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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진리] 40%가 준 교훈

초록 등불 2013. 7. 10. 00:07

 [핵심 진리] 40%가 준 교훈

 

다소 당황하며 신앙상담을 마친 후, 곁에 영으로 보이는 하얀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께 다소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이게 뭐예요?, 이게 뭐예요?”


다소 마음의 안정을 잃은 당황스런 상태에서 그렇게 물으니 성령님도 날개를 펄럭이며 이리저리 날더니 제가 다소 안정을 찾자 조용히 눈으로 바라보며 눈으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왜 그래?”


신앙상담이 들어오면 시간이나 체력이 허락되면 기도하면서 영적 감각으로 이런저런 상황들을 살펴봅니다. 그러면 다소의 오류가 있기도 하지만 영으로 다양한 정보들이 지식의 말씀으로 들어옵니다. 물론 성령께서 역사해 주시는 안에서만 알게 됩니다.


영적 상태, 마음의 상태, 삶의 환경의 문제, 때로는 체구나 생김새, 성격 등의 다양한 정보들이 영으로 읽혀져 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그분의 영으로 접속하여 마음과 영을 읽어도 보고, 중보기도나 예언의 말씀을 위한 기도를 통하여 주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내용과 의미를 대략적으로 살펴봅니다.


물론 이러한 영적 정보를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당시의 영적 상태가 맑고 고요해야 하며, 그렇게 맑은 영적 상태에서 영적 정보를 받게 되면 모든 영의 일의 그렇듯이 다소 오류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맞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한 번은 제가 기도하며 받은 영적 정보와 상담을 통해 확인한 실제가 너무도 틀렸습니다. 글의 제목은 40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가 고난이라 40%라고 적었지만 실제는 20%도 제대로 맞지 않았습니다.

그런 경우는 처음이라 상담을 해 드리면서도 개인적으로 무척 당황이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해 주시지 않으면 그냥 인간적인 대화일 뿐이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명의 상담은 되지 못하니까요.


그렇게 전화상담을 마치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채 조금은 당황스런 마음으로 곁의 성령님께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아니, 이게 뭐예요? 이게 뭐예요? 이렇게 틀려서 무슨 영적 상담을 하고 사역을 해요?”


제가 다소 마음의 안정을 잃은 상태에서 당황하며 물으니 하얀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도 제 마음처음 이리저리 날며 제 곁을 맴 돌더니, 제가 다소 안정을 찾자 고요하고 맑은 눈빛으로 저를 가만히 바라보며 눈으로 조용히 물었습니다.


“너는 왜 그러니?”


“왜 그러다니요? 아니 이렇게 받은 지식의 말씀이 틀리면 무슨 상담을 하고 사역을 해요?”


그러니 다시 조용한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제가 다시 가슴으로 깊이 각인되는 한 말씀을 눈으로 전해 주었습니다.


“너는 왜 그래? 성경이 뭐라고 말씀해? 예언이나 그런 것들은 오류가 있으니 분별하랬잖아.응?”


그 말씀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다시금 영적 사역의 분별에 대하여 중요한 진리의 가르침이라, 그런 경험을 통하여 예언이나 지식의 말씀이나 모든 영적 정보의 분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가슴으로 새기게 되었습니다.


고전14: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여러 분들과 신앙상담을 하다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대부분 현실적인 문제 등을 예언이나 하나님의 음성 등으로만 분별없이 따르고 행하다가 큰 어려움을 당하여 호소하는 경우들입니다.


예언을 한다는 분의 말을 듣고 무슨 사업을 시작하였거나 건물을 구매하였거나 진로를 선택하였거나 하였다가 그 예언대로 되지 않아서 큰 어려움을 당하며 호소를 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봅니다.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는 것은 예언이라는 것에 대하여 예언 사역을 하시는 분도, 그리고 그 예언을 듣는 분도 영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저도 과거에는 이런 부분들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는 분도 없고 일반 교회의 사역들이 대부분 평범한 말씀 사역이기에 잘 알지 못하였기에 이해는 되지만, 주님께서 영의 세계를 열어 주시고 이러한 부분들에 대하여 가르치시고 나누게 하신 후로는, 영의 일들에 심각하게 무지한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현실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영적 지식의 무지는 일반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사역자인 목회자들도 다수가 그러하십니다. 저 또한 그러했구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다양한 영적 신호들을 영적 깊이와 개인적인 다루심 안에서 다소 통로가 다양하고 다르지만, 느낌과 생각, 꿈과 환상, 이러한 모든 것들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 내 안의 생각이 스며 든 것, 그리고 사단이 끼어든 것의 세 가지가 대부분 항상 섞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분별은 생명입니다.


