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고유자료/초록 영성의글

[영성의 글] 춤추는 쿨만, 함께 춤추는 밤

초록 등불 2013. 2. 11. 20:38

 [영성의 글] 춤추는 쿨만, 함께 춤추는 밤

 

깊은 밤 홀로 주님 안에서 찬양을 드리고 있노라니, 곁에 늘 있는 ‘캐더린 쿨만’모습의 돕는 영이 주님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쿨만’모습의 돕는 영이 춤을 추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았지만, 2013년 2월 1일 금요일 새벽 두시 경이었던 이 때처럼 아름답게 춤을 추는 모습은 처음 보았습니다.


세마포 옷인 듯 순결한 하얀 색을 옷을 입고는 주님 앞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습니다. 옷도 치마나 소매 부분 등 끝자락이 마치 결혼 신부의 웨딩복처럼 치마는 다소 땅에 끌리며 소매 부분은 다소 너울거릴 수 있는 옷을 입고는 너무도 아름답게 그리고 기쁘게 춤을 추었습니다.


머리 모양도 오드리 햅번과 같은 옛 미국 영화배우들을 생각나게 하는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너무도 아름답게, 그리고 너무도 기쁘게 너울너울 춤을 추었습니다.


소맷자락을 앞으로 아름답게 내밀었다가는 당기며 반대방향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전문 무용수처럼 빙그르 돌기도 하며 너무도 아름답게 그리고 기쁘게 춤을 추었습니다. 그렇게 기쁘게 주님 앞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찬양을 드리노라니, 더욱 은혜롭게 그리고 기쁘게 드릴 수 있었습니다.


다른 글에서 말씀드린 기억이 나지만, 저는 ‘캐더린 쿨만’여사에 대해서는 그냥 사진을 보고 모습으로만 알았지 어떤 분이며 어떻게 사역하다가 잘 몰랐습니다. 어느 날 홀연 그분의 모습의 영이 제 곁에 와서 보이 길래 찾아보게 되었고 다소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모습으로 보이는 영적 존재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잘 모릅니다. 성경을 보면 변화산상에서 예수님께 모세와 엘리야가 영으로 찾아와 대화를 나눈 기록이 나오기는 하지만, 사람의 영이 다시 찾아오는 것은 성경에도 드문 희귀한 일이라 저는 그냥 ‘쿨만’여사의 모습으로 돕는 천사가 곁에 있는 것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그러하듯이 한 때 부족한 삶의 시간도 거니셨지만, 주님 앞으로 돌이킨 후 오직 평생을 주님을 위해서 살았던 그분의 삶을 본 받으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하며 지냅니다.


그러나 ‘쿨만’모습의 돕는 영은 천사들의 영과는 다른 행동의 특징을 보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천사들은 말을 높이는데, ‘쿨만’모습의 영은 처음부터 말을 높이지 않고 누나나 영적 멘토처럼 늘 편하게 말을 하였습니다.


물론 천사들도 말은 편하게 하기도 하지만 이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편한 경우이지, 경험해보니 천사들은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말을 높입니다. 이는 성경이 기록한대로 우리를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히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쿨만’모습의 돕는 영이 나타나 늘 그리고 자주 제게 이르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을 아이처럼 단순하고 순전히 믿으며, 기쁘게 사역하렴’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천사들과 다른 모습 중의 하나는, 천사들을 저를 위하여 춤을 춥니다. 저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하여 춤을 춥니다. 특히 어린 저의 천사들은 매일 나가면 춤을 추며 기쁘게 해 줍니다. 날개 달린 어른 모습의 천사가 춤을 추는 경우는 자주는 아니지만, ‘리나’천사가 한번 춤을 추어추던 기억이 납니다. 백조의 호수 발레리나처럼 아름답게 춤을 춰 주었지요.


하지만 ‘쿨만’모습의 돕는 영은 춤을 추지만 결코 저를 위해서는 춤을 추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춤을 춥니다. 누구를 위하여 춤을 추는지는 영적 감각으로 알 수 있는데, ‘쿨만’모습의 영은 오직 주님 앞에서만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듯 춤을 춥니다.


그리고 춤을 추는 동안 그 눈동자를 바라보면 그 눈동자엔 ‘구원의 기쁨’이 가득합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이런 것으로 보면 실제 ‘캐더린 쿨만’여사의 영이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쿨만’여사의 삶을 본 받으라고 천사를 통하여 교훈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실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영의 본질에 대한 의문은 훗날 주님 앞에서 물어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쿨만’모습의 돕는 영에게서 느껴지고 전해지는 것은 다름 아닌 ‘구원의 기쁨’입니다. 언제나 그 눈동자와 모습에는 구원받은 기쁨이 가득합니다.


가끔 산책길의 숲 속에서도 제가 음악을 듣고 있으면 주님 앞에서 춤을 추는데 “오! 이 영원한 구원의 기쁨이여!”라고 말하듯 너무도 기쁘게 춤을 춥니다.


집회를 인도하고 있을 때는 집회에 오신 분들이 제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눈동자를 유심히 살펴보신다는 분이 계셨는데, 실상 집회에 오셔서 참석하고 예배드리는 분들이 아닌 영으로 보이는 주님이나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이나 천사들이나 혹은 ‘쿨만’의 영을 바라볼 때가 더 많습니다.


