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제15차 집회를 하루 앞둔 날(2013,9,27) 오후에는 집회설교를 마무리 하고 저녁에는 운동 겸 산책 후 시간이 다소 나서 밤 시간 두세 시간 가량 영성의 글과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어느덧 밤은 깊었는데 아직은 잠이 오지 않아 잠시 쉬다가 늦은 밤에야 잠을 자려고 하니 영으로 주님이 찾아오셨었습니다. 늘 곁에 보이시지만 찾아오셨다는 것은 주도적인 영으로 뚜렷하게 보이시고 나타나심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한 번도 보여주시지 않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하얀 옷을 입혀주는 모습이 아슴하게 보였습니다. 가끔 천사들이 그렇게 흰옷을 입혀주거나 사람의 경우를 말하면 때가 묻은 옷을 깨끗하게 닦아주는 듯한 모습을 가끔 보았지만 주님이 직접 그렇게 하시는 모습이라 영적 의미를 몰라서 주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주님, 왜 그런 모습을 보여 주세요?”
그러자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내일 집회에는 나를 대신해서 네가 서는 것이 아니냐?”
주님의 대답에서 좁은 의미에서 사역자들은 주님을 대신하여 사역을 하는 것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얼굴, 주님의 손과 발로 살아가는 것임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주님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는 얼굴들입니다.
고후2: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요즘 집회에 제가 참여 유도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육체적인 연약함 때문에 가끔 오신 분들께 넉넉하게 말씀과 은혜를 끼치지 못하는 죄송한 마음 때문이요, 둘째는 지체님들을 성숙한 행함으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사람도 아이가 어릴 때에는 부모가 일일이 “이것을 하여라 저것을 하여라” 합니다. 하지만 아기가 자라가도 그렇게 인도하는 부모는 사실상 지혜롭지 못한 것이지요. 아이가 자라가고 성장해가는 만큼 자율성을 주어서 스스로 행하게 하는 의지와 힘을 길러주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적극적인 초대 문구나 다소 강권적인 집회 참여를 종용하여 더 오시게 할 수 있지만, 이제는 넉넉한 성숙함으로 자율적으로 행하는 힘과 의지를 가지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면도 있습니다. 그런 성숙함으로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주님을 배워가며 성장해가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집회의 모든 것들을 주님께 맡기고 저는 그냥 아이처럼 제가 할 일만 묵묵히 합니다. 물론 간간 기도는 드리지만 주님이 하셔야 할 부분은 주님께 맡기고 제가 할 일에만 나름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하면 대부분 주 안에서 행복하고 은혜롭게 집회가 잘 마쳐짐을 경험합니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번 집회도 그리 많지도 그리 적지도 않은 분들이 오셔서 개인적으로 행복하고 은혜롭게 집회를 잘 마쳤습니다. 그런 집회 시간을 통하여 주 안에서 아름답게 자라고 성장하기를 사모하는 주 안에서 아름다운 분들, 그릇됨이 좋은 분들을 만나는 하나님 안의 행복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다른 집회 때와는 달리 주님께서 두어 번 현현히 나타나주셨는데, 한 번은 영의 하늘에서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나 주셨고, 한 번은 땅 위의 친구처럼 나타나주셨습니다. 나타나실 때마다 우리들에게 간단한 메시지를 들려주시고 지체님들께도 전해 드렸는데 기록해 두지 않아서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평소 생활 속에서는 주님이나 천사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면 폰 메모장에 제가 받아서 기록해 두기 때문에 나중에 글로 적어 보내드리곤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집회를 인도하고 나면 피곤하기도 하지만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나름 애쓴 사역의 보람 속에서 행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보내고 저의 삶의 자리로 돌아오면 기다리는 것은 혼자의 고독한 자리입니다. 그럴 때마다 캐더린 쿨만 여사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나는 집회를 인도할 때는 수많은 군중들 속에 있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저의 경우 육체적 연약함 등 환경적으로도 혼자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주님이 두신 듯 하고, 그리고 영적 감각이 나름 깨어나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과는 쉬 어울릴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어 그러하기도 합니다. 그런 경험 속에서 감히 그분들과 비교할 수 없는 저이지만 왜 엘리야나 엘리사와 같은 위대한 영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산과 같은 외진 곳에서 많은 시간 홀로 보냈는지를 알게 됩니다.
가끔은 사람들이 그렇게 영으로 주님과 천사들과 어울리면서도 외롭고 힘든가요라고 물어보시곤 합니다.
