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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진리] '들을 귀'

초록 등불 2013. 3. 29. 03:06

 [핵심 진리] '들을 귀'

 

오직 은혜로 주님께서 제게 경험하게 하시는 영적인 현상 중에 ‘천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평범한 일상이 됩니다. 그것은 성경에서도 등장하고 우리가 때로는 전해 듣고도 하던 이야기이니까요.


하지만 밖으로 나가면 마치 이 땅의 소녀들처럼 저를 웃고 즐겁게 운동하게 하는 평범한 우리 사람 모습의 ‘하늘 공주들’ 천사들과 그리고 늘 곁에 머무는 비둘기 형상의 내 친구 성령님과 또 캐더린 쿨만 여사의 모습으로 곁에 있는 돕는 영이 전해 듣지 못하던 바라 제게는 조금 더 신기합니다.


다만 전형적인 천사들의 모습에서 색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것은 한없이 아름답고 정결한 모습 등이라고나 할까요. 오늘의 글을 주제는 이 부분이 아니니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름합니다.


이 땅의 소녀들 모습으로 밖으로 나가면 저의 운동을 돕고 그 시간을 즐겁게 해 주는 영적 존재들은 이 땅의 소녀들처럼 행동하는 것이 똑 같습니다. 다만 사람도 성격과 개성이 있듯이 다른 영적 성격의 특징을 보여 주지요.


그런데 하루는 운동을 하다가 문구점에 들러서 필요한 것을 조금 사고 돌아오는 길에, 그 공주님 중에 가장 활달한 ‘귀염이’가 앞에서 재롱을 부리며 저를 즐겁게 해 주는 모습이 보이기에 제가 무심코 물었습니다.


“귀염아, 나중에 목사님이 하늘 나라가면 함께 어디로 제일 먼저 가고 싶어?”


그렇게 물어본 것은 천사들은 영의 공간에 있고 저는 육의 공간에 있으니 비록 영의 눈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저도 육신의 몸을 벗고 영이 되어야만 서로 실체적 교감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귀염이가 대답을 하더군요. “꽃밭에요!”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왜?”


그러자 귀염이가 대답을 하더군요. “목사님 품에 꽃을 한 아름 안겨주려구요”


그냥 보통의 기분이었고 평온한 기분이었는데, 그 말이 들려오자 그만 제가 잠시 왈칵 울고 말았습니다. 길을 가다가 왈칵 터진 울음이라 혹시라도 사람들이 볼까 얼굴을 만지는 듯 얼굴을 가리고 잠시 소리 없이 울었지요.


제 개인적이고 사적인 삶이라 말씀드리지는 어렵지만, 저는 한편 행복했던 기억도 많지만 또 한편 참으로 이런저런 힘겨움을 많이 겪으며 살았습니다.


그러한 힘겨움의 바탕은 육신의 연약함이었는데, 삶의 바탕이 되는 건강이 받쳐주지 못하다보니, 그로 인하여 겪은 세세히 말씀드리기 어려운 개인적 꿈의 좌절, 마음의 상처, 때로는 사람이 감내하기 어려운 마음의 고통의 일들, 그리고 육신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고통과 통증도 안겨주는구나 하는 긴 세월을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어 눈물도 마를 정도로 그런 시간을 살아왔습니다.


사람마다 각기 제 나름의 고통이 있지만, 저 역시도 그렇게 아프고 힘겨운 세월을 살아오다보니, 문득 다른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 왈칵 눈물이 쏟아지곤 합니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제가 살아온 무의식 속에 잠재된 삶의 아픔이 순간 마음으로 올라와 내 아픔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힘겨운 세월을 살아왔고 지금도 육신적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귀염이의 “하늘나라에서 목사님의 가슴에 꽃 한 아름 안겨주려구요”라는 말에 살아온 삶의 아픔이 스며 나와 그만 왈칵 소리 없는 울음이 나오더군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아팠던 세월도, 그리고 아픈 삶도 그다지 제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을 실제적으로 경험하였으니까요.


