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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비 상

초록 등불 2013. 7. 14. 22:41

 [영성의 글] 비 상

 

이른 아침에 잠이 들었다가 낮 시간에 눈을 떴습니다. 잠시 밖에 눈을 붙이지 않았는데 숙면을 취한 탓인지 다소 피로감도 해소 된 듯 하여 집회 자료 준비를 한 동안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잠을 청하여 오후 늦게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는 주님 앞에서 잠시 기도와 찬양의 경건 시간을 가졌습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니 오늘도 여상히 천사 ‘순동이’가 영의 시공에서 나타나 함께 찬양하며 주 안의 거룩한 기쁨을 전해 줍니다.


시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제가 경건시간에 함께 해 주는 천사들을 ‘순동이’라고 부르는데 그 중의 한 천사는 특이한 표정을 잘 짓습니다.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깨무는 듯한 표정인데 예뻐서 그런지 그 표정도 참 귀엽습니다. 저도 그렇게 귀엽나 거울을 보면서 해보면 아니더군요.


그런 순동이가 제가 하나님 앞에서 찬양을 올려 드리면 영의 시공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간간 하늘을 자꾸만 위로 날아올라가는 모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도 함께 하늘로, 또 하늘로 함께 올라가는 것만 같습니다. 하늘을 향하여 ‘비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경건시간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려니 집에 아무도 없습니다. 개인적인 일들로 나갔다보다 생각하고는 반찬 두어 가지를 꺼내서 간단히 식사를 하였습니다. 낮밤을 거꾸로 지내다보니 거의 혼자 식사하는 시간이 많아서 제가 혼자 간단히 차려 먹는 것이 일상이 되어갑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장마철이라 우산을 챙겨들고 습관을 좇아 산책겸 운동을 나섰습니다. 밖으로 나가니 경건시간에 늘 나타나 함께 해주는 순동이 천사처럼, 땅의 하늘 공주님들인 송이와 귀염이와 깜찍이가 반갑게 맞아줍니다. 그 중 귀염이가 제일 발랄합니다.


주님 안에서 점점 고요해져만 가니 하늘 공주님들의 재롱도 보이는 듯 아니 보이는 듯 고요히 길을 걸어만 갑니다.


사람마다 개성과 특징이 있듯이 천사들도 그러한데 제가 걷는 산책로에는 요즘 하얀 들국화가 많이 피어 있습니다. 하루는 길을 걷다가 하얀 들국화가 길 바로 곁에서 자로 있기에 얼굴을 가까이 하여 꽃향을 맡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곁의 귀염이가 함께 하얗게 웃어 줍니다.


그리고 보니 귀염이는 하얀 들국화를 닮은 듯한 느낌이더군요. 반면에 송이는 봄날의 개나리와 같은 느낌, 곧 포근한 느낌입니다. 깜찍이는 하얀 장미와 같은 단아하고 예쁜 그런 느낌의 천사입니다.


오늘도 길을 걸어가니 들국화가 귀염이 같고 귀염이가 들국화 같습니다.


한 이틀 곤하여 나름 잠을 푹 잤음에도 다소 몸은 무겁더군요.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를 전해야 하기에 영으로 주님을 불렀습니다. 영의 세계는 마음의 세계, 곧 생각의 세계이므로 영으로 부르면 임하십니다.


주님이 영으로 나타나 함께 길을 걸어주시더군요. 그래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오늘은 무슨 말씀을 전할까요?”


주님이 간단히 말씀하시더군요. “내 안의 쉼과 소망”


그렇게 하늘 공주님들과 주님과 영으로 교통하며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니 간간 빗방울이 굵어지기도 합니다. 그 빗방울 사이로 간간 주도적인 영으로 ‘캔디’천사도 나타나서 한없이 맑은 눈망울로 저를 바라보곤 합니다.


모든 빛의 영들이 그러하지만 캔디 천사도 그 맑은 눈망울과 모습을 바라만 보아도 제 마음과 영이 밝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 눈빛에는 전해주고 싶은 하늘빛 사랑과 정결과 기쁨이 가득합니다.


