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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진리] 친밀과 축복의 한 비결

초록 등불 2013. 3. 27. 00:59

 [핵심 진리] 친밀과 축복의 한 비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영적으로 크게 성장시키시려 거나 혹은 나름 어떤 영적인 새로운 사명을 앞두고 행하시는 일 가운데 하나가 ‘영적 피정’입니다. 영적 피정은 세상의 모든 것과 단절한 채 오직 주님과만 함께 있는 시간을 말합니다.


사도바울도 부활하신 영광의 주님을 만난 후 14여 년간의 영적 피정을 통하여 주님 앞에서 많은 영적 경험과 함께 영적 지식을 공급받았지요. 사도요한은 밧모섬에서 그러한 영적 피정의 시간을 통하여 앞으로 될 엄청난 일들에 대한 소중한 계시의 말씀, 곧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받았지요.


이러한 면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특별한 계기로 인하여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주님과의 깊은 영성의 삶을 살아가려면 이러한 주님과의 고요한 시간을 갖는 영적 피정의 삶을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세상의 것들에 대한 가지치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게는 주님께서 그러한 환경으로 인도하셔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의 주님과만 생활하며 지낸 시간이 제법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주님 앞에서 홀로 고독하게 지내는 시간을 통하여 사도바울이나 요한처럼 저 나름의 수준에서 주님께 참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때로는 성경을 통하여, 때로는 어떤 영적인 자료들을 통하여 깨닫게도 하시지만, 가끔은 자리에 누워 있을 때나, 기도할 때나, 혹은 조용히 혼자 산책 길을 걷거나 하는 순간에 순간순간의 영감으로 말씀의 참 진리나 영의 일들을 가르쳐 주시곤 합니다.


그러한 주님의 세심한 가르치심 속에서 영의 세계와 영의 일들, 그리고 저의 신앙생활과 보편적인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너무나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과는 거리가 먼 것을 보게 됩니다.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며 그 말씀을 가볍게 여기며 살아가는지를 알게 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참된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최근에도 주님께서 이러한 우리의 삶의 모습의 한 부분에 대하서 깨닫게 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하여 이 글을 통하여 나누려고 합니다. 물론 저와 여러분이 관념적으로 지식적으로는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슴 안에서 진리가 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행하며 살아가는 부분이지요.


주님께서 제게 최근에 새롭게 가슴으로 깨닫게 하시고 가르치신 진리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 당신에게 행하는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과 관련된 성경 구절이 몇 군데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한 구절인 골로새서 3장의 말씀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골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골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3:24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사도바울은 여기서 분명히 종들을 향하여 상전에게 행할 때, 주님께 행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가볍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또한 말하고 있지요. 이는 그렇게 신실하게 행하면 유업의 상을 주님께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사람인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인데 주께 하듯 신실하게 행하면 우리가 주님께 상을 받을까요?


그것은 일반적으로 타락한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 행하듯 눈가림으로만 행하지 않고, 주께 하듯 신실하게 행하면 그로 인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그러한 종의 행동을 본다면, “과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르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람에게 대할 때 주께 하듯 신실하게 대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되고, 사람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 되어서 우리의 상급이 또한 됩니다.


또한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주께 하듯 하여야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존귀함을 부여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곧 사람을 멸시하는 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며, 사람을 존귀하게 대하는 것은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존귀하게 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이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이 나옵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처럼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고 말씀하시지요.


오른편에 있는 양들을 향하여서는 “내가 주일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는 마시게 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느니라”라고 말씀하지요.


그 때 오른편의 사람들이 그 칭찬이 과분하여 “주님,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고 목마르게 하신 것을 보고, 헐벗거나 병든 것을 보고 보살폈나이까?”라고 묻지요.


이 때 주님의 대답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리고 왼편의 염소로 분류된 사람에게는 반대로의 말씀을 하시지요.


이 말씀에서 주님은 분명하고 단호하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지극히 작은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으시지요.