조상의 잘못이던, 저의 잘못이던, 아니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서 제가 이토록 아프고 힘겨운 삶을 살아왔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그 아프게 한 세월이 마냥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헛된 것이 아닌 오직 참된 것을 보고 찾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심을 아니까요.


그렇게 앓아오던 병증들과 삶의 힘겨움이 맞물려, 몇 년 전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시간을 지나면서 하나님 앞에서 울고 또 울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세상의 행복은 제게 거의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대신에 영광의 하늘 문을 여시고 신령한 하늘의 빛을 보게 해 주셨지요.


그리고는 진정한 영이신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도와 사랑의 법, 그리고 영의 세계와 진정한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과 이유,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창조의 근본의 섭리를 가르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영적 세계의 실존을 알려 주시기 위하여 천사들과 악령들을 보여 주시고, 또 영적 세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등을 가르쳐 주셨지요. 그리고 지금도 저 나름도 공부하게 하시지만 지금도 주님 앞에서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주님이 열어주신 진정한 영의 세계와 그 빛 안에서 보니, 그동안 제가 자라면서 교회에서 듣고 배운 것과는 너무도 영의 세계의 실존과 참된 신앙생활이 거리가 멀었습니다. 얼마나 제가 그리고 오늘날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믿음의 도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치열한 영적 전쟁의 와중에 서 있는지 지식이 없어서 사단에게 속고 속아 미혹과 멸망의 길로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받고 축복을 받는다는 듣기 좋은 성경의 구절만을 골라서 전하는 낭만 복음에 안주하며, 교회 안에서는 신자요, 밖에서는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은 주님께서 조명하신 주신 영적 진리의 조명의 빛 안에서 보니,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삶과는 천릿길보다도 더 멀고 삶에 저주와 고난을 자초하는 삶이더군요.


이는 죄를 발판으로 사단이 합법적으로 도적질하고 죽이려고 활개 치게 하는 삶이요, 대부분 부끄러운 구원조차도 걱정스러운 다시금 심각히 숙고하여야 하는 신앙생활이더군요.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신약의 모형인 구약성경부터 실체인 신약의 성경을 차분히 새로운 영의 빛 안에서 살펴보니 신약시대의 도우시는 성령의 생명의 법 안에서의 의는 구약시대의 율법의 의보다도 승하여야 하는 것이더군요.


마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마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성경을 찬찬히 살펴보니 비록 율법적인 형식과 조항은 사라졌지만, 구약의 율법시대보다도 더 얼마나 더욱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귀와 거룩, 사랑과 화평의 온전한 삶을 살기 원하는지가 보이더군요.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그런데 저와 여러분의 모습은 과연 어떠합니까?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보다 승합니까? 그들이 얼마나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했는지 율법을 살펴보십시오. 수백여 개의 율법의 조항과 각종 지켜야 하는 절기와 죄를 범할 때마다 드려야 했던 예물들이며 얼마나 지키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많은 가운데 힘겹게 하나님을 섬겼는지 보이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은 너희 의가 바리새인의 의, 곧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는데, 저와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의에 관하여 우리의 믿음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냥 덧입혀 주시는 ‘의’만이라고 많이들 해석하시는데 물론 그러한 해석이 기본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또한 깊이 고찰하면 맞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려 오셨습니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이 말씀은 어떤 행위적이고 조항적인 율법의 매임에서는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으나, 그 율법이 품고 말하던 바 속성은 더욱 온전하고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고, 우리가 성령 안에서 그렇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구약의 율법으로 살아가던 백성들보다 온전히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까요? 그것은 구약시대에는 없던 도우시는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능력 안에서 우리가 더욱 율법의 완성적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고 이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구약을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 경외의 노력의 백분의 일이라도 행하며 살아갈까요? 제가 성경을 살펴보니 아닙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수많은 율법과 절기와 제사법 등으로 인하여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순종해야 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십시요.


저의 이전의 모습도 그러했고,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고 죄송한 마음밖에 없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신앙생활이 그저 교회에 출석하고 가끔 성경 읽고 가끔 기도하고, 마음에는 그저 구원받고 축복을 받고 싶은 마음 그 정도이지요.


