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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 이야기 ♡ 뭘로 기뻐해?

초록 등불 2013. 10. 2. 13:57

 [천사 이야기] 뭘로 기뻐해?

 

저녁 식사 후 습관대로 산책을 나섰습니다(2013. 9. 23. 월). 너무 자주 말씀 드려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저는 놀 다소 몸이 곤합니다. 그리고 몸이 곤하면 맘도 함께 곤해지곤 합니다.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으면 처음에는 불같은 성령 안에서 너울처럼 일렁거리는 영적 기쁨을 누리곤 하지만 그것은 첫 사랑의 시기의 일이고, 정녕 영성의 길로 성령 안에서 인도함을 받으면 깊이 인도함을 받을수록 고요함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고요함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만큼 혼이 아닌 영 안에서 살아가게 되고, 이 고요함이 견지되어야 하나님의 음성이나 지식의 말씀 등을 바르게 인지할 수 있습니다. 흔들리는 물은 사물을 바르게 비추어 내지 못하고 고요하여야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 고요함의 세계로 들어가면 기쁨과 슬픔이 별반이 아닌 듯 기쁜 듯 아니 기쁜 듯 느껴지는 마음 느낌은 그러합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그다지 강렬한 출렁이는 기쁨의 너울은 없으니 몸이 곤하면 영의 평온함 속에서지만 혼적 마음도 곤함을 느끼곤 합니다.


그런 영의 기쁜 듯 아니 기쁜 듯 평온함 속에서 혼적 마음의 다소의 곤함 속에서 건널목에 서 있으니 영으로 보이시는 주님께서 한 마디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우리 생의 유한함을 알고 좀 더 열심을 품고 살아갈 것을 권면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좀 더 열심히 살아라. 사람의 인생이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란다”


몸도 곤하고 다소 맘도 곤하니 혼적인 흥은 별로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건널목을 건너 다시 다른 저편으로 가려고 건널목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으니, 요즘 주도적인 영으로 곁에 자주 머무는 ‘캔디’천사가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몸을 이리 저리 움직이며 좀 활발하게 산책을 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렇게 늘 가는 산책로를 조랑조랑 걸어 내려가 운동 기구에서 운동을 하고 있으니, ‘캔디’가 저에게 기쁨을 전해 주려고 명랑하고 밝은 모습으로 “즐겁게 기쁜 맘으로 운동해요”라고 말해주며 제가 기뻐할 수 있도록 힘써 도웁니다.


그리고는 저의 마음에 기쁨의 흥이 돋워지도록 곁에서 흥겹게 계속하여 춤을 추어줍니다. 보여 드릴 수 없으니 안타까운데 ‘캔디’는 나름 참 독특한 흐름의 영입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대략 20대 전후 근처의 모습인데도, 어쩌면 그런 나이에 어울리지 않고 마냥 명랑한 소녀처럼 아주 명랑하고 발랄합니다.


여성의 옷은 제가 잘 몰라서 정확하게 기록하지 못하겠는데, 반팔형의 하얀 세마포로 된 원피스를 입고 있습니다. 그런데 팔을 가리는 부위는 그냥 팔 두께에 맞게 폭이 좁지 않고 폭이 넓어서 활동하기 편해 보이는 듯한 옷입니다. 물론 반팔의 끝 부분은 폭을 좁혀서 팔 두께에 맞게 지어져 있습니다.


아주 편하고 활동하기 좋은 옷차림입니다. 그런 편하고 활동하기 좋은 옷차림의 모습으로 곁에서 때로는 조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주 명랑하고 밝은 표정과 눈빛에 발랄하게 춤을 추기도 하면서 저를 기쁘게 해 주려고 애를 씁니다.


