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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진리] 0.01 초

초록 등불 2013. 7. 3. 02:42

 [핵심 진리] 0.01초

 

올림픽이나 각종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그 대회의 백미라고 불리는 종목은 마라톤과 100미터 달리기입니다. 그것은 마라톤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가장 먼 길을 누가 인내력 있게 잘 달리느냐에 사람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가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인 육상의 종목 중 가장 짧은 단거리인 100미터 달리기를 인간이 과연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리는지 관심도 가고 0.01초 혹은 0.001초의 간극을 두고 다투는 10초도 걸리지 않아 결정이 나는 숨 막히는 대결종목이기 때문이겠지요.


특별히 100미터 달리기의 결승을 보면 금은동 메달권이나 아니면 메달을 따지 못하는 하위권은 별로 그다지 시간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대부분 0.01초대의 숨 막히는 간발의 차이로 메달의 색깔이 구별되고, 상급과 영광이 결정되어 버리지요.


그리고 0.01초대의 그 간발의 차이로 어떤 이는 웃고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승자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만, 간발의 차이로 진 자는 아쉬움에 또한 많은 눈물을 쏟곤 합니다.


얼마 전 있었던 올림픽 펜싱 경기에서 우리나라의 모 여자 선수가 1초가 남겨진 상황에서의 심판진의 이해하기 어려운 판정으로 패배하자 눈물을 쏟고 국가적 그리고 세계적인 이슈가 된 적이 있었지요.


메달을 두고 다투는 나라마다의 중요한 사안이니 국가적인 관심과 이슈는 그렇다 하고, 왜 그 여자 선수는 그토록 아쉬워하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을까요?


그것은 그 한번의 대회를 위해서 선수들은 우리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분량의 훈련의 땀을 흘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회와 기회가 자주 오기 않기 때문이요, 어쩌면 자신에게는 인생에서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제가 목회자로 살아가면서 또한 실제적인 영성 사역을 하면서 살펴보니,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상급도 이와 마찬가지 원리로 크나큰 간극이 아닌 0.01초의 차이로 하나님께로부터 상급을 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구별되어 집니다.


이러한 말씀은 사도바울이 말한 성경의 말씀에도 나오지요.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사도바울의 말처럼 운동장에서 달음질 하는 사람이 다 달릴지라도 상을 얻는 자는 오직 한 사람이지요.


제가 이러한 부분을 두고 혼자 조용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령 한 예를 들어서 한 섬마을에 그리스도인이 100 여명 가까이 있다고 상정해 봅니다. 그 중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이 한 사람을 영적 지도자로 세워서 그들을 이끄시고자 할 때 그 중에서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또한 다른 예로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위하여 몇 사람들에게 큰 물질적 축복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재정지기로 기름 부으시고 세우시려고 할 때 수많고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인 모두를 영적 지도자를 세울 수는 없지요. 또 회사가 운영되려면 사원도 있어야 하니 모든 사람을 기업의 회장이나 사장과 같은 재정지기로 세울 수는 없지요. 그 중에서 가려서 적정한 수의 사람만 하나님께서 각 분야의 지도자와 리더자로 세우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렇게 수많고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누구를 선택하시고 세우실까요?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성경은 두 가지 답을 제시하고 있지요. 하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뜻에 의하여 결정하십니다. 가령 예레미야나 세례요한과 같은 경우는 이미 하나님께서 그 삶의 운명을 주권적으로 결정하셨지요.


이러한 부분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한 부분이니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요,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지요.


렘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렘1: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우리의 노력과 여하에 따라서 하나님의 결정이 달라지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부분도 성경은 곳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령 그릇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그릇, 곧 의와 정결의 사람을 쓰신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이나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더욱 큰 것을 맡긴다는 말씀과 같은 것들이지요.


딤후2: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딤후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눅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이러한 말씀과 맞물려 다시 앞의 글로 돌아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는 그 짧은 간극들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삶이나 신앙의 모습들 중 하나님께서 상급자로 책정하시고 귀한 직분과 은총을 주시는 자리에 앉게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위의 성경 구절들을 참고하면 자신의 정결하고 거룩하게 가꾸려고 부단히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이요,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실상 참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부분에 나름 애를 쓰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예처럼 가령 100여명이 사는 섬마을에서 누군가를 모세와 같은 영적 지도자로 세우려고 하신다면 그들 중 한 두어 명 만이 필요한 뿐입니다. 다 노력할지라도 선택을 받는 사람은 한 두어 사람뿐이며 그들이면 족합니다.


