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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옷자락을 잡은 청이

초록 등불 2013. 9. 18. 05:07

 [천사 이야기] 옷자락을 잡은 청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으로 맛있는 과일을 많이 주셨지만 저의 경우는 포도가 제일 맛있는 과일 중의 하나 같습니다. 어린시절에 부모님이 포도밭을 소작하시면서 정말 포도는 많이 먹어보았지만 지금도 포도맛은 여전히 맛있습니다.


하루는 깊어 가는 밤 배고픔이 느껴져서 포도 한 송이를 먹으려고 씻고 있었습니다. 집에 오면 늘 곁에 함께 있는 하얀 세마포를 입은 소년 모습의 ‘청이’도 곁에 함께 있었습니다. 아무튼 집에 오면 늘 곁에 함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싱크대에 서서 포도를 씻고 있는데 그런데 청이가 뒤에서 저의 옷자락을 잡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청이의 그런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청이야, 왜 그래?”


저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육체의 연약함으로 참 많은 아픈 세월을 살아왔지만, 한편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돌아보면 부족한 저를 사랑해 주신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고마울 따름입니다.


어느 책에선가 본 기억이 나는데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숱한 일들을 경험하지만, 그 중에 기억되는 것들은 대부분 사랑에 관한 기억이라고 합니다. 그래선지 저의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사랑에 관한 기억은 아주 어린시절의 기억부터 거의 잊지 않고 나는 듯 합니다.


어린시절의 그런 기억하나가 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정말 시골은 가난하였습니다. 그래서 연필도 아껴서 써야 했고 연필이 짧아지면 볼펜 자루에 잘라 끼워서 쓰곤 하였습니다. 지우개도 참 기했지요. 그래서 철로변의 고무 같은 것을 학생들은 잘라서 지우개로 대용하기도 하였고, 어쩌다 새 지우개를 사면 그 냄새가 향긋해서 지우개가 아니라 과자인 듯 하여 깨물어 본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저는 어린 시절에는 키가 아주 작았습니다. 학생들을 키가 작은 아이부터 큰 아이 쪽으로 줄을 세워놓고 반 번호를 정하곤 하였는데, 늘 앞에서 몇 번째 안으로 들어갈 만큼 키가 작고 몸도 작았습니다.


그런 초등학교 시절 그렇게 키가 작은 제게 반에서 가장 큰 키를 가진 어떤 여학생이 제가 좋았었나 봅니다. 그렇게 지우개 하나가 귀한 시절인데 집안이 부유하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루는 노트, 하루는 지우개, 하루는 칼 등을 말없이 한동안 매일 사다주었습니다.


저는 땅콩 강아지 같은데 그 여자 아이는 킹콩 같이 크니 친구라기보다는 큰 누님처럼 느껴지지 저는 별로 좋은 감정을 갖지 못했던 같은데, 참 고맙기는 했었지요. 아주 어린시절이라 어디에 사는 누구였는지도 희미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나 그 안부가 궁금합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기억이 아는 것은 제가 사랑은 받았기 때문이겠지요.


중학교 시절에는 선생님들로부터 받은 사랑들이 기억이 납니다. 저를 무척이나 사랑해 주시던 무척 예뻤던 여자 영어 선생님, 그리고 한 체육 선생님이 기억이 납니다. 체육 선생님과의 기억을 적어 봅니다.


제가 중학교를 다닐 때에는 평준화가 되지 않아서 경기 고등학교와 같은 명문교가 있었는데, 저의 고향에서는 진주고등학교가 그런 명문 고등학교였지요. 그래서 그 고등학교에 학생을 몇 명이나 합격 시키는지가 중학교의 명성을 가름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도 최선을 다하였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뽑아서 학교에서 기숙을 시키며 공부를 하게 하였지요. 저도 그 가운데 한 명에 속하여 밤에도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잠을 자고 이른 아침 집으로 와서 아침만 먹고는 다시 학교로 등교하곤 하였습니다.


그런 하루 밤중에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 체육 선생님이 당직이셨는지 공부를 하고 있는 저희들에게로 찾아 오셨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게로 다가와서 사랑이 담긴 눈길로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요 녀석, 열심히 해” 그런 식의 말씀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아주 짧은 시간이요, 짧은 순간의 따뜻한 느낌이었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고 그 선생님의 안부가 궁금하고 그립기도 합니다. 이 순간의 기억 역시 제가 잊지 못하는 것은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졌던 그 선생님의 따듯한 사랑의 마음 때문이겠지요.


