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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부셔지는 별빛

초록 등불 2012. 12. 21. 01:46

 [영성의 글] 부셔지는 별 빛

 

밤이 익어가는 시간, 가로등과 네온사인의 불빛이 밤의 도화지를 수놓은 시간, 조용히 영으로 찬양을 부르며 산책 겸 운동을 합니다. 주님이 곁에 두신 어린 소녀의 모습 ‘송이’천사랑 함께 걷기도 하고 종종 업고 길을 걷기도 합니다.


‘송이’를 업고 길을 걷고 있노라면 이미지로 보여주시는 대부분의 천사들의 모습이 서양 아이나 사람을 닮았는데, 동양 아이를 닮아 더욱 꼭 딸만 같은 ‘송이’가 까만 그리고 맑은 눈동자로 가만히 바라봅니다. 영으로 보이는 것이지만 숨소리도 들려오는 듯 느껴집니다.


그런 ‘송이’가 제가 영으로 조용히 찬양을 하며 걷노라면 두 손을 들고 함께 하나님께 찬양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조금 우습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말을 겁니다.


“송이야”


“응”


“근데 너 모하니?”


“...”


“잇히히...”


‘송이’도 다소 멋쩍은 듯이 밝게 웃어댑니다. 그 맑은 웃음소리가 밤하늘을 가르며 온 누리에 퍼집니다.


아주 어린시절 성령세례를 받고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온 누리 가득한 하늘의 기쁨을 누렸던 기억이 납니다. ‘주님’이라고 그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아롱지고 한없는 감사와 기쁨을 누렸던 시간, 성령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라면 이때껏 살아오면서 그러한 것인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비록 혹독하고 고된 시간이었지만 주님의 다루심 안에서 또 다른 영의 세계의 정원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처음 맛본 기쁨은 목마른 길을 가다가 맛난 시원한 시냇물의 생수와 같다면, 주님의 깊은 다루심 안에서 참된 경건과 경외를 몸에 익힌 후 열어주시는 기쁨은 한없이 깊고 고요하며 그윽한 깊은 저 하늘의 생명의 깊은 샘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시절의 기쁨에 겨워 뛰고 춤추는 그런 기쁨과는 다른, 조용하고 은은하나 온 누리에 가득한 별빛처럼 부셔지는 기쁨과 평강, 아니 기쁨과 평강의 빛이 정말 온 누리에 별빛처럼 부셔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성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옵니다. 기도하고 있지 않아도 늘 기도하고 있으며, 찬양하지 않고 있어도 항상 찬양하고 있으며, 혼자 있는 것 같아도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으며, 고요하나 뜨거우며, 기쁨이 없는 듯 하나 여호와로 인하여 무시로 기쁨과 웃음을 누리게 되는 그런 세계가 열립니다.


주님이 많은 부분들에서 대하심이 넉넉해지시고 안식과 쉼을 허락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히4: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히4:8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히4: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렇게 주님이 허락하시는 고요하나 온 누리 가득 부셔지는 별빛 같은 기쁨 속을 거닐다보면 때로 두 손을 들고 찬양과 경배를 드리게 되고, ‘할렐루야’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가끔은 나이도 잊은 채 언약궤 앞에서 춤추는 다윗이 되기도 합니다.


주님과의 지밀한 사랑을 노래한 찬미가 다소 적어서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로 주님과의 사랑을 노래하며 길을 걸으면, 방언의 통변이 들려오듯 함께 사랑의 가요 노래를 주님의 사랑의 노래하는 가사로 바꾸어 함께 불러주는 천사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천사가 바꾸어 들려주는 사랑 가요의 가사를 하나 적어 봅니다. 방언 통변처럼 금세 잊어버려서 지금 부르며 들어봅니다. ‘린’ 부탁해!


