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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진리] 영이 약한 사람

초록 등불 2013. 3. 25. 01:22

 [핵심 진리] 영이 약한 사람

 

영은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이 아니라 분명한 한 생명체로써, 영이 성장하게 되면 분명한 생명의 특징을 나타내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영적 성장과 그에 따른 생명의 특징과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타고난 육성을 제어하고 이길만한 영적 성장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꾸준히 힘쓰고 애써 영적 성장을 이루어 가서 타고난 육성을 지배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되면 서서히 영적 성장에 따른 생명의 특징이 외면적으로도 나타나게 됩니다. 비유를 들자면 우리 그리스도인 안에는 육의 나무와 영의 나무가 함께 자라는데 더 성장을 이루고 장성한 것이 약한 것을 지배하고 다스리겠지요.


원래 우리 인간은 온전히 영이 혼과 육을 지배하게 지어진 존재였으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이 죽고 대신 혼이 주인의 자리를 차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되면 물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되고 다시금 생명의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경건한 삶과 시간을 통하여 영도 분명한 한 생명체로써 성장을 시작합니다. 이러한 영의 성장도 생명체인 나무가 자라가듯이 한 순간에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정성과 마음을 쏟을수록 그 성장 속도나 강건함도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계의 나무나 꽃도 잘 가꾸고 키워놓았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다시 돌보지 아니하고 정성을 쏟지 않으면 다시 마르고 시들어 가듯이 우리의 영도 그러합니다.


그리고 자란 나무에 해악을 가하거나 오래 방치하게 되면 하면 죽어버리기도 하듯이 우리의 영도 돌보지 않고 해로운 삶을 살아가면 심지어는 죽어버리기도 합니다.


가령 하나님이 금하신 중한 죄를 알고도 자꾸만 짐짓 죄를 범하게 되어 그 악의 정도가 하나님이 정하신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하나님이 영원한 사망을 선언하십니다. 양심이 화인 맞게 되어 회개하려고 해도 회개의 영이 임하지 않고, 사생자로 버리셨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징계가 임하지 않습니다.


히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히10: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그리고 하나님이 금하신 사망에 이르는 죄, 가령 하늘의 신령한 은사를 깊이 맛본 사람이 현저히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거나 성령 훼방죄와 모독죄와 같은 죄를 짓게 되면 그 영은 죽어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영이 죽어버리게 되면 한번 싹을 틔운 씨가 자라다가 시들어 죽어버리면 다시는 소생의 방법이 없듯이 이와 같은 경우에는 다시는 생명과 영생의 기회를 잃게 되고 영원한 멸망과 지옥의 형벌이 확정됩니다. 영원한 형벌이 확정된 두려운 경우들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고 거룩한 두려움으로 섬기며 살아가야 하고, 죄에 대한 경각심과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영의 세계를 경험해보니 대부분의 우리는 너무도 죄를 가볍게 생각하고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죄는 정말로 모든 저주와 사망의 근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말 죄를 싫어하십니다. 그리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따라 죄는 반드시 우리의 삶에 환란과 어려움을 가져오게 됩니다. 죄로 인하여 잠시 즐거웠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두려움으로 죄를 멀리하여, 말씀 안에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복되고 복된 이생과 내생이 되기를 손 모아 기도해 봅니다.


이 글에서는 우리의 영이 장성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아직 어리고 약한 모습일 때의 나타나는 대표적인 행동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자신의 영적 성장의 정도를 가늠해보며 더욱 장성한 영적 성장을 위해서 함께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보고자 합니다.


영과 육을 대표하는 속성은 여러 가지가 되겠지만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영원함과 스러짐이지요. 영의 속성은 영원하며 불변하지만 육은 한시적이며 썩고 무너지고 스러지지요.


고전15: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그러므로 우리의 내면에 영적 성장을 이루어 영에 속한 속성이 가지를 내고 무성한 잎사귀를 내게 되면 영원한 영의 속성을 닮은 성정과 행동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영이 아직 어리고 힘이 없을 때에는 썩고 죽고 스러지는 육의 속성이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외면적인 행동이나 생각의 나타남에는 우리가 타고난 기질과 성정의 차이에 따라 개인적인 차이가 다소 있지만, 어쨌거나 한 개인의 삶과 생명의 속성을 살펴보면 영이 장성하고 성장해 가면 영의 속성인 영원과 성실과 신실함의 속성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영이 어리고 약할 때에는 누구에게나 이러한 행동과 생각의 특징이 나타납니다. 글을 통하여 먼저는 저 자신이, 그리고 여러분들도 한번 자신을 살펴 영적 성장과 성숙을 위하여 나아가는 도전이 되었으면 합니다.


