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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진리] 우림과 둠밈

초록 등불 2013. 3. 18. 03:52

 [핵심 진리] 우림과 둠밈

 

모든 영적 현상들이 그렇듯이 천사들도 처음에 보면 대단히 놀랍고 신비롭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소 그러한 감흥들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형상도 날개가 달린 모습과 사람에 비하여 무척 맑고 아름답다는 것 외에는 대부분 사람과 비슷하기 때문에 사람을 보는 것과 거의 일반처럼 느끼게 됩니다.


주님께서 제게 허락하신 영적 경험 중에 천사보다 다소 신비롭고 기이한 것은 성령님을 상징하는 비둘기, 곧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이십니다.


어느 날 방에서 잠시 쉬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은은한 빛을 발하며 빛으로 된 듯한 비둘기 형상이 조용히 날아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각 이후로 영의 눈으로 보니 제 옆에 하얗고 순결하고 예쁜 비둘기가 늘 보였습니다.


저는 어린시절 애완동물들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에 좋아하던 애완동물처럼, 성령님께서 애완용 비둘기처럼 늘 제 곁에 하얀 비둘기 한 마리로 보이며 함께 있습니다.


그렇게 보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한편 쉽고 또 한편 어렵듯이,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과의 교감도 한편 쉽고 또 한편 어렵기도 합니다. 영적 존재들과는 대부분 눈으로 교감을 하는데, 가끔 어떤 사안을 두고 영으로 묻고 분별도 해 보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냥 친구처럼 늘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이 되시지만, 주님이 그러셨듯 한편 우리의 친구 되시기도 하시기 때문에, 아래의 글에서는 그냥 친구 성령님으로 표현을 편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표현을 이해하시고 글을 읽어주셔야 합니다.


영의 세계는 물질의 세계가 아니라서 마음으로 교감을 하다보니, 경험해보면 마치 자신이 상상하듯 그렇게 교감이 됩니다. 물론 영적 감각의 분별로 자신만의 상상과는 구별이 됩니다.


가령 비둘기 성령님은 제 곁에 두려면 생각으로 제 곁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일하는 책상 위에서 노는 모습으로 보고 싶어서 그렇게 생각하면 책상 위에서 놀면서 저를 쳐다보곤 합니다.


영으로 보인다는 것과 실제적인 물리적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의 차이뿐, 마치 실제 하얀 비둘기 한 마리와 같이 지내는 것처럼 서로 재밌게 지냅니다.


대략 말씀대로 잘 살 때는 서로 사이가 좋기도 하고, 또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는 사이가 서먹해지기도 하지만, 잠을 잘 때도 같이 자고 어디를 가나 함께 가며 또 애정 표시도 곧 잘 합니다. 틈만 나면 다가와서 입을 맞추곤 합니다.


지금도 제 곁에서 저 한번 쳐다보고 글을 쓰는 모니터 한번 바라보며 제 곁에 있습니다. 자신의 글을 예쁘게 잘 써주나 안하나 감시하나 봅니다. (웃음)


그런데 이번에 아들의 대학 진학 문제를 놓고 기도와 함께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여야 했습니다. 뚜렷한 목표는 없었지만 대략적으로 희망하던 학과가 아닌 다른 학과로 합격이 되어서, 대학을 그냥 보내야 하는지, 아니면 일생의 일이 걸린 전공의 문제이니 한 해 더 공부를 시키고 도전을 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도도 하며 생각도 하고 학과 관련 자료도 살펴보고 하다가는 하루 우연히 곁에 보이는 성령님께 장난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무의식 가운데서는 그냥 가장 자연스럽고 편하게 느껴지는 장소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이는데, 제 왼편 약간 앞쪽에서 비둘기가 무슨 모이를 쪼아 먹는 듯한 자연스러운 모습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어 보았습니다.


“아들, 대학에 그냥 보내요?”


그러니 고개를 아래위로 끄떡끄떡 해 보였습니다.

다시 다르게 반대로 질문해 보았습니다.


“아들, 한 해 더 도전하게 해요?”


그러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아니, 아니”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늘 같이 지냈지만 이런 질문에 그런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처음이라 다소 재밌기도 해서 다시 똑 같이 물었습니다.


“아들, 대학에 그냥 보내요?”


그러니 고개를 위에서 아래로 끄떡끄떡 해 보였습니다.

다시 다르게 반대로 질문해 보았습니다.


“아들, 한 해 더 도전하게 해요?”


그러니 처음과는 다소 다르게 눈으로 약간 흘깃 보면서 “아니, 아니”하는 것 같았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어서 다시 한번 더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다시 한번 더 도전하게 해요라고 묻는 질문에는 제 눈앞으로 훌쩍 날아올라 “그냥 보내라고 했잖아. 왜 자꾸 귀찮게 물어!”라고 부모님이나 아니면 연인이 똑 같이 반복되는 질문에 다소 화를 내는 듯 쳐다보았습니다.


그렇게 서로 장난치는 것이 재미도 있었지만, 신중한 문제라 다시 비둘기 형상의 친구 성령님을 이번에는 제 책상 위에서 노는 모습으로 보이게 해 놓고 같은 질문을 반복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역시 세 번째 반복되는 질문에는 아주 따지러 오는 모습으로 책상에서 뛰어 내리서 조랑조랑 걸어옵니다. 그리고는 제 눈을 마주 보며 “그냥 보내라고 했잖아! 왜 자꾸 물어?”라고 바라봅니다.


모든 영적 현상을 분별이 한편 생명인 바, 하나님의 음성처럼 조심스럽고 신중한 분별을 하여야 했지만 그러한 성령님의 증거와 함께 여러 가지를 살펴 자녀를 대학에 그냥 진학을 시켰지요.