물론 그들 중에서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만 귀하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가 많아도 하나뿐이듯이, 하나님께로부터 상급 차원의 선택을 받고 쓰임을 받는 사람은 소수임을 예를 들어서 설명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람처럼 마음을 가지신 분,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중심을 보시니 그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중심을 살피시며 우리의 모든 삶과 신앙의 모습을 살피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을 해 봅니다. 이 두 사람은 다른 모든 부분에서 모두 같은 점수를 받을 만큼 동일하다고 가정을 해 봅니다. 마음의 진실함, 하나님을 향한 사랑, 의와 거룩한 삶을 향한 열정 그러한 모든 것들이 모두 비슷하다고 상정을 해 봅니다.


그런데 단 하나의 차이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예배 때마다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늘 드립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왠지 가장 앞자리는 조금 그러해서 서너 번째 자리나 중간 즈음에 앉아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 이 두 사람 중에 누구를 하나님이 선택하실까요?


또 다른 예를 들어 그런데 단 하나의 차이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예물을 드리는데 같은 정성으로 예물을 드립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예물을 드리는 문구 뒤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다르게 표현할 길이 없어서 늘 하트 표시를 합니다. 이 두 사람 중에 하나님은 누구를 상급자로 선택하실까요?


저는 교사를 해 보았기에 이러한 부분을 잘 압니다.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제자들이 과제물을 제출합니다. 그 중에 하나를 선정해서 상급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 경우 너무도 많은 비슷비슷한 작품들 중에서 고르는 과정을 보면 비슷비슷한 작품들을 모두 일단 제외시킵니다.


비슷하지만 한 사람에게는 없고 한 사람에게는 있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의 특별한 하트 표시처럼 자신만의 특별한 노력과 정성이 보이는 작품을 우선 선정하고 그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상급을 주게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스승의 날과 같은 날이 되면 많은 학생들이 꽃다발과 선물을 안겨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학생들이 기억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할 수도 없습니다. 특별한 정성이 담긴 몇 선물이 기억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의 선물은 아직도 가슴이 뭉클하게 기억이 납니다. 겨울 내내 저를 위하여 손수 털실로 조끼를 만들어 선물을 해 주었습니다. 특별했기에 가슴이 뭉클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행하는 삶과 드리는 예물도 그러한 것입니다. 어떤 행함과 예물은 평범하지만 어떤 행함과 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것입니다.


막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막12: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구원을 보편적이지만 상급은 특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특별한 상급의 반열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주 사소한 간극인 0.01초대의 시간으로 결정되듯이 하나님의 상급의 반열도 그러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또한 그러하듯이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축복을 받고 누리기를 모두 원합니다. 하지만 저의 모습이나 우리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축복을 받고 누리기만 원할 뿐 정작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수 있는 모습의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썩고 죽을 땅의 면류관,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따기 위하여 분초를 다투어 피와 땀을 흐리는 수고와 인내를 감당하면서도, 정작 진정한 축복인 하나님의 축복과 상급은, 말과 마음으로만 바랄 뿐 땅의 썩을 면류관을 위하여 선수들이 흘리는 그러한 노력과 인내를 하지 않습니다. 선한 침노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가령 제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아멘’으로 화답하면 성경의 말씀의 기록대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시고 상급이 되고 축복의 씨앗이 된다고 말씀 드려도 대부분의 분들이 행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사람의 영광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참 지혜의 눈과 마음을 가져서 썩지 않을 하늘 상급의 원리와 가치를 알고 침노하는 자는 늘 여상히 그렇게 행합니다.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가령 교회예비나 집회를 인도하시는 목사님이 가능하면 앞자리에 앉으셔서 은혜를 사모하십시요라고 권면을 드려도 대부분의 분들이 행하지 않습니다. 그냥 인간적인 부담이 적은 중간 즈음이나 뒷자리에 앉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사람의 영광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참 지혜의 눈과 마음을 가져서 썩지 않을 하늘 상급의 원리와 가치를 알고 침노하는 자는 늘 여상히 그렇게 행합니다.


가령 구원은 보편적이지만 상급은 특별하며 제한적이고 말씀을 드려도, 마음과 말로는 축복을 사모하고 바라지만 정작 행위로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눈에 들도록 참 지혜의 눈을 가지고 특심한 열심을 보이는 사람은 참 드뭅니다. 그냥 평범한 모습이거나 대충 행하시면서 특별한 축복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상급과 축복, 특별한 영권과 능력은 하나님을 향한 평범한 열정이 아닌 특심한 열정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선택하신 이유도, 비록 처음에는 몰라 그리스도를 대적하였으나 사도바울을 선택하신 이유도 그의 그릇됨이 특심하였기 때문입니다.


