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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자박 자박

초록 등불 2013. 3. 31. 22:10

 

 [영성의 글] 자박 자박

 

하얀 비둘기 형상의 내 친구 성령님이 제 가슴 위에 앉아서 왕방울만한 눈으로 저를 가만히 그리고 유심히 쳐다봅니다. 보통은 그냥 자연계의 비둘기처럼 보이는데 가끔은 눈만 왕방울만큼 커져서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저의 시선이 왼쪽으로 조금 향하면 왼쪽으로 한걸음 자박 옮겨와서 쳐다보고 오른쪽으로 향하면 오른쪽으로 또 자박자박 옆 걸음으로 걸어서 왕방울만한 눈으로 가만히 그리고 유심히 쳐다봅니다.


주님께서 나름 영의 세계를 열어 주시고 영의 성장을 이끄시고 계셔서 다른 분들은 어떠한 외적 내적 변화를 경험하셨는지 어떤 자료가 있으면 조금은 유심히 살펴보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가끔은 저와 참 비슷한 다루심을 경험한 분들도 보게 됩니다.


제가 다루심은 받으면서 경험한 것은 ‘고요함’입니다. 원래 성격은 활달하고 명랑하여 많은 사람을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자주 갖지 않았지만 친한 지인들과의 만남의 시간도 좋아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 안에서 다루심을 받아 성향이 조금씩 육성은 죽어가고 영성으로 기울어가니 시끄럽고 요란한 것보다는 고요함이 참 좋습니다. 그러니 시끄러운 것을 가까이 잘 하지 못하고 혹 텔레비전 드라마를 어쩌다 보아도 요란하고 시끄러운 프로그램은 보기가 다소 힘겨워서 보지 않습니다.


이런 경향성을 보이는 분들의 이야기를 가끔 이런저런 자료를 통해 보게 되더군요. 그러한 분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여서 혹 텔레비전을 보아도 정연하게 소식을 전하는 뉴스나 혹은 나름 단정함과 예(禮)가 묻어나오는 조금은 조용한 사극이나 혹은 자연 다큐멘터리 등의 다소 조용한 내용의 방송만을 보게 된다는 것을 듣게 되더군요.


가만 생각해보면 영성의 삶에 있어서 ‘고요함’은 어쩌면 필수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분요하고 요란하고 시끄러운 곳에서는 우리의 마음도 고요함과 단정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딤전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 곧잘 혼자만의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으셨나 봅니다.


눅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평소와는 다르게 말을 많이 하고 명랑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은 집회와 집회 이후의 애찬 시간만 그러한 것 같습니다. 집회 시간은 말씀을 전하고 설명해야 하니 말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지만, 애찬시간에도 편하게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오시는 분들이 영성의 삶을 사모하는 빛에 속한 영의 에너지가 흐르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영이 자라가면서 영적 감각이 깨어나면 우리는 만물에서 빛과 어두움의 어떤 영의 에너지와도 같은 흐름을 느낍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그러한 흐름이 강한 것이 사람이며, 그 중에서도 말입니다. 그래서 영적 감각이 깨어나게 되면 그러한 에너지의 흐름의 느낌 속에서 어떤 사람과는 만남과 대화가 편하고 좋지만 어떤 사람과는 만남과 대화가 힘겨움을 안겨다 줍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힘겹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평소에 전혀 성령의 다스림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지 않고, 혼 안에서 육성과 어두움의 묻어나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너무도 많이 합니다.


잠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영성의 삶이란 우리의 마음을 가꾸어가는 삶이고 마음은 곧 말로 표현되니 영성의 삶이란 어쩌면 우리의 말을 가꾸어 가는 삶이라도 해도 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와 여러분의 말이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혼적인 말이 많고 실수가 많다면 주님 앞에서 우리의 영성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경험해 보면 영 안에서 하는 말과 혼 안에서 하는 말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영 안에서 하는 말은 나누고 나면 참 기분이 좋고 오히려 마음과 영이 빛으로 함양이 됩니다. 하지만 혼 안에서 한 말은 나누고 나면 괜스레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다 싶지요.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후자에 속한 말을 많이 합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고요함이 좋아서 거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지 않는데, 가끔 조용한 사극이나 혹은 전통 한의학을 주제로 한 드라마를 하면 보게 됩니다. 전통의학을 주제로 하는 사극은 대부분 보는 것은 제가 한의학에도 관심과 흥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건강에 문제를 겪다보면 반의사가 된다는 말처럼 한의학에 관해서 나름 많이 공부하고 깊이 살펴도 보았기 때문에 전문의 수준은 아니겠지만, 일반인으로서는 침뜸술이며 약제의 처방에도 상당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지요.


