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주님의 설교

[주님 감동] 한 싹의 결실 (2기 제1차 영성집회 설교)

초록 등불 2013. 3. 4. 13:04

 [주님 감동] 한 싹의 결실

 

성경본문 : 이사야 11장 1-9절


사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사11: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사11: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사11:4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사11:5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사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사11: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사11: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사11: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이 말씀과 본문은 메시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하지만 2기 제 1차 시내산 영성집회의 말씀으로 이 본문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본문을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예수 그리스도적 해석이 아닌 우리 자신에 대한 다른 각도에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말씀이라 성령님의 빛 안에서 다양한 조명이 가능하지요.


대략적으로 성령께서 다른 각도로 우리 자신을 향해서 이 본문을 적응할 수 있도록 조명해 주신 본문의 영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새의 줄기와 뿌리에서 나서 결실하여 열매를 맺은 것처럼 우리도 그러하여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이 아닌 우리 자신에 대한 해석으로 간단히 풀어 설명을 해 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잘 알려지고 유대인들에게는 거의 그리스도 차서의 반열처럼 생각되는 다윗이 아닌 그의 조상‘이새의 줄기’에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였듯 위대한 왕가의 후손이 아닌 평범한 혈통의 가문과 집을 통하여 태어나실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예표이지요. 예수님은 성경이 이 표현대로 왕가나 귀족의 집안을 통하지 아니하고 이름도 없는 평범한 가정에서 이름도 없이 태어나셨지요.


그러나 저는 ‘이새’라는 이름의 의미를 사용하여 본문을 성령님의 감동하심대로 우리에게 영적으로 유익하게 적용시켜 보려고 합니다. ‘이새’라는 이름의 뜻은 ‘주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 본문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따라야 하는 우리 자신에게로 적용시켜보면, 오직 하나님의 선물과 은총과 은혜로 우리에게서 생명의 새싹이 돋아난다는 의미입니다.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그렇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은혜 안에서 생명의 새싹을 틔우게 되면, 그의 위 곧 우리의 위에 하나님의 영,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곧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이지요.


그러한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의 결과 오직 우리에게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즐거움이 되며, 눈과 귀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삶을 살지 아니하며, 가난하고 천한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며, 내 속의 악과 세상에 있는 악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될 것이며, 공의와 성실로 허리와 몸의 띠를 삼고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된다는 의미이지요.


이러한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결실의 삶이 우리에게 있을 때,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굴에 손을 넣고 장난을 치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교회에서, 우리의 지역에서, 우리의 나라와 전 세계에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개력적인 성경의 조명하심 위에 주님은 다음의 4가지 소주제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직접 감동감화 하시며 설교문을 주셨으므로 지금부터는 직접 화법으로 주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전하겠습니다. 신약시대의 성령의 감동감화하심에는 항상 우리의 연약함으로 다소의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말씀에 비추어 걸러낼 수 있는 부분이므로 직접화법 형식으로 전해 드립니다.


주님께 집회 설교를 위하여 말씀을 간구하니, 주님께서 보이는 영의 모습의 눈빛과 음성으로 일러 가라사대..


첫째, 내가 생명이요, 너희가 가지이다.


만유의 근본과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빛과 선의 근원은 오직 선한 신 이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니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만물이 하나님을 힘입어 기동하며 서 있으며,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능력이 아니면 너희가 어떠한 선과 빛의 열매, 거룩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내 곁에 있으라. 그러므로 내 안에 있으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안에 있으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며 가까이 하는 삶이 가장 지혜로운 행복의 길이다.


하나님은 너희를 사랑으로 창조하셨고, 사랑으로 교통하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라. 너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너희와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너희와, 우리가 너희와 온전한 사랑의 교통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너희의 불순종과 죄와 악으로 말미암음이라.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므로 죄와 불의를 가까이 하지 못하신다. 용납하지 못하신다.