그리고는 성경에는 육체 속한 일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당 짓는 것과 혈기와 시기와 질투와 원수를 맺는 것,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불의와 탐욕과 시기와 비방과 정죄와 교만과 부모거역과 패역 등을 버리지 못하면 축복은커녕 구원도 받지 못한다고 한편 기록하고 있는데 저와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갈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5: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갈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성령으로 행하는 삶의 열매를 말씀하고 있는데 저와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5: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제가 신앙상담을 많이 합니다. 사실 저도 부족하지만, 목회자이기에 사명으로 상담을 해 드리곤 합니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는 분들의 대부분이 그 어려움과 벗어남만 관심이 있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그릇되게 살아왔고 그릇되게 살고 있는지는 살피지 않습니다. 아니 모릅니다. 교회에서 이런 영적 진리를 깊이 다루지 않기에 고난과 연단의 참 이유를 깊이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냥 교회에나 오가며 형식적인 말씀과 기도 생활, 그리고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모습은 없고, 혈기와 다툼과 시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음란과 호색과 더러움과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돈을 더 사랑하고 쾌락을 더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별로 문제가 없는 신앙생활처럼 생각하며 살아가십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깊이 그리고 심각하게 가르치지 않으니까요. 그냥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니까요.


이러한 삶 가운데서 자신의 영혼도 피폐해져 가고, 죄를 통한 사단의 합법적 활동 속에서 자신과 가정과 일터가 무너져 가고, 그러하면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해 보지 않고, 그저 어려움에서만 벗어나려고만 우리가 하면서 살아왔더군요.


이렇게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성령 안에서의 삶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데, 어떻게 우리의 삶에 시험과 환난이 오지 않으며, 그릇된 삶에서 돌이키시려는 하나님의 징계가 오지 않겠습니까? 그릇된 삶의 시간이 길수록 혹독한 완전수 7의 환난이 다가오게 마련이지요.


저의 삶이나 보통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펴보면 정녕 하나님과 그 나라와 의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행위의 온전함은 세우려하지 않고 복만 받기 원하는 저차원 샤머니즘적 기복적인 신앙생활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지난날의 제가 그리고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정녕 말씀을 통하여 원하시는 의와는 얼마나 거리가 멀게 살아가는지를 보게 되면서 왜 구약의 참 선지자들은, 그리고 예수님은 그렇게도 듣기 좋은 말이 아닌 심판과 재앙의 말을 많이 했는지를 알게 되더군요.


마11:21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마11: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참 진리의 말씀과 복음을 전하려 오신 예수님께서 오히려 눈과 귀를 가려서 너희를 듣지 못하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겠더군요. 오랜 시간 전에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 말씀을 하셨는지를 알겠더군요.


마13: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마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이는 듣고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의미의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가령 우리의 자녀가 너무도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그릇되게 행하면 지쳐서 “이제 그만 타이를란다. 그냥 그대로 살아!”라고 말하는 부모의 마음과 같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과 삶과는 너무도 먼 거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사랑을 주사 우리를 구속하였는지 깨닫지 못하고 너무도 하나님의 마음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도 나귀도 그 주인과 구유를 알지만 우리는 그러하지 못합니다.


육신을 덧입은 우리, 저도 그렇게 살아왔거니와 우리는 어떤 사람은 재물을 구하고, 어떤 사람은 사랑을 구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를 구하고, 어떤 사람은 권력을 탐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혹독한 다루심 안에서 인생의 희노애락 애오욕의 수많은 아픔을 겪으며 지천면의 나이에 이르고 보니, 그러한 것들은 다 누려보았기에 그 진실을 가슴으로 말할 수 있었던 솔로몬의 고백처럼 다 헛된 것들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된 것들입니다.


