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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잘못된 정죄신앙

초록 등불 2013. 4. 24. 17:42

   [말씀 묵상] 잘못된 정죄신앙

 

하루 중 가을에 해당하는 시간, 단풍빛 늦은 오후에 말씀을 기록하기 위해 기도하니 “생의 향기를 지녀라”는 참다운 거룩한 영의 생명을 잃지 않을 것을 감동하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생의 향기, 곧 그리스도의 향기를 언제나 잃지 않는 향기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원해 봅니다.


오늘은 정죄에 관하여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언젠가 한 지체님을 만났더니 교회에 다니기 싫다고 하였습니다. 이유인즉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을 따가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이 참 싫다 하였습니다.


종교는 한편 거룩한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은연중 정죄라는 죄악이 가득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정죄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유교는 근본적으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종교입니다. 부모에게 효를 하지 않거나 제사를 그릇되게 지내면 종교적으로 질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근본이 죄인이 용서받고 의인되어 생명을 얻는 용서의 종교, 은총의 종교입니다. 물론 물과 성령 안에서 거듭나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그것이 기독교의 근본은 아닙니다.


교회안의 모든 지체들은 실상 모두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기독교는 행위 완전한 의인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죄인을 위한 죄인의 종교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세리와 창기와 불의한 자들을 찾아 다니시며,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없다.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의인보다는 눈물진 죄인들을 찾아다니셨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향하여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말씀하시며, 용서를 통한 새로운 생의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죄인이 찾아가기엔 너무도 불편합니다. 성도 상호간에 혹여 타인의 허물을 발견하면 정죄하고 소문거리로 삼으며, 죄인들의 교회출입을 막고 섭니다. 그들 스스로도 어두운 가운데서 부끄러운 죄악을 넘치도록 행하면서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의 본질을 모르기에“예수를 믿는 너희가 그러하냐?”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상호끼리는 그러한 말을 하여서는 안됩니다. “집사님이 그래요?” “권사님이, 장로님이, 목사님이 그렇게 행동하십니까?”라는 말을 하여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의하면 인간은 모두 타락하였고 그 속에는 죄성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부족하여 실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행위 완전하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주의 거룩함을 본 받으려 애쓰는 자들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집사님이, 장로님이, 목사님이 그래요?”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큰 상처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에 상처를 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 직분을 감당하기 어렵도록 정체성에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집사나 장로나 목사도 본성적 죄성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이기에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통하여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러한 정체성에 상처를 주는 말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굳이 말하려면 “집사님, 그건 잘못된 일인 것 같습니다”라는 식의 대화가 옳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듯 백만 마디의 정죄보다는 한번의 용서와 배려있는 사랑의 조언과 충고가 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혼적 분노의 감정이 가득 베인 독설적 정죄는 그 사람을 죽이고 정죄하는 말을 하는 자신을 죽이는 것일 뿐입니다.


무릇 혼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영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사건 앞에서도 적법한 절차와 순서를 따라 혼이 아닌 영으로 행해여야 합니다.


혼이 야생마처럼 날뛰는 곳에는 언제나 분쟁과 분열이 있지만, 영으로 행하는 그곳에는 언제나 생명과 평강이 있습니다. 자신이 살고 타인도 삽니다.


잊지 마십시요.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요, 죄인의 종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일만 달란트 용서받은 죄인으로써 이웃의 백 데나리온의 허물 앞에 정죄의 독한 말을 하는 것은 심각한 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심각한 죄성과 독성을 바라보며, 정죄보다는 용서와 이해와 배려, 사랑으로 안아주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죄인이 언제나 자신의 죄짐을 해결받기 위하여 편안히 달려올 수 있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어야 합니다.


요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요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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