특별히 신앙생활을 위한 권면적 예언이 아닌 맞느냐 틀리느냐의 현실적인 문제를 다룰 때는 정말로 신중하게 다양한 부분을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인 문제는 100%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틀리면 그 사람의 인생전체에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예언 사역이란 그런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며 성령의 나타남 또한 간헐적입니다. 대부분은 신앙생활과 영적인 삶을 위한 말씀들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예언이나 이러한 것들은 방언을 대부분 누구나 말하듯이 특별한 은사나 능력이 아닌 사실상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역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을 보면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하고 있지요. 너희 모두는 각 사람에게 모두 예언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요.


고전14: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무슨 예언 사역을 하신다는 분들도 사실상 특별한 분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통역의 원리와 작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방언 통역을 잘 하지 못하다가 알게 되면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또 할 수 있듯이, 예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언 사역을 하신다는 분들도 물론 성령 안에서 다소 깊은 세계를 경험하고 영적으로 다소 깊은 통로와 차원을 통하여 말씀을 받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예언 사역에 대하여 목회자 세미나나 훈련 등을 통하여 이론으로 배우고 익혀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언은 다소 깊은 통로, 가령 환상을 보며 예언을 한다거나 아니며 평범한 통로를 통하여 한다거나 모두 오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으로 오는 모든 신호들에는 앞에서 말한 세 가지의 것이 섞여 들어갈 개연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오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언 사역을 하시는 분들이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설명을 피하고, 맞았던 예언만을 골라 간증하고 자신만이 무슨 특별한 은사 능력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자신만이 신령한 것처럼 행동하고 보이려는 심리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언이란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언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능입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고전14: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은사란 다름 아닌 성령의 때를 따라 나타나심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때를 따라 각종 은사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이 예언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틀릴 수 있는 오류 앞에서 두렵고 떨리지 않습니까? 이것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예언사역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의 일은 항상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하고, 또 오류가 있을 수 있기에 두렵고 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 상태에 따라서 다소 유동적이지만 실제적으로 오류가 항상 있습니다.


고전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고전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렇게 여러분 자신이 예언을 할 수 있는데 두렵고 떨리듯이 모든 사역자도 마찬가지인데, 여러분 스스로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과 음성을 명확히 알기 어렵듯이, 예언 사역자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물론 영적 깊이와 은사 발현의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분별의 어려움과 오류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보면 예언을 분별없이 그대로 맹신하고 따르다가 어려움을 당한 경우를 참 많이 듣게 됩니다. 나아가서는 예언 사역을 한다면서 그 예언으로 성도를 위협하고 묶고 조종하려는 어둠의 영에 사로잡힌 사역자 분들도 적지 않게 이야기를 듣습니다.


성령께서 행하시는 예언을 보면 책망성의 예언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격렬하게 꾸짖고 나무라시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안위하고 권면하고 위로를 하는 말씀들입니다.


그리고 물론 그 예언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어려움을 당하는 그런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 사람을 위한 것이지, 예언자 자신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어 사람을 묶고 매이게 하려는 예언사역자는 잘못된 사역자입니다. 어둠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예언이 항상 질타성이고 날카롭고 비판적이고 위협적인 분은 조심하십시요. 성령 안의 예언을 그러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예언이 그러하다면 이는 영적으로 잘못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잘못된 이유는 영성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개인적인 탐심이 틈을 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에 대한 깊고 바른 이해력을 가지십시요.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예언 사역자들과 저의 경험과 그리고 깊고 풍성한 다양한 자료를 살펴본 결과, 예언은 많이 틀립니다. 현실적인 문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고 설령 정확한 예언이 나온다 할지라도 듣는 입장에서의 분별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성경의 역사가 분명하게 말해 주지 않습니까? 성경에 참 선지자와 예언자로 기록된 사람들은 대부분 당시엔 다 외면당하고 핍박당하던 사람들입니다.