전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육신에 속한 모든 것들은 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나 하나님 안에서 행하는 것이 아닌 모든 것들은 순간의 육신의 쾌락 다음에 짙은 곤고와 공허함을 가져다 줍니다. 죄는 잠시의 육신의 즐거움 뒤에 혹독한 시련과 고난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궁국은 영원한 죽음의 잔을 마시게 합니다. 이러므로 전도자는 이렇게 고백하였지요.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저는 본시 부족한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이런 권면도 할 수 없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할 사명을 맡기셨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혹독한 다루심 안에서 조금씩 저 자신을 영적 소경의 삶에서 빛의 삶으로 추스려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의 흐름 가운데, 머리의 지식이 아닌, 관념이 아닌, 아픈 눈물의 세월 속에서 다 경험하고 겪어보고 실상과 진실을 다 안 진리의 가슴으로, 이 땅의 것들을 궁극으로 추구하는 삶의 헛되고 헛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삶의 혹독한 대가와 궁극의 멸망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치열한 이 영적 전쟁의 와중에 있는 우리의 실존에서, 육적 영적인 승리의 삶을 살려면 오직 한 길,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한 하나님 사랑”밖에 없는 것을 배웠기에 그렇게 함께 노력하자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이러한 영의 일들을 가르치는 곳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 시간과 여건 되시면 부족하나마 제가 혹독한 시련 가운데서 주님께 배운 이 가슴의 ‘글이 아닌 연단의 불로 새긴 진리’를 나누는 집회에 오셔서 함께 나누며 배우자는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속성과 영의 세계의 본질, 영적인 삶에서 승리하고 이기려면 알아야 하는 영의 원리와 지식을 함께 배우고 나누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 먼먼 수백리 길에서도 달려오시곤 하지만, 바로 집이 근처인 분들도 오지 않는 분들은 오지 않습니다. 오시는 분들은 보화를 쌓고 쌓아가며 하나님의 원하시는 빛의 삶으로 들어가시며 참된 생명과 썩지 않을 복의 세계를 침노해 가시는데 말입니다.


저도 혹독한 다루심 안에서야 깨달았기에 그 누구도 폄하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제가 이전에 그랬듯 대부분의 분들이 저의 이 외침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사야 선자자를 통하여 하나님이 탄식하시고, 주님 또한 그렇게 탄식하셨듯 ‘들을 귀’‘보는 눈’을 가진 복된 자가 희귀함을 보게 됩니다.


여전히 교회나 나름 출석하고 방언 등의 은사나 조금 경험하고, 신기로운 영적 경험이나 조금 해보고 싶어 하고, 건강과 재물 등의 축복만을 바라며,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삶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깊이 헤아려 보지 않습니다.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런 껍질이 아닙니다.


제가 주님의 가르치심 안에서 성경을 가만히 살펴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영적 성장의 수준은 당신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며, 당신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하며, 당신의 완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를 일컬음을 받는 자들이기 때문이며, 영적 실제로 하나님의 자녀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가진 연약성으로 인하여 온전함과 완전함에 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부단한 걸음으로 그렇게 전진하기를 바라시고 원하시는 것입니다. 온전히 성결 되어 빛과 선과 사랑의 삶으로 매일 전진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먼저 그 나라와 의를 진정과 전심으로 구할 때 구하지 않아도 될 것들은 하나님이 그냥 주시는 것입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로 전해드려도 짧지 않을 가슴 속의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글로 담아내려니 무척이나 길어졌고 기록하는 저도 일목요연하게 적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먼저는 제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들을 귀”와 “보는 눈”이 있어서 이 말씀과 글 속에 담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헤아릴 줄 아는 복된 사람이 모두 되면 너무도 좋겠습니다.


부족한 저의 글과 말씀이나마 목사님의 글을 통해서 깨닫고 인내의 새 삶을 살아서 주님께 이런 영육간의 축복을 받았다는 소식을 이 땅에서나, 천국에서나 나누고 들을 수 있다면 너무도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어떠한 삶을 살아가기 원하시는지 기존의 지식을 내려놓고 가만히 살펴보십시요. 무엇이 참되고 지혜로운 생명의 삶이며 무엇이 헛되고어리석은 삶인지 성령의 깊은 조명하심이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주 평강 전합니다. 샬롬 !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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