그러므로 너희 가운데 악을 제하며, 어둠의 모든 것들을 벗어 버리고, 아버지의 선하심 같이 선하고, 아버지의 아름다우심 같이 너희도 아름다우며, 아버지의 거룩하심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


너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이며, 아버지의 자녀가 아니냐?


전에는 너희는 어둠의 권세 아래 있었고 어둠의 자식이므로 너희 속에 어둠의 피가 흘렀다. 하지만 이제 너희는 내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진노의 대상에서 하나님의 자녀, 빛의 자녀가 되었다.


러므로 이제는 거룩한 너희 몸에 거룩한 나의 생명이 흐르게 하라. 너희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그리고 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


나의 생명이, 나의 거룩한 생명의 피가 너희 속에 흐르게 하라. 피는 곧 생명이니, 나의 생명이 너희 속에 흐르게 하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느냐? 너희가 나를 진정 사랑하느냐? 너희가 나를 정녕 사랑하느냐?


둘째, 나를 사랑하라. 영의 생명은 사랑으로서만 연합된다.


사도바울이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1-32)라고 말한 것처럼, 성경의 곳곳에서 남녀의 사랑과 결혼에 비유하여 하나님과 너희의 관계를 설명한 것처럼, 남녀의 사랑과 연합에는 많은 영적인 뜻와 섭리가 비유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둘이 한 몸을 이루듯 너희와 우리의 온전한 생명의 연합은 온전한 사랑으로 말미암는다.


남녀가 만나 둘이 한 몸을 이룰지라도 그 마음이 합하지 못하면 온전한 하나일 수 없듯이, 하나님과 교회, 우리와 너희 사이에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신앙의 형식만 갖춘 기름없는 꺼진 등불을 든 어리석은 다섯처녀가 되지 말고, 옥합의 향유와도 같은 기름으로 너희의 마음과 영을 가득 채우라.


슬기로운 자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왕의 신부가 되는 한없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어리석고 미련하고 게으른 자는 내어침을 당하리라.


하나님과 나를 삼가 두려워하고 경외하며, 또한 삼가 그 말씀에 사랑으로 순종하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삼가 그 계명들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우리가 그에게로 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크도다! 이 생명의 연합의 비밀이여.


“너희가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너희가 하나님을 정녕 사랑하느냐? 나를 정녕 사랑하느냐?”


너희가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 사랑을 인정받지 못하거니와 하물며 불꽃같은 눈동자로 그 마음의 중심과 폐부를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랴! 지금 그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동자 앞에서 답하여 보라.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계명 안에 거하므로 생명의 연합을 이루라. 영의 생명은 오직 사랑으로서만 연합되느니라.


셋째, 자신을 쳐서 생명연합의 장애를 제거하여라.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듯 수고와 애씀이 없어 얻은 열매는 그 가치가 덜하지 아니하냐. 그 귀함이 덜하지 아니하냐. 사랑을 예컨대, 무릇 사랑할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누구인들 하지 못하느냐. 세리와 죄인도 능히 하지 않느냐(마5:46). 그것이 무슨 칭찬이 되며 상급이 되겠느냐.


너희가 알다시피 세상에 흔하고 흔한 말이 사랑일지라도, 진정한 사랑은 그러한 것이 아님을 알지 않으냐. 그러한 사랑은 자기 사랑일 뿐이며, 참되고 진정한 사랑은 자기 부인이며, 섬김이며, 거룩한 희생이다.


내가 이를 본을 보여 너희로 행하게 하려고, 주와 선생으로서 너희의 발을 씻겼으며, 나를 배반한 제자도 마지막 시간까지 품었으며, 십자가의 고통과 조롱과 모욕도 품고 용서하였으며, 목숨을 버리지 않았느냐.


이러므로 너희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하지 않았느냐. 이는 너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음 믿음이듯이, 사랑하노라 입술의 고백은 있으나 행함이 없는 사랑은 거짓된 것이며 죽은 사랑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거짓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네 말과 고백이 진정일진대 너희 속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불의를 버려라.


