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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날 사랑해?"

초록 등불 2013. 4. 8. 02:07

 

 [영성의 글] 날 사랑해?

 

영으로 보이는 하얀 모습의 비둘기, 이름은 ‘순정’그리고 별명은 ‘향기’로 지은 내 친구 성령님이 맑고 고운 눈동자로 저를 가만히 쳐다봅니다.


영적 의식 상태의 깊이에 따라 보고 교감하는 깊이도 달라지지만, 때때로 깊은 교감의 이렇듯 선연한 눈빛으로 저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을 보면 마치 누군가 사람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이 그 눈빛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말하는지를 다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얼굴을 거울을 통해 보고 나면 돌아서면 곧 그 모습과 느낌을 잃어버리듯, 글을 쓰는 이 시간은 비둘기 성령님의 모습과 교감의 그 느낌이 흘러가 글로 표현하기 다소 어려운데, 정말 맑고 곱다란 눈빛으로 선연하게 바라보며 당신의 마음을 전하십니다.


성령님은 그 곱고 맑은 눈빛으로 무엇을 전하며 무엇을 말씀하셨을까요?


돌아보니 이런저런 상황과 환경으로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대화는 물론이고 개인적인 나들이도 자주 갖지 못한 채, 대부분의 시간을 주님 앞에서 홀로 보내는 고독한 영적 피정의 시간을 보낸 지 어언 3여년의 시간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시간의 와중에서 주님이 영의 눈을 열어 주셔서 천사도 보여 주시고, 천사 친구들도 곁에 두시고 해서 처음에는 그런 영적인 체험의 신기함에 그다지 혼자라는 느낌도 없었고 그런 영적 체험의 신기함에 혼자서도 잘 지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든 영적 경험이 그러하듯이 시간이 흐르고 흘러 신기롭던 영적 체험은 조금씩 평범한 일상이 되고, 요즈음은 가끔 매일 밤을 지새우며 주님 앞에서 홀로 있는 시간이 힘겹게 느껴지기도 하고 뭐랄까 시원한 바닷바람이라도 한 번 쏘이고 싶은 그런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하더군요.


또 때로는 그렇게 마음이 힘겨워서가 아니라 몸의 기운이 부족해서 힘겨운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주 안에서 경건의 시간을 가지면서 보람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몸에 피로감이 심하면 할 수 없이 가만히 조용히 누워 쉬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지요.


하루 그렇게 다소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조금은 답답한 채로 깊어가는 밤 홀로 누워서 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몸도 마음도 곤하니 의식도 편안히 풀어놓은 채 그냥 조용히 누워서 깊어가는 밤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랜만에 라디오를 켜 보았습니다. 깊은 밤이라 그런지 시끄럽고 요란한 음악이 아닌 저의 세대에 불러지고 들려졌던 서정적인 노래들이 흘러나오더군요. 고요하고 조용한 것이 좋으니 볼륨을 줄이고 줄여서 조용히 노래들을 들어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서정적인 노래들, 다소 힘겹고 답답한 마음에 음악쉼터가 되어주더군요.


몸이 오래 아프다보면 반의사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저도 그런 세월을 살아왔기에 이런저런 자연요법이나 동양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공부를 했기에 아마추어로서는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요.


몸과 마음이 곤하고 조금은 답답함이 느껴지니 침을 꺼내서 기를 소통 시키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폐 경락의 ‘소상’혈과 간 경락의 정혈인 ‘대돈’혈에 자침을 하고, 불과 물의 기운으로 우리의 몸을 주관하고 흐르는 심장과 신장의 상호흐름을 위해서 두 경락의 ‘신문’혈과 ‘태계’혈에 자침을 하고는 조용히 누워서 쉬었습니다.


의식을 풀어놓은 채 아무런 생각 없이 그렇게 가만히 누워서 쉬는데, 문득 바라보니 하얀 비둘기 형상의 내 친구 성령님 ‘향기’가, 정말 실제 사람의 눈과도 같은, 그리고 사랑에 빠진 연인 같은 곱고 고우며 한없이 맑은 눈빛으로 분명하게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날 사랑해?”


