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설교

[말씀 묵상] 사랑의 아픔

초록 등불 2013. 6. 26. 23:01

   [말씀 묵상] 사랑의 아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12월의 첫 주일에는 요한복음 21장의 베드로를 향하여 주님이 물으시는 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어보시는 본문을 나누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언제 보아도 들어도 좋은 말이지요. 하지만 사랑 그 아름다운 이름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가령 사랑할만한 것들이 하나가 아닌 여럿이고, 그 서로를 사랑하는 길이 상반되는 경우에는 하나를 버리는 아픔이 있지요.


성경에는 진리의 삶을 위한 무수한 말씀들이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우리는 진리의 삶을 기꺼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 선하신 말씀은 생명이고 진리이며 행복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생명과 행복의 길을 걸어가는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의 심령은 진리의 빛 아래서 밝아지고 생의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며, 그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며 순종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인생의 길을 정하시고 최선의 길로 인도하시길 원하십니다. 때때로 그 길은 무지한 우리의 눈에는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이 최선임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바 아버지이십니다.


하늘은 땅보다 높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인도하심과 섭리를 우리의 머리로는 다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경륜은 우리의 것보다 높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선하심을 믿는 믿음 안에서 아멘하며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전능자시요, 우리의 주인 되시는 주님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우리는 그분의 인도하심과 섭리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 그분을 향한 경건입니다.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공경과 두려움으로 경외하는 것이 피조물인 우리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그분의 인도하심이 이해하기 어렵고 수용하기 어려울지라도 “아멘”으로 화답하며, 도리어 그분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성숙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그분은 속성도 선이시므로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다 보면 궁극은 선한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선하신 그분께서 온전히 순종하는 당신의 백성에게 궁극적으로 합력하여 결국은 선을 이루게 하시지 쓰디 쓴 열매를 거두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마음 중심은 오직 하나, 하나님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분을 섬기며 사랑하는데 있어서 마음의 갈등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길에는 때로 사랑의 아픔이 있습니다. 참된 사랑의 길은 오직 하나의 사랑뿐이므로 다른 사랑하는 것들은 버리는 아픔을 겪을 수도 있으며, 때로는 자기 자신 곧 자신의 생명마저 버려야 하는 아픔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참된 사랑의 길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분을 향한 믿음 안에서 그 아픔을 사랑의 거룩한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아픔과 역경이 없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그분을 높이며 찬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본질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선하신 분이며 우리가 마땅히 경외하여야 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믿음 안에서 때때로 그 길이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워도 그분을 사랑함으로 묵묵함과 온유함으로 하나님 사랑과 순종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걷고 걷다보면 왜 모든 것 위에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신 그 이유를 우리는 가슴으로 알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 아닌 다른 그 무엇인가를 더 사랑하시 시작하는 순간 어둠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하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선의 근원되신 그분을 사랑할 때 우리는 진리와 선의 참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의 본문 속에서 베드로를 향하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어보시던 주님은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의 두 팔을 벌림은 표면적으로는 베드로의 십자가 죽음을 말씀하신 것이지만,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생명도 드리는 온전한 순종과 자기부인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향한 성숙하고도 아름다운 고결한 사랑을 말합니다.


베드로의 삶에서 보여지 듯 사랑의 길,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에도 아픔이 있습니다. 때때로 그 아픔은 자신의 생명을 드려야 하는 십자가 아픔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사랑의 그 길을 걸어가려 애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만이 진리요 선이며 가장 아름다운 생의 삶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길이요, 생명을 누리를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큰 아픔 앞에서 베드로처럼 두 손을 벌릴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을 심하게 핍박하던 로마를 피하여 벗어나던 길에서 베드로가 만난 주님, 말없이 자신을 스쳐가는 주님을 향하여 “쿠오바디스 도메네”,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질문에 “나는 네가 버리고 가는 로마에 다시 십자가를 지려간다”라는 주님의 단 한 마디 말씀 앞에 서슴없이 다시금 돌아가 십자가에 올랐다는 전설처럼 그러한 성숙한 사랑이 있을까요?


우리 모두에게 결국은 두 팔을 벌리기까지 성숙했던 베드로와 같은 진정하고 참되고 고결한 하나님 사랑이 우리 가슴에도 자라나길 기도해 봅니다.


요21: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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