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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영생의 빛 (2)

초록 등불 2013. 8. 28. 16:59

 [영성의 글] 영생의 빛 (2)

 

요즈음의 저의 생활에서 잠시 쉴 겸보는 유일한 드라마는 사극 ‘허준’입니다. 오래전부터 동양의학에 많은 관심이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예와 법도와 의자(醫者)로서의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는 조용한 드라마라 영적으로 보기에도 그렇게 힘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드라마를 보면 실제인지 꾸며낸 이야기도 많은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허준은 아버지는 양반으로서 벼슬을 지낸 사람이지만 그 어머니가 천민인지라 자신도 천민에 불과한 서자로서의 한없는 힘겨움과 눈물의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의원인 유의태라는 스승을 만나 그 심성의 올곧음을 인정받아 사람을 진정으로 긍휼히 여기며 돌보는 심의(心醫)로서의 훈련을 받으며 깊이 의학을 익히지요.


드라마의 줄거리를 적는 글이 아니라서 자세히 적을 수는 없지만, 드라마의 초기에는 이러저러한 어려운 일들이 너무도 많이 전개되는데 보면서 드라마의 내용의 안타까움에 동화되어 저도 마음이 많이 안타까웠지요. 산 너머 바다요, 바다 건너 또 태산 같은 숱한 시련과 역경의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인고의 장구한 긴긴 세월 속에서 그 깊은 심성과 심혈을 기울여 익힌 의술을 인정받아 최근에는 드디어 왕의 건강을 돌보는 ‘어의(御醫)’의 자리에 오릅니다. 오랜 인고의 세월 끝에서 옛날의 의자(醫者)라면 누구나 꿈꾸었던 가장 높은 반열에 오릅니다.


그런 성취에 허준 자신도 많이 기뻐하지만 함께 눈물과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온 가족들도 좋아하지요. 그리고 이제는 조금 평화롭고 여유로운 삶을 꿈꾸지요. 평생 심의(心醫)로서의 고결한 꿈을 가지고 달려온 인고의 긴 세월의 끝에서 맛보는 영화로움,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결과를 보면서 저도 참 흐뭇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흐뭇함도 잠시 드라마를 보니 왜군이 침략을 해 와 다시금 허준의 가족이나 허준 자신이나 온 나라와 백성이 아비규환의 전장 속으로 빠지더군요. 드라마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간단하게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 그러한 난을 겪은 사람들의 어려움은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러한 드라마 속의 끝없는 생의 이런 저런 시련의 이야기의 흘러감을 보면서 저와 우리의 생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의 살아온 생들을 생각해보고, 저의 가족들의 살아온 생들을 생각해보고, 이웃들의 삶을 생각해 보고 선조들의 삶을 생각해보고, 창조 이래 살다가 간 온 세대와 살고 있는 온 인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날 과학문명의 발달로 나름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도 이토록 수고로움과 힘겨움이 많은데, 과거의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얼마나 삶의 어려움들이 많았겠습니까?


깊어가는 밤 홀로 조용히 누워서 하나님 안의 신앙을 떠나 이러한 우리의 생의 실존만 생각해보니, 조금 과장되어 표현하면 인생이라는 것이 마치 집을 떠나 누더기와 같은 초라한 옷을 입고 혼자 살아가다 어느 이름 없는 곳에서 생을 마치는 노숙자요, 나그네와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인생의 삶의 실존이 참으로 초라하고 가련하기가 짝이 없더군요.


하나님 밖에서 바라보면 인생이란 조금 더 즐기고, 조금 더 좋은 것을 먹고, 조금 더 좋은 옷을 입고, 조금 더 좋은 집에 거하기를 바동바동 애쓰다 그 바동거림 속에서 만족도 얻지 못한 채 홀연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우리 인간의 세상의 삶의 실존이지요.


창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세상의 부귀명예를 누리는 사람이나 천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나 모두가 결국은 일반이며, 건강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나 병고를 안고서 살아가는 사람이나 모두가 결국은 일반이며, 세상에서 무엇을 이루어 역사 속에 그 이름을 남기는 자나 별스런 일을 남기지 못하여 무명한 자나 결국은 일반이며 그 모든 것이 일반이며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전2:16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부귀와 명예를 누리고 건강하여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좀 더 많은 것을 취하고 누리고 올라, 좀 더 즐거우며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더라도 보아도 들어도 족함이 없이 그 마음의 채워지는 만족이 없으니 일반이요, 빛처럼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시간에서는 왕이나 천민이나 그 누구나 모두 일반이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이니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전1: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곧 가슴으로 깨닫게 될 이 사실을 지식으로는 알면서도 여전히 좀 더 즐기고 가지며 오르고 누리기를 온 마음을 두고 대부분 살아가지요.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바 썩는 양식인데도 말입니다.


요6:27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제가 육신의 연약함 속에서 생의 궁극을 알고 나니 정말로 세상의 그 모든 것들은 참으로 헛되고 헛된 것일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과 시간만이 참된 의미와 가치를 가질 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이 참 빛이요, 소망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며 그 속에서 살아가고 행하는 것들만이 생의 영원한 가치입니다.


