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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캔 디

초록 등불 2013. 7. 1. 03:25

 [천사 이야기] 캔 디

 

영의 눈을 열어 주셔서 영적인 존재를 보면 지내온 시간, 요즈음은 두 가지 면에서 변화가 있습니다.


하나는 보이는 영적 존재들의 수가 많아지니 이제는 일일이 이름을 지어 주거나 누구라고 말을 하기 어려운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제는 그러한 영적 경험이나 현상의 신비로움에서 초연해져 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모든 영성의 과정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은사나 능력이나 체험이나 현상에 많이 몰두하게 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면적 영성의 본질로 들어가고 그러한 현상적인 것들에는 조금씩 초연해져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초연해져가는 마음속에서 오늘은 제가 ‘캔디’라고 이름 지은 천사에 대해서 삶의 기쁨의 회복과 기쁨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싶은 마음에 담담히 기록하여 봅니다. 영성 일기인 저널링 노트에 보니 ‘캔디’가 보이기 시작한 즈음은 2013년 4월 말 경입니다.


제가 이름을 ‘캔디’라고 지은 것처럼 그냥 꼭 만화 주인공 캔디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천사입니다.


영으로 보이는 천사들을 비롯한 하나님께 속한 빛 된 영적 존재들의 모습은 조금 다양하게 보입니다. 저의 경우 땅 위에 제 곁에 두신 하늘 공주님들은 그냥 우리 자연적인 사람처럼 생겼습니다. 영으로 보인다는 것 뿐, 그냥 밖으로 나가서 우리가 만나는 동네 아이들처럼 그렇게 생겼습니다.


오래 그리고 자주 보다보니 신비감은 희미해지고, 이제는 선연하게 보일 때는 그냥 동네 아이들 만나는 것과 똑 같습니다.


하늘에 속한 천사들의 경우는 대부분 한없이 아름답고 정결한 모습에 눈이 부시도록 빛이 나는 세마포 인 듯 하얀 옷을 입은 거룩한 느낌의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날개가 대부분 달렸습니다. 그 얼굴의 모습들도 대부분 지극히 아름답고 정결해 보일 뿐, 우리 사람과 같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경우는 환영처럼 보이는 경우인데, 보통 환영하면 어둡고 부정적인 모습을 연상하기 쉬운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말로써 표현하기 다소 어려운데 마치 빛이 나는 하얀색과 하늘의 청명한 푸름의 색깔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모습인 듯 그런 모습들입니다. 마치 흑백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과 비슷한데 검은 색은 없으며 밝고 청명한 그런 모습입니다.


그런데 얼굴 모습은 가끔은 자연적인 사람이라기보다는 꼭 인형이나 그림 같은 그런 모습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보이거나 보이는 영적 존재들의 모습은 대부분 본질의 모습이 아닌 우리에게 유익한 어떤 이미지로 나타나고 보이기 때문인 듯 합니다. 가령 예수님을 본다면 대부분 성화 속의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시지요.


이렇게 영적 존재들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 때는 본질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우리에게 유익한 그리고 우리가 알아보고 인식할 수 있는 본질의 모습이 아닌 이미지로 많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영의 들림 속에서 경험하는 천국도 실상은 대부분 실제 영이 천국에 가서 실제를 보는 경우는 아주 희귀하고, 대부분 이미지로써 경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캔디’의 경우는 제가 이름을 그렇게 지었듯이 어쩌면 사람도 그렇게 예쁜 눈망울과 얼굴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자연적인 사람에게서 그런 모습은 보기 힘들어 보이니 그냥 제게는 예쁜 인형이나 그림의 형상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모습도 자연적인 색체를 모두 지닌 모습이 아닌 하얀색과 하늘의 청명한 푸름의 색깔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모습인 듯 그런 모습입니다.


