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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 이야기 ◇ 순종

초록 등불 2013. 9. 12. 23:40

 [천사 이야기] 순 종

 

주님께서 곁에 두셔서 오랜 정이 든 영의 친구 중의 하나가 늘 집과 방에서 저와 함께 거하는 ‘청이’천사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능력 차원의 기름부음의 의미나 혹은 영적 새롭고 신선한 기분을 느끼게 하시려고 새 방언을 말하게 하시듯 그동안 간간 새롭게 곁에 두고 보게 하신 천사가 여럿입니다.


하지만 밖에 나가면 늘 함께 하는 ‘송이’ 천사와 집에 돌아오면 늘 함께 하는 ‘청이’천사는 오래 알며 사귀어 온 지인처럼 많은 시간 함께 하며 정이 많이 든 듯 합니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천사 ‘린’이나 땅의 ‘귀염이, 깜찍이’ 그리고 요즘은 ‘캔디’천사와도 조금씩 시간 속에서 정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밖에 나가면 간간 주도적인 영으로 하늘에는 ‘허니’천사와 땅에서는‘캔디’천사가 보여지곤 합니다.


오늘도 잠시 밖에 볼 일이 있어 나갔더니 저는 약간의 몸살 기운이 있어서 마음이 침잠하는데 저를 기쁘게 하려고 캔디는 춤도 추고 바라보며 생긋 웃어 주기도 하며 저를 기쁘게 해 주려고 애를 써 주더군요. 천사도 성정이 있을 터 고마움을 전해 주었습니다.


“캔디야, 고마워”


그런데 최근에는 주님께서 집에 곁에 두신 소년 모습의 천사를 통해서 저의 삶을 간간 인도하셨습니다.


‘청이’천사는 제가 그 이름을 청이라고 지은 것처럼 맑고 푸른 느낌이 드는 그런 영, 그런 천사입니다. 맑고 고요하고 푸르른 느낌의 고요한 성정의 영입니다. 늘 곁에 함께 있으나 조용한 아이가 곁에 있으면 곁에 있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듯 그렇게 조용히 늘 제 곁에 있습니다.


돌아보면 수년간 저는 거의 친구나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지내왔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라고 느낀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육으로는 대부분 혼자이나 영으로는 늘 곁에 천사들이 함께 있으니 그 속에서 혼자라는 느낌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시공간의 차원이 다른 하늘의 존재, 곧 영적 세계의 존재는 육적 세계의 눈으로 보면 하나의 이미지로써 밖에 느껴지지 않으니 간간 인간적인 외로움은 느껴보았지만 그래도 늘 곁에 누군가 보이니 혼자라는 느낌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집 안에서는 늘 제 곁에 ‘청이’는 있는 듯 없는 듯 늘 함께 있었는데 최근에는 조금 두드러지게 보이며 저의 삶을 주님이 청이를 통하여 인도함을 경험하였습니다.


사람은 체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깨어 있는 동안에 마냥 일을 할 수는 없지요. 간간 쉬기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곤 하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깨어 있는 시간에 기도와 말씀, 말씀 준비, 집회 준비, 산책 운동 등을 하곤 하지만 가끔은 취미생활에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떤 때는 일을 무리하게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취미 생활 잠시 빠져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청이’가 곁에서 저의 생활의 리듬을 이끌어 줍니다.


“이제 일 그만하고 좀 쉬어요”


“이제 취미생활 그만하고 잠자리에 들어요”


어떤 경우는 산책과 운동을 마치고 와 곤하여 조용히 쉴 겸 사극 드라마나 뉴스 등을 보고 있으면, “이제 그만 보고 가서 성경 읽어요”라고 이끕니다.


이런 경험을 통하여 눈으로 보니 우리가 성령의 역사나 인도하심이라고 표현하는 역사 속에는 성령님의 직접적인 역사와 더불어 천사들의 활동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던지 아니 보이던지 간에 성령님의 직접적인 역사와 함께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천사들이 우리의 곁에서 우리의 영을 이끄는 역할도 있는 것이지요.