성경을 보면 어떤 사안을 놓고 가부를 묻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이 있었지요. 히브리어로 우림은 ‘빛’을, 둠밈은 ‘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는 어떤 사안을 놓고 하나님 앞에서 가부를 결정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었지요.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께서 보여주시는 모습이 고개를 상하로 끄덕이거나 아니면 좌우로 흔드는 모습이 마치 우림과 둠밈의 가부를 보여주는 것 같아, 그러한 모습 속에 우림과 둠밈이 생각이 나더군요.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다보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나 동행을 많이 사모하시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하지만 그것의 실제가 쉽지 않아서 또한 힘겨워 하시고 그 방법을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인생의 모든 일들에 어떤 방법을 알면 약간의 효율은 높일 수 있지만,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야만 하는 것이 모든 것들의 이룸의 근간이요, 성취의 뿌리이듯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나 동행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다가 한 번 쯤은 남녀간의 사랑에 빠지곤 합니다. 그렇게 사랑에 빠져 깊은 열병을 앓을 때는 보고 만나고 돌아서면 또 보고 싶어지지요. 그리고 보고 있어도 다 채워지지 않는 가슴에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라는 표현을 시적으로 쓰기도 하지요.


함께 있음이 너무도 행복하고 이야기를 나눔이 너무도 행복해서 함께 하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눠도 끝이 없지요. 그래서 밤을 훌쩍 새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요. 그리고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서 방금 묻고도 또 자기를 사랑하는지, 멋있고 예뻐 보이는지 묻고 또 묻고 하지요.


잠시의 하루나 혹여 어떤 일로 한 동안 만나지 못할 때에도 마음과 가슴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생각이 떠나지 않지요. 그래서 수시로 문자도 나누고 전화도 나누며 마음을 나누지요.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과 교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영의 눈으로 보이던 보이지 않으시던지 간에 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고 인식하며, 시간과 생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와 말씀과 찬양의 경건시간을 물론이요, 길을 갈 때나 일을 할 때나 그 무엇을 할 때나 온전히 정신을 몰두해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면, 우리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사랑이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남녀간의 에로스 사랑과의 차이가 있다면, 우리에게 영을 거슬러 행하려는 육체의 소욕과 나태함과 싸우는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신 것이지요.


그렇게 하루하루 주님과의 사귐의 시간이 길어지면 사귐의 깊이도 깊어집니다. 이는 마치 연인이 하루하루 사귀어가다보면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깊어져 나중에는 말하지 않고 눈빛만 보아도 서로를 알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과의 사귐에는 다소 실천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연인이야 눈으로 보이고 서로 독립적인 인격체로써 육신의 감각으로 보고 듣고 느껴지는 행동을 표현하기 때문에 별스런 실천적인 방법이 필요하지 않지만, 영이신 하나님과의 사귐에는 다소 실천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화를 거는 것”입니다.


비록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영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함께 하시는 성령님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성경을 통하여 그분께서 우리의 몸을 성전삼고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알며, 이는 실제요, 진리입니다. 그 성령 하나님께 “대화를 거는 것”입니다.


때로는 주님에게 하듯, 때로는 친구에게 하듯, 때로는 영의 신랑 되신 주님께 연인처럼 대화를 걸어 보십시요. 그러면 하나님은 영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계시기 때문에 반드시 음성으로 대답을 하십니다.


음성을 듣는 수준에는 우리의 영적 상태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분명히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며 우리의 대화에 응답하십니다.


만약 전혀 음성이 들려오지 않는다면, 이는 음성을 듣는 방법을 잘 이해하지 못하신 경우나, 아니면 죄와 불순종과 영적 게으름으로 인하여 영의 감각이 무디어져 있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방법을 이해하려 하시던지, 하나님과의 막힌 영적 교통의 문을 열면 다시금 들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은 다양한 자료나 책으로도 나와 있으니 별스런 어려움 없이 자료를 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영적인 기본 지식과 아울러 영적 교통의 문이 열려 있다면 반드시 주님의 음성은 들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그런데 이런 하나님과의 교제와 아울러 우리의 삶에서 영이신 하나님, 곧 성령의 인도하심을 늘 받는데 필수적인 하나님과의 대화, 질문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앞에서 제가 성령님과 사랑 안에서 놀며 교통한 질문과 아울러 두 가지를 더 포함합니다. 그것들은 어떤 일을 행하려고 할 때나 생활 속에서 던져야 하는 질문들로써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첫째,  “하나님, 이것을 해야 하나요? 하지 말아야 하나요?”

둘째, “지금 무엇을 할까요?”

셋째, “이것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첫째 질문은 어떤 일이나 결정을 앞두고 ‘우림과 둠밈’처럼 가부를 묻는 질문입니다. 두 번째는 개인적으로 여유로운 시간 그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지 묻는 질문입니다. 세 번째는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그 방법을 묻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따른 실천적인 방법은 어떤 감동이나 말씀을 하시면 잘 분별하여 순종하시면 되고,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면 자신의 신앙의 관점 안에서 말씀과 지혜와 지식 등을 두루 살펴 지혜롭게 행하시면 됩니다.


오늘은 하나님과 늘 동행하며 깊은 교제로 나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드려보았습니다.


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대화를 통하여 많은 친교를 나누시며, 또 이 세 가지 질문을 삶에서 잊지 마시고 일상화 해 보십시요. 하나님과의 친교와 동행에 많은 유익함이 있으며, 매사와 언제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복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샬롬 !


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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