하나님 밖에서 세상을 향하여 살아가는 삶은 아무리 풍요롭고 즐거운 열락의 환경에 놓여 있다할지라도, 부귀영화 속에서 무수한 이방 여인을 사랑하며 세속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빛의 지혜를 잃어버리고, 무지몽매한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 우상을 섬기다가 자신뿐만 아니라 나라마저 곤고와 사망의 삶으로 떨어뜨렸던 말년의 비참한 솔로몬와 그 결국이 같을 뿐입니다.


세상을 가만히 살펴보니 예수님의 말씀처럼 한편으로는 세상의 풍요로움은 도리어 저주가 되고 화가 되며, 도리어 세상의 가난함이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복됨입니다.


눅6:25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눅6: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오직 우리의 생이 더 이상 가련하지도 않으며, 사람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죽음마저도 도리어 영광이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푸르른 생명의 빛, 영생의 빛을 품고 살아가는 삶뿐입니다. 하나님 밖에서의 삶은 그 무엇도 초라한 삶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의와 진리의 삶, 곧 육신의 소욕을 좇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하늘의 영의 소욕을 좇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부활과 영생에 대한 실존적인 믿음과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첫 사람 아담을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과 심판에 따라 이렇게 힘겨운 생을 만물이 탄식하며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둘째 아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안에 주신 영생과 유업의 하늘나라를 참으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번 태어난 것인 분명한 실재이듯이 한 번 죽는 것도 분명한 실재이며 그 이후에는 생에 대하여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을 정녕 가슴에 새기고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죄 사함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주신 영생에 대한 확고한 부활 신앙을 소유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오직이요 유일한 소망의 빛인 영생의 빛이 우리의 마음과 가슴에 충만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막연한 소망이요, 꿈이며, 이상인 것이 아니라 실재인 것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많은 이적과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죽은 나사로의 살리심과 당신 곧 예수님 자신의 부활입니다.


다른 사람도 살리기도 하셨지만 사람의 생명이 진정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후 찾아오셨습니다.


이미 육체가 썩고 부패하여 냄새가 나는 시간이 흐르게 하신 후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 당신 안에 생명이 있음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나사로야! 나오너라”라는 큰 외침으로 그를 사망에서 건져내어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요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요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그리고 나사로의 생명은 육체의 한시적인 생명의 부활이었지만, 또 다른 영원한 영적 생명의 부활이 있음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 영원한 생명의 부활은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손으로 만진 바 된 참된 실재였습니다.


요일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15:4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15: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고전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고전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고전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가슴에는 언제나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충만하여야 합니다. 충만한 영생의 빛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의 빛만이 우리의 마음의 참된 빛이요, 소망일뿐입니다.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영화와 그 모든 것을 누린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바라보면 인생은 조금 더 좋은 것을 먹고 조금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조금 더 즐거움을 누리자 바동바동 애쓰다 만족함도 얻지 못한 채 어느 이름 모를 길모퉁이에서 죽어가는 초라한 것이 우리 인생이지만, 이 영원한 생명의 빛 안에서 우리의 삶을 바라보면 거지 나사로처럼 가난과 병고의 삶을 살아갈지라도 그 생은 결코 존재의 의미나 삶이 초라하거나 기쁨과 소망이 없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육의 모습은 그러하나 영의 눈으로 바라보면 영화로운 하나님의 자녀요, 육신의 생명이 끝나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이 어린 거룩한 천사들에 의하여 받들려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서 세세토록 주와 영생과 영광을 누리는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눅16: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러므로 우리의 가슴에는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는 믿음 안에서 언제나 영생의 빛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 영생의 빛이 충만할 때 우리는 썩고 쇠할 땅의 것을 버리고 하늘의 거룩한 영광을 위하여 거룩한 삶을 소망과 기쁨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제 밤에도 운동 겸 산책을 잠시 나갔습니다. 영의 눈으로 보니 하나님께서 사랑과 평화의 빛을 온 가득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천사들과 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길을 걸었습니다.


저의 경우 방언으로 기도를 하는 경우는 각종 방언을 말하며 언어가 수시로 달라지지만, 방언으로 영의 찬양을 드리는 경우는 용어가 아주 단순해지며 영어가 많이 섞여서 나옵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Holy Lord”입니다.


하지만 이 외에 자주 나오는 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용어 중 “Hidding Lord", "power Lord"가 있습니다. 곧 “숨어 계시는 하나님, 비밀의 하나님, 그러나 권능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와 세상의 시작도 보이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숨겨진 비밀의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고,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도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하나님, 숨겨진 비밀의 하나님, 그러나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권능의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 권능의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에 우리의 소망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결국을 알듯이 우리의 결국은 결코 이 땅에 보이는 반열과 누림과는 전혀 다릅니다. 영생의 빛 안에서 밝혀질 결국이 영원한 우리의 결국이요, 진정하고 영원한 반열과 누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모두 이 영원한 생명의 풍성한 빛을 언제나 가슴에 품고 썩고 쇠하는 땅이 아닌 영원한 영광의 하늘을 향하여 사도바울과 같이 소망과 기쁨으로 열심히 달려가는 복된 삶이면 참 좋겠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아멘. 샬롬!


딤후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고후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롬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롬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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