하나님을 사랑함과 경외함을 즐거움으로 삼으라.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사랑이 어찌 참된 사랑이냐.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말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말아라. 정죄하지 말아라.


내가 이 세상에 있을 때 오직 판단하실 이는 선하신 아버지 한 분 뿐임을 분명히 말하였거니와 엄히 판단과 정죄를 경계하였거늘, 간음하다 잡힌 여인도 내가 아버지의 아들일지라도 판단을 아버지께 맡기며 정죄하지 아니하였거늘, 내 귀에 들리는 온갖 판단과 정죄의 이 요란한 소리는 무엇이냐. 오히려 세상에서보다 더욱 많이 들려오는 언제나 요란한 이 소리는 무엇이냐.


삼가 말을 삼가며, 입술을 지키며, 보이고 들리는 대로 판단치 말고 정죄하지 말라.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너희가 무슨 무익한 말을 하던지 심판 날에 이로 인하여 심판을 받으리라. 네 말로 의롭다 함을 얻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공의로 가난한 자와 부한 자를 차별하지 말며, 성실과 공의의 허리의 띠와 몸의 띠로 삼고 살아가라.


악을 제하라. 그 모양이라도 버려라. 이러할 때에라야 세상의 사람들이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참 아들이라 하며, 하나님도 너희의 사랑을 참이라 인정하리라. 하나님께 인정함을 받는 그 복됨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가 나를 사랑하느냐. 어둠과 악에 대하여 힘써 싸우라. 내가 도우리라”


넷째, 너는 나의 신부라. 아름답게 만나자구나


사랑하는 신부를 만나 그 기쁠 혼인의 날을 기다리는 신랑이 기쁨이 어떠할까. 너희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이 이와 같도다. 너희는 나의 신부라, 나의 사랑하는 나의 신부라.


세상에서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혼인을 언약하면, 그 사랑이 참될진대 그 언약의 날까지 순결과 그 정절을 지킨다. 그 시간이 얼마일지라도, 그 사랑이 온전히 성취될 때까지 어떤 환경에서도 절개를 꺽지 않는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하지만 그 사랑의 언약을 저버리고 순결과 정절을 저버리면 그 사랑은 거짓이며, 온전하지 못한 것이며, 가증하며, 어쩌면 슬픈 일이 아니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나의 사랑은 언제나 음탕한 고멜처럼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을 향하여 눈웃음을 팔며, 그 입술을 주며 푸른 나물 그늘 아래서 행음하였다.


이는 너희가 아버지와 나의 사랑이 어떠함을 정녕 깊이 알지 못함이니라. 연약함 때문이니라.


사랑하는 신부여, 나의 신부여, 이제라도 돌이켜 내 품으로 돌아와 온전히 서로 사랑하며, 사랑의 언약을 지켜 행하자구나. 내가 너희 모든 허물을 기억하지 않으며, 모든 더러움을 말갛게 씻기리니.


사랑하는 신부야. 눈을 들어 다가오는 봄의 들녘을 바라보아라. 계절의 시간 속에서 겨울이 속히 지나가고 봄이 다가오지 않았느냐


그 자연의 흐름 속에서 지혜를 얻으려무나. 빛을 얻으려무나.


나의 신부야, 겨울보다 인생은 더 속히 지나가고, 내가 왕과 신랑으로 곧 네 앞에 이를 것이다. 네게로 걸어가고 있는 내가 네 눈엔 보이지 않느냐.


그러므로 이제라도 속히 돌이켜 냇물과도 같은 나의 피로 너의 더러움을 씻어내고, 생수와 같은 말씀으로 너를 곱게 단장하며, 성령의 생명의 불길로 네 얼굴과 볼에 화색이 돌게 하려무나.


내가 속히 이르러 네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기우고, 가장 아름다운 예복으로 너를 단장하고, 네 볼에 사랑으로 입맞추고, 영원한 나의 나라로, 나의 처소로 너를 인도하리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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