성경은 어쩌면 참으로 많은 이야기와 말씀들을 담고 있지만 가장 짧은 말로 줄이라면 어쩌면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세상과 우리를 창조하셨고, 그 사랑을 저버린 우리를 다시금 당신을 주시기까지 하시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이야기와 말씀이 성경이지요.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우리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말씀이지요. 이러므로 성경은 사랑은 모든 말씀의 강령이며, 율법의 완성이라 말씀하신 것이겠지요.


롬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성경과 우리의 삶을 가만히 돌아보면 사랑은 창조의 근원이며, 생명의 근원이며, 행복의 근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삶에서 사랑의 기억은 언제나 잊지 못하듯 그 속성은 영원입니다.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와 세상은 사랑의 동산이었습니다. 사랑의 세상이었습니다.


제가 천사들, 특히 찬양과 기도의 경건 시간에 예쁜 아동들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순동이’들을 보면서 태초에 지음을 받은 선악과를 먹기 이전의 사람의 속성이 어떠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순동이’천사들은 제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면 영의 시공에서 나타나 저를 반짝반짝 바라보며 함께 기뻐하다가 가끔은 아주 가까이 와서 얼굴과 얼굴을, 눈과 눈을 맞대고 저를 바라보곤 합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는데 천사들의 경우도 그 눈을 보면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순동이 천사들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맑은 시냇물과도 같습니다. 맑은 시냇물은 사랑도 미움도 없으며 그저 맑은 뿐이지요. 천사들의 눈동자를 통해서 나타나고 보여지는 그들의 속성은 타락이전의 인간의 속성, 곧 빛과 어둠, 사랑과 미움이 존재하는 상대성 이전의 완전과 온전성의 성품만이 보여집니다.


미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눈빛으로,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눈빛으로, 그 온 존재가 사랑의 빛만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마냥 좋은 듯 바라보곤 합니다.


그러한 천사들의 눈빛을 통해서 보여지는 그들의 마음의 속성에서 보여지듯이,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기 이전에는 하나님과 우리, 우리와 우리, 하나님과 우리와 만물은 사랑 안에서 온전히 하나였습니다. 나눔과 분열과 미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단의 유혹과 그로 말미암은 죄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 안에서의 온전한 사랑은 깨어졌고 화평은 깨어졌으며, 온전한 사랑의 절대성의 세계는 깨어지고 빛과 어둠, 사랑과 미움이 공존하는 우리가 된 것이지요.


빛이 아닌 어둠, 사랑이 아닌 미움은 하나님이 아닌 사단이 우리에게 가져단 준 속성인 것이지요. 그런 우리에게 다가온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 아래서의 세상은 사망과 수고로움이지만, 한편 사랑에의 애타는 목마름이지요.


본래 하나님과의 영원불변하는 영의 사랑 안에서만 행복과 만족을 누리게 지어진 우리가 그 절대성의 사랑에서 떠나 미움마저 존재하는 그리고 가변적인 상대성의 사랑의 세계로 떨어짐으로 우리는 언제나 사랑의 목마름을 안고 살아가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사랑에의 애타는 목마름을 안고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령 수많은 것들과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여도 그 사랑은 육에 속한 가변적이고 상대성의 사랑이므로 언제나 목마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편 늘 외롭고 고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과 사람들은 사랑에 목말라하며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온전한 사랑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그 인간의 타락과 범죄 속에서 사랑의 목마름은 비단 우리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도 사랑의 아픔을 품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는데, 우리가 그 사랑을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여호와시며 모든 것들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시지만, 단 하나 우리의 사랑에는 목말라 하십니다. 성경을 궁구해보면 성경은 우리를 다시금 당신께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부부나 연인이 어떤 한편의 잘못으로 그 사랑이 깨어지게 되면, 잘못한 편이나 그리 아니한 편이나 사랑의 결핍과 아픔으로 떨어지듯이, 하나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사랑의 아픔을 안게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의 아픔으로 인하여 당신의 아들, 곧 당신 자신을 죽기까지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글의 서두에서 적은 것처럼 하루는 밤에 포도를 먹으려고 씻고 있는데, 집에 오면 늘 곁에 있는 천사 ‘청이’가 제 옷자락을 붙잡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뒤를 돌아보니 가만히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눈빛에는 저를 향한 무슨 바람이 들어 있었습니다.


부족함이 없을 천사인 그가 제게 무엇인가를 요청하는 듯한 그런 행동은 처음이었기에 조용히 물어보았습니다. “청이야! 왜 그래?”