그런데 ‘캔디’천사는 나타나고 보일 때 다소 특이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저랑 눈만 마주치면 무조건 생글생글 웃는 것이었습니다. 만화 속 주인공 캔디와 비슷한 느낌이니 마음으로 한번 그려 보십시요. 예쁜 유리알 같은 눈망울로 가만히 쳐다보다가 눈만 마주치면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생글생글 자꾸 웃었습니다.


저랑 눈만 마주치면 생글생글 웃고 또 웃고 또 웃고 또 웃었습니다. 가끔 어떤 매장 앞을 지나가다보면 기계장치에 의하여 주기적으로 인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서 있는 인형처럼, 저랑 눈만 마주치면 생글 생글 바라보며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꾸만 웃었습니다.


그러니 가령 마음에 별로 기쁨도 없고 혹은 삶이나 육신의 고단함으로 마음에 빛이 사라졌다가도, 밖으로 나가서 길을 걸으면 자꾸만 저를 바라보고 생글생글 웃으니,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다보면 저도 따라 웃게 되곤 하였습니다.


한 동안은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눈만 마주치면 자꾸만 웃어주는 ‘캔디’천사 때문에 처음에는 저도 웃음을 참고 걷다가도 결국은 따라 웃게 되곤 하였습니다. 일분 사이에도 몇 번이고 저랑 눈만 마주치면 생글생글 웃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자꾸 웃고 또 웃는 캔디의 모습을 보면 가령 마음에 힘겨운 일이 있더라도 따라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명하며 말씀하시기를 “항상 기뻐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리고 예수님도 우리 안에 충만한 기쁨을 주시기 원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17: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부분도 나옵니다.


시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성경도 이렇게 기쁨에 대하여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캔디뿐만 아니라 영의 눈으로 보이는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이나 다른 모든 천사들이 제게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기쁨’입니다.


다른 모든 천사들도 눈만 마주치면 대부분 첫 마디가 “사랑해. 기뻐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품고 전하는 천사들이 전하는 주된 세 가지는 사랑, 기쁨, 그리고 정결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적은 것처럼 항상 하늘 사랑을 전해주며 이르는 말 중의 하나가 “기뻐해!”입니다.


왜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기뻐하실 것을 말씀하실까요? 왜 당신을 기뻐하면 마음의 소원까지 이루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실까요? 그리고 천사들을 통하여도 실상 환경을 바라보면 기뻐하기 어려운데도 기뻐하라고 전해주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어버이로써 자녀인 우리기 기뻐하는 것이 가장 기쁘시기 때문입니다. 육의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도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기뻐해야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뻐할 때 하나님의 나라와 교통의 문이 열리고, 우리에게 성령을 비롯한 빛의 영들이 임하고,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환경에도 참된 빛과 축복의 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영적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희락과 평강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슬픔의 나라가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의 가득한 참 기쁨, 희락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에 기쁨을 잃어버리고 우울과 슬픔으로 떨어져 버리면 하나님과 교통, 성령님과의 교통이 어려워지고 빛을 잃어버리고 어둠으로 떨어져 버렸으므로 빛의 영들보다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려는 어둠의 영들이 다가오기 좋은 환경이 되어 버립니다.


영의 눈을 열어 주셔서 기도하면서 영의 세계와 영적 존재들의 활동을 보면, 기도와 찬양으로 제가 성령 안에서 희락의 세계로 들어갈 때 열린 하늘 문의 빛이 더욱 밝아지며 하늘의 영계가 움직이며 천사들도 기쁨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울적해하면 모든 것들이 어두워지고 흐린 날처럼 침잠됩니다.


