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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초록 등불 2013. 9. 2. 19:33

 [천사 이야기]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의 경우 일반적으로 잠을 자고 일어나는 그 시간 마음도 몸도 곤할 때가 많습니다. 눈을 뜨면 시큰한 몸의 상태가 느껴지고 몸이 상쾌하고 개운하지 않으니 마음도 힘겨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보통 눈을 뜨면 잠시 동안 그냥 조용히 누워 있습니다.


이제는 적지도 않은 나이이니 어린시절에는 힘들어하면 어머니가 오셔서 다독다독 위로해 주시곤 하셨지만 이제는 그런 어머니도 곁에 아니 계시고, 가족들은 직장으로 학교로 떠난 텅 빈 집에 홀로 눈을 뜨면 자연스럽게 하늘의 위로를 찾고 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방에서는 저의 가장 가까운 영의 벗인 소년 모습의 천사 ‘청이’를 찾게 됩니다.


곁의 영적인 존재들은 의식을 하든지 아니하던지 늘 아슴아슴 눈에 아른거리지만, 정작 그 모습을 제대로 마주 보려면 마음과 영으로 보려고 해야 합니다. 영의 세계는 마음의 세계라 “보려고 해야 보이고, 들으려고 해야 들립니다”


하얀 세마포를 입고 어떤 때는 꼭 아들처럼 느껴지는 청이를 가만히 바라보면 제가 기뻐할 것과 마음을 평안히 할 것을 말해주며, 하늘의 위로를 조용히 전해 줍니다.


그렇게 전해주는 하늘의 위로와 사랑 속에 조용히 있다보면 차가운 겨울대지를 비추는 햇살 속에서 땅이 따스함을 회복해가듯이 저의 마음도 그렇게 조금씩 따뜻해져 갑니다.


물론 곁의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이나 청이에 비하면 다소 나이가 들어보이는 날개 달린 귀여운 모습의 ‘옥이’천사도 늘 함께 있곤 하지만, 오늘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청이’이니 청이 이야기 위주로 써 나갑니다.


앞선 글에서 기록하였지만 ‘청이’는 눈이 서글서글한 서양소년 모습을 한 천사입니다. 늘 하얀 세마포를 입고서 제 곁에 있습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제 곁에서 서서 가만히 글 쓰는 것을 바라보고 있고, 제가 혼자 기도하고 찬양하는 경건 시간에는 등을 기대어 앉거나 곁에서 혼자 놀곤 합니다. 잠자리에 들면 가끔은 마주보며 말없이 눈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가족들과 활동 시간대가 달라 혼자 식사를 하는 시간이 많은데 식사를 할 때면 곁에서 혼자 앉아서 놉니다. 가끔 텔레비전을 보거나 하면 곁에 함께 앉아서 보거나 가끔은 저의 팔을 베고 누워서 함께 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오류가 있듯이 제가 잘 분별하여야 하지만, 가령 오늘의 날씨라던가 하는 것들을 물어보거나 하면 눈으로 알려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 곁에서 하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영분별’의 역할을 합니다. 영의 세계와 영의 일들에 관하여 공부를 하려고 이런저런 자료를 접하다보면 어떤 경우는 손으로 저의 눈을 가립니다. 그런 경우는 진리와 비진리가 섞여 있는 경우입니다.


제가 밖으로 나가면 즐겁게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거나 귀여운 몸동작으로 저를 즐겁고 기쁘게 해 주려는 동서양 어린 소녀 모습들의 천사들과는 달리, 청이는 제가 보면 빙그레 웃으며 제 뒤로 곧잘 숨곤 합니다.


가끔 영으로 예수님이 오시면 대부분 하얀 세마포를 입은 청이와 비슷한 어린 소년의 손을 잡고 오시곤 하시는데, 그 때도 소년 천사들은 예수님 뒤로 숨었다 살짝 얼굴을 내밀며 웃고 또 숨었다가 살짝 얼굴을 내밀며 웃곤 합니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니, 소년 모습의 천사들이 소녀 모습의 천사들처럼 제 앞에서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면 별로 귀엽게 보이거나 제가 즐겁지 않을 것 같더군요. 아직은 성별의 구분을 가지고 살아가는 육에 속한 저이다보니 남녀의 느낌이 다르니까요.