왕상19:10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더 많은 예를 들 수 있겠지만 두어 가지 예라도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실 줄 압니다.


신앙상담이나 사역을 하다보면 우리는 사람의 성정을 가졌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저 자신도 솔직히 그러한 면이 있지만, 우리의 관심을 온통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혈과 육에만 있습니다. 부와 귀와 건강과 명예들뿐입니다.


고전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혈과 육의 썩을 것을 위해서는 정말 치열한 선의의 싸움을 합니다. 가령 좋은 조건의 어떤 선착순 당첨과 같은 상황이 생기면 밤을 새워서라고 기다리며 줄을 서서 그것을 받으려고 정말 치열한 선의의 경쟁과 싸움을 합니다. 좋은 명예의 자리를 위해서 수십 년의 공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썩지 않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급과 반열을 위해서는 마음과 말로만 바랄 뿐 침노하는 노력이 없습니다. 올림픽 메달을 간극의 차이로 놓친 사람이 아쉬워 흘리는 눈물과 사모함이 없습니다.


그러한 눈물이 없음은 그러한 사모함이 없기 때문이요, 그러한 노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니 우리가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진정 지혜로운 눈과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과 상급의 영원한 가치를 알기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얻기 원하는 사람의 마음에 비할 바 없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노력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하늘의 진주를 사려고 노력하고 애씁니다.


제가 인도하는 영성 집회에도 어떤 사람은 가만히 그리고 편안히 앉아서 인터넷상으로만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특심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영의 세계와 그 원리도 아는 만큼 능력이 되고 힘이 되고 축복이 되는 것을 알아,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지만 매번은 아니라도 그래도 성실히 참여를 합니다.


집회에 오셨거나 오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형화된 하나님의 규범적 말씀을 선포해야만 하는 인터넷상과는 달리 공개적으로 나누기는 어려운 참으로 다양하고 유익한 영의 세계와 일들과 원리들을 다룹니다.


땅 속에 깊이 묻힌 작은 보석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유추하고 살피고 여타의 자료나 문득문득 주시는 영감 안에서 다양하고 폭 넓은 영의 세계와 현상계의 일들을 살펴 설령 다소 오류가 있을지언정 참으로 삶과 영성과 기도의 응답과 축복에 유익한 것들을 나눕니다. 그리고 성실히 행하시는 분들은 그러한 열매를 거두어 가시는 것들도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특심한 열심을 가지고 비록 쉽지 않은 여정이나 성실히 참여하기를 애쓰고 사모합니다. 많은 분들이 거리나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참여하시지 못하여 안타깝지만 어떤 분들은 사정과 여건이 되시는데도 이러한 집회 등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상급과 축복을 사모하고 침노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죄악의 삶에 하나님의 형벌과 징계가 속히 임하지 않듯 그러한 특심한 열정의 삶의 열매도 쉽게 열매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땅에 좋은 씨앗이 떨어져도 열매를 맺는데는 수고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듯이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듣고 또 들으며 마음에 생명이 되고 행위의 그루터기가 되면 반드시 자신과 후손으로 물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거대한 축복의 물결을 흐름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니까요.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은 보이지 않는 배후의 치열한 영적 전장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수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에 속한 참된 것들을 받아 누리지 못하도록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행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사람의 영광을 구하게 하는 것들이요, 작고 사소한 육신의 감정과 마음으로 흔드는 것들이요, 하늘의 썩지 않을 영광을 보지 못하게 하는 혼미함 같은 것들이요, 육신에 속한 정욕을 쫓게 하는 것들이요, 육신의 안락함과 편안함을 추구하여 조금 더 눕자 자자 쉬자 하는 것들 등 다양합니다.


하지만 참 지혜의 눈을 가지고 구원을 넘어 하늘 영광과 상급의 가치 있음을 아는 사람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얻기 위하여 분초를 다투는 특심함 열정으로 땀 흘리는 선수들처럼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특심한 열정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곧 다른 평범한 아니 특심한 열심을 가진 그리스도인들보다도 0.01초라도 더 앞서 하나님의 상급을 받아 누리가 위하여 더 특심한 열심으로 애를 씁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가 모든 일에 절제를 하듯이 하늘의 영화로운 상급과 가치를 위하여 세상을 것들을 절제하며 하니님 사랑과 상급을 위하여 특심한 열심으로 달려갑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이 땅의 축복을 사모함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하늘을 향한 특심한 열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 땅의 풍성함의 지혜임 또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지혜로운 눈이 있어서 0.01초를 다투는 특심한 열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서, 하늘의 상급과 축복과 더불어 이 땅에서도 하늘의 평강과 축복을 가득 받아 누리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 샬롬!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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