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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진리] 족집게 비방

초록 등불 2013. 5. 13. 01:48

 [핵심 진리] 족집게 비방

 

주님께서 영의 세계와 그 속의 일들과 원리들을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기까지는 저도 이 세상의 모든 어려운 문제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주님만 만나기만 하면 순간적으로 다 해결을 받았듯이 그러한 것인 줄만 알았습니다.


대부분의 부흥성회나 설교를 보더라도 우리가 예수님만 만나게 되면 인생의 모든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말씀을 전하지요.


하지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그러한 강력한 역사가 나타난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표적과 기사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보여주시며 그 나라를 전파하시고 또 예수님께서 기름부으심을 받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기 위한 다중적 목적이 있었지요.


물론 오늘날에도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 속에서 이러한 순간적인 표적과 기사는 살아계시는 하나님 안에서 여전히 일어납니다. 특별히 복음 전도자의 집회에서나 또는 복음이 최초로 들어가는 선교의 현장에서 많이 일어나지요.


이는 이러한 표적과 기사를 통하여 말이 아닌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일반적인 사역이나 신앙생활 속에서는 이러한 순간적인 표적과 기사보다는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회복되는 점진적 치유와 회복이 일반적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복음 전파의 목적이 아닌 영의 생명과 영적 회복과 성장이 목적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성장해가느냐에 따라 점진적으로 치유시켜주시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순간적인 치유와 회복에서 간과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노력과 수고와 힘겨움이지요.


가령 38년 된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가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또는 소경 바디메오가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가 돌아간 삶의 현장에는 모든 어려움이 다 해결되었을까요?


아니지요. 그렇게 아프고 눈먼 소경으로 살아왔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재주도 없었을 것이고, 어쩌면 배우자도 없는 외로운 삶을 살았을 것이고, 경제적으로도 심히 어려웠을 터 현실적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어려움도 참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예수님만 만나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었거나 해결 될 것이라고 생각들을 하지요. 하지만 세상의 만사가 어디 그렇게 단순합니까?


갈대아 우르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떠났던 아브라함의 여정에는 늘 하나님이 오늘과 내일 할 일과 길 길을 가르쳐 주시며 늘 평안과 형통함으로만 인도하셨을까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가 진군할 때 그냥 모든 적군을 한 순간에 다 괴멸시켜 주셨을까요?


아니지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순종하심에 그들도 최선을 다하는 수고의 땀을 흘러야만 했습니다. 가나안 정복사의 여정에서는 적지 않은 이스라엘 군인이 몸을 다치거나 죽기도 하였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러한 부분들은 간과하기 쉽지요.


그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역사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인데, 성경이 그러한 부분만 기록하고 있는 것은 성경은 하나님의 우리 속에 역사하심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제가 이러한 말씀과 글을 기록하는 것은 사역을 하면서, 또 신앙상담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 해결에 대하여 잘못된 이해와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며 우리 자신들도 얼마나 인내하며 애쓰고 힘써야 하는지에 대하여 많은 분들이 모르고 간과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어떤 가정문제를 겪은 가정이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부모가 서로 헤어져 갈라서고 서로 다른 배우자를 만납니다. 그 와중에 자녀들은 때로는 친엄마 새 아빠, 때로는 친아빠 새 엄마, 또 때로는 할아버지나 외할아버지 집을 전전하며 자라납니다.


그렇게 가정이 온전하지 못하고 누가 아버지이고 어머니인지도 모를 힘겨움과 혼돈스런 상황 속에서 어리거나 반항심이 많은 사춘기의 시기를 보냅니다. 그리고는 그 숱한 시간 속에서 말없이 상처를 깊이 받아갑니다.


부모가 원망스럽고 행복한 사람들을 쳐다보면 이유 없이 반항심도 생기고, 사람들과 사회에 대한 원망과 반항심도 자라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의 비관하며 아무런 목적과 방향도 없이 마냥 살아갑니다. 때로는 비행의 길로 들어서기도 합니다.


또 어떤 가정은 아버지가 극심한 알코올 중독으로 수십 년이 넘도록 가정에 폭력과 다툼, 물질적인 파탄, 정서적인 파탄을 가져옵니다. 그 와중에 자녀들은 말없이 깊은 상처를 받아갑니다. 그리고 건강하고 밝은 마음으로 자라나지 못하고 사회에 정상적으로 적응하지 못합니다.


가끔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로 신앙상담을 해 옵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러한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생각 없이, 어디 가서 능력있는 사역자에게 기도를 한 번 받거나 또는 짧은 한 동안의 작정기도와 같은 기도를 통하여 문제가 해결 될 것처럼 기대를 합니다.


