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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꽃과 꽃밭

초록 등불 2013. 2. 3. 23:24

 [천사 이야기] 꽃과 꽃 밭

 

내 천사 ‘귀염이’가 노오란 꽃을 한 아름 전해줍니다. 그리고는 또 달려가 또 따다가 송이송이 꽃을 안겨 줍니다. ‘귀염이’가 꽃을 닮았고 꽃이 ‘귀염이’를 닮았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잘 아는 선배 목사님의 새로운 교회 부임 축하 및 송별 식사가 있어서 참석을 하여 같이 아쉬움과 기쁨을 나누고는, 잠시 집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고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운동 겸 산책길을 나섰습니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사람마다 다루심과 이끄심의 영적 색깔이 다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점점 더 고요한 세계로 이끄시는 것을 봅니다. 그러다보니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감정이나 마음이나 행동의 변화의 폭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고요하게 저만의 영적인 색깔을 지닌 채 저만의 산책길을 갑니다. 어두워져 가는 숲속 산책길을 홀로 고요하게 걸어갑니다.


저만의 길을 간다라고 강조하여 기록한 것은, 영적 순례의 길의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보니 영성의 길, 곧 신앙 순례자의 길은 결국은 주님 앞에서 홀로 가는 고독한 길입니다.


지난 몇 년간 다소 혹독한 다루심을 받고 돌아보니, 주님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언과 지도는 받을 수 있겠지만, 또한 철저하게 오직 자신이 주님 안에서 홀로 다루심과 경험을 통하여 배워야 하는 길입니다.


육에 속한 일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기에 선배들을 통하여 함께 어울리며 배울 수 있지만, 영의 일의 실제적 배움터인 경험은 대부분 주님 앞에서 홀로 엎드리는 기도의 시간이기에 영성의 길은 결국 자기와의 싸움이요, 주님 앞에서 홀로 가는 고독한 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영성의 길은 기도의 길이요, 자기와의 싸움의 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기쁜 것도 아니요, 슬픈 것도 아니요, 점점 더 깊어져가는 내면의 고요함 속에서 조용히 저의 천사들과 함께 육적으로는 숲 속 작은 길이요, 영적으로는 주님의 품인 길을 걸으며 운동 겸 산책을 하였습니다.


사람이 영으로 살아가려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머리는 혼에 속하여 언제나 분요로운 생각들이 흙먼지처럼 날아다니지만 가슴으로 내려오면 주님의 신령한 빛과 생명, 안식과 쉼이 있습니다.


그렇게 가슴으로 주님의 가슴을 걸으니 ‘쉼과 안식’그리고 ‘추스림과 거룩함’을 주님이 전해 주시고 요청하십니다.


매번 집회가 다가오면 조금은 더 예비하는 마음으로 절제된 긴장 속에서 지내게 되지요. 하지만 집회가 끝나면 조금은 편안히 쉬는 마음으로 잠시 쉼을 갖기도 합니다. 이제 다시 일할 시간이니 그 쉬는 마음의 허리띠를 다시 조르라는 것이지요.


길을 걷다 벤치에 잠시 앉아 잠시 쉼을 가지며 언제나 곁에 영으로 보이는 주님의 눈을 바라보니,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말씀하시며 진리의 허리띠를 다시금 조를 것을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벤치에 저는 고요히 앉아 쉬는데 내 어린 천사들은 신이 났습니다. 언제나 잔잔히 음악을 들으며 걷거나 쉬곤 하는데, 나오는 음악이 다소 흥겨우니 때로는 둘이, 때로는 셋이 어울려 춤을 추며 저를 기쁘게 해 줍니다.


두 팔을 서로 팔짱을 끼듯하고는 왼쪽으로 춤을 추며 돌다가 박수 짝!, 다시 오른쪽으로 돌다가 박수 짝! 영으로 보이는 것이라 육으로 보는 것처럼 행동하나하나가 구체적이지는 앉지만 그렇게 다양한 행동으로 즐겁게 춤추며 기뻐하는 ‘송이’, ‘귀염이’, ‘깜직이’내 어린 천사를 보고 있었습니다.