오늘날도 그러하지만 당시에도 무수한 사람들의 선지자나 예언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 400여명과 참 선지가 미가야 한 사람의 경우가 이를 말해 주지 않습니까?


그렇게 숱한 선지자나 예언자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들의 말이 실증된 이후에 후세에 와서야 참 선지자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정확한 예언도 희귀하거니와 또 다른 문제는 듣는 사람의 분별 또한 쉽지 않기에 하나님의 뜻과 음성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더욱이 구약은 성경이 없었기에 선자자나 예언자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 시대이므로 더욱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선지자의 신중함도 무게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진 이 시대의 예언은 더욱 오류의 가능성을 많이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이나 예언이나 영으로 오는 모든 것들에서 분별은 생명입니다. 바르고 깊은 영적 지식이 없으면 사역자도 자칫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고, 또 지식과 이해가 없이 예언을 맹종하듯 믿고 따르다보면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는 완전하지만, 인간의 연약성으로 인하여 오류가 있으며 그러므로 오직 기도만으로 성령님의 역사만으로를 주장하며 나아가면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 하나님과 성령님의 역사에 대하여 배우고 익혀 깊은 이해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롬 10: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딤후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그러므로 성경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만을 고른 것이 아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골랐다고 말하고 있으며, 고린도교회에서 성령의 역사가 많았으나 지식이 없어 혼동함으로 사도바울이 이를 가르치고 배우게 한 것입니다.


행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그런데 이러한 것들에 대한 영적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여 늘 점치듯 예언을 받기를 좋아하고 또 그렇게 예언하고 따르다가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을 너무도 많이 보게 됩니다. 예언을 그렇게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아닙니다.


간헐적으로 즉흥적 예언을 성령께서 하게 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경우도 신중한 분별이 필요하며, 그러므로 성숙한 예언자는 신령한 말과 행동을 취하며 예언을 하거나, 자신의 예언을 절대시 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예언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한 사람 앞에서는 그냥 상담을 하듯이 예언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절대적 의미를 지닌 신탁처럼 받아들이니까요. 그리고 예언자 자신이 아닌 피 상담자 스스로가 분별하고 내적 증거를 통하여 확증하도록 인도하지, 결정적인 말로써의 예언은 가능하면 피합니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보면 또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겪는 현실적인 문제의 어려움의 극복은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통한 경건한 삶의 온전한 회복 안에서 접근하고 풀어나가야 하는데, 이러한 힘겨운 정도의 노력은 피하고, 점을 치듯 족집게 비방을 구하듯 예언자를 찾아다니시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시장에서 불건전한 구매요구가 불건전한 상거래를 형성하게 되듯이, 이러한 점을 치듯 족집게 비방을 구하는 마음으로 예언자를 찾는 사람들 때문에 어쩌면 점을 치듯 예언하는 예언자가 지속적으로 나오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심리적으로 극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그런 비방을 듣고 구하려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의 정로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삶을 돌이키고 온전한 경건을 회복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신중하게 분별하며 접근하고 자신도 지혜와 노력을 발휘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로요, 정도입니다.


모든 영의 일들이 어떤 이론과 형식으로 정형화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이러한 것이 기초적인 이해와 지식으로 깔려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제게 특별히 무수히 많이 틀린 지식의 말씀을 경험하게 하심으로 실존적으로 이러한 부분을 깨우치고 또한 가르치셨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식의 말씀으로 살피던 영의 상태의 깊이가 얕았고, 또한 제 안에서 어떤 선입감이 있어서 그렇게 그릇되게 지식의 말씀을 받았던 것 같더군요.


이처럼 영의 일에는 항상 오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분별의 중요성과 생명됨을 잊지 마십시요. 성령께서 너는 왜 그러느냐고 질문하신 후 성경의 말씀으로 깨우쳐 주셨듯이 영의 일에서 분별은 생명입니다. 샬롬 !


고전14: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고전14:30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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