그리고 이 글의 더 깊은 내용과 결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또 있기에 그것을 또한 언급해 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세우신 종들에 대한 예우입니다. 이것은 제가 목회자이고 그러므로 제가 무슨 대접을 바라고 적는 말씀을 결코 아닙니다. 주님께서 선연하게 새롭게 깨닫게 하신 진리이고, 이 글의 더 깊은 내용과 결론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도 분명하게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마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우리가 섬기는 영이신 하나님은 눈에 보이거나 만질 수 있는 분은 아닙니다. 물론 그러하심에도 우리가 가령 교회에 꽃을 장식한다던가 혹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면서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손에 아름다운 꽃 한송이를 전해준다거나 맛있는 과일을 하나 사랑으로 전해 드리거나 할 수는 없지요.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첫째는 주님이 세우신 주님의 종들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괄적으로는 성도 상호간에 그리고 나아가 온 세상의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곧 그렇게 하는 것이 되지요.


하지만 이 글에서는 주님의 종들에 대해서 조금 폭을 좁혀서 말씀 드려 봅니다. 왜냐하면 다음에 나올 글의 중요한 결론과 많은 연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첫째는 목회자인 저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목회자분들에게는 거꾸로 성도들을 대접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임을 말씀 드려 둡니다.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하는 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이라면, 주님께서 당신의 종으로 삼아 세우신 주님의 종에게 하는 것이 더욱 주님께 하는 것임을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이 즈음에서 주님께서 가슴으로 깨닫게 하시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의 깊은 결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주 사소한 예로 일상 속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친구에게서 안부를 묻는 문자가 옵니다. 그런데 별로 달갑지 않은 친구라서 그 문자의 답을 무시해 버립니다. 그러면 위에서 살펴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것은 어떤 행동입니까?


그것은 곧 “주님께서 보내신 문자에 응하지 않고 답을 하지 않은 것이되지요”


또 가령 어떤 사람이 내게 무슨 잘못을 하였는데 그가 용서를 구하였지만,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성경의 말씀의 비추어 보면 곧 주님을 용서하지 않은 것이 되지요.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너희의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시면 천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상황들이 우리의 삶에서 쌓여 가면 어떤 상황과 일이 벌어질까요? 성경은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고,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주님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이렇게 홀대하며 살아가는 삶의 시간과 일들이 쌓여감은 주님과의 그러한 관계의 소원함이 쌓여가는 것인 것입니다. 곧 사람들과의 화목과 친절이 깨어지는 만큼 주님과의 관계의 화목과 친밀감도 깨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는 영의 세계에서 실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영의 세계에서의 실제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화목이 깨어져 감으로 말미암아, 기도의 응답이나 모든 부분들에서 막힘이 오게 되는 것이지요.


주님이 문자를 보냈는데 응답도 하지 않고 주님이 무슨 잘못을 하여서 용서를 구하는데도 용서하여 주지 않았고, 주님이 목마르거나 배고플 때 마실 것이나 음식을 대접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주님도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영계의 원칙에 따라 우리의 기도나 어려운 상황을 돌아보시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한 상황들과 일들이 많아질수록 기도 응답 등이 막히고 지연되는 것이지요.


더구나 특별히 주님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언제나 당신께서 세우신 종들을 통하여 인도해 오셨고 가시는데, 물론 우리가 주님의 종들의 입술을 통한 말씀이라도 분별하여야 하지만, 만약 그 말씀이 성경과 진리 안에서 옳다면 당연히 주께 하듯 순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목회자인 제가 무슨 대접을 받기 위한 것이나 목회자들을 위한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새롭게 배운 영적 진리입니다.


역으로 목회자는 성도들을 주께 하듯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와 책망과 징계를 받습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진리 안에서 살펴보니 목회자, 영적 지도자의 자리란 한편 영광의 자리요, 한편은 두려움의 자리입니다. 잘 감당하면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겠지만, 잘못 감당하면 형벌도 그만큼 큰 두려운 자리입니다. 대충 감당하다가는 주님 앞에 설 그날이 두려운 자리가 영적 지도자의 자리입니다.


