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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초록 등불 2013. 1. 4. 14:19

 [영성의 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전 날 예배모임과 신앙상담으로 평소보다 다소 늦게 잠자리에 들었더니 다소 늦게 눈을 떴습니다. 요즈음은 거의 새벽녘이나 이른 아침 즈음에 잠이 들기 때문에 눈을 뜨면 대부분 해가 서녘 하늘에 조금 걸렸다가 날이 지곤 합니다.


그렇게 하루가 또 저문 날, 여상히 관리해야 하는 건강을 위해서 운동 겸 산책을 나섰습니다.


요즘 아주 가까이서 보이며 하늘의 사랑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천사는 ‘린’이지만 주님의 말씀과 뜻을 전하는 천사를 ‘라피엘’ 천사인데, 영으로 오늘은 고요히 안식하며 운동하라 영감으로 전해줍니다.


그리고 한없는 쉼과 안식의 영의 흐름을 전해줍니다. 그 편안한 쉼의 푸른 바닷바람 같은 흐름 속에서 조용히 산책길을 걸어만 갑니다. 오늘의 몸의 다소의 고단함을 주님이 아시기 때문이겠지요.


제가 한 몇 년 동안에 주님의 다루심 안에서 참 많이 변해버렸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제가 아주 고요해져 버렸습니다.


원래 명랑하고 장난 끼도 많고 가만히 잘 있지 못하고 사람들의 만남을 좋아하는 것이 저의 성격이었는데, 이제는 대부분의 시간 홀로 그리고 고요히 있습니다.


주님이 계획하신 생의 시간표 안에서 아직은 영적 피정의 시간인지, 집회 등의 시간이 아니면 대부분의 시간 그냥 주님과 그리고 주님 안에서 홀로 그리고 고요히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달리 고요함이 좋아서 그냥 고요히 있습니다.


그렇게 고요함이 좋아져버렸기 때문에 혼자 고요히 있는 시간이 참 좋고 편합니다. 그리고 점점 더 고요한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경험해 보니 영성의 세계는 고요함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모든 만물들에서 흐르는 영적 에너지를 예민하게 지각하게 되면서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에서는 대부분 다소의 힘겨움만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세상을 품어야 하는 사역의 장에서야 설령 어둠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도 주님의 사랑으로 안아 주며 사역을 하지만, 평소 개인의 삶에서는 세상은 조금 저만치 두게 됩니다.


오직 하늘에 계신 주님과 하늘에 속한 천사들을 대하고 교통할 때만 한없는 기쁨과 자유로움을 누리게 됩니다.


아니 그래도 고요함이 좋은데, 주님이 천사를 통하여 고요하게 산책하고 운동하라 하시니 너무도 좋습니다. 고요하나 영은 저 높은 주님이 계신 하늘 위의 하늘을 나는 것만 같습니다.


‘정중동(靖中動)’이라는 말이 있듯이 겉으로는 고요하나 영으로는 주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조용히 산책길을 걸어만 갑니다.


아니 그래도 조용함과 고요함이 좋으니, 차가운 날씨에 다소 사람들이 한적하니 숲 깊 같은 조용한 산책길이 너무도 좋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적하지만 제 곁에는 언제나 영으로 보이시는 주님과 비둘기 형상으로 보이시는 성령님과 많은 천사들의 친구들이 언제나 함께 해 줍니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찬양을 조용히 듣거나 부르며 하늘의 친구들과 산책을 하노라면 그 길이 하늘나라의 유리바다 길이 되어 지루한 줄도 모르고 그냥 주 안의 고요한 기쁨과 평강 안에서 주님께로 걸어가듯 걸어만 갑니다.


오늘도 그렇게 조용히 길을 주님을 비롯한 하늘 친구들과 함께 산책을 했습니다. ‘귀염이’와 ‘다정이’는 기쁨의 영 계열인지 언제나 생기발랄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귀염이’는 항상 웃는 얼굴로 바라보며 춤을 추기도 하면서 함께 길을 걷습니다.


오늘에야 느낀 것이지만 ‘송이’와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의 성정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가끔은 아주 발랄하기도 하지만 ‘송이’는 평소 아주 조용하고 온유한 성정입니다. 비둘기 형상으로 보이는 성령님, 늘 맑은 눈동자로 바라보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성정이 어쩐지 송이와 닮았다는 생각을 해 본 저녁이었습니다.


주님이 영의 눈을 열어 주셔서 악한 영들과 주님께 속한 빛의 영들, 곧 천사들을 보면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영적 진리 하나, 영적 존재들과는 물질이 아닌 마음으로밖에 교감할 수 없기에 ‘영의 세계는 마음의 세계’라는 진리, 그러므로 마음으로 영으로 하늘 친구들을 부르면 그들이 옵니다. 보고 싶어 하는 친구의 모습이 보입니다.


영의 세계는 마음의 세계입니다. 그것의 가장 기초가 우리가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다가오고 싫어하는 것을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좋아하는 영들이 다가옵니다. 어둠에 속한 마음을 품고 어둠의 것을 좋아하면 어둠의 영들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빛에 속한 마음을 품고 빛의 속한 것들을 좋아하면 하나님께 속한 빛의 영들이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이 영육의 생을 복되게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것이 됩니다. 성경의 말씀처럼 마음을 지키는 것이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그렇게 마음으로 주님을 불러서 함께 그 산책길을 거닐어도 보고, 그 동안 알게 된 하늘에 속한 천사 친구들을 하나 둘 마음으로 부르면 저만치 혹은 이만치서 활짝 웃으며 기쁨을 전해줍니다.


