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고유자료/초록 영성의글

[영성의 글] 수수께끼

초록 등불 2013. 7. 30. 13:34

 [영성의 글] 수수께끼

 

제가 어린 시절에는 오늘날처럼 과학문명이 발달된 놀이가 많지 않아서 다소 자연 친화적인 놀이들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아이들의 놀이 문화였지요. 그런데 그런 와중에 동화와 같은 이야기나 수수께끼와 같은 것들로 시간을 보내거나 즐거움을 삼았던 기억도 납니다.


참 재밌고 재치 있는 수수께끼와 그 해답도 많았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는 것이 별로 없네요.


그런데 최근에 제 마음 속에 제 삶이나 우리의 인생자체가 수수께끼라는 생각이 맴돌더군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나 이 세상이나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수수께끼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신 것과 그 말씀이 참이요, 진리인 것을 믿지요. 하지만 성경이 모든 것들을 소상하게 다 말씀하고 있지 않고 복음의 핵심인 구원에 이르는 길을 주제로 다루는 만큼 우리에게 수수께끼처럼 머무는 질문도 참 많지요.


사도바울은 우리의 이러한 생의 실존에 대하여 지금 우리가 아는 것은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다”라고 말하였지요.


고전13: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믿고 아는 것은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여 온전하지 못하며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수수께끼처럼 맴도는 질문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질문을 나열하자면 수십 장의 질문을 기록하여도 부족하겠지요.


여러분도 그러하겠지만 저의 생도 돌아보면 참으로 수수께끼와도 같습니다.


어린시절의 기억 중 어느 차가운 겨울날의 한 추억이 기억이 납니다. 저는 어린시절 여자아이처럼 피부도 하얗고 눈이 초롱초롱 나름 귀여운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다닐 때에도 선생님들의 사랑도 많이 받고는 하였지요.


그런 어느 차가운 겨울날 문득 거울 속의 제 모습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하얀 피부에 눈이 초롱초롱한 제 모습이 보이더군요. 겨울의 차가운 기운데 볼이 발그레 붉어진 제 모습이 보이더군요. 어린 나이라도 미적인 감각은 있는 바, 싫지 않은 거울 속의 저의 발그레 귀여운 모습을 보며 혼잣말처럼 해보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아마 내 인생의 살아갈 날들은 아름다운 무지갯빛이고 행복할거야!”


어린시절의 많고 많은 일들 중 대부분의 일들은 잊어 버렸는데, 어쩌면 별스런 일도 아닌 어느 일상의 이 일이 유난히 제 기억 속에 반짝이는 것은, 혼잣말처럼 되뇌던 말과는 달리 너무도 힘겹고 아픈 생을 살아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마다 생의 양지와 음지의 기억이 있겠지만, 저의 생에서는 이러한 양면이 극명한 것 같습니다.


삶을 살아오면서 부모와 사람들로부터 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보았습니다. 친구들, 학교 선생님, 고향을 떠나 국내 유학 공부를 하던 시절에 어머님 같이 사랑을 주시던 하숙집 아주머니, 교사시절엔 제자들, 목회자로 살아가면서도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그리고 제 것이 아니니 자랑할 것은 못되지만 주님이 주신 명석한 머리로 학교는 언제나 가장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그 속에서 자부심과 어쩌면 자신감도 가지며 살아왔었지요.


하지만 이면의 음지에는 또한 너무도 많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가난과 그 속에서의 아픔도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진 육체의 숱한 질병의 세월 속에서 받은 육체의 고통과 그리고 마음의 좌절과 아픔들을 수없이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10세 때부터 몸의 이런 저런 병을 앓으며 살아왔으니 넓게 보면 지천명의 나이에 이른 지금 40여년을 아프며 살아온 셈이요, 좁혀 두드러진 병증과 고통으로 살아온 시간으로 환산하여도 20~30여년의 세월을 아프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사람의 생은 그 근본이 육체의 건강인데 그것이 없었으니 그에 동반되는 삶의 이런저런 부수적인 아픔과 좌절과 그로 말미암은 이런저런 문제들로 겪은 마음의 고통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아픔을 겪으면 눈물을 흘리며 웁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해보니 눈물을 아직 흘린다면 극한의 아픔은 겪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극한의 이런저런 아픔을 통과하니 눈물이 마르더군요.


그렇게 양지와 음지가 극명하게 얽힌 저의 삶을 돌아보면 제게는 수수께끼 같습니다. 왜 저의 삶은 한편 행복하였으며 또 한편 이토록 또한 아팠는지 수수께끼 입니다. 어떤 어려움은 저의 성정이 신중하지 못하여 스스로 초래한 것들도 있겠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성정이란 어쩌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면도 있는 것이니 그것 또한 수수께끼입니다.


요즈음의 제 삶과 생활도 수수께끼입니다.


그렇게 아픈 세월을 살아오면서 심신이 지쳐서 쓰러진 후, 얍복 강가의 야곱처럼 눈물로 기도하는 제게 하나님은 놀라운 영의 세계와 영광의 세계를 열어 주셨습니다. 아픔이 있는 곳에 은혜가 있는지 이전의 삶 속에서도 간간 평범하지 않은 영적 경험을 허락하셨지만, 지금은 제가 생각해도 과분하고 놀라운 하늘 영광의 영적 경험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영의 세계와 그 속의 일들을 깊이 고찰하며 살아가는 지금, 깊은 영의 세계의 영적인 현상들은 세 가지의 요인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으로 오는 것으로 성령의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사단의 역사로 악한 영의 역사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영의 세계의 영적인 현상이 아닌 정신 병리적인 현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평생 한번도 보기 어려운 주님의 영과 천사들과 영적인 존재들의 모습이 제게는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의 생활, 가끔은 저도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 앞에서 어떤 심리적인 작용일까 스스로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영적인 세계의 열림과 동시에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발현이 되고, 성령의 능력이 몸에 임하고 흐르는 그러한 역사와 또한 영분별의 궁극은 그 열매인데 제게 나타나는 영적 현상의 아름다운 빛을 볼 때, 이는 분명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 진리의 역사입니다.


