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 성령의 음성에는 편향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영적 진리이니 잘 숙지하셔서 일반 생활과 신앙 생활에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어떤 분과의 신앙상담의 만남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항상 그리고 누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상담이 들어오면 나름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여러 가지 상황과 영적 상태와 중보의 권면의 예언의 말씀을 가능하면 준비합니다.
항상 그리고 누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부족할 때는 그러한 영 안에서의 살펴봄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또한 이러한 일들은 성령께서 나타나시고 역사해 주셔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나타나셔서 역사해 주시는 것만큼 우리는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저랑 신앙상담을 하신 분들 중에는 그냥 제가 성령 안에서 많은 것들을 알고 있으니 매우 그런 지식의 말씀이나 예언의 은사 등이 강하게 역사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또 어떤 분들은 제가 별로 그분에 대해서 많은 것을 깊이 알지 못하니 또 그러한 은사가 강하게 역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저의 영적 상태에 따라서도 물론 영향을 받겠지만, 핵심적인 요소는 성령께서 나타나 주시고 역사해 주시는 정도에 따라 다릅니다. 영의 세계의 어떤 원리와 상황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어떤 때는 강하게 나타나시고 알려주시고 역사하시지만 어떤 때는 전혀 침묵하실 수도 있지요.
신유의 은사가 나타난다고 하여도 항상 모든 병자를 치유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우리는 성령께서 나타나시고 역사해 줄 때만 성령 안에서 능한 일을 할 수 있는 유한한 존재요, 주님의 능력의 통로로 사용될 뿐입니다.
그렇게 성령께서 영 안에서 알려주신 지식의 말씀이나 예언의 권면의 말씀을 가지고 그분을 상담하러 나갔습니다. 성령께서 알려주신 대부분의 지식의 말씀의 내용이나 말씀들이 많은 부분 일치하며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근간이 되는 하나가 아주 틀렸습니다.
가령 아주 소극적인 사람이라면 아주 적극적인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가령 아주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면 아주 의지가 강하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그냥 눈으로 보아도 대충 그 성격이나 많은 것들이 보여지고 느껴지는 법, 그분의 성격 중에 근간이 되는 하나가 아주 틀리면 완전히 정 반대였습니다.
어쨌거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당황을 하면서 신앙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조용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머지의 대부분의 요소는 맞게 알려 주셨으면서 도대체 왜 근간이 되는 그 부분을 틀리게 알려주셨을까요? 영의 일에는 항상 오류가 있을 수 있는 법, 내가 잘못 읽어낸 것인가? 그 때 제 머리를 스쳐가는 깨달음의 빛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하! 그것이었구나!”
그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였습니다. 가령 우리가 자녀를 기르면서 아이가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자꾸만 그 사실을 바로 말하여서 그 아이에게 “너는 머리가 참 나쁘단다”라고 말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지요? 점점 자신이 머리가 나쁘다고 더 많이 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고 결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없겠지요.
또 가령 어떤 아이가 의지가 매우 약한데, 그 아이에게 그 사실을 그대로 전하면서 “너는 참으로 의지가 약한 아이란다”라고만 자꾸 말해 버린다면, 아니 그래도 의지가 약한 성격에 점점 더 의지가 약해질 가능성이 많지요. 제게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깨달음의 빛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성격 중에 다소 약한 부분이 있는데, 도리어 그 부분을 약하다고 하지 않고 강하다고 말씀하신 이유를 이러한 원리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즉 의지나 마음이 약할지라도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사실과 실제를 알리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시기 때문에 안위하고 권면하고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도리어 “너는 의지가 강하다, 너는 그러므로 할 수 있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지요.
저는 이것을 “성령 음성의 편향성”이라고 스스로나 사역의 현장에서 그렇게 부릅니다.
그러면 왜 성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령의 속성은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실을 기계적으로 알려주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격을 가지신 인격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가령 예를 든다면 어떤 분의 자녀가 어떤 불치병에 걸렸다고 가정을 해 봅니다. 그렇다면 그 부모는 그 아이에게 그 사실을 그대로 전달할까요? 아니지요. 여러 가지 상황과 정황을 고려하고 어떻게 말하고 알려주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할 것이며, 그런 가운데서 사실이나 혹은 사실과는 다르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가령 아이가 그러한 사실을 잘 받아들이고 적응할만한 그릇이라면, 자신의 남은 생의 시간을 더욱 가치 있게 살 수 있도록 사실을 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이의 심성이 여리고 의지가 약한 경우라면, 사실이 아닌 소망과 위로의 말을 전할 수도 있겠지요. 가령 아래와 같은 말이겠지요.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별 것 아니네. 그래도 잘 치료받고 이겨내자”
이처럼 성령님도 인격체이시기 때문에 어떤 사실을 기계적으로 그대로 전달하시거나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소망과 위로와 용기를 주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소망과 위로와 힘이 되는 방향으로 말씀하시는 ‘음성의 편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한 몸앓이를 하고 있거나 극심한 영적, 육적, 환경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는 대부분 항상 소망과 위로가 되는 말씀을 하시지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작 그 말씀대로 쉽게 그리고 잘 전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저의 견해로는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들은 다음의 세 가지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말 그대로 장차 그리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안에서 반드시 우주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이루어질 사실을 말씀하시는 경우입니다.