‘청이’가 이렇게 저에게 영으로 그 눈빛으로 말을 전하면 주님의 뜻이므로 대부분 순종하지만 가끔은 못 들은 척 못 본 척 그냥 제 맘대로 할 때도 간간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 앞에서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저의 마음과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가을이 찾아오고 기온차가 조석으로 심하더니 며칠 전부터 약간의 감기 몸살 기운이 있었습니다. 늘 곤한데 감기 몸살의 기운까지 겹치니 그날 하루는 몹시 곤하더군요.


언젠가 집회에 오신 분들과의 ‘애찬’시간에 잠시 사담을 나누면서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안 아프고 사시는 사람들이 신기해요”


그러니 “왜요?”라고 물어보더군요.


그것은 어린시절부터 제가 하도 오랫동안 이런저런 병증으로 아프면서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몸이란 것이 정말 정밀하고 복잡하며 어디 한 곳이 잘못되어도 아픈 법인데 그런 곳들이 한 곳도 이상이 없이 안 아프고 산다는 것이 늘 아프면서 살아온 저로서는 조금 신기해보인다고 의견을 말해 보았지요.


물론 사람들마다 다 피고감이나 다소의 불편함은 누구나 안고서 살아가지만, 타고난 선천적인 약한 체질의 몸에 유전적 소인과 더불어 별의 별 여러 가지 병증으로 고생을 해 온 저로서는 늘 다소 건강한 사람들이 조금 신기해 보이기도 합니다.


병아리처럼 몸이 약한 사람은 조금만 더워도 탈, 조금만 추워도 탈, 조금만 기온이 조석으로 변해도 탈, 정말 탈이 많이 납니다. 몸이 약하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어쨌거나 그렇게 하루 늘 곤하고 힘겨운 몸에 약간의 감기 몸살 기운까지 겹치니 제 생각에는 “아휴, 집회도 다가와서 준비도 하고 해야 하지만 그냥 오늘은 푹 쉬어야겠다”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정말 곤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옆의 ‘청이’를 가만히 보니, “뭘 쉬어요. 집회가 다가오니 오늘은 일하세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간간 ‘청이’를 통해서 이런저런 것을 명하며 순종 훈련을 하시는 것을 알았기에 아무런 말이 없이 ‘청이’를 통해서 주님이 시키는 대로 힘겹지만 그날 밤 오랜 시간 일을 하며 집회 자료 준비를 마쳤습니다. 조금 힘겨워도 순종을 하였습니다.


순종하고 일을 하고 나니 집회 준비도 되어서 기쁘고 또 주님께 순종을 하여서도 기뻤습니다. 청이도 기쁜지 기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순종’의 중요성에 대해서 참으로 많이 강조를 하고 있지요. 대표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사울왕을 버리심의 과정을 통하여 순종의 중요성을 성경은 우리에게 전하고 있지요.


삼상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통하여 축복을 받고, 생명을 얻고, 문제 해결을 받고, 기적을 체험하는 등 순종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를 가르치고 있지요. 아브라함의 순종, 사렙다 과부의 순종, 가나안 혼인 잔치의 하인들의 순종, 나아만 장군의 순종 등 수많은 이야기들을 통하여 순종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가르치고 있지요.


그리고 특별히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앞에서 어디까지 순종해야 하는지, 곧 자신의 생명을 미워하기까지 순종해야 함을 가르쳤지요.


하지만 제가 사역을 하면서 저와 다른 사람들의 신앙의 모습을 살펴보면 참으로 많은 부분에서 순종하지 않습니다. 지극히 작은 부분들조차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가령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만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축복의 씨앗이 됩니다”등의 성경의 말씀 중 지극히 작은 것을 전하여도 대부분의 분들이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영광과 눈치와 체면을 봅니다.


이러저러한 많은 것들의 영역에서 온전히 순종하지 않습니다. 아예 불순종하거나 순종을 하더라도 더러는 사울왕처럼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섞어 넣습니다.