“나는 오늘도 주 사랑 안에서 노래 불러요. 세상엔 겨울이 찾아와 낙엽이 지고 신록도 지나, 내 맘엔 오늘도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나네. 세상엔 근심과 걱정이 적지 않으나, 오늘도 주 날 사랑하니 그 무슨 염려가 있으랴! 걱정이 있으랴! 내 맘은 여상히 봄날이네”


“나는 오늘도 내 생의 길 오롯 주님께 맡긴 채 부르심의 그 길을 가네. 기쁨으로 가네. 내 안에 넘실거리는 이 영혼의 기쁨, 세상에서는, 세상은 결코 줄 수 없는 이 가득한 기쁨. 할렐루야! 주 경배하네”


“천사들도 나와 함께 기뻐하네. 춤추네. 나 비록 지금은 땅의 이 길을 걸으며 주 찬양하나 그날엔 멀지 않은 그 날엔 황금 길과 유리바다 걸으며 천사들과 노래하리. 영원히 주 찬양하리..”


그렇게 하늘에서 부셔지는 별빛과도 같은 기쁨과 평강의 빛, 그리고 하나님이 열어주신 영으로 보이는 하늘 위의 하늘에 어린 칠색 무지개, 그리고 주님이 곁에 두신 아름답고 정결하며 사랑빛 가득한 천사들과 함께 거닐다보면, 비록 수고로움이 적지 않은 이 땅 그리고 별스레 볼품없는 산책길이지만 제게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거니는 에덴의 숲길이 됩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쉬는 곳, 늘 그곳에 앉아서 그런 영과 육의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에덴의 동산 같은 풍경을 보기에 그곳의 이름을 ‘환상의 숲’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천국은 여기도 저기도 그리고 나중에도 아닌 지금 제 안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가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저와 여러분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길, 행복의 길을 걸어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당신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날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여전히 실상은 표적을 본 까닭이 떡을 먹고 배부르기 위함인 것을 보게 됩니다. 여전히 썩고 없어질 배부르게 하지 못할 양식을 좇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6:27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찾는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우리 모두 여전히 그 마음의 궁극은 터진 웅덩이인 세상의 것들에 대한 목마름으로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먹고 마셔도 여상히 목이 마르면 이제라도 돌이켜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마시고,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를 먹고 마셔야 하지만, 여전히 더욱 목마르게 하는 바닷물과도 같은 세상의 물을 더욱 허덕이며 찾는 것을 보게 됩니다.


솔로몬이 다 가져보고 쥐어보고 헛되다고 고백하였지만, 여전히 우리는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사업을 크게 하며 소유를 늘려 즐겁게 할까, 노래하는 남녀들과 처첩들을 많이 두어 즐겁게 할까, 눈과 마음이 원하는 그 무엇이 나를 즐겁게 할까”라고 하고 있습니다.


전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2:1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전2:11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어리석고 악한 두 가지를 여전히 행하고 있습니다.


렘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는 우리 모두면 좋겠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사랑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약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세상을 살아가기에 세상의 것들이 필요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사랑 안에서 질서 있게 사랑하여야 하고, 또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통로가 되어야 하겠지요. 그 무엇이든지 설령 자신의 목숨이라도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것이 있고서야 진정한 신앙의 길, 영성의 길은 걸어갈 수 없습니다.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오늘도 우리는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의 사망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결국은 죽게 된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항상 그리고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죽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한 대로 심판하실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제가 갑작스런 몸의 병증으로 병원으로 급히 실려 가면서 느꼈던 것은 인간이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물론 있었지만, 가장 마음에 다가왔던 것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과연 그분이 뭐라고 하실까였습니다.