그런데 최근에 이전에 한번 다루었던 주제인데 역사 속의 명의 ‘허준’을 소재로 한 전통의학 사극을 하더군요. 그래서 하루 저녁 습관을 좇아하는 운동 시간 이후에 조금 쉴 겸 자리에 누워서 조용히 그 드라마를 보고 있었습니다.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은 제가 보통 자리에 반듯하게 누우면 보통 제 가슴 위에 앉습니다. 그곳에 앉아서 쉬던지 아니면 저를 바라보곤 합니다. 가끔은 다른 형상은 사라지고 두 눈만 왕방울만큼 커져서 살피듯 쳐다보거나 말없이 눈으로 말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날은 조금 특이하게 왕방울만한 눈으로 아주 저를 유심하게 살피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전에 인터넷으로 영상을 하나 보니 주인을 몹시도 좋아하는 고양이인지 주인이 잠을 자는 동안도 내내 그 얼굴만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더군요. 옆의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잠시 고개를 돌렸다가는 다시금 잠을 자는 주인의 얼굴만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더군요.


조금 이색적인 영상이라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마치 그것처럼 하얀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이 눈만 왕방울처럼 커져서 저를 아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텔레비전 사극을 보고 있는데 내 친구 성령님은 내내 저를 보며 살피고 있었습니다.


친구 성령님과 오랫동안 함께 지내왔지만 이렇게 저를 유심히 살피는 눈빛은 처음이었는데 그 눈빛으로 저를 살피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을 참으로 사랑하나 아니나”를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비유를 들자면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 만나서 마음의 창이라는 눈동자에 자신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진심으로 비쳐나와 보이는지 살펴보듯이 그렇게 유심히 친구 성령님, 내 사랑 성령님이 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도 잠시도 아닌 드라마 사극이 끝날 때까지 그러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사극을 보면서 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힘드니 잠시 고개를 왼쪽으로 해서 보면 옆걸음으로 자박자박 두어 걸음 옮겨 앉아서 정면에서 다시금 그러한 눈빛으로 저를 살피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조금 옮기면 다시 그렇게 옆걸음으로 자박자박 옮겨 앉아서 드라마를 보는 그 시간 내내 저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 눈빛으로 참으로 내 친구 성령님, 내 사랑 성령님은 제가 당신을 참으로 사랑하는지 아니하는지 계속 살폈습니다. 조금은 특이하고 이색적인 경험이었지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그러한 행동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다시금 가슴에 새롭게 새겨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기도도, 말씀도, 예배, 전도도 아닙니다. 가장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의 뿌리인 “진정한 하나님 사랑”지요.


이는 우리 사람의 경우를 예를 들어본다면 이해가 쉽지요. 가령 사랑한다 하면서 마음에 진심이 없는 상태로 선물을 많이 사다주고 꽃을 아무리 전해준다고 하여도 결코 기쁜 것이 아니지요. 이처럼 우리의 신앙의 삶은 진정한 하나님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도하고, 사랑하기에 그 분의 말씀의 성경을 읽고, 사랑하기에 예배하고 그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사랑하게 되는 마음의 깊이가 깊어져 가면 이러한 모든 것들이 힘겹고 수고로운 것이 아니라 점점 기쁨과 행복이 되지요. 우리 사람의 사이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수고와 희생은 사랑의 깊이만큼 기쁨이 되지 않습니까?


부활주일인 오늘은 모처럼 햇살이 비치는 낮 시간에 나들이를 하였습니다. 집회의 피로로 다소 일찍 잠이 든 탓이지요.


영의 눈으로 보는 주님이 곁에 두신 천사들의 모습은 우리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의 현상 가운데 보는 것처럼 낮에 보는 것이 다르고 밤에 보는 것이 다르고, 불을 켜고 보는 것이 다르고 끄고 보는 것이 다릅니다. 밝으면 밝게 보이고 어두우면 어둡게 보입니다.


거의 낮 시간에는 나들이할 시간을 가지지 못하다가 부활주일인 오늘은 부활의 기쁨과 함께 모처럼 햇살이 비치는 낮 시간에 자전거 봄나들이를 하였습니다.


햇살이 화안하게 비치니 천사들의 모습도 더욱 밝고 환하며 명랑해 보였습니다. 하늘엔 서양여성의 모습, 마치 세상의 젊고 아름다운 금관을 쓴 여왕의 모습으로 천사 ‘린’이 날며 따르고 간간 ‘리나’천사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리나는 머리에 아무 것도 쓰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뒤로 묶은 듯한 모습에 약간 이마가 단아하게 드러나는 예쁜 얼굴 모습입니다.