너무도 힘겹고 답답하니 모든 사람들의 심리가 그러하겠지만, 그냥 무슨 묘수와 같은 족집게 비방을 찾기 원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그러한 문제들이 간단하고 쉽게 해결되겠습니까? 얼마나 문제 해결이 어려워 보입니까? 간단히 해결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그렇게 간단히 해결 할 수 있는 족집게 비방이 있겠습니까?


분명하게 확언 드리지만, “결코 없습니다!”


병이 깊고 뿌리가 깊으면 치유에도 그만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듯이 이러한 문제의 해결도 근원적인 뿌리로부터 접근해야 가야 합니다. 위에 예를 든 경우와 같은 심각한 경우는 어쩌면 평생 그 상처의 뿌리에서 근원적으로 해결 받아 그 자녀들도 원만한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을 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설령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그러한 것들이 다스려지는 시간대를 거닌다 하더라도 생의 시간 늘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터, 그러한 성령소멸의 시간대에는 잠재되어 있던 상처나 기억들로 다시금 정상적이지 않은 성격이나 행동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개인의 상황과 사정이 다르니 각 개인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 힘써 기도하면서 지혜롭게 근원적인 육적, 혼적, 영적 환경부터 개선해 나가고, 받은 상처를 치유해주고 또 문제의 뿌리가 깊으면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상담을 해보면 대부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무슨 족집게 비방 같은 것을 구하시고, 그러한 것이 아니라 끝끝내의 인내로 문제의 근원부터 풀어가야 한다고 조언을 드려보면 대부분 며칠이나 몇 주를 넘기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립니다. 하지만 이 또한 제가 넉넉히 이해를 할 수는 있지요.


사람들의 생이 건강하고 마음이나 환경이 편안하다고 하여도 대부분 생은 수고롭고 힘든 것인데, 그러한 상황이 아닌 이러한 숱한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다보면 그것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의지로 성실히 이기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요.


그러다보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불신자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무슨 뾰족한 비방을 찾아 굿을 하거나 부적을 사다 붙이거나 하듯이, 답답하고 힘겨우니 무슨 족집게 비방을 찾아 예언자를 찾고 예언을 받아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과 심리에 편승하여, 예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초보예언자와 서툰 예언자들이 점을 치듯이 ‘이래라, 저래라’예언을 합니다.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도 답답하고 힘겨운데 족집게 비방처럼 ‘이래라, 저래라’말해주니 차분히 그리고 지혜롭게 여러 가지 면면을 살피지 못하고, 예언이란 본시 많은 오류가 있는 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따르다가 더 큰 어려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영적으로 잘못된 사람을 만나 아니 그래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일반인들이 무속인들에게 재물을 갈취 당하듯 자칭 예언자라고 하는 비 진리의 사람에게 많은 물질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물론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렇게 하라, 하지 말라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경 속의 역사의 기록은 대부분 그 말씀들이 옳고 맞았지요.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이라고 부르는 책들에 포함된 문서들은 숱한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참이라고 검증된 엄선된 자료들만 모아둔 것입니다. 열왕기상에 나오는 참 선지자 미가야와 시드기야를 비롯한 400여 거짓 선지자의 대립이 나오듯이, 참선지자에 비하여 거짓 선자자의 수가 월등히 많았듯이 역사적으로 무수히 거짓 선지자,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왕상22:24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왕상22:25 미가야가 가로되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 날에 보리라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가 섞여 있으며,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항상 거짓 선자자, 예언자가 많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거짓 선지자나 예언자가 아닐지라도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나 조건에 따라서 예언은 틀리고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성경이 명확히 확증하고 있지 않습니까? 분명히 예언을 분별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고전14: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또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없던 구약시대, 곧 예언자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시대와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표준화된 말씀이 있는 지금의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예언의 수준이 같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더욱 더 분별하고 유의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무당이 점을 치듯 그렇게 예언하는 서툴고 초보적인 예언자들이 있는 것을 숱하게 보게 됩니다. 물론 영의 세계의 일들은 획일화 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대부분 이렇게 예언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예언이며 자신도 잘못되고 예언을 듣는 사람들도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극한 이러저러한 어려움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으니,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이러한 점치듯 예언하는 자들을 또한 숱하게 찾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예언의 악순환과 부작용이 많이 나타납니다.


저는 이렇게 예언하시는 분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가령 자신에게 인생의 전체가 달린 큰 사업의 문제나 결혼의 문제나 평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문제 앞에서 누가 예언자라고 하면서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라고 하면 깊이 숙고하며 여러 가지 면면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따를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 예언이 틀려서 잘못되면 책임을 지라는 연대 보증서를 쓰라고 한다면 그렇게 자신 있게 예언할 수 있겠습니까? 예언의 대상자가 제 3자가 아닌 가령 자기 자녀라면 그렇게 예언할 수 있겠습니까?