몸 안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죽음의 느낌, 급히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야 될 것 같은 놀라고 급한 마음속에서도 가장 마음에 다가왔던 것은 하나님 그분 앞에 섰을 때 그분이 나에게 뭐라고 할실까 저의 삶의 돌아봄이었습니다. 기도도 살려달라는 기도보다 제 삶을 돌아보며 부족한 시간들의 용서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여러분도 삶의 길에서 문득 하나님의 부르심이 들리면, 죽음이 눈앞에 이르면 가장 두려운 것은 하나님 앞에 설 그 시간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과 같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 담대하게 그분처럼 우리도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딤후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딤후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하지만 살아온 삶의 걸음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뿐이라면, 지나간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없고 하나님 앞에 설 그 시간이 담대함으로 다가오겠습니까? 그리고 “너는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왔느냐?”라고 물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제가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오늘날의 교회는 너무도 십자가의 공로를 강조한 나머지 균형감각을 잃고 낭만적인 신앙생활, 낭만적인 하나님만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님께서 영의 세계를 열어 주시고 다루심을 받고 보니,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으나 그 십자가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죽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높은 직분자일지라도 다수가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직분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이며 그 구원의 근거는 말씀에 근거한 우리의 참된 믿음과 그 믿음의 참됨을 증거하는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성경의 곳곳에 적지 않게 기록된 쫓겨남과 유기됨과 버려짐은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한 말씀들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의 대부분은 이미 믿노라하는 그리스도인을 향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나 두렵고 떨림의 믿음의 삶으로 온전한 구원의 그날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복되고 감사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장막 안에서 한없는 은혜와 사랑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 보여지듯이 마지막 심판의 때, 그 보혈의 장막이 걷히고 예수님도 구세주가 아니고 심판주로 오시는 그날,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공의가 나타나는 그 날에는 구약성경에서 보여지는 죄와 불의에는 오직 죽음과 저주를 내리시던 두렵고도 떨리는 공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민15:32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민15:33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끌어왔으나

민15:34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민15:3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죄악이 관영한 소돔과 고모라에 불과 유황을 거침없이 쏟아 부으시던, 죄와 불의에는 용납이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두려운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죄악이 관영한 이 땅에 끝임 없이 물줄기를 붓고 또 쏟아 부어 노아의 방주 밖 지상의 모든 것을 멸하시던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게 될 것입니다.


다가올 마지막 심판의 때에는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에는 물로 심판을 받았으나 이제는 불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벧후3:6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벧후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제가 주님께 다루심을 받고 열어 주신 영의 세계를 거닐어 보니, 하나님은 우리가 결코 만홀히 할 수 있거나 대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아빠 하나님으로 누리게 하실 때는 한없이 편안함과 자유를 주시지만, 아버지 하나님으로 경배하게 할 때는 곁의 천사들도 얼마나 예를 다하여 경배하게 곁에서 전하며 돕는지 모릅니다. 제가 가진 마음의 모든 것을 다하여 경배합니다.


비록 생명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나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작은 우리가 만홀히 여길 분이 아닙니다. 그분의 말씀은 곧 영생이며, 불순종은 죽음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과거 한 나라나 제국의 왕 앞에서 그 신하된 자들이 얼마나 예를 갖추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과 지존하심을 그 왕들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왕을 향한 그 예의만큼도 못한 경외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거나 만홀히 여기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알아 당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자를 또한 존귀하게 여겨 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다가 힘들면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거나 불평합니다. 하지만 이는 영이 아기처럼 어릴 적에는 모르지만, 영이 어느 정도 장성한 사람이 하는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의 지존하심에 대한 심각한 도전입니다. 불 뱀의 저주를 불려오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김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 앞에서 어찌 우리가 원망할 수 있습니까? 그 무슨 일로 원망하거나 불평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겪는 삶의 수고로움은 하나님의 탓이 아닙니다. 우리 인류의 원죄와 우리 조상들과 우리들의 잘못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잘못으로 죄와 사단의 종이 되어서 구속의 그날까지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흑암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주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과 불평을 함이 어찌 하나님을 만홀히 여김이 아니겠습니까?


글과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의 수고로움 속에서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 무엇을 하면 마음에 만족이 있을까 하여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마시고 또 마시려 함을 보게 됩니다. 마시고 마시고 먹고 먹어도 배부르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마음의 공허함에 허공을 향하여 손을 휘젓듯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삶에는 어둠과 곤고와 사망만 더하여질 뿐입니다. 육신의 정역과 쾌락과 만족을 위하여 즐기고 즐기는 시간을 가진 뒤에 기쁨이 찾아오던가요? 허무감과 후회만 찾아오던가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도 우리의 삶의 실존이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나의 생각과 길을 내려놓고 오롯 하나님과 그 말씀 안으로 들어가십시요. 그것만이 수고로운 생의 길이지만, 나름 마음의 깊음 속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도우심을 받는 길입니다.