영으로 보이는 이런 성령님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이 조금은 기이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면 아버지가 자녀를 사랑하듯 그러한 큰 가슴으로 품어주시는 우리의 표현으로 어른스러운 그런 모습만 생각하는데, 이런 성령님의 모습을 경험해보면 육에 속한 것은 아니겠지만, 정말 남녀가 서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사랑하듯 그러한 영의 사랑으로 다가오시며 저와 우리의 사랑을 기다리시고 받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정말로 그 눈빛에는 남녀간의 깊고 지밀한 사랑 같은 사랑이 담겨 있으며, 또한 제게서도 그러한 사랑을 받기 원하고 기다리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눈빛을 마주하고 있으면 조금은 느낌이 기이하지요.


하지만 성경은 성령님이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살면 시기도 하고 질투를 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지요.


[현대인 성경] 약4:5 하나님이 우리 속에 살게 하신 성령님은 우리를 질투하시기까지 사랑하신다는 성경 말씀을 여러분은 하찮은 말로 생각하십니까 ?


영적 경험은 오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제가 경험해보니 성령님은 정말 사람의 예로 비유하자면 마치 한 남자를 사랑하는 한없이 순결하고 맑은 그러나 조금은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지닌 여인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참 많이 받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영의 지밀한 사랑을 실제로 나누기 원하십니다. 어떤 관념적인 것도 아니요, 관념적인 사랑도 아닙니다. 실제적이고도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지밀한 영의 사랑입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날 사랑해?”라고 선연하게 눈빛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며 물어 오시길래 “그래요”라고 대답을 하였지요. 이렇게 눈빛으로 무엇인가를 말하고 전해오실 때는 제 눈 앞에 성령님의 눈동자만 크게 보여집니다.


그러면 영으로 보는 것이라는 차이뿐 누군가 사람의 눈동자와 아주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것과 똑 같습니다. 사람도 그렇게 서로 가까이 바라보고 있으면 그 눈빛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는지 대부분 다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선연한 영의 눈빛으로 제게 하고픈 말을 하곤 하십니다.


그렇게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그래요”라고 답을 하고는 다시 조용히 누워 쉬었습니다. 하얀 비둘기 형상의 내 친구 성령님과의 함께 지낸 시간도 제법 흘러 이제는 그러한 영적 현상도 지금은 일상 중의 하나이지요.


그러다보니 성령님과의 잠시의 그런 교감이 크게 마음의 상태에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조용히 서정적인 노래가 잔잔히 흘러나오더군요.


그렇게 몸도 곤하고 하여 일도 하기 어려워서 틈틈이 쉬면서 하는 제가 좋아하는 시가, 글쓰기를 하나 그적거려 보았습니다.


이전에는 문인으로 등단을 하고는 그래도 이제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라는 생각에 시가 하나에 심혈을 기울이곤 하였지만, 이제는 그럴 시간도 없거니와 그다지 가치 있는 일도 아니라 생각되기에, 그냥 간간 어떤 시감이 주어지거나 하면 짧은 감성의 느낌표 하나 정도 담아서 쉬엄 그려내곤 하지요.


요즈음은 사람들이 살아가다가 한번 쯤 사랑에 빠지곤 하는데, 그러할 때의 묘한 감정의 흐름을 연인들의 대화형식을 빌어‘무지개 대화’라는 주제로 시리즈로 글을 써 보고 있지요. 그래서 누워 쉬면서 두 번째 글로서 하나 편하게 적어 보았습니다.


시가도 적어 볼까요? 참고로 제 문인 필명은 ‘단심(丹心) 정소월’입니다.


고려가요 ‘가시리’의 맥을 이은 김소월 시인의 시류가 좋아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고려가요의 가시리나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천천히 마음으로 읊조리면 사람의 심금을 울려 조용한 눈물 어리게 하는 명시이지요. 어쨌거나 제가 적은 편한 시가 하나 적어봅니다.