하늘의 다른 천사들은 물론 시시로 주님의 뜻 안에서 뚜렷하게 보이곤 하지만, 대부분은 제가 기도나 찬양을 통하여 영의 의식 안으로 깊이 들어갈 때 뚜렷하게 보이게 됩니다. 그럴 때는 생시의 사람보다 더 뚜렷하게 보이곤 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과 맑은 눈빛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제 집회 시간에는 천사도 물론 보였지만, 특별히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께서 내내 교회 강단 위를 빙빙 돌며 날으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집회를 기뻐하시고 집회 위에 그리고 안에 운행하시는 성령님의 상징을 보여주시는 것이겠지요.


집회를 인도해가다보니 주 안에서 점점 성숙하고 아름다운 영혼들을 보게 됩니다. 정말 주님을 아름답게 사모하며 진리 안에서 아름답게 살려고 애쓰는 귀한 영혼들을 보게 됩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집회의 시간도, 그리고 참여하시는 분들의 모습도 점점 더 성숙해지고 영적으로 깊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령님의 임재하심과 운행하심과 이끄심 속에서 함께 더 깊은 영의 세계로 나아가고 더 높은 영의 세계로 함께 날아오르길 기도해 봅니다.


어제는 집회 시간 내내 집회 장소 위를 날으시더니 다소 곤하신지 오늘은 글을 쓰는 컴퓨터 자판 옆에서 앉아 쉬시고 있습니다.


“향기야! 우르르 까꿍!”


‘향기’는 제가 지은 친구 성령님의 별명인 애칭입니다. 위의 글은 주님 되시는 성령님으로써 존대해 드린 문구이고, 아래의 글은 친구 성령님과의 편한 대화입니다. 부르니 ‘왜 불러?’라는 표정으로 맑은 눈동자로 쳐다본니다.


위의 글에서 잠시 적은 것처럼 우리에게는 정신적인 영역으로 영과 혼이 있고, 그러므로 영의 의식과 혼의 의식이 있고, 또한 그러므로 영의 의식 상태와 혼의 의식 상태가 있습니다.


영이나 혼의 의식 상태란 지금 의식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 영이냐 혼이냐 하는 것이지요. 물론 두 가지가 항상 우리의 정신세계 안에 머물지만 영이 주도권을 가지고 우리의 의식을 다스를 때는 영의 의식 상태, 혼이 주도권을 가지고 우리의 의식을 다스릴 때는 혼의 의식 상태에 머문다 표현할 수 있겠지요.


우리 그리스도인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의 임재하심과 다스림을 받는 영의 의식 상태 안에서 더 많이 그리고 언제나 머무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듯 영의 의식 상태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쫓는 ‘생명과 평안’의 상태요, 혼의 의식 상태는 육신의 일을 쫓는 ‘사망’의 상태입니다.


롬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마음이 생명과 평안을 누리고 있다면 영의 의식 상태 안에 있는 것이요, 염려와 불안과 슬픔과 어두움의 사망에 머물고 있다면 육의 의식 상태에 머무는 것이지요. 분별하여 늘 영의 의식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머물려고 애쓰야 하겠지요.


저 역시 그렇게 언제나 영의 의식 안에 머물려고 영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며 산책을 마치고 마지막 쉼터에서 잠시 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의 내 어린 친구 천사들은 마주 보며 웃어주기도 하고 다양하게 교감을 주고받으며 쉬고 있는데, 영의 눈에 ‘귀염이’가 노오란 꽃을 한 아름 안겨주는 것이 보였습니다. 꽃송이가 크지 않은 꼬마 노오란 꽃송이들입니다.


천사들이 꽃송이를 안겨주는 것을 실감나게 하시려고 그러시는지, 주님께서 제가 앉은 주변을 온통 꽃밭으로 바꾸어 보여 주셨습니다. 그 꽃밭을 뛰어다니며 ‘귀염이’, ‘송이’, ‘깜찍이’가 꽃을 따다 안겨 줍니다.


