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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봄 비

초록 등불 2013. 3. 19. 17:52

 [영성의 글] 봄 비

 

오랜 시간 전 교회를 개척하고 하루는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선연하게 주님의 음성이 영으로 들려왔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내 백성은 알지 못하는도다”


당시는 성경을 많이 읽어 보지 못해서 성경을 읽다가 그 본문을 읽은 시간은 있겠지만, 머리 속에서 분명하게 기억되어 있거나 암기하고 있는 구절이 아닌데, 갑자기 그 말씀을 영으로 전해 주셨습니다. “아, 성령께서 성경을 인용하여 말씀하실 때는 이렇게 무의식처럼 기억도 하지 못하는 말씀을 꺼내어 전해 주시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 말씀을 우리 사람들이 창조주 되시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을 말씀 하시는 것 같아서 전도에 대한 도전의 말씀으로 그렇게 이해하였는데, 저녁 산책길 벤치에 앉아 보슬비처럼 내리는 봄비 가운데 있는데, 그 말씀이 다르고 새롭게 다가와 눈물이 잠시 흘렀습니다.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하루 저녁을 먹고 습관을 좇아 산책 겸 운동 길을 나섰습니다. 길을 가다보니 얼마 가지 않아서 봄비가 보슬비처럼 내렸습니다. 이슬처럼 잔잔히 내리는 보슬비라 평소대로 조금은 더 멀리 걷고 싶었지만, 어제의 기억 때문에 발걸음을 돌려 집 가까이서 걸었습니다.


전날도 똑 같이 산책을 하였는데 돌아오는 도중에 비가 내리더군요. 제법 비가 많이 내려서 옷이 상당히 젖도록 비를 맞았었지요.


옛날 같으면 급하게 뛰거나 하여 비를 피하였겠지만, 성령 안에서 모든 것들이 고요해져가고 바쁜 성정이 사라진 지금 그냥 비를 조용히 맞으며 조용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옷이야 젖으면 씻어 말리면 되고 몸은 그냥 물기를 닦으면 되니 급할 것이 무엇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비를 한번 쯤 흠뻑 맞아보는 것도 봄날의 삶의 한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여름날 소낙비가 내리면 오히려 그 빗속으로 뛰어 들어가 신나게 놀기도 하였으니까요.


하지만 오늘도 어제처럼 제법 비가 내리면 아니 될 것 같아서 발걸음을 돌려 혹 비가 많이 오더라도 집에 속히 들어갈 수 있도록 집 근처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집 근처를 걷다가 늘 산책의 마지막 즈음에 앉아서 잠시 쉬는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었습니다.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더군요.


그렇게 봄비가 내리니 어린시절 소낙비가 주룩주룩 내리면 오히려 빗속에서 뛰놀던 생각도 나면서 어린 시절 생각이 나더군요.


저는 동물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어린시절에는 저의 성화로 집에서 개와 고양이와 같은 동물을 길렀었습니다. 그런 애완동물들과의 기쁘고도 아픈 기억도 조금 있는데, 그 중의 한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한 번은 제가 개를 길렀는데, 이 녀석이 여름철 비가 내리는 무릎 무슨 병에 걸렸는지 몹시 아팠습니다. 지금도 병명을 모르지만 신경계 질환인지 몸을 부르르 떨면서 고통스러워하더군요.


오늘 날 같으면 수의사와 같은 동물 병원에 데려가 진찰도 받고 치료도 하고 하였겠지만, 당시에는 우리들 먹거리도 부족한 형편이라 그런 생각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개나 고양이를 기르면 무척이나 제가 좋아하였기 때문에 때때로 애완용 작은 개가 아니었지만 개도 목욕을 시켜서 밤이면 데리고 와서 함께 잠들기도 하였지요. 이 녀석에게는 그런 사랑을 주었는지는 기억이 희미합니다.


어쨌거나 개가 그렇게 몸이 많이 아프니 저도 몹시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지요. 개도 몸이 그렇게 많이 아프니 마루 밑에서 꼼짝도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가족들이 가끔 불러 보아도 미동도 하지 않고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곁으로 가서 “누구야”라고 부르면 아무리 아파도 꼬리를 흔들면서 제게 다가와 안기곤 하였습니다. 가족의 다른 누군가가 아무리 불러도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가장 자기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제가 부르면 아무리 아파도 몸을 일으켜 다가와서 안기곤 하였습니다.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다소 아팠던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래 전 교회에서 기도하다가 들은 주님의 음성이 다른 누군가도 아닌 저를 향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벤치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랑 앞에서 잠시 홀로 울었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내 백성은 알지 못하는도다”


제가 기르고 사랑했던 개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나를 알고는 아무리 몸이 아파도 제가 부르면 힘겨운 몸을 일으켜 순종하며 나아와 꼬리를 흔들며 사랑을 표현하곤 하였는데, 이제껏 믿노라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온 나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하는 생각에 잠시지만 눈물이 가슴 아프게 두 눈에 어렸습니다.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제가 주님께 다루심을 받아 영이신 하나님과 그 세계를 알고 보니,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의 삶과 그리고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신앙의 삶이 정녕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신앙의 삶과는 너무도 거리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그랬듯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냥 예수 그리스도만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입술로 고백만 하면, 삶의 모습이야 어떠하던지 구원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께 다루심을 받아 영이신 하나님과 그 세계를 알고 보니, 그리고 그런 다루심 안에서 성경을 가만히 살피니 우리의 주와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믿는 것도 아니며 그렇게 섬기는 것도 아니며, 또한 그렇게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가끔 세상을 살아가다가 누군가와 남녀의 사랑, 곧 에로스의 사랑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떻게 서로 사랑하였던가요?


