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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천사, '귀용이'

초록 등불 2013. 4. 17. 16:24

 

 [천사 이야기] 천사 '귀용이'

 

낮 시간에 볼 일이 있어 모처럼 나들이를 하는데, 새 모습의 하늘 공주님이 나타나 길 저편에서 허리를 숙인 채 너무도 우습다는 듯 하얗게 웃어 댑니다.


시간 속에서 삶을 살아가면서 또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세월도 쌓여가면서 알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행하심의 기이하심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 주셔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의 행하심은 우리가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기묘한 부분이 있지요. 그래서 성경은 그분을 일컬어 기묘자라고도 말씀하나 봅니다. 그래서 그분의 행하심의 시종은 우리가 측량할 수 없지요.


전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의 눈에 그렇게 기묘하게 보이는 것은 정작 하나님의 행하심이 기묘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생각과 섭리와 경륜이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가히 우리가 측량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지요.


사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사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지만 사람은 그 높으신 경륜을 다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때로 힘겨운 길을 걸으며 보이지 않는 전능자의 운행하심에 힘겨움을 토로하기도 하게 되지요. 욥도 도무지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삶의 시련 속에서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하나님의 행하심 앞에서 힘겨움을 토로하고 있지요.


욥9:8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욥9:9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욥9:10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욥9: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나아가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저도 참으로 오랜 시간 이런저런 어려움과 특별히 감내하기 쉽지 않은 육체의 아픔과 통증을 안고 살아가다보면 하나님의 행하심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없잖아 있습니다. 그러면 욥과 같이 힘겨움을 토로하게 되지요.


하지만 이런저런 신앙상담이나 집회 등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면 사람들은 다 저마다 삶의 힘겨움을 알고 살아가며 나름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쩌면 삶의 힘겨움은 하나님의 행하심의 기이하심이 때문이 아니라 원죄로 말미암은 우리의 삶의 본질인 듯도 합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오늘은 저를 포함한 우리들 모두가 다 나름의 삶의 힘겨움과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데, 잠시 웃고 힘을 얻을 수 있는 다소 편안한 천사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낮 시간 나들이는 저의 일정상 거의 하지 못하는데, 하루는 볼 일이 있어 오후에 나들이를 하였습니다. 먼저 문구점에 들러서 필요한 몇 가지를 사고는 은행에도 들러야 할 일이 있어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길을 걷고 있노라니 오늘은 ‘송이’천사를 비롯한 늘 보이는 하늘 공주님이 아닌 새 모습의 하늘 공주님이 보였습니다. 모습은 늘 보이는 하늘 공주님들과 엇비슷하여 사람으로 비유하면 11~12세 가량의 소녀 모습인데, 평소에 보지 못하던 하늘 공주님이었습니다.


하얗고 예쁜 바탕에 다소 알록한 무늬의 옷을 입고, 머리를 뒤로 묶은 금발머리를 한 새 천사, 새 하늘 공주님이었습니다. 새 하늘 공주님이 나타나 제 곁은 함께 걸어주었습니다.


모습을 살펴보니 첫 느낌은 딱 두 가지, ‘귀티’와 ‘명랑’이었습니다. ‘귀티’라 함은 천사 ‘깜직이’처럼 다소 귀족적인 분위기와 느낌을 말합니다. 하지만 ‘깜직이’이 다소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인데, 새로 보이는 공주님의 모습은 명랑과 동시에 다소 씩씩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모든 천사들이 그렇지만 새 하늘 공주님의 눈빛도 마치 한 점의 흠도 티도 없는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게 반짝이며 빛이 났습니다. 처음으로 보이는 애라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또 왜 왔니? 누구니?”


“보고 싶어서..”라고 장난스레 대답을 하는 듯한데, 우습다는 듯 하얗게 웃어댑니다.


마침 신호등이 걸려서 저는 신호등 길 이편에 서 있는데, 하늘 공주님은 길 저편으로 가서는 저를 바라보고 웃으며 서 있었습니다.


영으로 주고받는 대화라 겉모습은 가만히 서 있지만 명랑하게 장난을 걸어오니 저도 주 안에서 영으로 장난을 치며 다시 물었습니다. 저는 길 이편에 있고 공주님은 길 저편에 있습니다.


“사랑으로 왔다구? 그럼 목사님한테 뭐 해 줄건데..”


“뽀뽀..”라고 대답을 하는 것 같더군요.

아빠에게 장난기 많은 딸이 장난을 치듯이 대답하며, 나무도 우습다는 듯이 허리를 숙인 채 바라보며 하얗게 웃었습니다.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나면 금새 잊어 버리듯 그렇게 하얗고 예쁘게 웃던 얼굴 모습이 보고 싶은데 기억이 가물합니다.


앞에서 자세히 적지 않았지만 그날 다소 몸 상태도 좋지 않고 식욕도 없어서 오랜만에 식당에 홀로 들러서 외식으로 냉면을 먹었습니다. 냉면을 먹고 있노라니 느껴지는 두 가지, ‘귀품스러움’과 ‘명랑과 씩씩함’이 어린 말괄량이 공주님처럼 앞에 앉아서 가만 쳐다봅니다.