제가 경험해보니 천사들이 곁에서 이모저모 도우려 하는 것들이 많지만, 가장 많이 애쓰는 부분이 우리가 기쁨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맞물린 아주 이전 시간의 주님의 한 말씀이 생각납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이르신 말씀입니다. 물론 그 때는 영성과 영의 세계를 계기가 없어 관심도 그다지 없었고 그러므로 깊이 잘 알지도 못했고 천사들도 보지 못했으며, 그냥 방언과 통변과 예언 등으로 하나님의 음성은 나름 잘 듣는 그런 수준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일보다 섬김보다 무엇보다 내 앞에서 먼저 기뻐하여라”라고 말씀을 해 주셨었지요.


그런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자식을 둔 아버지의 마음이 되어 생각해보니 왜 한편 우리의 참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니, 아버지의 마음은 당연히 자녀가 무슨 일을 잘 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항상 기쁘게 사는 것을 보시고 싶은 것이 우선이 아니겠습니까?


천사들은 그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우리의 곁에 있을 터, 제가 경험해보니 무척이나 제가 기뻐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우려 하고, 곁에서 돕는 핵심적인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게 곁에서 자꾸만 저를 기쁘게 하려고 애를 쓰며 “기뻐해, 기뻐해”라고 말하는 ‘캔디’에게 혼적인 마음의 곤함 속에서 이렇게 말을 해 보았습니다.


“나도 기뻐하고 싶지. 그런데 뭘로 기뻐해? 이렇게 몸과 삶이 늘 곤고한데..”


영 안의 믿음의 고백이 아닌 혼 안에서 인간적인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니 ‘캔디’가 눈을 반짝거리며, “주님 안의 소망, 주님 안의 소망”이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고난의 삶을 지긋하도록 살아가는 성도에게 목사님이 “고난은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입니다”라고 말하면 처음에는 가슴으로 수긍이 되지요. 하지만 그 고난의 시간이 지긋하면 진리의 맞는 말씀이지만 다시 그런 말씀을 반복해서 들으면 힘겨운 시간 속에서 큰 용기나 위로의 감정을 전해주지 못하기도 하지요.


그렇듯이 캔디가 눈을 반짝거리며 “주님 안의 소망, 주님 안의 소망”이라고 전해주는 말이 기쁜 감정을 그다지 전해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캔디’와 어울리다가 다른 운동기구에 가니 제가 ‘깜찍이’라고 이름을 지은 천사가 다른 날과는 다른 색다른 옷을 입고 역시 저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예쁘게 바라보기도 하며, 또 예쁘게 춤을 추기도 합니다.


옅은 갈색에 살짝 회색이 함께 어울려져 내는 듯한 참 묘한 진중하고 깔끔한 느낌의 색채의 옷을 입고 예쁘게 춤을 춥니다. 옷자락의 가슴 부위에는 예쁜 꽃문양도 달려 있습니다. (글자색과 조금 비슷)


눈이 별빛처럼 초롱하고 웃으면 보조개가 생겨서 제가 ‘깜찍이’라고 이름을 지었지만, 앞선 글에서 적은 것처럼 사람의 예로 말하면 귀족의 딸과 같은 느낌이 드는 천사인데, 어쩌면 ‘단정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듯한 단정하게 예쁘며 차분하고 그런 편입니다. 그러니 춤을 추어도 다소 예쁘고 품위 있게 춤을 춥니다.


그렇게 잠시 ‘깜찍이’와도 어울리다가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니 캔디가 오늘은 평소처럼 저리 돌아서 집으로 들어가지 말고 곧장 가서 쉬라고 합니다. 그런 캔디에게 우리 모두 늘 생의 수고로움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터 저도 그러하니 분명한 대답보다는 위로를 얻고 싶었던 마음인 냥 캔디에게 물었습니다.


“캔디야, 어떻게 늘 기뻐하며 살수 있을까?”


“알잖아.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외엔 참 기쁨을 누리는 길이 없다는 것”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루도 저녁 산책과 운동을 하고 밤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어느 오전 즈음에 눈을 뜨고 일어났습니다. 조금 시간이 흐른 일들이라 정확한 기억이 없습니다.