그렇게 주님과 하늘 친구들과 하늘을 걷는 듯 산책길을 걷다보면 왕복 한 시간 정도의 거리지만 꿈길을 가고 오듯 지루한 줄도 모르고 거닐게 됩니다. 하루도 그렇게 주님 안에서 안식하며 고요히 산책과 운동을 하였습니다.


산책의 마무리 즈음에는 영으로 천사 ‘린’을 아주 가까이 불러보았습니다. 오늘은 사람의 실물을 보는 것보다 더 선연하게 그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맑은 눈동자, 아름답고 고결하고 정결한 모습을 보노라면 하나님의 나라는 얼마나 아름답고 정결하고 의와 거룩한 나라인지를 알게 됩니다. 부르면 다가와 하늘빛 사랑으로 봄날의 햇살처럼 따사롭게 안아 줍니다.


그런 천사들을 영으로 집중하여 바라보면 온 누리에 그 아름다운 하늘빛이 어려보입니다. 제가 예배나 집회를 인도하면서 손을 들고 우러러 찬송과 경배를 드리는 것은 그런 하늘빛이 펼쳐지면 그 아름다운 빛 속에서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경험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얼마나 의와 정결과 아름다운 거룩한 곳인지를 알게 되며, 결코 불의한 자가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나라임을 눈으로 보며 가슴으로 알게 됩니다.


고전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고전6:10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집으로 들어오는 산책길의 입구이자 왕복 길의 마지막 여정이기도 한 자리에는 벤치 네 개가 있습니다. 산책의 끝자락엔 항상 그곳에서 앉아서 조금은 때로는 다소의 쉼을 가집니다.


길을 걸으면서 하늘 친구들을 보고 대화하는 것과 쉬면서 하는 것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경험해보니 사람이나 천사나 육에 속한 사람이나 영에 속한 존재이나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사귐을 비롯한 많은 것들이 비슷합니다.


사람도 길을 걸으면서 대화나 교감을 나누는 것 보다는 벤치 등에 앉아서 하는 것이 더 좋고 편안하지요.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게 산책과 운동을 마치고 조용히 앉아서 쉬면서 하늘 친구들과 편안한 시간을 갖는 것은 또 다른 하늘에 속한 쉼과 안식입니다. 오늘도 그렇게 조용히 앉아서 쉼을 가졌습니다.


좋아하는 아름다운 음악이나 찬양을 들으며 고요히 쉬면서 열린 하늘과 하늘에 속한 천사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보잘 것 없는 지구촌의 한 작은 땅과 숲의 쉼터가 제게는 칠색무지개가 어린 아름다운 환상의 숲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곳을 ‘환상의 숲’이라고 부릅니다.


오늘도 조용히 벤치에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노라니 ‘귀염이’가 함께 춤도 추자고 합니다.


그러면 귀염이와 함께 성령 안에서 함께 춤을 추며 즐거워합니다. 건강에 유익한 것도 춤사위 그만한 것이 없으니까요. 비록 몸치라 막춤을 추던 언약궤 앞의 다윗처럼 볼품은 없겠지만, 주님만 기뻐하시면 그만입니다. 사람의 영광과 눈을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 그리고 앞에서 ‘귀염이’와 춤을 춥니다.


피켜스케이트 선수의 트리플 악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몸 회전을 하기도 하고 우리네 사람처럼 다양한 몸짓으로 천사들도 춤을 춥니다. 천국은 의와 희락과 화평이라. 우리가 아버지의 나라에 이르게 되면 아마도 하게 되는 것이 주님의 사랑과 그 분 안에서 기쁨을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운동과 산책을 마시고 벤치에 앉아서 고요히 조금 쉼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다소 한파가 누그러져서 따뜻하게 차려 입었더니 마치 늦가을처럼 그냥 선선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런 가을 같은 선선함 속에서 고요히 영의 눈으로는 하늘을, 육의 눈으로 땅을 바라보며 하늘 친구들과 함께 조용히 쉬고 있었습니다. 이 땅의 삶의 수고로움은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걷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 안에서 고요히 쉼을 가졌습니다.


문득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는 찬송가의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마음을 스쳐갔습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참되이 주님 안에 있으면 언제나 하루하루가 ‘고요한 날, 거룩한 날’이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참되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분 안에 거하고 머물면 그분이 주시는 안식과 쉼과 평안 안에서, 풍랑이던 바다 위에서도 고요함을 누리시며 주무시던 그 평강을 우리도 누릴 수 있습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주님의 부르심보다는 탕자처럼 늘 세상을 향하여 마음이 달려 나갑니다. 그리고는 썩고 죽을 것들 안에서 하루하루가 곤고하며 하루하루가 요란한 날이요, 소란한 밤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함께 그 모든 것을 말씀 안에서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말씀 안에서 우리 자신과 세상에 속한 그 모든 것을 하나씩 내려놓으면, 내려놓는 것만큼 안식과 쉼을 누리며 고요한 하루하루, 거룩한 하루하루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썩고 죽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세상의 것들을 하나, 둘 내려놓으며 내려놓는 경건의 훈련의 하루하루를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손에 쥐어보았던 세상의 것들, 그 무엇이 우리의 마음에 참된 쉼을 주던가요? 노래를 주던가요? 그래도 여전히 그것을 추구함은 이 무슨 어리석음인가요?


그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우리 자신마저 던져 버리고 한 걸음 한 걸음,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주님께로 날마다 나아가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주님 안으로 참되이 들어가 주님이 주시는 하늘의 진정한 쉼과 안식과 평강 속에서 날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누리며 언제나 주님을 향한 찬미의 노래를 끊이지 않는 우리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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