어쨌거나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하는 것인데, 주님께서 세우신 종에게 하는 것은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곧 일반 사람들에게 생각 없이 행하는 일과 행동들보다는 더욱 주님의 대리자로 세우신 주님의 종들에게 그렇게 행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화목에 장애를 크게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것은 기도 응답이나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의 하나님의 역사의 지연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것이 제가 대접을 받고 무슨 순종함을 받으려고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는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참 진리 안에서 행하여 하나님과 더욱 화목과 친밀함을 이루어 기도의 응답이나 삶의 어려움 속에서의 건짐이나 하늘 나라에서의 상급을 위하여 가르치고 권면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살펴보면 어떤 분은 순종하고 어떤 분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내로 순종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축복을 받고 문제를 해결 받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령 집회 등을 통하여 제가 인터넷 등으로 올린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한 구절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무조건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명하고 있으면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더 순종하여 축복의 씨앗을 쌓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명하고 있으므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려고 제가 가장 먼저 아멘으로 화답을 합니다.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또 집회 참석이 자신에게 영적으로 유익하고 이 집회가 하나님 나라와 그 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집회 후기 등을 통하여 협조하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협력하고 어떤 사람은 협력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신이 영적으로 별로 유익하지 못하다고 느껴서 그렇게 한다면 드릴 말씀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러한 부탁을 저의 부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주께 하듯 사람을 대하고, 주님이 세우신 종을 영접하고 순종하는 것은 곧 주님을 영접하고 순종하는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때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을 구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눈과 그 영광을 의식하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하나님이 보시면 협력하는 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눈과 체면을 의식하여 협력하지 않는 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요12:42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요12: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제가 다소 날카롭게 말씀드리는 것은, 제가 주님 안에서 다루심을 받고 보니, 말씀 하나하나가 참이요, 진리라 그대로 행할 때에 축복을 받고 상급을 받고 주님께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행하는 대로, 순종하는 대로, 심은 대로 거두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와 우리 모두의 복된 삶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로 살아가면서 목회자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역설적인 말과 행동이 참 많습니다. 저 자신도 한편 그러했고요. 성도님들에는 은혜를 받으려면 앞 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면서 자신은 다른 집회에 가면 맨 뒷자리에 않습니다. 성도님들에게 아멘!으로 화답을 강요하면서 자신은 거의 하지 않는 분들도 많습니다.


영의 세계의 근간의 법칙인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에 따라서 목회자 자신이 그러면서 성도들에게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듣습니다. 자신은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불효하며서 자식에게 순종과 효를 가르쳐도 소용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심은 대로 행한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법도입니다.


저는 이러한 진리를 가슴으로 배웠기 때문에 다른 목회자의 집회나 예배에 참석하면 맨 앞자리에 앉아서 그 시간만큼은 조금 유머스럽게 표현하면 마치 꼬봉처럼 “아멘! 아멘!”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시간만큼은 그 목회자가 주님의 대리자로 서 계신 것이고 곧 주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주님과 화목과 친밀감을 이루어 기도의 능력과 축복의 역사와 하늘의 상급의 큰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상식적으로는 알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정녕 가슴으로 어쩌면 알지 못하고 살아가셨을 중요한 진리를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정녕 사람에게 하는 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참이요, 생명이요, 진리임을 깨달아 순종하시라는 것입니다. 저를 위해서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신들의 영혼과 생명과 축복을 위해서인 것이지요.


그리고 참고로 꼭 말씀 드립니다. 사람 앞에서 신실하게 행하시 못하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께 신뢰를 얻지 못합니다. 이는 곧 사람에게 하는 것이 주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최근에 제게 가슴으로 일깨워주신 이 진리의 비밀을 참으로 가슴으로 알고 행하여 하나님과 화목과 친밀감을 이루어, 하나님 아버지께 깊은 사랑과 인정함을 받고 영육간의 범사에 형통함을 축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면 정말 좋겠습니다. 샬롬!



마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마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마25: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25: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마25: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마25: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마25: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마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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