아이입니다.


잠자려 누웠거나 일어났을 때 잠시 대화를 나누곤 하지만 거의 대화도 없이 그냥 늘 같이 있습니다. 대화는 없지만 ‘청이’ 때문에 혼자라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늘 같이 있습니다.


글을 마치려 합니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주제는 이것 하나입니다.


제가 나름 적지 않은 생의 길을 걷고 보니, 그리고 성경 안에서 살펴보니 이 땅의 삶은 수고로움이요, 온전한 구속의 그날까지 우리와 만물은 신음하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 땅과 이 나라는 참된 안식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 곧 죄와 상처로 인하여 더욱 하나님의 징계와 어두움의 영들로 인하여 너무도 아픈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니 그래도 수고로운 생의 무게, 그 무게에 무게를 더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다루심을 받고 영의 세계를 경험해보니, 죄에는 반드시 보응이 따르는 것이 영의 세계의 철칙입니다. 주고받는 상처를 동반하게 되는 죄는 반드시 사망과 하나님의 저주를 가져오며, 합법적으로 어두움의 영들에게 역사의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계를 흘러 흘러가는 저주와 사망의 어둠을 불러오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요. 그분을 경외하십시요.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영생이요, 불순종은 사망입니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지 마십시요. 그분의 말씀을 가벼이 생각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신 만유를 지으신 창조주시요,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저 높은 그룹 반열의 천사들도 감히 그 얼굴을 뵙지 못하고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며 경외하는 영광 위에 영광, 존귀 위에 존귀하신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마십시요. 우리의 영생을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신 사랑 앞에서 이 땅의 삶에 비록 수고로움이 있다하여도 원망한다면 어찌 이것이 우리의 행할 바 이겠습니까? 이스라엘 광야 40년의 세월에서 보듯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은 어리석은 자의 것이요, 그 또한 하나님의 축복의 빛은 가리고 어두움을 불러오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요. 공경하며 거룩한 두려움으로 순종하십시요. 그리고 항상 감사하십시요. 죄를 짓지 마십시요. 그리고 상처를 주고 받지 마십시요.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속히 회개하고 그 길에서 돌이키십시요. 지금 죄의 길을 걷고 있다면 속히 회개하고 그 길에서 돌이키십시요. 하나님은 길이 참으시나 반드시 그 죄에 대하여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보응이 있습니다.


신앙상담을 하다보면 제 눈에는 그 뒤의 결국이 보여서 돌이키라 간절히 애소를 하여도 그냥 자신의 어두운 길을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임을 보게 됩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당하지 않으면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더군요.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당하지 않고 아는 지혜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 듣지 아니하고 깨닫지 못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크고 두려운 심판의 날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이 또한 그 영혼을 건지시기 위한 사랑입니다. 하지만 너무도 아플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마저 없으면 유기하신 사생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요. 그분을 경외하며 두려워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요.


그것이 비록 본질적으로 수고로운 인생의 길이나, 그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고 나름 주 안에서 기쁨을 누리다가 온전한 빛의 나라인 아버지의 나라로 가는 가장 지혜로운 삶입니다.


비록 자기 부인의 쉬운 길은 아니나 영의 좇아 살아가십시요. 그 길이 수고로운 우리네 삶이지만 그래도 생명의 성령 안에서 생명과 평안을 누리며, 영원한 소망과 기업이 있는 복된 입니다. 육을 좇는 삶은 아니 그래도 수고로운 우리네 삶에 사망과 저주를 더하는 어리석은 삶이요, 영원한 멸망의 길입니다.


오직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서 영을 좇아 살아가며 온전한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려 애쓰는 자에게는 수고로움이 적지 않은 우리네 생이지만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로써 넉넉히 이기게 하시며, 당신의 영광과 빛의 나라로 결국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요.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요. 하나님께 순종하십시요. 할레루야!  아멘! (귀염아,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롬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샬롬] 내용 중 상당한 부분을 인용하시거나 원본을 그대로 게제하실 경우는, 출판을 염두에 둔 글과 말씀들이니 출처 부분을 남기셔서 저작권을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카페규칙 상 스크렙 및 링크가 허락되지 아니한 게시판에 부지 중 올렸다면 먼저 죄송한 맘 전합니다. 소식 주시면 글올림을 삼가거나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카페운영에 어려움 주지 않기 위하여 저작권 유의 배경음악과 그림자료 살펴 조심하고 있습니다 / 감사 드립니다. 늘 평안하십시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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