마7: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영으로 신비롭게 열려 보이는 영의 시공, 그 안에는 늘 제 곁에 주님이 영으로 곁에 계십니다. 성령님도 하얀 비둘기 형상의 모습으로 보이십니다. 세마포 옷인 듯 빛나는 흰 옷을 입은 아름다운 천사들의 무리도 언제나 제 곁에 있습니다.


그런 하늘의 영광스런 빛의 세계가 열린 이후의 저의 경건시간이나 예배 시간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영광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장님이 눈을 떠서 아름다운 세상의 빛을 보듯 이제는 그런 하늘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이 어린 천사들과 함께 경배하고 예배하는 시간은 참으로 거룩한 황홀입니다.


행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영의 눈이 열리게 되면 하늘에서 비추어 주는 신령한 빛의 칼라를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설명 드리면 우리가 햇살을 보면 계절에 따라 다른 느낌을 갖게 되지요. 또 다양한 색깔의 빛을 보면 그 빛마다 우리가 느끼는 느낌이 다르지요.


영의 눈이 열리게 되어서 영적인 빛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로부터 비추어지는 영적인 빛의 색깔을 느끼게 됩니다. 가령 사랑, 평강, 온유, 기쁨 그런 것들이지요.


하나님께서 제게 요즘 가장 강하게 비추어 주시는 빛은 ‘하늘빛 사랑’입니다. 영의 눈으로 보면 사랑의 색깔이 담긴 빛이 언제나 하늘로부터 비추입니다.


제가 경험하는 이러한 모든 영적인 일들도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사실은 아직 제게는 수수께끼입니다. 저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편 제게 또 다른 큰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전한 아픔 가운데 두시는 하나님의 뜻, 섭리입니다. 그렇게 사랑을 주시면서도 여전한 아픔 가운데 두시는 이유입니다.


저는 아플 때는 정말로 많이 아픕니다. 한 가지 병증만도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인데, 제게는 그런 병증들이 몇 가지 겹쳐 있습니다. 겉모습은 멀쩡해 보이지만 스스로 느끼는 몸의 내적인 상태는 허물어지기 일보직전의 건물 같은 느낌을 많이 아플 땐 느끼곤 합니다. 최근에 그렇게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그렇게 아프면 마음이 힘들어지곤 합니다. 그렇게 아프고 힘들 땐 영으로 보이는 주님과 성령님, 그리고 천사들은 가만히 바라보곤 합니다. 왜 이렇게 아픈지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들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요, 제게는 힘겨운 수수께끼이지요.


수많은 천사들이 곁에 보이지만, 룸메이트처럼 지내는 영적 친구들은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 서양 소년 모습의 하얀 세마포를 입은 ‘청이’천사, 그리고 학교 보조 교사처럼 아담하게 생긴 동양 여자 모습의 날개달린 천사 ‘옥이’입니다.


많이 아프면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서로 마주보며 앉아 있습니다. 반상회를 하듯이 방상회를 하지만, 그저 서로 바라만 볼 뿐 저의 아픔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모두 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위로와 평강을 전해줄 뿐이지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도 제게는 답답한 수수께끼이지만, 가끔은 사람인 저와 영적인 존재들과 그렇게 넷이 앉아 있는 모습도 수수께끼입니다.


글을 서두에서 말씀 드렸듯이 어쩌면 우리 자신과 이 세상과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상의 것들과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세상의 일들과 영적인 세계의 모든 일들이 사실상 그 내용을 근본적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수께끼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우리의 삶에서 수고와 가난과 아픔과 질고와 죽음을 말씀하고는 있지만, 정작 그러한 어려움을 당하는 우리에게는 피하고 싶고 물음의 답을 구하고 싶은 수수께끼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성경이 인류의 원죄의 삯임을 말하고 있기에 답을 알고 있는 수수께끼가 아니지만 벗어나고픈 우리의 ‘왜?’라는 질문은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긴 세월 숱한 행복과 아픔, 영광과 눈물의 삶을 살아가면서 이제는 제게 수수께끼가 아닌 정답과 해답을 아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는 참된 행복도, 소망도, 희망도, 만족도, 쉼과 안식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 건강하기에, 아직 부요하기에, 아직 젊기에 이 진리를 가슴으로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진리에 빨리 눈을 뜨는 것만큼 세상의 삶도 진리 안에서 지혜롭고 가치있게 살아갈 수 있고, 영원한 가치의 하늘 진주를 땅의 모든 것을 팔아 사는 빛과 생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직 우리에게 빛과 소망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요, 그분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생명과 그 생명의 나라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수수께끼와도 같은 삶을 살아가면서 결코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과 그분에 대한 온전한 믿음뿐입니다. 아멘!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샬롬] 내용 중 상당한 부분을 인용하시거나 원본을 그대로 게제하실 경우는, 출판을 염두에 둔 글과 말씀들이니 출처 부분을 남기셔서 저작권을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카페규칙 상 스크렙 및 링크가 허락되지 아니한 게시판에 부지 중 올렸다면 먼저 죄송한 맘 전합니다. 소식 주시면 글올림을 삼가거나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카페운영에 어려움 주지 않기 위하여 저작권 유의 배경음악과 그림자료 살펴 조심하고 있습니다 / 감사 드립니다. 늘 평안하세요. 샬롬..

 

 Home  cafe

 

 

배경음악(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