물론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을 하게 되면 새로운 삶의 경험 속에서 한 동안 기쁨과 감동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듯이 하나님이 영광스러운 영적 경험을 허락하시면 한 동안은 참 그런 행복하고 감동스런 시간을 보냅니다. 저도 한 동안은 그런 하늘의 품 안에서 혼자임도 삶의 아픔도 잊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신혼의 시간이 지나고 일상과 현실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면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마냥 즐거운 것이 아니라 삶의 채임과 무게감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되듯이, 주님을 따르는 영성의 삶은 결코 즐거운 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을 따르는 첫 걸음에 만난 주님은 영광의 주님이나 주님을 따라 걸어갈수록 알게 되는 주님은 고난의 주님이요, 그 고난의 주님의 삶에 동참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성경을 읽어보고 제가 신앙의 길을 걸어보니 영광을 주님만을 기대하고 고난의 주님과 함께 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결국 실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궁극은 무너짐이니까요. 처음에 우리에게 영광의 주님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은 믿음을 성장시켜 주시고 앞으로 함께 걸어가야 할 고난의 주님과 동행할 힘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고난의 주님과 함께 굳건히 걸어가는 영적인 장수가 되게 하시려 삶의 많은 시련과 연단을 과정을 거치게 하십니다.
영광을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온 우리들에게 그것과는 반대로 펼쳐지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 믿음을 잃기도 우리 자신 안에서 방황도 때로 하게 되지만, 그러한 시간도 주님의 다루심의 시간이요, 그러한 광야의 시간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과 그 말씀의 참됨의 빛을 보게 되고, 어느새 자신 안에서는 너무도 약하나 주 안에서 강하고 담대한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복한 집회의 하루를 보내고 다소의 피로감에 주일을 맞아 조용히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람은 체력이 한계가 있으니 매양 일을 할 수만은 없지요. 그러니 저도 쉬지 않고 말씀을 읽거나 기도하거나 할 수 없습니다. 늘 다소의 피로감을 느끼지 보통의 사람들보다 좀더 쉼의 시간의 필요를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그 쉼의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영적 감각이 깨어나고 깊어져갈수록 세상에 속한 것들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적어지고 흥미도 잃어가게 됩니다. 별스레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가끔 자연 속을 조용히 거닐거나 그냥 주님의 임재 안에서 조용히 있는 것들이 마음으로 좋을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이기에 그렇게 주님 안에서 혼자 조용히 있으면 혼 안에서 혼적인 적막함과 고독함은 묻어납니다.
주일날도 그렇게 곤하여 누워서 곁에 두신 소년 모습의 ‘청이’를 바라바며 “지금 뭐하고 있을까?”물어보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주님 안에서 고요히 있으라”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런 것도 하지 않으려 고요히 누워 있노라니, 영성의 삶이란 시간의 감각도 넘어서는 것이어야겠구나 하는 영감이 스쳐갔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이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을 하든지 놀던지 그 무엇을 하는 편이 차라리 쉽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장시간을 지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 경험 속에서 그릿 시내가 숲 속과 사렙다 과부의 집에서, 아라비아 사막에서, 밧모섬에서 육으로 별스레 하는 일 없이 주님 앞과 안에서만 혼자 조용히 지냈을 엘리야와 바울과 요한 사도의 주 안에서의 고독한 긴 시간을 묵상해 보게 됩니다.
그렇게 다소 조용하게 주일을 보내다가 저녁에 산책을 나갔습니다. 산책을 나가면 육체를 입고 있으니 분명 세상 속을 거닐고 있으나, 이전과는 다르게 제게 세상이 낯설고 세상도 저를 낯설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휘황찬란한 불빛들과 수없이 오가는 차량들, 그리고 인간적의 삶의 기쁨과 슬픔의 색채의 일렁거리는 혼적 파도의 물결을 안고 세상과 더불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낯설어 보입니다. 그런 세상과 세상의 사람들 사이를 조용히 거닐며 산책과 운동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보통 성령 충만을 경험하면 달뜬 영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곤 하지만, 정작 영이 자라고 영성이 발현되어가는 영의 세계로 들어가면 깊이 들어가는 것만큼 감정과 느낌의 변화가 적은 고요함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기쁜 듯 아니 기쁜 듯 조용하고 고요한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가난이나 풍족이나 모든 것이 내게는 같다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초연한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주님 안에서는 고요한 평화요, 육체의 혼 안에서는 다소 적적한 운동과 산책의 가을의 시간을 거닐었습니다. 여전히 오늘도 영의 눈으로 보면 하늘과 땅에서 함께 하는 천사들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오늘도 천사들은 하늘의 기쁨을 전해주려고 애쓰는 것을 보며 길을 걷고 운동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기록한 것처럼 이제 제게는 세상이 낯설고 세상도 저를 낯설어 하는 것 같으니, 눈에 보이는 세상이 있으나 한편 세상이 없으며, 세상과 사람 사이를 걷고 있으나 홀로 영의 주 안에서 걷고 있을 뿐입니다. 밧모섬 해변가를 홀로 걷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영 안에서 보면 주님 안에서 고요한 평강이나 인간적인 마음의 혼 안에서 느껴보면 바닷바람만 소슬히 불어오는 밧모섬의 해변에 홀로 있을 뿐입니다. 한편 평안하고 한편 고독하고 적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실상 모두가 이러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러므로 성경이 증언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참다운 행복과 평강이란 세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의 행복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 아직은 육신을 입고 이 땅 위를 걷고 있기에 한편 육신의 곤고함도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을 짝하며 비록 헛된 것들이나 세상의 것들을 누리며 영의 곤고함과 사망 안에서 살고, 우리는 주님을 짝하며 비록 참된 것들로 우리의 마음에 담고 누리며 사나 한편 세상의 적막함을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한편 저주 아래 놓인 세상에 사는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거두시고 새로운 하늘과 땅을 펼치시기까지는 비록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곤고한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하고, 그 인내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의 하나님 나라를 자녀 되어 유업으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계14: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계14: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계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그러므로 세상에서 곤고함을 누리지 못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참된 믿음의 길, 영의 길을 걷지 아니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의 길은 좁고 협착하고 찾는 이가 적은 길이니까요.