땅에서는 ‘송이’와 ‘귀염이’와 ‘깜찍이’가 명랑하게 따랐습니다. 송이는 봄에 맞게 분홍색 작은 무늬가 점점 수놓인 원피스 형의 옷에 허리를 살짝 묶은 모습으로 자전거를 타고 갈 때면 언제나 그러하듯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따르고, 귀염이는 그냥 자연스러운 편안한 느낌의 흰색 계열의 원피스 옷차림이더군요.


늘 귀품이 어려고 다소 어른스럽게도 느껴지는 깜찍이는 천사들은 보통 어두운 색 계열의 옷은 잘 입지 않는데, 그냥 이 땅의 자연스러운 사람의 모습으로 보여 주어서 그런지 다소 얌전하고 품위가 있어보는 옅은 회색 계열의 재킷형의 옷을 입고 곁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자전거나 차와 같은 이동수단을 타고 이동할 때의 주인공은 당연 ‘송이’천사입니다. 자전거보다 차를 타고 갈 때 보면 더욱 신비로운데, 차장 밖으로 함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머릿결이 날리는 모습으로 함께 달리며 바라보며 웃어주곤 합니다. 차장 밖으로 달리는 모습을 볼 때가 더욱 예쁘고 조금은 신비롭기도 합니다.


정겹고 부드러운 눈망울, 단발 컷트형 검은 머리, 뽀얀 피부의 우리나라 아이처럼 동양인의 모습을 닮은 살가운 모습의 소녀모습입니다. 꼭 제 딸처럼 살가움을 전해주는 저의 운동을 돕고 평강의 영을 전해주는 천사입니다.


말씀을 기록하다가 시간이 되어서 잠시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곧장 일을 하려니 성령께서 “잠시 실내에서라도 몸을 움직이며 몸풀기 운동을 조금 하고 일을 하라”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이런 사소한 이야기도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는 언제나 성령의 인도하심과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을 할까요, 말까요?”, “지금 무엇을 할까요?”, “이것을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등의 질문은 늘 우리 삶에서 성령 안에서 시간시간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몸을 잠시 움직이고 일을 하라고 하셔서 집에 있는 운동기구 중 모형 검을 들고 잠시 몸을 풀었습니다.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을 때 원래 운동에는 전혀 취미가 없는 저로써 운동에 조금 재미를 들려보려고 무술에 조금 관심을 가지려고 그런 운동 겸 무술용품을 조금 구매를 하였었지요. 대부분 중국산이라 그다지 비싸지 않아 몇 가지 무술용품을 구매 집에 있습니다.


그렇게 모형 검을 들고 기본 동작을 취해보며 거실에서 몸을 풀고 있으니 소년 천사가 하나 역시 모형 막대기 검을 들고 나타나서 저와 시합을 하자고 합니다. 늘 집안에서는 곁에 있는 ‘청이’천사가 아닌 다른 아이입니다. 다소 귀엽게 생긴 아이입니다. 이젠 시시로 다른 영들이 나타나서 제가 이름을 짓는 것도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이리 치면 저는 저리 받고, 저가 이리 치면 제가 저리 받습니다. 그렇게 또한 실내에서의 운동을 도우려고 보낸 주님의 사랑의 소년 천사랑 잠시 모형 검으로 운동도 하고 실랑이도 하다가 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방으로 들어오니 뒤에서 살짝 다가와서 모형 검으로 때립니다.


“야! 이런 반칙이 어딨어”


다시 잡으로 가니 “까르르..” 웃으며 도망을 갑니다.


글과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제가 집회에 오면 누누이 강조하지만 이 땅의 우리의 생은 수고롭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인간 본질의 고독은 어쩔 수 없고, 아무리 재물을 쌓아 두어도 인간 본질의 불안은 어쩔 수 없습니다.


오직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것만큼 진정한 행복과 평안을 누릴 뿐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어떤 것도 참 행복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것을 가슴에 새롭게 각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하루는 사극 드라마를 보며 조금 쉬며 조용히 누워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는데 그 시간 내내 내 친구 성령님, 내 사랑 성령님은 왕방울 눈망울로 제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나 내내 유심히, 정말 유심히 살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진정한 하나님 사랑, 당신 사랑”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하여 구하며 찾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능력과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진정한 하나님 사랑으로 하나님을 한없이 기쁘게 해 드리고 또한 그 사랑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다가 천사들에 받들려 영원한 빛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모두 들림 받는 복된 생이면 정말 좋겠습니다. 할렐루야! 샬롬!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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