또 어떤 사역자분들은 지금이 오늘이나 내일이나 곧 예수님이 오실 때이므로 직업이나 학업 등에 힘쓸 때가 아니며 오직 예수님 만날 준비만 하라고 하시는가 봅니다. 집과 재산도 팔아서 교회로 들어와서 주님 오실 날만 기다리라고 하시는가 봅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과연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이나 가족들도 다 학업을 포기하게 했는지, 직장도 사직하게 했는지, 집과 전 재산을 다 팔아서 처분했는지 먼저 묻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은 하나님과 그분의 역사에 관해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 편에서의 지혜와 노력과 분별 등은 조금 간과하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의 인물들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면 그것이 참된 하나님의 음성인지 여러 면면으로 살폈을 것이며, 또한 그 음성을 잘 이행하기 위하여 자신의 지혜와 지식과 노력도 더불어 행하였습니다. 가령 가나안을 주었으니 정복하라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군대를 조직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다양한 준비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어려움 속에서 쉽게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본능 때문인지 항상 족집게 식의 비방을 구하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마음의 성향에 편승하여 초보 예언자와 그릇된 예언자들이 사람들의 삶을 더욱 어려운 길로 이끌어 갑니다.


제가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십수 년, 때로는 수십 년간 이런저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상처입은 사람과 그 마음이 한 순간에 쉽게 해결 될 수 있는 무슨 족집게 비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시는 경우가 아주 희귀하게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어떤 문제이든지 쉽게 또 수월하게 해결하고 벗어나려는 심리와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철저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그 뿌리부터 찾아서, 뿌리가 깊을수록 더 오랜 시간 인내하며 조금씩 회복해 가야 합니다. 정말 오랜 시간 인내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근원부터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것이 정도이며 이것이 비방입니다.


결코 한 순간에 쉽게 해결되는 무슨 뾰족한 비방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사가 점치듯 ‘이래라, 저래라’할 수 있는 간단한 것도 아닙니다. 얽히고설킨 것이 인생사가 아닙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은 대부분 어떤 단편만을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 단편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단편 위에서 우리의 지식과 지혜와 노력과 애씀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니 차지하라 말씀하셨으면 그것을 정복하기 위한 치밀한 작전계획과 전투와 수고와 땀 흘림과 피 흘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 또한 성취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상황에 있을지라도 간단하고 편하게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족집게 비방을 구하는 심리부터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래라, 저래라’는 식의 예언은 그 자체가 대부분 틀린 것입니다.


성숙한 예언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단편을 잡고 자신의 문제처럼 여러 가지 면면을 깊이 숙고하며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도 여러 가지 면면을 고려하여 자신이 스스로 잘 결정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에게는 일생의 전체가 걸린 문제이거나 생사가 걸린 문제에서는 한번의 틀린 예언도 용납이 안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는 그 예언에 때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걸어야 했습니다. 신약을 사는 우리도 다른 사람의 문제일지라도,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하는 구약적 상황이 아닐지라도, 그렇게 너무도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의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 것입니다.


글을 맺겠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삶에서 힘겹고 수고로운 문제를 만나면 누구나 쉽게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무슨 족집게 비방과 같은 것이 있으면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나님 말씀 안의 정로를 가능하면 일찍부터 걸어야 합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삶의 시간시간은 사실상 내일의 축복과 저주의 씨앗인 것입니다.


말씀 안의 참다운 순종의 길을 걸었다면 그 생명과 축복의 열매를 먹게 되는 것이며, 불순종과 죄악의 길을 오랫동안 걸었다면 또 오랫시간 동안 그 어둠과 환란의 쓴 열매를 먹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어려운 문제나 환란을 만났을 경우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근원부터 고쳐나가는 인내와 성실의 끝끝내의 싸움을 잘 감당하여야 합니다. 오랜 문제일수록 해결을 받고 치유와 회복을 하는데도 오랜 인내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심은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무슨 족집게 비방 같은 것을 구하는 마음은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점치듯 예언하는 사람을 삼가야 합니다. 예언의 맞고 틀림을 떠나서 성숙한 예언자가 아닌 초보요, 우리의 인생사가 대부분 그렇게 ‘이래라, 저래라’는 식으로 간단히 말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 모두 언제나 하나님 안으로, 그리고 그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의와 진리의 길을 걸으며 주님의 성산에 거하는 복된 사람이기를 바래봅니다. 그 말씀 안으로 돌아가고 거하는 끝까지 인내하는 삶에 결국은 하나님의 축복과 평강이 임하니까요. 샬롬!


시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시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시15:3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시15:4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시15:5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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