첫째, 영이 약한 사람은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심합니다.


이것은 어린아이와 장성한 어른에 비유하여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지요. 어린 아이는 아주 작은 일에 웃고 또 작은 일에 슬퍼합니다. 마음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아주 심하지요. 이처럼 영이 약한 사람은 삶의 생활과 신앙생활의 모습 속에서 아주 변화가 심합니다.


이것은 비유로 들자면 뿌리와 가지가 약한 나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나무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그 흔들림이 심하고 때로는 뿌리까지 뽑혀버리지요.


이처럼 영이 약하고 아직 그 성장의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사람은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아주 심합니다.


영이 약한 사람들 가운데는 영이 병든 사람도 다 포함이 되지요. 영이 건강하고 밝은 사람을 원의 도형에 비유한다면 영이 병든 사람은 럭비공과도 같이 타원형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원이라는 도형의 형체를 가진 물체, 가령 동그란 공과 같은 것은 우리가 어떤 작용을 가하면 그 다음 행동이 예측이 됩니다. 하지만 럭비공과 같은 형태의 도형은 그 공이 어디로 튈지 우리가 예상하기 힘들지요.


이처럼 삶 속에서 죄와 상처 등으로 영이 병들어 그 원만함이 깨어진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이 예측하기 힘든 돌발적인 행동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는 영이 약하고 병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우리 자신에게 누구나 다소의 이러한 모습들이 있지요. 하지만 점점 영적 성장을 이루어 가며 영이 건강하게 되면 생각과 행동의 변화의 폭이 작아지고 점점 신실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바꾸어지게 됩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이러한 면을 살펴 더욱 더 영적 성장을 이루어가도록 애쓰면 좋겠습니다.


둘째, 말과 행동의 불일치가 많습니다.


그 다음으로 영이 약한 사람들의 특징이 말과 행동의 불일치입니다. 그 내면에 영의 속성인 신실함이 없기 때문에 말을 해 놓고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지요.


우리가 양치기 소년이라는 동화책에서 보듯이 이렇게 말과 사실이나 말과 행동이 다른 경우가 반복되면 신실성을 잃게 되어서 나중에는 누구도 그 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지요.


그리고 특별이 이 부분은 영의 세계에서 특별히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잘 알다시피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어떤 ‘언약’을 맺으시고 행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에 대한 신실함을 깊게 그리고 유의해 보십니다. 하나님 당신과의 약속의 말이던지 아니면 사람 사이의 약속의 말이던지 그 말에 대한 행함의 신실성을 깊게 보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성정은 하나님처럼 신실하지 못하여 때때로 말을 해 놓고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며, 그 누구도 말한 대로 온전히 행할 수 없는 연약성을 지니고 있기에, 이처럼 말의 신실성을 중요하게 보시는 하나님의 속성 앞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도무지 맹세는 하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한 것이지요.


마5: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마5:35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마5: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의 속성이 연약하여 누구나 다소 말과 행함에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지만, 영이 약한 사람일수록 말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제가 사역을 하다보면 가령 “목사님, 이렇게 저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약속의 말씀을 하시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어떤 분들은 말씀만 그렇게 할 뿐 수없이 반복하여 안 지키십니다. 그런 것이 반복되면 저도 그 말에 대한 신뢰를 하지 않게 되지요.


이처럼 우리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는 신실성을 잃게 되어 양치기 소년처럼 되면 사람에게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신뢰성을 잃게 됩니다. 성정은 모든 부분에 흐르는바 사람에게 신실하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께도 신실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말과 행동의 수없는 불일치는 영이 약한 사람의 한 특징이며,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신뢰를 잃게 되는 큰 부정적인 요인입니다.


하지만 영이 약하다보면 그 내면에 변화의 폭이 크기 때문에 자꾸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지요. 우리 자신에게 이러한 부분이 있다면 우리 모두 잘 살펴 영적 성장을 이루어가면 고쳐가야 하겠지요.


셋째,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


또 영이 약한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합니다. 영이 약하다는 것은 육성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인데, 이는 육성의 속성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는 성향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지요.


영의 사람은 예수님처럼 이적과 표적을 행한 뒤에도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지 아니하며, 무슨 일을 하던지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려 하지만, 육의 속성이 강한 사람은 무엇을 하던지 자신이 인정받고 드러남을 좋아합니다.