비는 간간 내려 저는 우산을 쓰고 길을 걷는데, 하늘 공주님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저를 즐겁게 해 주려고 앞에서 기쁘게 뛰놉니다. 저는 음악을 좋아하여 늘 들으며 산책을 하곤 하는데, 귀염이는 앞에서 하나 둘 셋 지휘봉을 들고 박자를 맞추어 주며 함께 기뻐하곤 합니다.


귀염이의 그 눈동자를 가끔 유심히 바라보면 전해 주고 싶은 하늘의 기쁨과 사랑이 가득한데, 가끔은 한편 힘겨운 생을 살아가는 저를 아파하는 안쓰러운 눈빛이 담겨있습니다. 오늘도 그 눈빛이 담겨 있더군요.


귀염이의 그런 눈빛을 마주하면 한편 아픈 많은 생을 살아온 저, 애잔히 눈물이 스미거나 가끔은 순간이지만 왈칵 눈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험해보니 제가 슬퍼하면 천사들도 슬퍼하는 것을 알기에 요즈음은 저도 슬픈 듯 아니 슬픈 듯 그렇게 저를 자제하지요.


영의 눈이 열린 후 밖으로 나가면 저의 눈에는 온 세상에 늘 은은한 신령한 하늘빛이 어려 있습니다. 아니 이 세상의 풍경과 함께 신령한 하늘빛의 영의 시공이 함께 보이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보이는 이 세상은 한편 참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한편 그렇게 아름다운 이 세상의 우리의 생의 길에는 참으로 아픔과 수고로움도 많지요. 결코 적지 않지요.


생을 살아오면서 육체적 정신적 이런저런 고통과 상처를 많이 받아보았기에 제가 느끼는 생의 무게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가볍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삶에는 그런 수고로움 위에 우리가 또한 포기하고 버려야 하는 것들도 너무도 많습니다. 비록 한시적인 생이지만 이 땅에 속한 것들도 참으로 아름답고 갖고 누리고 싶은 것들도 실상 많습니다. 비유컨대 아름다운 꽃들과 풀들과 진귀한 보석들도 이 세상에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반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버리고 손에서 놓는 아픔을 감수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것이 설령 부모나 자식일지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런데 주님께 다루심을 받고 보니 낮은 차원의 영적인 삶은 죄와 악을 멀리하는 차원의 삶이면 되지만, 높은 차원의 영적인 삶은 이 세상의 건전한 즐거움도 한편 가지치기를 많이 해야 합니다.


가령 음식을 먹는 것이 죄가 아니지만 모세가 그리하였듯 하나님의 깊은 계시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금식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기다려야 하고, 때로는 그러한 금식의 시간을 통하여 간간 자신을 돌아보며 정결하게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구약시대에서는 율법적 법령으로 제정되어 시행되기도 하였지요.


이러한 원리는 모든 것들에 마찬가지입니다. 즐겁게 노는 것이 죄가 아니나 마음껏 놀면서 하나님 안에서 깊은 영의 세계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다른 즐거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이유는 세상의 것들로 우리의 마음에 세상에 속한 즐거움이 가득하면 하늘의 참된 즐거움을 향한 갈망이 작아지기 때문이요, 또한 대가를 지불함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이나 영의 세계에서나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늘의 높은 영적인 빛의 조명을 받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저의 자발적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손길이라 아무 자랑할 것도 없고 부끄러울 뿐이지만, 이제 3여년 가까운 시간 사람과의 만남도 세상의 즐거움도 거의 없이 그냥 주님 앞에서 그리고 안에서 대부분 홀로 지냅니다.


한편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영들의 흐름에 민감해 지면서 세상의 속한 것들을 가까이 하기가 힘이 들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육신과 성정을 지닌 사람이기에 이러한 생활에 지루함과 가끔은 답답증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저와 그런 분들과 전혀 비교할 바 못되지만, 그릿 시냇가에서 홀로 지냈던 엘리야나, 아라비아에서 십수 년을 홀로 보냈던 사도바울이나 밧모섬에서 홀로 긴 세월을 지냈을 사도요한을 생각해 보곤 합니다. 산이나 광야에서 살았던 옛 선지자들의 삶을 생각해 보곤 합니다.


