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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약한 나, 강한 나

초록 등불 2013. 5. 20. 00:07

 [영성의 글] 약한 나, 강한 나

 

말씀을 한 장 읽고 감사한 후 잠자리에 들어라고 하늘에서 영으로 음성이 들려옵니다. 집회 준비로 다소 피곤하였지만 순종하여 말씀을 한 장 읽었습니다. 말씀을 읽으니 마침 내일 집회에도 꼭 필요한 말씀 구절이 보입니다.


어쨌거나 순종하여 말씀을 읽고 잠자리에 들려고 잠시 감사의 기도를 드리려고 앉으니, 개인적인 경건 시간에 의식이 영으로 들어가면 언제나 영의 시공간에서 제 앞에 나타나 저와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해 주는 천사가 선연 보였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시간 대부분 늘 함께 기뻐해 주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전하여주곤 하는데, 오늘 밤은 집회 준비에 대한 적지 않은 수고와 그리고 또 성경을 읽고 잠자리에 들라는 작은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사랑을 전해주는 듯 아름다운 꽃다발을 들고서 제게 전해주는 듯 저를 기쁘게 바라봅니다.


작은 것이지만 순종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격려 같았습니다.


개인적인 경건 시간에는 그렇게 나타나 저와 함께 기뻐해주고 즐거워 해 주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는 소년 모습의 예쁘고 귀여운 천사들이 몇 있습니다. 다 이름을 짓기 어려워서 그냥 모두 ‘순동이’라고 부릅니다.


영성 집회가 다가오면 같은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영성의 삶을 사모하는 분들과의 만남의 반가움으로 기쁘기도 하지만, 또 한편 작고 연약한 인간에 불과한 제가 때로는 먼먼 거리를 달려오시는 그들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게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공급받게 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을까 거룩한 두려움과 떨림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자신의 연약함 안에서의 거룩한 두려움과 떨림은 사역자면 누구나 늘 혹은 가끔은 경험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도바울도 그러하였지요.


고전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특별히 이번 집회를 두고서는 제게는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한 동안 몸이 좋지 않아서 기력도 부족함이 느껴지고, 전날 밤 산책을 하는 시간에도 식은땀도 흐르고 몹시 이런저런 다양한 몸의 불편함으로 힘겨웠습니다.


그렇게 기력이 다소 없이 산책을 하다가 벤치에 앉아서 쉬는데, 몸 상태가 그러하니 마음도 다소 힘겹고 기분도 가라앉더군요. 그러니 영적으로나 혼적으로나 기쁨과 힘을 공급해 주어야 하는 집회 인도자인 내가 이래서 집회를 인도할 수 있겠나 싶더군요.


그런 다소 힘겨운 몸과 마음으로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낮 시간에 집회 설교를 위하여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둔 말씀을 컴퓨터의 워드 프로그램으로 타자를 쳐서 정련, 인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낮 시간에 받아둔 성령의 감동하심의 말씀을 기록해 나가는데 주님이 하신 이러한 말씀이 있더군요.


“구원의 차원이 아닌 하나님의 일꾼으로서는 영적 어린아이는 쓸모가 없다. 하나님의 군사로서는 가치가 없다. 그러므로 강하고 담대하라”


이 말씀이 제게 다소 도전과 용기의 말씀으로 다가오더군요.


사람은 누구나 근원적인 불안감과 두려움을 내면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람은 자신의 모든 문제를 능히 그리고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절대자가 아니요, 한계를 지닌 상대자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아직 구원이 온전히 성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리스도인이거나 아니면 세상에 속한 사람이거나 마찬가지로 누구나 이러한 근원적인 불안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직분과 직임이 목회자나 사역자라고 하여도 그 자신 역시 내면에 이러한 염려와 근심,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온전히 자유할 수는 없습니다.


목회자도 몸이 아프면 힘들고 싫고 때론 짜증도 납니다. 많이 아프면 육신적인 고통과 죽음이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염려가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는 목회자나 그리스도인이나 세상 사람이나 깊이와 정도는 다르겠지만 사람이라면 모두가 느끼는 인간 본래의 근원적인 문제이지요.