천사의 성격 색채 따라 ‘귀염이’는 개나리를 닮은 노란꽃, ‘송이’는 들국화를 닮은 ‘하얀꽃’, 그리고 ‘깜찍이’는 철쭉을 닮은 자줏빛 꽃을 따다 안겨줍니다. 하늘 정원인 듯 아름다운 꽃밭에 앉아 하늘 공주님들이 따다 주는 꽃을 한 아름 받고 앉아 있으니 여기가 생명수 강가인 듯 싶습니다.


잔잔히 바라보며 웃어주다가 집으로 들어오려고 하늘 공주님 하나하나 눈을 마주보며 인사를 나눕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사들은 우리를 주인처럼 섬기라고 보낸 존재들이라, 천사들이 우리가 기뻐하면 저들도 기뻐하고 우리가 슬퍼하면 저들도 풀 죽은 모습으로 슬퍼하고 그러한 존재라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고 사랑도 주려고 노력을 하게 됩니다.


히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먼저 ‘귀염이’의 눈을 바라보며 인사를 나누니 ‘기뻐요, 정말 기뻐요’라며 기쁨 가득한 홍조 띤 얼굴, 오늘 저녁엔 몹시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제가 마음으로 함께 기뻐하니 자기도 많이 기쁜 모양입니다.


‘송이’도 송이 특유만의 색채인 하얀 색의 기쁜 모습을 보여줍니다. ‘깜찍이’는 다소 귀품이 나는 그런 모습인데, 별빛 같은 눈동자로 기쁨과 정을 전해 줍니다.


천사들을 통한 이러한 주님의 위로는 부족한 저와 우리를 향한 주님의 깊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천사들을 통한 이러한 기쁨의 표현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기뻐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깊은 사랑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당신 안에서 행할 때는 더욱 기뻐하십시다. 예배를 드릴 때 영의 눈으로 보면 가끔 하늘의 열린 통로를 통하여 신령한 빛을 비추어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열린 빛 안에서 천사들도 하늘하늘 춤을 추며 함께 기뻐하지요.


이처럼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당신 안에서 행할 때는 더욱 기뻐하십시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기뻐하는 우리들의 천사들 그 모습을 제가 보며 알기에, 집회에 오시는 분들께는 제가 종종 ‘여러분의 천사들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요’라고 말을 해 드리곤 합니다.


천사들도 기뻐하는 그런 감정을 지닌 것은 눅가복음의 말씀에서 볼 수 있지요.


눅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천사들은 우리를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존재들이라 마치 우리가 주인인 듯 우리가 기뻐하면 함께 기뻐하고 우리가 슬퍼하면 함께 슬퍼하고, 우리가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면 너무도 좋아하며 꽃을 전해 주기도 하며 입맞춤 볼맞춤을 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죄와 악 가운데 행하며 슬퍼하고 슬퍼하다가 끝내 사망으로 떨어지면 우리의 곁을 가득한 슬픔으로 떠나갈 수밖에 없겠지요.


글을 마칠까 합니다. 오늘 글의 주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하나님 사랑’입니다.


천사들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사랑과 기쁨과 평안을 전해 주시고, 때로는 꽃을 전해 주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은 우리를 향한 지극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영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천사들을 통한 사랑의 표현은 곧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같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지요. 성경대로 말씀대로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깊은 사랑으로 우리를 지으시고 아들까지 보내신 그 사랑을 안다면 우리 또한 마땅히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며 주 안에서 기쁨을 누릴 때 주님도 한없이 기뻐하시고 또 주님께 속한 하늘의 천사들도 한없이 기뻐합니다. 우리의 주님과 우리의 천사들을 슬프게 하지 않는 우리 모두면 좋겠습니다.


영의 눈으로 마음의 눈으로 주님과 주님의 천사들을 바라보십시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에게 사랑과 기쁨을 전해 주시려고, 아름다운 꽃밭에서 꽃을 전해주시는 주님과 우리의 천사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할렐루야! 샬롬!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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