그러므로 염려와 걱정과 근심이 사실상 백해무익한 것이듯이 슬픔과 우울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염려와 걱정과 근심이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없듯이 슬픔과 우울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와 걱정과 근심을 떨쳐 내어버리려 애써야 하듯, 우리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울과 슬픔을 늘 떨쳐 내어버리려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염려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삶의 상황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듯이 역시 우리는 우울과 슬픔의 감정이 깃들기 쉬운 삶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의 유혹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말씀대로 죄를 이기고 악을 이기며 살아가려 애써야 하듯이, 염려와 슬픔에 대해서도 말씀대로 싸우고 이기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원리로 우리는 말씀대로 염려와 걱정 대신에 눈을 들어 하나님을 향한 믿음 가운데 평안을 누리려 애써야 하듯이, 또한 말씀대로 눈을 들어 주님이 우리 안에 가득 주시기 원하는 거룩한 기쁨을 바라보며 품으려 애쓰며 슬픔의 감정과 마음을 다스리고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통해서도 그러하지만 눈에 보여주시는 천사들을 통하여서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얼마나 기뻐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지, 또한 우리가 영육 간에 복된 삶을 살아가라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기쁨과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영의 원리요, 진리임을 배우며 깨달아 갑니다.


오래 전 교회를 개척했을 당시에도 선연하게 제게 이러한 말씀을 이르셨지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제게 “전도도 좋고 사역도 좋고 그 무엇도 좋지만 먼저 그리고 우선은 항상 내 앞에서 기뻐하라”라고 말씀하셨었습니다.


우리의 속담에도 “웃으면 복이 온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육 간에 참되고 복된 생이 되려면 하나님 앞에서 기쁨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기쁨을 잃지 않는 삶, 기뻐하는 삶을 위해서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기쁨을 잃어버리고 우울과 슬픔, 낙담과 좌절 속에 빠져 있으면 이미 마음이 어두움으로 떨어진 상태요, 어둠의 영들이 주관하고 활동하기 쉬운 빛이 아닌 어둠의 영적인 상태로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결코 좋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어날 수 없습니다.


현상계의 일이란 본래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난 변화가 시간을 두고 현실화 되는 것인데, 영의 세계에서 어둠으로 떨어져 버렸으니 어찌 좋은 일들이 다가오고 일어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마음과 생각을 지켜 평안과 기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도 상황이 어려워서 기뻐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때로는 기쁨을 잃고 슬픔과 낙담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성령 안에서 한없는 기쁨으로 충만한 가운데, 우리를 향하여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한 성경 속의 면면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 안에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거하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차가운 옥에 갇혔어도 감사의 찬송을 올려 드리던 바울과 실라처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어떠한 견고한 것들도 파하는 강력이기 때문입니다.


고후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십시요. 항상 기뻐하려고 애쓰십시요. 영육 간에 복된 생, 축복이 가득한 생이 되기를 바라신다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요. 항상 기뻐하려고 애쓰십시요. 그리고 그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 참으로 머무십시요. 우리를 하나님 안의 기쁨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하나님은 말씀뿐만 아니라 천사들, 그 중에 제가 ‘캔디’라고 이름 지은 천사를 통하여 우리의 삶의 상황이 어떠하던지 얼마나 우리가 삶 속에서 기뻐하시길 원하시고, 또 영적으로 기쁨이 참된 축복의 삶을 위하여 얼마나 소중한 영적 요소인지를 새롭게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십시요. 쉬지 말고 기도 하십시요. 범사에 감사하십시요.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참된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 늘 온전히 거하십시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삶의 의미와 웃음을 잃어버린 무표정한 삶에는 결코 좋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의 원리상 일어날 수 없습니다.


염려가 백해무익하듯이 슬픔도 백해무익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상황이 어떠하던지 둥근 해처럼 둥근 달처럼 주 안에서 환하게 웃으십시요.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요.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요즈음은 처음처럼 그렇게 자주 웃지는 않지만 요즘은 ‘캔디’는 하늘나라의 사랑과 기쁨을 전해 줍니다. 글을 쓰는 이 시간도 영의 시공 속에서 저를 보며 눈빛으로 “사랑해, 기뻐해!”라고 전해 주고 있습니다.


캔디 천사가 전해주는 “사랑해, 기뻐해!”라는 말이 언제나 당신 안에서 기뻐하며 살아가며 복된 생이 되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저와 여러분에게 들려지길 기도해 봅니다. 샬롬!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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