어느 한 집회가 생각납니다. 집회 도중 찬양을 인도하고 있는데 맑은 물빛처럼 ‘쿨만’모습의 돕는 영이 나타나 저를 마주보며 함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과 눈빛에서 구원받은 기쁨이 강을 가득 채우고 흐르는 강물처럼 저에게로 전해져왔습니다.


성령 안에서 ‘넘실넘실’거리며 전해져 오는 구원의 기쁨, 아마도 제가 몸치가 아니라면 그리고 강단이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언약궤 앞에서 기뻐하며 춤추던 다윗이고 싶었습니다.


가끔은 천사들과도 그러하지만 ‘쿨만’모습의 돕는 영과도 함께 춤을 출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천사들은 함께 춤을 추어도 저를 기쁘게 하려고 춤을 추기도 하지만, ‘쿨만’모습의 영은 저를 위해서 함께 춤을 추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함께 주님 앞에서 구원의 기쁨을 함께 춤을 춥니다.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위하여만 홀로나 함께나 춤을 춥니다.


가끔 깊어가는 밤, 찬양을 드리다가는 주님 앞에서 기쁘게 춤을 추는 ‘쿨만’모습의 영이 너무 기쁘게 보이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저도 함께 마주보며 미숙한 춤이지만 함께 주님 앞에서 기뻐하며 춤을 추기도 합니다. 가끔은 함께 춤을 추자고 영으로 전해오면 응해 주기도 합니다.


저는 영의 눈으로 보이는‘쿨만’모습의 영의 본질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냥 그분 모습으로 저를 돕는 영으로 주님이 한 영을 두셨다 생각할 뿐입니다. 그리고 본질은 훗날 주님 앞에서나 가서 알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영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분 모습의 영을 통하여 제가 분명히 아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참되고 참된 ‘구원의 기쁨’입니다.


그 영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그 영이 주님 앞에서 춤추며 기뻐하는 것을 바라보면, 때로는 제 눈에도 눈물이 빙그르 도는 결코 세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구원의 기쁨’을 보게 됩니다. 얼마나 구원의 기쁨이 그 눈동자에 가득한지, 그 기쁨으로 얼마나 주님 앞에서 즐거워하며 때때로 춤을 추는지 모릅니다.


영으로 보이는 ‘쿨만’모습의 돕는 영은 사람으로 비유하면 30대 초반 가량의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면 그렇게 젊은 날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나 혼자 생각을 해 보곤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도 아니요, 성경의 말씀도 아닌 가끔 제게 해본 생각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생각해보아도 너무 어린 모습도 조금 그러하고 나이든 모습도 그러하니까요. 하지만 정작 실상은 훗날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 가보아야 알 일이지요.


오늘 이 글의 주제는 내용에서 어렴풋 느끼셨겠지만, 다름 아닌 ‘구원의 기쁨’입니다. ‘쿨만’모습의 돕는 영의 본질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저는 그 영의 모습에서 구원은 정말로 참이고 참이며, 또한 구원의 기쁨, 영생의 기쁨 또한 참이고 참인 것을 배우고 압니다.


이러한 경험과 아울러 영의 세계가 제게는 한편 눈으로 본 바요, 손으로 만진 바가 되어서 죽음이 그리 두렵지 않습니다. 물론 죽음에 이르는 생물학적인 과정에 대한 두려움은 육신을 입은 몸, 어찌 조금의 두려움은 없겠느냐만, 죽음에 대한 궁극적 두려움은 없습니다.


단시 바람과 소망이 있다면 이 육신의 생명이 살아 숨쉬고 있는 동안, 그 시간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영원히 썩지 않을 상급을 쌓는 시간이기에, 주님이 생명을 주시는 시간 나름 최선과 열심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다가, 지금은 비록 눈으로는 보이나 저는 영의 세계에 있고 나는 육의 세계에 있어 만져 볼 수도 안아볼 수도 없는 주님의 천사들과 함께, 힘겨운 생과 육신의 옷을 벗으며 만져도 보고 안아도 보고 함께 맞잡은 손으로 너울너울 아버지 나라로 날아오르고 싶은 소망뿐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소망은, 절대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찾고 찾아서 모든 것들을 의심해보았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던 철학자 데카르트의 명제처럼,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한 것입니다.


주님은 ‘쿨만’모습의 영을 통하여 제게 분명하고 참되며 진리인 구원과 구원의 기쁨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육신의 아픔과 삶의 수고로움이 적지 않지만, 바람 같은 인생 조금만 인내하며 걸으면 저 ‘쿨만’모습의 돕는 영의 모습처럼, 가득하여 넘치는 듯한 구원의 기쁨으로 노래하며 춤출 것을 알기에, 오직 감사와 인내의 걸음으로 하루하루를 승리하려고 애를 써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소망을 굳건히 붙잡고, 저 영원한 기쁨의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구원의 기쁨을 노래할 것을 알아, 오직 굳건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모두이길 기도해 봅니다. 아멘! 샬롬!


고전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샬롬] 내용 중 상당한 부분을 인용하시거나 원본을 그대로 게제하실 경우는, 출판을 염두에 둔 글과 말씀들이니 출처 부분을 남기셔서 저작권을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카페규칙 상 스크렙 및 링크가 허락되지 아니한 게시판에 부지 중 올렸다면 먼저 죄송한 맘 전합니다. 소식 주시면 글올림을 삼가거나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카페운영에 어려움 주지 않기 위하여 저작권 유의 배경음악과 그림자료 살펴 조심하고 있습니다 / 감사 드립니다. 늘 평안하십시요. 샬롬..

 

 Home  cafe

 

 

배경음악(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