그런 생각을 통해서 소녀 모습의 천사들이 춤추는 것이나 소년 모습의 천사들이 살짝 숨으며 웃음을 안겨 주려는 것이나 모두 제게 하늘의 기쁨과 즐거움을 전해주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지요.


오늘의 이야기의 주제의 흐름으로 들어가 볼까요?


다른 많은 글들에서 말씀 드렸듯이 저는 한편 참 행복하고도 또 참 아픈 생을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석한 머리로 세상에서 말하는 엘리트 코스의 삶을 살아보기도 하였고 돌아보면 사람들로부터 사랑도 참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건강의 연약함으로 그것과 동반된 무수한 생의 아픔과 좌절을 겪으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 아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체의 삶의 기본이 건강인데 그것이 없었으니 그로 인한 아픔과 좌절을 참으로 많이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건강이라고 하는 것이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참 쉬운 것이고 또 아프다가도 쉽게 회복이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난치성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수단을 쓰도 정말 회복과 치유가 되지 않는 난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나름 명석한 머리로 현대의학으로 안되니 한의학과 자연의학 계열을 공부해보고 살펴보지 않은 것이 없고,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이 거의 없고,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의 웬만한 질병은 한약과 침술 등으로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지요. 그동안 제가 직접 배우고 조제하여 나름 싸게 먹은 한약의 양도 얼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주님 안에서 그러한 생의 아픔이 많이 그리고 거의 치유가 되었지만, 한동안은 그러한 아픔 속에서 받은 삶과 마음의 상처들로 시시로 울컥 눈물도 많이 흘리곤 하였지요.


그러나 주님 안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연약함과 아픔 가운데 두신 것이 한편 하나남의 사랑이요, 배려요, 손길인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보니 솔로몬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 사람이란 건강을 포함한 모든 환경적인 것들이 풍성해져 가면 대부분 타락한 본성을 따라 죄악과 어둠의 길로 향합니다. 육신의 정욕을 좇는 향락의 길로 향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지혜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이 아닌 초상집에 있으며 근심함으로 사람의 마음이 말게 된다고 전하는 것 같습니다.


전7: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전7: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


저는 마음의 바탕인 천성은 선하고 순수한 편인 듯하기는 하지만 의지와 심지가 곧고 옳은 것은 행하고 불의는 행하지 아니하는 도덕형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지와 사랑에 나오는 이성적인 인물의 나르치스보다는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골드문트에 가까운 성정을 지녔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틀과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성격이다 보니 어떤 그 시간의 감정의 물결을 타고 제 마음이 원하는 것들을 좇는 삶의 시간도 많았습니다.


엡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런 저의 성격과 살아온 날들을 가만히 돌아보면 마냥 제가 건강하고 모든 환경적인 것들이 풍요로운 생의 시간을 살아왔더라면, 육신적으로는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더욱 많은 죄를 지으며 영적으로는 참으로 어두운 곤고한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


마냥 편안하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 두셨더라면 구원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적지 않은 세월의 삶 속에서 생의 궁극을 알아가는 가운데, 사생자처럼 마냥 편안한 환경 속에 두지 않으시고 고난과 아픔을 통하여 삶의 길을 돌이키게 하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히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히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다윗과 같이 고난 받은 것이 참으로 유익이라 고백하게 됩니다.


시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이런 저의 삶의 날들과 세상의 면면을 살펴보니, 사람이 마냥 건강하고 마냥 풍요로우며 마냥 높음의 자리에 머뭄이 축복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마냥 배부르며 웃는 날들을 사는 사람들의 삶이 대부분이 축복이 아닌 도리어 화인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경건의 도 안에서 누리는 세상의 풍요로움은 참된 축복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도리어 그 풍요로움이 영적으로 눈을 가리고 어둡게 하고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영적인 어둠으로 젖어들게 하는 화입니다.