영으로 보이는 천사들과의 대화는 사람들과의 대화처럼 편하게 목소리로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가 아니라, 영으로 집중해서 그 눈을 보고 읽어내야 하는 것이라 다소 피곤해서 별스런 대화를 주고받지 않으면서 식사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모습에서 풍겨지는 느낌이나 분위기라는 것은 그냥 느껴지지요. 식사를 하면서 간간 바라보니 새 하늘 공주님에게 느껴지는 것은 이전의 공주님들에게서 느껴지는 것과는 또 다른 ‘기쁨, 사랑, 소망’그리고 특별히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활력이었습니다. 또 다른 성격과 영의 흐름을 지닌 천사지요.


천사들도 경험해보면 사람이랑 똑 같습니다. 세상에는 수십억의 사람들이 살지만 제 각각 다 개성과 성격이 다르듯 천사들도 다 다릅니다.


어쨌거나 이 새로운 하늘 공주님에게서 신선하게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활력’이었습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몸이 너무도 강건하게 생명 에너지가 충만해서 활기가 가득 넘쳐나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귀품스러움과 명랑함과 용기같은 씩씩함과 활력도 느껴져서 이름을 지으면 뭘로 지어줄까 혼자 생각하다보니 문득 “귀용이”라는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잘 알지 못하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귀한 영성의 삶을 살았다는 ‘쟌느 귀용’이라는 이름마저 문득 떠올라 그냥 이 공주님의 이름은 ‘귀용이’로 지었습니다.


귀족적인 분위기와 함께 명랑함과 씩씩함의 용기어린 모습이 어려 보여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다른 하늘 공주님들처럼 제 곁에 한 동안 머무는 친구가 될지는 모르지만 새 천사, 새 하늘 공주님 친구가 생겼습니다. 그 이름은 ‘귀용이’입니다.


사실 새로운 천사 이야기나 천사들과의 이야기 등 글들이 조금 쌓이고 밀려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앞서 천사 ‘귀용이’이야기를 적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먼저는 제게 그리고 아마도 여러분 모두에게도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새로운 삶의 활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글의 서두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와 행하심은 때로 우리의 눈으로는 기묘하고 이해하기 참으로 어려운 것들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해하기 어렵다기보다는 사람이기에 벗어나고 싶은 육체의 통증, 저는 아플 때는 정말 아픕니다. 외적 질환이 아닌 내적 속앓이라 겉모습은 멀쩡해 보여도 아플 때는 정말 아픕니다. 온 몸의 신경이란 신경에서 온 통증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온 몸은 기력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느껴지지요. 그리고 통증성 피로감과 함께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오곤 합니다. 바이오리듬이라는 것이 있는지 때로는 조금 편하다가 아플 때는 몹시 아프곤 합니다.


오늘도 눈을 뜨니 몹시 심한 통증이 온 몸에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영으로 보이는 케더린 쿨만의 모습의 영, 제가 영적 멘토로 생각하고 ‘영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영을 바라보니, “믿음으로 승리하렴”이라고 말해 줍니다. 영으로 보이는 주님을 바라보니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말씀해 줍니다.


가끔 생각해보면, “그냥 단지 한 말씀으로 깨끗하게 고치실 수도 있으실텐데..”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요. 하지만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저의 길을 이렇게 인도하심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겠지요.


어쩌면 제게 이런 극심한 아픔들이 있기에 다른 분들에게 생이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 진정한 소망의 나라가 어디인지 그리고 믿음 안에서의 용기가 무엇인지 상처를 머금고 진주를 빚어내는 진주조개처럼 조금이나마 진리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도 생각해 보곤 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저마다 야곱과도 같은 부러진 환도 뼈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듯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아픔들이 우리를 의와 진리의 삶으로 인도하고 살아가게 하는 것도 같습니다. 늘 강건하고 편안하면 비는 내리지 않고 햇빛만 비치는 땅이 결국 사막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생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부러진 환도 뼈의 걸음으로 생을 걸어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만은 않지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하고, 그 주님의 도우심을 위해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주님은 제게 그러한 부러진 환도 뼈의 아픈 걸음걸이를 부축해 주시려고 하늘의 천사들을 보내어 용기도 주시고 웃게도 하시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천사 ‘귀용이’를 만난 그날도 몹시 힘든 하루였지만 귀용이가 전해주는 웃음과 기쁨, 그리고 풍기고 전해져오는 넘쳐흐르는 생명 에너지 가득한 활력의 모습에서 저도 힘을 얻은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생에서 나름의 환도 뼈가 부러진 아픔들이 있지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처럼, 오직 쉬지 않은 성령 안에서의 강력한 불같은 기도로 주님의 능력을 끊임없이 공급 받아, 환난 가운데서도 능히 환난 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어쩌면 위대한 믿음의 삶을 우리 모두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고난의 생의 날들은 쉬 가고 영광의 주님의 뵈올 그 날은 그리 멀지 않으니까요. 말씀을 따라 삶의 형편이 어떠하던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면서 남은 생 주 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주님 앞에 서는 날 칭찬과 면류관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면 좋겠습니다. 샬롬 !


약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계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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