그런데 세상의 일들에는 모두가 각각 그 일의 특성과 어려움이 있듯이, 목회 사역의 어려움은 한편 여기에 있습니다.


실상 자신도 그러한 혼적 육적인 어려움에서 온전히 자유하기는 어려운 연약한 사람일 뿐인데, 그러한 연약함을 안고 때로는 숨기고, 다른 모든 사람들의 그러한 생로병사의 아픔과 수고로움, 희노애락 애오욕을 비롯한 생의 모든 문제들을 안아주고 다독거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육적, 혼적, 영적인 모든 문제들을 함께 안고 중보하며 신음하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만 바라보면 자기 자신의 문제조차도 해결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이요, 자기 자신도 염려와 아픔과 수고로움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작고 연약한 사람일 뿐이지요.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자신에게 의지해 오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 안에 거할 때 약하며 심히 떨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요.


고전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자신도 아프고 힘겹고 수고로운 일을 만나면 때로 원망과 불평의 말을 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인데,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는 “항상 감사하라”고 전해야 하는 마음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지요.


자신도 병이 들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전해야 하는 마음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지요.


홀로 자신만의 시간을 거닐 때에야 그러한 마음의 상태에 머물러도 별스런 문제는 아니지만, 말씀을 증거하거나 어려운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해주어야 하는 그런 시간에 만약 목회자 자신의 마음이 그러하다면 이는 목회자에겐 정말 당황스런 상황이 되고 말지요.


모든 사람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듯이 우리네 삶에서 정말 항상 기쁨과 평안과 행복과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삶에는 아픔과 수고로운 일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이는 목회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안에서 우리가 때로는 환경을 초월하여 빛과 평강의 하늘을 높이 비상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많은 시간 속에서는 믿음과 용기의 날개를 잃어버리고 비 내리는 먹구름의 아래를 흠뻑 젖으며 날기도 하지요.


그러한 것은 목회자도 실상은 마찬가지인데 그리스도인들은 보이시지 않는 숨어계시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목회자를 많이 의지하고 찾고 기대어 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저 자신의 문제도 버거운데 다른 사람의 모든 아픔을 가슴으로나마 안고 위로해 주고 믿음과 용기를 전해주려다보면 참으로 작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참으로 작고 연약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그렇게 이번 집회를 앞두고서는 더욱 한 동안 몸도 더욱 좋지 않았기에 그렇게 수고로운 생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면서 제 안에서 역사하실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하심과 은혜를 바라고 오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저 스스로 안에서는 한없이 작은 사람, 곧 ‘연약한 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목회자가 스스로 연약해질 땐 하나님 외엔 찾을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 실상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연약해질 땐 찾을 분이 하나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일반 그리스도인들은 사역자에게 기대어 오곤 하지요. 하지만 사역자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작아진 모습 속에서 집회를 위한 준비를 대부분 마치고 잠시 기도하였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릴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계시지 않으니 잠시 하늘을 두드렸습니다.


영으로 보니 몇 번인가 하늘 문이 열리고 닫히고 하더니 언젠가부터 활짝 열려버린 하늘 문, 그 후로는 영으로 보면 또 다른 청명한 푸르른 하늘이 영으로 늘 보이는데 그 끝없는 영의 하늘의 깊은 곳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기도로 찾아 올라갑니다.


저 자신의 삶의 수고로움과 무게로 작아져 버린 나, 그런 작고 연약한 존재에 불과한 사람인 나, 하지만 적어도 내일의 집회의 시간에는 ‘작은 나’가 아닌 주 안에서 ‘강한 나, 강한 목자’가 되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로가 되어야 하기에 그 끝없는 영의 하늘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 올라만 갔습니다.


저는 성부 하나님의 음성을 육신의 귀로 들리는 음성은 아직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영으로는 기도하면 침묵하시는 경우도 있으시지만, 종종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과는 다소 다른 톤과 느낌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대부분 긴 말씀은 하지 않으십니다. 간단하게 말씀하시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우렛소리나 번개치는 소리가 동반되기도 합니다. 우렛소리나 번개치는 소리가 강하게 동반되면 영으로 들려와도 집과 터가 요동을 하는 것 같지요. 그런 경우는 영이 아닌 육의 귀로 들려오면 고막이 성할까 싶지요.