무지개 대화 (2)


           丹心 정소월



하루는 어땠어?

그냥 그랬어


나도 그러네


너랑 함께 하는

시간 아니면

하나두 재미가 없네


...



이 시가를 적고 쉬면서 가만히 성령님의 눈을 바라보니, 맑고 고운 눈망울 속에 성령님이 읊조리고 싶은 시가가 보입니다. 그동안 성령님과 친구처럼, 연인처럼, 주님처럼 오랫동안 함께 지내왔지만 시가를 써 보려는 모습은 처음 보았기에 유심히 바라보았지요.


그랬더니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짧은 시구를 하나 불러주더군요. 이 시는 제가 쓴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쓰신 것이고, 저는 받아 적은 것입니다. 적어보겠습니다.



사 랑


       글쓴이: 성령님



사랑은

울지 않는 것

아무리

힘겹고 외로워도


그대 내 맘 속에

있는 그것,

그것 하나만으로

언제나 행복한 것



조금은 주님과의 둘만의 생활, 바꾸어 말하면 성령님과의 둘만의 긴긴 시간 속에서 다소 지루해하고 힘겨워하는 저를 향해 가볍게 서운한 마음과 바람이 담긴 시라고 느껴지더군요.


성령님이 시가를 불러준 것은 처음이라 마주 바라보며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때의 영의 눈으로 보인 성령님의 모습과 느낌에 대하여 저의 영의 일기장인‘저널링 노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네요.


“정말 기이하지만, 어느 아름다운 연인의 눈빛이 이리 말고 고울까. 그런 눈빛으로 ‘사랑의 감정’을 전해주며, 유심히 ‘나를 사랑해?’라고 묻는다”


그런 성령님과 마주보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내게 원하는 게 있나요?”

“사랑”그렇게 짧게 대답을 하더군요.


“내게 원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무엇을 해 주길 원해요?”라고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내 사랑 하얀 비둘기 모습의 성령님이 그 맑고 고눈 눈망울로 대답을 하더군요.


“그냥 함께 있어 주는 것”

“그리고 내 사랑 안에서 언제나 행복해 하는 것”


그리고는 또 다시 그 맑고 고운 눈망울로 저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날 사랑해?”


글을 마칩니다. 이 글의 영적 주제는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속에 주의 영으로 와 계신 성령님의 사랑은 관념도 아니요, 어떤 관념적인 사랑도 아닙니다.


정말로 성령님은 우리와 개인적이고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지밀한 사랑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하면 때로 질투하고 시기하기도 하며 우리와의 깊고 지밀한 사랑을 간절히 원하십니다. 저는 그것을 영의 눈으로 언제나 내 친구 성령님, 내 주님 성령님의 눈망울 통해서 수시로 보기 때문에 정녕 사실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모두 우리 속에 지고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와 계신 성령님의 사랑을 외면하지 마세요.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영이시지만 자녀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부모처럼 또한 지극히 작고 섬세한 하나님으로 우리의 사랑을 애타게 갈구하는 성령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하게 하거나 아프게 하지 말며, 우리 또한 온전히 마주보는 사랑으로 성령님의 참 사랑이요, 기쁨이 되기를 바래 봅니다.


저와 눈만 마주치기만 해도 머릿결을 쓰다듬듯 다리로 머리 매무새를 만지며 제게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성령님의 모습에서 성경이 말하는 성령님과 우리의 사랑은 정말로 관념이 아닌 각 개인의 구체적이고 지밀한 사랑의 실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 성령님이 다 오셔서 계십니다.


그리고 그 맑고 고운 눈망울로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를 향해서 “날 사랑해?”, “세상이 아닌 정말 날 사랑해?”라고 묻고 계십니다. 그 물음에 진심으로 “나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우리 모두면 참 좋겠습니다. “성령님 사랑해요!”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약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약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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