그리고 백년도 살지 못하는 우리의 생, 그리 멀지 않은 날에 다가올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사도바울처럼 위대한 고백을 할 수 있는 삶입니다.


이 길도 주님의 말씀처럼 들어가는 문도 좁고 가는 길도 좁고 찾는 이가 적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백한 사도바울처럼 우리의 육신의 정욕과 자아와 끊임없이 싸워야 하고, 또 외롭고도 세상에서는 미움을 받는 길,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골고다의 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 깊은 심령 안에는 하늘의 기쁨과 평강이 별비처럼 부셔지는 참 행복과 평안이 있는 길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약속이 있는 생명의 길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의 생에도 숱한 고난이 있었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함께 하였듯이, 하나님의 사랑과 도우심을 받으며, 훗날 야곱처럼 험난한 생을 살아왔다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또한 야곱처럼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경배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삶입니다.


저는 주님의 다루심 안에서 이러한 것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그리고 삶으로 배웠기에, 너무도 부족한 그릇이나 그리고 때때로 주님 앞에서 많은 부족함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래도 나름 오늘도 저 별빛 쏟아지는 하늘을 향해 걸으려 애써봅니다.


그렇게 애써보니 우리의 완전함을 바라시는 것이 아닌 우리의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시는 아버지께서 별빛처럼 부셔지는 하늘빛 평강과 기쁨을 당신 안에서 또한 누리게 하심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눈을 뜨십시요. 세상의 그 모든 것을 내려놓으십시요. 다 썩고 죽을 배부르게 하지 못할 양식들입니다.리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요. 그 하나님 사랑의 질서 안에서 세상의 것들도 사랑하며, 또한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와 의를 위한 통로로 삼으며 살아가십시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영화과 존귀의 삶이요, 가장 지혜로운 삶입니다.


오늘의 밤 산책길, 영으로 주님을 부르니 오셔서 함께 거닐어 주셨습니다. 함께 길을 걸으시며 이르시는 말씀,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시며 외치시던 말씀으로 기쁨을 전해 주셨습니다.


“기뻐하여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


막1: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막1: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그렇지요. 종말의 그 시기는 예수님도 모르고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시나, 생의 종말이던 우주적 종말이던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에게 왔고, ‘아직’의 그 나라도 점점 가까워져 가고 있지요.


죽음의 문턱에도 서 보았기에 무엇이 지혜로운 삶인지 조금은 깨달아, 여전히 육신과 자아에 때로 흔들리지만, 저는 오늘도 땅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며 조랑조랑 걸어갑니다. 그렇게 걸어보니 주님이 함께 해 주시고, 주님이 보내시는 하늘의 천사들도 함께 해 주네요.


여러분도 그렇게 걸어 보세요. 어느 고비를 넘어서면 또 다른 하늘의 영광 빛이 열릴 테니까요. 오늘도 그 영광의 나라를 향하여 비록 힘들지만 웃으며 걸어갑니다. 오늘도 영으로 찬미를 드리며 송이를 업고 산책을 하노라니 송이가 귀엽고도 우스운 모양으로 몸 찬양을 합니다.


“송이야”


“응?”


“너 모하니?”


“...”


“잇히히...”


송이의 웃음소리가 고요한 밤하늘에 아련히 울려 퍼집니다. 한점 그늘도 없는 하늘빛 웃음입니다. 그 완전한 웃음의 나라를 향하여 우리 모두 주님 따라 아름답게 걸어가는 모두면 참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 나라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세세토록 주여 영광을 받으소서. 아멘!


사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요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6:27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샬롬] 내용 중 상당한 부분을 인용하시거나 원본을 그대로 게제하실 경우는, 출판을 염두에 둔 글과 말씀들이니 출처 부분을 남기셔서 저작권을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카페규칙 상 스크렙 및 링크가 허락되지 아니한 게시판에 부지 중 올렸다면 먼저 죄송한 맘 전합니다. 소식 주시면 글올림을 삼가거나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카페운영에 어려움 주지 않기 위하여 저작권 유의 배경음악과 그림자료 살펴 조심하고 있습니다 / 감사 드립니다. 늘 평안하십시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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