여름 장마철 가끔 마치 집 창문 바로 밖에서 엄청난 우뢰와 번개가 발한 듯 무서울 정도로 굉음이 굉장한 경우가 있지요. 그러한 것과 흡사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직접 육신의 귀로 하나님의 그러한 음성을 들어보지는 못하였지만, 영으로 들리는 소리의 경험을 통하여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고백을 하였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임재하신 소리 앞에서 죽을까 두려워하였지요.


출20:18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출20: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출20: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지만 집회를 앞두고 저의 아픔과 문제로 한없이‘작아진 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위로와 용기의 말씀을 받기 위하여 저 푸르고 끝없이 깊은 검푸른 우물 같은 영의 공간의 깊은 곳으로 기도로 나아가고 나아가니, 위로가 필요한 저의 마음을 헤아리셔서 인지 굉장한 우렛소리와 번개소리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 동안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잠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기도하며 잠잠히 기다리고 있노라니 짧게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엄위하신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깨어, 사람들을 일깨우라!”


그 말씀뿐이었지만 하지만 그 말씀 한 마디면 족했습니다. “깨어..”라는 말씀에는 저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있었지요. 너를 작고 약하게 하는 것들을 보는 의식에서 깨어!, 전능자인 나를 바라보는 의식으로 깨어!, 세상의 수고로움 속에서 어두워져 가려는 영적 의식을 빛으로 일깨어!, 사람들을 일깨우라는 말씀이셨지요.


성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니 영으로 보이는 예수님께도 한 말씀 부탁 드렸습니다. 주님도 한 말씀으로 용기를 전해 주시더군요.


“나는 준비되었다. 우리는 준비되었다”


나는 준비되었다라고 하심은 주체되신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울 준비가 되셨다는 의미의 말씀이고, 우리는 준비되었다 하심은 성령님과 더불어 하늘의 군대와 천군천사들 모두가 준비되었다는 말씀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성부 하나님의 음성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하늘의 힘과 용기와 담력이 전해져 왔습니다.


그렇게 내 안에서는 한없이 작은 존재요, 연약한 존재요, 두렵고 떨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또한 하나님 안에서는 강한 존재요, 담대한 존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제 잠자리에 들까요?”라고 기도하며 물으니 “성경을 한 장 읽고 하루에 대한 감사의 기도와 고백을 올린 후 잠자리에 들어라”는 듯한 내적 음성이 하늘에서 들려왔습니다.


천사들을 경험한 이후로는 음성이 이전처럼 영으로 들려오나 다른 것은 저의 내면이 아닌 하늘에서, 위에서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는 주님의 지시를 전하는 천사의 음성 같습니다. 천사의 음성은 우리 안이 아닌 밖에서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내주내재 하시지만 그들은 우리 밖에 있으니까요.


다소 곤하였지만 순종하여 말씀을 한 장 읽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의 감사의 고백을 잠시 드리려 자리에 앉으니, 경건시간 저의 하늘나라 친구들인 소년 모습들의 천사 중 하나가 예쁜 꽃송이를 들고서 기쁘게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들은 제가 일일이 이름을 모두 붙이기가 어려워서 그룹으로 그냥 ‘순동이’라고 부릅니다. 집회 준비의 수고와 마음의 힘겨움에 대한 위로와 용기, 그리고 말씀을 읽으라는 작은 것에 순종한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전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순동아! 반가워. 기뻐”