요한계시록과 같은 경우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우주적으로 반드시 이루어지고 성취될 예언의 말씀이지요. 또한 성경에는 이스라엘 민족이나 아브라함과 같은 개인을 통하여 반드시 이루어질 예언의 말씀이 있기도 하지요. 이러한 반드시 이루어질 사실에 대하여 성령은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행21:11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행21:12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둘째는 소망과 꿈으로서 주시는 말씀의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그 예언의 말씀의 성취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 말씀의 성취 여부는 그 예언의 음성 등을 듣는 그 사람의 하나님 안에서의 신실한 노력여하에 달려있으며 따라 달라집니다.
오늘날 대부분 주어지는 예언이나 권면의 말씀은 이러한 것들입니다. 가령 내가 너를 “세계적인 종으로 삼겠다”라고 예언이 주어진다하여서 그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네가 너를 세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의 종이 되도록 힘쓰라”입니다.
오늘날 주어지는 대부분의 하나님의 음성이나 예언의 말씀이나 권면은 대부분 여기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기정 사실이나 실재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아, 내게 그러한 꿈을 품고 살아가라”하시는 구나라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아마 목회를 하시는 분이라면 이런 원대한 꿈의 예언의 말씀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그러한 가능성과 기회를 주시니까요. 하지만 대부분 또한 그 말씀의 성취를 맛보거나 누리지 못하지요. 이는 우리가 하나님이 보시는 신실함과 그릇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이나 예언을 받게 되면 아주 눈도 부리부리하게 되셔 가지고 마치 지금 자신이 세계적인 영적 거장이 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시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아주 영적으로 무지한 소치입니다.
그것이 음성이 아닌 놀라운 환상이던지 무엇이든지 간에 대부분의 하나님의 음성은 반드시의 성취가 아닌 자신의 노력여부와 순종여부에 달린 조건부 음성입니다.
셋째는 위로적으로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이의 경우는 반드시 이루어질 사실과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가령 하나님의 하늘나라로의 부르심을 앞둔 사람들이 이러한 음성을 많이 듣습니다. ‘죽음’이란 육체를 지닌 인간이면 누구나 가장 두려워하는 우리 생의 실제 가운데 하나이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의 그릇이 그것을 사실로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살아 숨쉬는 동안 도리어 내가 고침 받고 살 수 있다라는 소망 가운데 그 힘든 시간을 잘 견딜 수 있도록 “너는 고침 받아다. 나을 것이다”라고 사실이 아닌 소망과 위로의 말씀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다른 유사한 상황 들에서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를 위로하고 용기를 가지고 하고 소망과 위로를 주려는 차원에서 그러한 편으로 ‘음성의 편향성’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항상 그리고 반드시 어떤 사실이나 이루어질 사실에 대하여 대부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노력과 순종과 신실함의 여부에 따른 조건부적인 음성이 대부분이요, 또한 장차 이루어질 사실과는 다른 소망과 위로차원의 음성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알아 하나님의 음성을 깊이 헤아리고 분별하는 지혜로운 눈과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의 성격을 잘 알지 못하여, 점치듯 예언하고 또 그 예언 등을 절대시 하고 따랐다가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상담을 하다보면 너무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한편 우리나라에는 전래적으로 샤머니즘적인 점치는 무속의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그렇게 전하고 들으며 행하다가는 반드시 큰 낭채와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 자체가 이러한 ‘음성의 편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 그 음성을 듣는 가운데 사단이 주는 생각이나, 특별히 우리의 생각이 많이 개입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의 접근과 분별은 정말 신중하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가령 “하나님 저 분이 내 배우자입니까?”라고 기도한다면 대부분 긍정적인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는 자신의 마음이 너무도 간절하기 때문에 자신의 음성의 그늘 아래 하나님의 음성이 가리우게 되고 분별력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은 그 자체가 속성상 반드시 사실만을 말씀하시는 것도 아니며, 조건부 성취적 말씀이거나 소망이나 위로적인 말씀도 많습니다. 거기에다가 사단의 생각이나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많이 끼여들 개연성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음성을 분별함에 있어서는 정말 조심스럽게 그리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런데 또한 우리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그 누구도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어렵습니다.
또한 그렇게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어떤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할지라도 또한 그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는 그것을 하나의 실수도 없이 정확하게 분별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는 정말로 신중한 접근과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에는 ‘음성의 편향성’이 있으며, 또한 오류의 개연성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점을 치듯이 하나님의 음성을 그렇게 전하고 그렇게 듣는다면 십중팔구 삶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한 신앙생활이 반복되고 지속된다면 반드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결코 하나님의 음성을 결코 무시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오늘 글의 주제가 하나님 음성의 속성과 그 분별에 대한 글이나 보니 다소 분별이라는 주제에 치우졌지만 하나님은 그 음성을 통하여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양이고 주님의 양은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음성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속성을 알아 지혜롭고 신중한 분별력으로 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지혜로움을 주셔서 하나님의 음성을 잘 분별하며 그 음성 안에 머물며 그 안에서 행복하고 복된 생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 봅니다. 아멘! 샬롬!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고전14: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