눅6:25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도리어 세상에서 가난하고 주리고 병들고 아파서 우는 자들의 삶이 영원의 눈으로 바라보면 복된 삶인 경우가 많습니다.


눅6: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의 풍요로움 가운데 젖어드는 죄성 때문에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처럼 어렵다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입을 열어 하나님의 복음과 참된 복을 설파하시면서 전하신 처음의 말씀들이 이러한 것들인 것입니다.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들이 복이 있으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가 세상과 성경을 살펴보니 사람의 본성은 부패하고 타락하여 항상 맑은 날씨 속에 있는 환경은 사막으로 변하여 갈 수밖에 없듯이, 항상 풍요롭고 안락한 환경 가운데 있으면 자연스레 흘러오는 죄악의 어둠과 유혹의 물결을 물리치지 못하고 대부분 그 어둠의 물결 속으로 떠내려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선민으로 택하신 지극히 작은 나라 이스라엘에게 온 나라 가운데 가장 많은 시련과 고난의 시간을 걷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시간 동안 시시로 적지 않은 고난과 시련의 시간을 거닐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 땅의 한시적이고 아침 안개와 같이 사라질 덧없는 부귀영화가 아닌 영원한 참 생명의 나라와 영원한 참 기쁨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무슨 일이나 어떤 환경 속에서나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상한 하나님 경외와 사랑 속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려 애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마침내의 궁극의 참된 복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기 위하여 가지가지 시련을 주시기 때문이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이며, 그러한 하나님의 고난과 연단이 없다면 이는 하나님이 버리신 사생자이기 때문입니다.


신8: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신8: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제가 세상을 살아보고 말씀을 살펴보니 세상에서는 우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웃는 자에게는 화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 인간의 본성은 타락하여 그 마음이 연락하는 집에 거하게 되면 그 시간부터 어둠과 타락과 멸망의 길로 접어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이치요, 그 이후에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는 것을 알아 늘 하나님 앞에서 겸비한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전7: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아무리 세상적으로 풍요롭고 좋은 환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가난하고 애통해 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우는 마음을 잃어버려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도 육신의 가난함 가운데서 육으로나 하나님 앞에서 영으로나 애통한 시간을 거닙니다. 하지만 육의 삶의 궁극을 알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영생의 빛 안에서 웃음과 미소를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돌아보면 하나님 앞에 미안한 마음 밖에 없는 부족한 제게 하늘의 문을 활짝 열어 버리시고 언제나 하늘 영광의 빛을 보게 하시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제게 당신의 선하심 가운데 값없이 주시는 한없는 사랑과 평강과 위로 앞에서 애통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제게 늘 곁에 천사들을 두시고 그들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모든 것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번 집회를 인도할 때도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 하나님은 한 천사를 보내셔서 한없이 그 눈빛으로 당신의 사랑을 전하고 또 전해 주셨습니다. 세상의 어떤 꽃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천사는 “사랑해요. 사랑해요..” 끝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었습니다.


가끔은 늘 곁에 두신 제 방의 룸메이트인 ‘청이’천사를 영의 세계는 마음으로 교감하니 생각과 마음으로 업어 줍니다. 업어 주면서 “청이야, 하고 싶은 말이 뭐니!”라고 가끔 물어봅니다.


그러면 청이가 대답을 합니다. “사랑해요. 기뻐해요..”


세상의 삶으로 보면 한없이 아픈 삶을 살아온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위로입니다.


세상을 살아보고 살펴보니 우리의 삶에는 참으로 너무도 많은 아픔과 시련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에게도 그러합니다. 하지만 기뻐하십시요. 삶과 성경을 면면히 살펴보니 오히려 그리고 도리어 우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주 평강 전합니다. 샬롬 !


눅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6: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눅6:22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눅6: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눅6: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눅6:25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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