라고 말하며 감사의 고백과 함께 주 안에서 기뻐하시는 시간을 잠시 갖는 동안 열려 보이는 푸르른 영의 공간에서 온 하늘의 천사들이 하늘하늘 함께 춤을 추며 함께 기뻐하고 기쁨을 전해 주었습니다. “영광! 영광! 하나님께 영광!” 천사들은 그렇게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 안에서 ‘작아진 나’, 또 주 안에서 ‘강해진 나’의 경험을 집회 시간에 잠시 나누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길도 그렇지만 특별히 목회자의 길이란 참으로 내면적 강인함을 필요로 하는 길인 것을 살아가면서 더욱 느낍니다. 아파봐야 아픈 사람을 위로할 수 있고, 울어봐야 우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기에 한편 참으로 아픈 길을 걷게도 하는 길이 목회자의 길이요, 영의 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영적 지도자의 길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한편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누리며 맛보기도 하였지만, 한편 참으로 아프고 힘겨운 시간들을 감내하기도 하였지요. 신구약의 모세,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 세례요한, 사도바울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요.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삶도 그러하였지요.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신약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는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물론 직임적으로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더욱 주 안에서 굳세고 강건하여야 하겠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과 세상을 위하여 강하고 담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자신 안에서는 ‘연약한 나, 연약한 존재’이지만, 자신이 아닌 전능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믿으며 ‘강한 나, 강한 존재’로서의 삶을 우리 모두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아시기에 또한 능한 손으로 넉넉히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회 시간에 먼저는 저를 향하여, 그리고 오신 분들을 향하여 “우리는 오른 발이 부러지면 왼발로 서서 걸으며 주일 일을 감당해야 하고, 두 발마저 다 잃으면 두 손으로라도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어야 합니다”라고 말씀 드렸지요.


하나님의 약속처럼 육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아무런 큰 어려움 없이 은혜롭게 잘 마친 집회였습니다. 집회 시간에는 예쁜 ‘리나’천사가 나타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함께 찬양하기에 손을 마주 잡고 기뻐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제 안에서 ‘작은 나, 연약한 목자’가 아닌, 주 안에서 ‘강한 나, 강한 목자’로서 하루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 사람은 스스로 생각해도 참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주 안에서 강해져 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돌아보면 영성 집회를 처음 시작할 때 제가 너무도 스스로 자신이 없어 하니 천사들이 나타나 태극기를 흔들면서 용기와 웃음을 전해주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주님 안에서 강해지는 법을 배워가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생을 살아보니 하나님이 우리를 강하게 만드시는 통로 중의 하나가 고난과 시련이더군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의 시간에는 하나님의 선한 섭리와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 모두 다시금 우리 자신 안에서 ‘작은 나, 연약한 나’가 아닌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능히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할 수 있는 ‘강한 나’로 거듭나면 좋겠습니다.

생의 길을 걸어보니 생의 길은 결코 쉽지 않네요. 그리고 신앙의 길 또한 그러하고 영적 사역자의 길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결코 쉽지 않네요. 하지만 숱한 믿음의 선조들이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강하게 담대하게 그 길을 인내함으로 걸어갔듯이 우리 또한 우리 자신이 아닌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도 그렇게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과 말씀이니 이겨야 합니다. 저는 한없이 연약하고 이런저런 약함도 많이 안고 가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날마다 연약한 무릎과 마음에 주님 안에서 애써 새 힘을 공급받습니다. 그리고 저도 힘을 다하여 일어섭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비록 우리 자신 안에서는 한없이 연약하고 작은 존재이나 주 안에서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강하고 큰 존재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그렇게 우리 자신이 아닌 주님 안에서 강하고 담대한 생을 살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구원을 넉넉히 성취함을 물론 주님이 약속하신 생명과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 누리는 생이길 하나님께 기도해 봅니다. 여호와 닛시! 샬롬!



고전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고전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빌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샬롬] 내용 중 상당한 부분을 인용하시거나 원본을 그대로 게제하실 경우는, 출판을 염두에 둔 글과 말씀들이니 출처 부분을 남기셔서 저작권을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카페규칙 상 스크렙 및 링크가 허락되지 아니한 게시판에 부지 중 올렸다면 먼저 죄송한 맘 전합니다. 소식 주시면 글올림을 삼가거나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카페운영에 어려움 주지 않기 위하여 저작권 유의 배경음악과 그림자료 살펴 조심하고 있습니다 / 감사 드립니다. 늘 평안하십시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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