그런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우러나는 깊은 사랑의 마음에 가령 장미꽃 한 송이를 전해주고 싶어도 얼마나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꽃송이를 고릅니까? 선물 하나를 준비하여도 어찌하던지 그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려고 이리 살피고 저리 살펴 예쁜 포장지를 고르고, 또 그곳에다가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은 편지를 함께 넣곤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이 “이것은 이랬으면 좋겠네. 저것은 저랬으면 좋겠네”라고 말하면 그 마음을 기쁘게 해 주려고 얼마나 애를 씁니까?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과 눈에 드는 사람, 멋진 사람,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얼마나 자신을 가꾸며 노력합니까? 그리고 만남의 시간이 되면 얼마나 나름 자신을 가꾸어서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만남의 성의가 있어 보이려고 노력합니까?


눈에 보이는 작은 사람을 사랑함에도 우리의 마음이 이와 같거든, 하물며 우리를 사랑으로 지으신 아버지시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몰라도 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하나님 앞에서 행한 모습이 참 사랑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길렀던 개도 사랑을 주었던 제가 부르면 아무리 몸이 아파도 부르르 떨리는 몸으로 일어나 제게 다가와 꼬리를 흔들며 순종하며 사랑에 보응할 줄 알던 그 녀석보다도 못했던 지난 날 하나님 사랑의 제 모습에 잠시지만 하염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미안했습니다. 정말 아버지의 사랑이 어떠하시며 그 지극히 승함을 알지 못하고 입술과 말로만 사랑하는 거짓 사랑의 헛된 삶을 살아왔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잠시지만 하염 눈물을 흘렀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사랑을 잘 알지 못하듯 우리의 영이 아직 어려서 하나님 아버지의 그 사랑의 어떠하심과 그 지극히 승하신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폭을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께 다루심을 알아 그 사랑의 품으로 조금씩 다가가 보니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보다도 높고 바다보다도 깊습니다.


남녀간의 에로스 사랑도 한편 아름다운 사랑이지만 본질은 자기 사랑에 바탕을 둔 주고받는 사랑이 아닙니까? 그런 사랑도 그렇게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과연 그렇게라도 사랑하며 존중하며 경외하였는지요?


남녀간의 에로스사랑도 한편 아름답지만 본질은 자기 사랑에 바탕을 둔 사랑, 깊이 그 본질을 생각해 본다면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사랑 곧 아가페의 속성을 지닌 어버이 사랑에는 본질과 수준에서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 사랑이 아닙니까?


또한 우리를 낳고 길러주신 육신의 부모에게는 나름 예를 다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정녕 우리의 창조주시요, 온전한 주인이시요, 그리고 사랑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는 얼마나 지극한 예와 정성으로 사랑하며 공경하며 살아왔는지요?


우리는 어버이의 불완전한 사랑의 차원의 넘어, 온전한 아가페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앞에 과연 얼마나 지극한 예와 사랑으로 살아왔습니까?


여러분은 어떠했는지 몰라도 저의 삶을 돌아보니, 그토록 아파도 자신을 사랑하는 제게는 부르르 떨리는 몸으로도 마지막 사력을 다하여 다가와 꼬리를 흔들며 순종하던 제가 기르던 개만도 못한 사랑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서운하게 해 드린 것 같아, 보슬보슬 비 내리는 저녁 벤치에 홀로 잠시 울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은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하며,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지 이 글과 말씀을 통하여 깨달음이 오지 않으십니까?


제가 경험해보니 하나님의 보좌에 둘린 칠색 무지개는 다른 아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의 언약의 징표입니다.


어느 날 조금은 두렵게 말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저의 영이 “아빠, 아빠”라고 부를 때 열린 하늘에 칠색 무지개를 펼쳐 보여 주시며 그 사랑을 보여 주셨지요. 그 이후 늘 영으로 보이는 하늘 너머의 하늘에는 언제나 칠색 무지개가 어려 있습니다.


일곱 가지 색깔의 무지개는 우리를 향하신 하늘보다도 높고 바다보다도 깊으며, 세상의 그 어떤 사랑보다도 지극히 승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완전하신 사랑의 의미합니다. 그 온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무지갯빛 사랑 앞에서 저와 여러분의 사랑은 지금 어떠한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그 사랑을 지금 깊이 헤아려 보십시요. 근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사랑을 지금 깊이 헤아려 보십시요. 그리고 그 일곱 색깔 완전한 하나님의 무지개 사랑을 결코 가볍게 대하지 마십시요.


제가 주님의 지극한 은혜로 영이신 하나님과 그 세계를 살펴보니, 하나님의 나라는 그저 입술로 믿노라 사랑하노라 하는 자에게 허락된 것이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참된 믿음이 없는 자게에 허락된 것이 아닙니다.


그토록 지극한 하나님의 승하고 승하신 사랑을 외면하고 믿노라 하면서도 육신을 좇아 그 사랑을 외면하고 사는 자에게 기다리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불과 유황으로 타는 형벌의 장소입니다.


갈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5: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갈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제게 영의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의 빛과 그 천사들을 보니 그 나라는 온전한 빛의 나라요, 의와 정결의 나라요, 정금과 같은 참된 믿음 안에서 눈이 부시도록 하얀 세마포의 의의 옷으로 단장한 사람들만이 가는 나라입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볼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그 지극히 승하고 승한 사랑을 알고, 비록 우리의 연약함으로 죄를 범하지 않고 온전히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에 화답하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하나님 사랑의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그 빛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아 누릴 뿐만 아니라 영원히 썩지 않을 하늘 보화를 날마다 가득 쌓아가는 참되고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모두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샬롬 !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계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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