영의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도리어 섬김을 좋아하지만, 육의 사람은 자신의 자아를 따라 어디를 가나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받고 알아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항상 특별한 대우와 인정을 기대하고, 작고 사소한 섬김이나 봉사를 하여도 자신을 드러내고 나타내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이 많은 모임은 항상 분열과 다툼이 일어납니다. 오직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의 영광을 구하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사람이 많은 교회, 이러한 사람이 많은 모임은 그래서 어디나 항상 문제와 분열과 다툼이 일어납니다.


제가 사역을 하면서 살펴보니 진정한 섬김의 사람, 신실한 사람, 영의 사람은 첫째 말이 적으며 행동의 변화가 적더군요. 둘째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며 사람들 앞에서는 잠잠합니다. 자신을 드러남과 나타남을 도리어 부담스러워하며 종용히 행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참된 섬김이요, 영의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많은 교회나 모임은 언제나 행복하고 서로 화목하지요.


우리 모두 영적 성장을 이루어 우리 자신은 주고 주님과 타인을 도리어 섬기고 높이는 영의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넷째, 인내과 성실이 부족합니다.


영이 약한 사람의 특징이 세세히 살펴보자면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하나 더 살펴본다면 인내와 성실이 부족합니다.


마음의 변화와 행동의 변화가 많기 때문에, 인내심이 없으며 행동의 신실함도 적습니다. 어떤 일을 하겠다고 마음에 정하여도 ‘작심삼일’인 경우가 많지요.


그러므로 인내와 성실 없이는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 낼 수 없는 육적, 영적 세계의 원리와 법치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인내와 성실함으로 어떤 기도의 응답이나 문제의 해결도 잘 받지 못하며, 또한  무엇 하나 제대로 깊이 익히고 배워 깊은 경지에 이르지 못하지요.


제가 사역을 하면서 살펴보니, 세상에도 ‘부익부, 빈인빈’이라는 말처럼 있는 자는 더 있게 되고 없는 자는 도리어 있는 것조차 빼앗기게 되는 것처럼, 영적인 세계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있더군요.


마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가령 영이 건강하고 장성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거의 없어서 언제나 신실함으로 더욱 더 영적으로 성장을 이루어가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심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축복도 더불어 받아 누려가게 되지요.


하지만 반면에 영적으로 약한 사람은 조석변개하는 요동치는 마음과 행동으로 인하여 영적 성장도 이루지 못할뿐더러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심을 받지 못하여 축복도 받아 누리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더군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세상에서도 그러한 순환의 고리를 끊고 신분의 상승을 이루려면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하듯이, 영의 세계에서도 영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자신도 빛의 선순환 속으로 들어가려면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하지만 우리의 본성이 타락하고 육성이 강하여 대부분 이러한 영적 반열의 상승에 실패합니다. 이러한 경우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이 바로 ‘시련과 환란을 통한 연단’입니다. 놓지 못하는 세상의 것들로부터 격리 시키시고 영적인 것을 보고 깨닫고 사모하게 하시기 위하여 광야로 내모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고난은 한편 힘겹지만 한편 하나님의 사랑이요, 영적으로 유익이고 한 신비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는 영적으로 우리 자신이 얼마나 성숙을 이루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의 특징의 4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굳이 이러한 생각과 행동적인 특징이 아니라도 자신의 영적인 성장의 정도는 자신이 어느 정도 느끼며 가장 잘 알지요.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영적 연약함 가운데 생각과 행동의 많은 변동과 변화를 일으키면, 사람은 물론 하나님으로부터도 신뢰성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인내와 성실 없이는 받아 누릴 수 없는 영육간의 축복과도 거리가 멀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부단히 살피고 스스로 책망하며 날마다 더욱 더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기 위하여 힘쓰고 애써야 하겠지요.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영을 가꾸고 성장시키는 것만큼 지혜롭고 보람된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에 속한 모든 것들은 결국 스러지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영의 성장을 위하여 나름 애쓰고 힘쓰다보면, 자라는 나무가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아 보이지만, 몇 개월이나 몇 년이 지나면 훌쩍 자란 것을 알게 되듯이 우리의 영도 시간 속에서 점점 가지를 내고 잎사귀가 무성해져 가며, 변화와 요동의 육의 속성이 아닌,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의 속성을 점점 이루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먼저는 저 자신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날마다 우리의 모습을 차분히 살펴 날마다 영적인 성장과 성숙을 이루기를 위하여 애쓰는 지혜로운 삶으로 아름다운 영의 성장을 이루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영의 열매를 많이 맺어 드리는 우리 모두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도 영육간에 아름다운 축복의 열매를 많이 거두는 모두이면 참 좋겠습니다. 샬롬 !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엡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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