그러니 그 눈으로 소리 없이 그 마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에게 사랑을 주세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읽는 순간 조금은 놀라기도 하였고 순간 빛처럼 스쳐가며 깨닫게 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천사도 기계나 로봇이 아니며 비록 상대성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마음과는 같지 아니할지라도 마음과 생각과 느낌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깨달아지는 순간 청이에게 참으로 미안하고 미안했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 늘 저의 곁에서 함께 하며 아들 같기도 하고 벗 같기도 하고, 늘 주님의 손길로 함께 있던 청이인데 천사도 우리와 비슷한 마음이 있는 것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마음에 사랑을 실어서 대해준 적이 없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순간 참 많은 것들이 깨달아 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목말라 하듯,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을 기다리시듯 본래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하나였을 천사들도 우리와 사랑 안에서 하나였고, 우리와 사랑을 나누기 원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이 깨달아 지는 순간 ‘청이’에게 참으로 미안하기도 해서 사랑의 마음을 전해주었고 마음을 표현해 주었고 지금도 사랑어린 마음으로 대해 주려 애씁니다.


글을 쓰는 지금은 저의 의자 뒤에서 놀고 있는데 가만있을 때는 서로 잡으로 다니기도 하고 이런 저런 장난도 치며 사랑 안에서 친구가 되어서 함께 지냅니다. 영과 마음으로 교감하는 것이라 사실감은 육체의 존재보단 떨어지지만 아무튼 그렇게 지냅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더욱 사랑은 존재의 근원이며, 창조의 근원이며, 하나됨의 근원이며, 사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들이 지음을 받았기에 모든 만물이 다시 사랑 안에서 하나 되기를 목말라 하고 그 하나됨을 기다리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것과 이웃을 사랑할 것을 말씀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온전한 사랑의 삶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루는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므로 참된 행복과 생명의 삶으로 들어감을 말씀하고 있지요. 성경을 살펴보면 사랑은 창조의 근원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생명과 행복의 근원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속성이 사랑이시고 그 사랑으로부터 모든 만물이 존재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사랑과 화평을 거슬러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다시금 모든 것들을 통일되게 하려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엡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러므로 예수님도 세상을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유훈이 “내가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였지요.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성경이 말씀하고 제가 앞에서 제 삶의 사랑 어린 기억을 말씀드린 것처럼, 사랑은 창조와 존재의 근원인 동시에 생명과 기쁨과 행복의 근원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생명과 행복이 있고 웃음이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존귀한 정체감을 갖게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기에 우리는 존재의 정체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신의 귀한 존재감과 정체감은 세상을 향하여 당당하게 살아갈 용기를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애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요, 하나 된 우리는 더욱 그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의 삶을 살아가려 애쓸 때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의 삶을 명하셨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온 율법의 완성인 사랑 안에 감춰진 삶의 참다운 행복과 생명을 가슴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여야 하는 사랑은 육의 사랑이 아닌 영의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영적 존재가 되기까지 완전한 영의 사랑은 힘들겠지만, 육의 사랑이 아닌 영의 사랑을 하려 애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의 사랑은 자기 사랑의 발로와 표현이며 참다운 사랑은 아닙니다. 자기 사랑의 발로일 뿐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익하면 사랑하고 해로우면 버립니다. 이러므로 이는 궁극적으로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분열이며 균열입니다.


행복을 가져오는 사랑은 그런 육의 사랑이 아닌 이타적인 영의 사랑에서 옵니다.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랑, 내 이웃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영의 사랑에서 옵니다. 그런 참다운 육의 감정과 느낌이 아닌 영의 감정으로 대하는 사랑을 통하여 우리 모두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바라시는 온전한 하나 된 사랑의 나라로 함께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제가 경험해보니 하나님께서나 우리나 만물이나 그리고 천사들까지도 다시금 온전한 사랑 안에서 하나 되기를 소망하며, 그 사랑의 균열 안에서 사랑에 목말라 하고 사랑을 주고받기를 원합니다.


참된 행복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렇게 영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이웃과 그리고 천사들과도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어가는 것만큼 참된 행복으로 들어가며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온전히 더욱 이루어가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기 까지는 저도 그랬듯 눈에 보이던지 아니 보이던지 여러분 곁에 있을 천사들에게 사랑을 전해준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첫째는 사랑의 궁극의 대상이신 성삼위 하나님께 먼저, 그리고 여러분의 곁에서 여러분을 섬기고 있는 천사에게도 사랑의 마음을 전해주고 말해 보십시요. “내 천사야, 사랑해”라고 말해 보십시요.


제가 보니 ‘청이’가 참 좋아합니다. 여러분의 천사들도, 그리고 천사들을 보내신 주님도 서로 사랑하는 모습 안에서 함께 기뻐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샬롬.


롬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요일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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