삼상15: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삼상15: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삼상15: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그러나 성경은 물론 영분별을 하여야 하겠지만 그 말씀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고, 주의 종을 통하여 나오는 말씀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순종하는 것이 더 옳은 것이라면, 온전히 순종함을 하나님은 기뻐하심을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할 말이 많은 사건입니다. “아들을 주신다고 하더니 그렇게 애를 태우고 기다리게 하시더니, 그렇게 애를 태우고 기다리게 하시고 주시더니 이제는 또 제물로 바치라니요”등의 너무도 할말이 많은 사건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서 어린 양과 털 갂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며, 죽은 자 가운데서도 능히 아들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으며 믿음으로 온전히 순종하였음을 성경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온전하고 깊은 순종을 통하여 온전하고 깊은 복,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받았음을 전해 줍니다.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하지만 저의 모습을 살펴보아도, 그리고 많은 분들의 모습을 살펴보아도 아직 우리에겐 너무도 온전한 순종의 모습이 부족함이 보입니다. 사울 왕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섞어 순종하며, 때로는 도리여 영의 마음으로 순종하지 못하고 육의 감정 안에서 마음을 상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 모두 이러한 육의 마음과 감정을 죽이고, 온전히 영 안에서 주님의 순종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영 안의 순종은 자신의 생각이나 사견을 섞지 않습니다. 그러한 영 안의 순종은 환경과 여건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요셉과 같이 삶과 환경이 어떠하던지, 다니엘과 같이 삶과 환경이 어떠하던지 여상합니다.


저는 요즘 제 곁에 두신 ‘청이’천사를 통하여 이런 작은 순종의 훈련을 배우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이’를 통하여 작은 순종의 훈련을 배우고 해 나감에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순종, 예수님이 본을 보이셨던 온전한 순종에서 멀어져 있는가를 보게 됩니다.


요5:30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우리 모두 저의 이 글을 통하여 ‘순종’의 소중함과 축복됨을 새롭게 가슴으로 알아 순종의 삶으로 함께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참된 '순종'에는 자신의 생각이 섞여서는 아니됩니다. 가령 제가 말씀을 준비하고 있는데 청이가 이제는 쉬고 자자 하면 쉬고 자는 것이 순종입니다. 더 말씀을 준비하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 같으니 더 좋은 것 같지만, 아니지요.

가령 자녀의 건강을 염려하여 부모가 공부 그만하고 잠을 자거라하면 잠을 자는 것이 부모를 기쁘게 하고 순종하는 것이지요. 더 공부하려는 모습은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지요. 이처럼 순종은 자신의 생각을 섞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생각과 가치를 섞는 것이 아니라, 아이처럼 단순하게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끔 제가 집회를 쉰다거나 몹시 아파도 집회를 한다거나 하는 경우, 저는 그냥 주님의 감동대로 하려고 하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전전 집회는 정말 힘겨워 쉬고 싶었는데 하라고 하셔서 그냥 하였고, 그 다음 집회는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았는데 쉬라고 해서 쉰 것입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저도 그 말씀에 단순히 순종하는 것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청이’는 늘 하얀 세마포 옷을 입고 있습니다. 나이는 우리 사람으로 말하면 11-12살 가량의 모습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늘 곁에 있으니 정도 들어가고, 그러니 육신의 성정을 가진 제게는 그냥 때로는 아들 같습니다. 영의 세계는 마음의 세계, 그래서 때로는 마음으로 업어 주기도 합니다.


지금도 글을 쓰는 제 곁에서 혹은 의자 뒤에서 조용하지만 간간 재롱도 부리는 아들처럼 함께 있습니다. 오늘은 웬지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시려고 그렇게 행동하게 하시는지 하는 행동은 꼭 세상 아이와 같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물어볼까요? “청이야, 목사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니?”


“사랑해요.기뻐해요..” 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래, 고마워. 목사님 감기 다 나으면 함께 산책 한번 나가자구나. 가을 달빛 속에서 많이 없어줄게”


주 안의 평강 전합니다. 순종을 통하여 주님 앞에서 더욱 축복과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기를 기도해 봅니다. 샬롬 !


사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삼상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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