그렇게 세상에 살며 거닐고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기에 낯설은 세상 속에서 혼으로는 적적함 가운데, 영으로는 고요한 평강 가운데 영으로 천사들과 어울리며 주님을 찬양하며 홀로 고요히 운동을 하고 있노라니, 하늘에 두둥실 한 천사가 나타나 아름답고 우아하게 춤을 추었습니다.
영의 하늘과 시공에 천사가 나타나 아름답고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으나 육의 눈으로 사물과 함께 보이는 모습은 마치 하늘의 허공에 두둥실 떠서 춤을 추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왜 춤을 추는지 무엇을 전해주려는 것인지 마음을 잠잠히 하고 영의 흐름을 일치시켜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늘의 평화였습니다. 하늘이 땅에, 한편 외롭게 땅을 거니는 저와 우리들에게 전하는 하늘의 평화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광의 하늘 문을 여시니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 위에는 그 하늘의 평화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하늘 평화의 빛이 온 누리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눅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눅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그 하늘 천사의 영의 흐름과 저의 영의 흐름이 동조되는 순간 저도 땅의 적막함을 잊고 마음과 영은 하늘로 함께 올라가 평화로운 하늘의 물결 속에서 너울너울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그 거룩한 춤사위 속에서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오직 하늘에 속한 자이며 하늘빛 안에서만 기쁨과 평강과 평화를 누리는 존재임을 새롭게 느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주 안에서 한 지체된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이 말하듯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요. 그 모든 것들은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좇아온 것들이 아니 헛된 것들이요, 그리하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지 못합니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며 하늘에 속한 위엣 것을 찾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는 우리는 땅에 대하여 이미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 생명이 이미 하나님 안에 감춰진 하늘에 속한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참된 평화는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시 쉬며 다소의 시장기에 평소에는 건강관리를 위하여 거의 먹지 않지만 과자가 한 봉지 있어서 주섬주섬 먹고 있노라니, 중반쯤 먹었을 때 ‘청이’를 보니 몸에 좋지 않으니 그만 먹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절제를 못하고 다 먹어 버렸습니다.
제 방으로 돌아와 조용히 누워 있으니 ‘청이’다소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인 육체의 관리도 잘해야 하는 것인데 왜 몸에 좋지 않은 것을 그만 먹으라고 했는데도 다 먹었느냐는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어른 아이 ‘청이’ 앞에서 잘못했어라는 마음을 전하니 벌로 눈 감고 주님 안에서 조용히 아무 생각도 말고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고요히 있으라 합니다. 그래서 한동안 주님 안에서 시간의 감각도 넘어서야 하는 아무런 생각도 그 무엇도 하지 않고 주님의 임재 안에서 미동도 하지 말아야 하는 고되나 거룩한 달콤함의 벌을 받았습니다. 웃으시라고 저의 작은 일상을 적어 봅니다.
하늘 평강 전합니다. 잊지 마십시요. 우리는 오직 주님과 하늘 안에서만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땅과 구별된 거룩한 자, 성도들입니다. 땅을 바라보지 마십시요. 우리의 아름다운 천사들이 하늘 평강으로 너울너울 우리에게 평화를 전하는 오직 하나님이 속한 하늘을 바라보시며 하늘에 속한 삶을 살아가십시요. 샬롬 !
눅19:38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