저야 그래도 곁에 가족도 있고 마음이 원하면 바람도 쏘이고 취매 생활이나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삶은 한편 얼마나 힘겨웠을까라는 그런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러한 대가지불이 있었기에 그런 높은 영계의 영적 차원의 삶을 살수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어쨌거나 주님의 다루심 안에서 그러한 생활을 하면서 지내다보니 이제는 땅에 속하여 사는 것도 아니요, 아직은 온전히 하늘에 속하여 사는 것도 아닌 묘한 삶과 시간 속을 거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내면의 속성과 성향이 바뀌어 땅을 향하여 내려앉을 수도 없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가령 혹여 잠시 실족의 삶을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면의 하늘을 향한 갈망 때문에 땅 위에 마냥 머무르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 땅에도 아름다운 것들도 많고 가지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것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신령한 빛을 보고 나니, 그 모든 세상의 것들은 찬연한 진짜 보석 앞에 빛을 바랜 가짜 보석처럼 그 빛이 흐립니다.


그런 세상을 향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하늘에 어린 저 신령한 푸른 빛, 마치 수정빛 생명수에 몸과 마음을 담고 씻은 듯한 거룩함이 마음과 몸에 어리는 듯 합니다.


아직 이 땅을 거닐고 있으나 이미 땅에 속한 자가 아닌, 제 곁에 언제나 하늘의 신령한 빛과 기운으로 머무는 하얀 세마포의 수많은 천사들의 무리 속에 조금씩 다가서는 저를 보게 됩니다. 아직 온전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신령한 빛, 곧 하늘의 신령한 빛이 제 마음과 몸에도 조금씩 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경험 가운데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존귀하고 영화로운 존재인지를 보게 됩니다.


집회나 예배를 인도하고 있노라면, 영의 눈으로 보면 주님은 강단의 보좌에 좌정하여 계시고 천사들은 열린 하늘 사이로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시립하는 듯 주님의 곁에 서 있는 그 가운데 서 있는 저 자신을 보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영화로운 왕족, 아니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인 황족인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 영화로운 자리에 온전히 이르기까지 저나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길이 결코 순탄하거나 평탄하지 않은 것은 삶 속에서 절감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또한 이 땅 어디에도 그러한 쇠하지 않는 영화로움과 참다운 기쁨도 없는 것을 이제는 가슴으로 압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한 비상의 날갯짓을 멈추지 않으려 애씁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으로 찬양을 불러 붑니다. 제 영의 찬양을 영으로 들어보면 가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날은 이울고 저물어 새들도 둥지를 찾아 들어가 안식하고, 참새도 제비도 제 보금자리를 얻었네. 그러나 나의 영혼의 쉴 곳은 아버지의 품 밖에 없사오니 오늘도 아버지여 그 품에 나를 안아 주소서..”

시84: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성경이 말하듯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수고로움도 많고 또한 성정을 지닌 사람이기에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취하고 누리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지만, 그러나 그 모든 얽매이기 쉬운 사슬을 끊어 버리고 하늘을 향하여 비상하여 나가아야 합니다. 그곳이 우리의 본향이요, 영원히 거할 처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잠시 시간을 내어 갖는 경건 시간에 영의 시공간에서는 천사 ‘순동이’가 나타나서 저와 함께 찬양하며 함께 기뻐하여 주었습니다. 가끔은 천사 ‘순동이’는 자꾸만 하늘을 향하여 날아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면 저도 함께 하늘로 날아올라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늘 하늘로 비상하며 올라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오늘은 그렇게 제 앞에서 하늘로 비상하며 날아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던 천사 ‘순동이’가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렇게 환하게 웃으면 해를 닮은 해동이,달을 닮은 달동이가 따로 없습니다.


별빛처럼 예쁘게 아미진 눈망울과 하얗게 웃는 얼굴을 바라보면, 세상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온전한 기쁨의 웃음, 그 웃음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제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어립니다. 왜냐하면 저 순동이가 누리는 하늘 기쁨이, 이 아픔 많고 수고로움 적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멀지 않아 제 것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니까요.


주님이 오늘 제게 전하여 주라고 하신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참된 쉼과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

이 세상의 삶에 수고로움과 아픔이 적지 않지만,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신앙의 여정이 결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매일 하늘로 비상하여 날아 오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만 내면의 참된 쉼이 있고 궁극의 쉼과 상급과 기쁨과 영생과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샬롬 !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골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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