저의 몸의 병증 상 눈을 뜨는 시간이 대부분 가장 몸이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날 아침도 그랬던 같습니다. 가족들은 저마다의 삶의 터로 나가고 저 혼자 그냥 간단히 차려서 아침인 듯 점심인 듯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막 일어난 터라 영적이던 혼적이던 별스런 감흥도 없이 앉아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다 바라보니 영의 공간에서 천사 ‘순동이’가 나타나 저를 보며 어제 저녁 캔디가 하던 말을 또 다시 제게 합니다. “기뻐해요. 기뻐해요”


저도 믿음의 고백이라기보다는 혼의 마음 안에서 장난치듯이 대꾸를 했습니다.


“순동아, 뭘로 기뻐해? 맨날 이렇게 삶이 피곤하고 몸도 곤한데..”

“뭘로 기뻐해?”


그러니 순동이가 캔디와는 또 다른 맑은 시냇물과도 같은 눈빛으로 눈빛은 다르지만 캔디와 같은 말을 합니다. “주님 안의 소망, 하나님 안의 소망”


어린 소년 모습의 순동이가 자꾸만 앞에서 그렇게 기쁨을 전해주니 “그래 알았어”라고 말하며 식사를 하다가는 혼자 웃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순동이가 너무도 기뻐하면서 영의 공간 안에서 한 마리 새처럼 발랄하게 날아서 가까이 다가와서 저를 보고 한없이 기쁜 눈으로 바라보다가는 다시 저만치 날아가서 또 다시 날아와서 한없이 기쁜 눈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순동이 천사들에겐 미안한 비유지만, 조금은 넉넉한 줄에 매여진 주인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개가 한 마리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주인이 밖으로 나와서 몹시 기뻐하며 기쁘게 해 주려고 하는데 다소 주인이 기쁨이 없는 모습으로 있습니다.


그래서 꼬리를 흔들며 이리저리 주인을 기쁘게 하려고 애를 쓰다보니 그 모습에 주인이 그냥 웃어대며 기뻐해 줍니다. 그러면 보통 개는 더욱 신나하며 이리저리 돌며 주인을 향하여 밝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마당을 뛰기도 하지요. 제게 보여지는 천사 순동이의 모습이 그것과 흡사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천사들은 우리를 섬기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고, 우리가 기뻐하면 저렇게도 좋아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젯밤 캔디 천사의 말과는 달리 다소 가슴 깊이 ‘주님 안의 소망, 하나님 안의 영원한 소망’이 기쁨의 참 근원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성경을 살펴보고 생을 거닐어보니 비록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원을 받은 우리이지만 아직 온전히 성취되지 않은 약속 안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생은 많은 곤고함이 있습니다.


시시로 맛보기도 하지만 온전하고 완전한 영적인 만족과 행복도 온전히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그 때의 일이요, 육신의 곤고함과 수고로움 또한 하나님의 말씀처럼 참으로 적지 않은 우리의 생입니다.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생의 수고로움 속에서 마음의 기쁨과 행복과 소망을 찾아 세상의 곁과 속으로 거닐어 보기도 하지만, 이 또한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처럼 모두가 배부르게 하지 못하는 썩는 양식일 뿐입니다.


요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6:27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캔디와 순동이의 말처럼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소망과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요, 그 안의 소망뿐입니다. 하나님 안의 소망뿐입니다. 비록 혼적인 수고로움 안에서 그 해갈의 궁극을 잘 느끼지 못하기도 하지만, 목마르지 않는 생수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안에만 있을 뿐입니다.


요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제가 앞에서 잠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생의 끝없는 수고로움 속에서 때로 지쳐가며 그 어떤 말이나 메시지 안에서도 마음의 빛을 느끼지 못하곤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다른 무엇이 우리에게 그 빛을 줄 수 있습니까?


“당신에게 엄청난 재물이 주어졌어요. 권력과 명예가 주어졌어요. 당신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있어요”이런 세상의 그 어떤 말이 저와 우리의 가슴에 참 기쁨과 소망의 근원으로 와 닿습니까?


생을 적지 않게 걸어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말에 다 솔로몬과 같은 고백이 나오지 않습니까.


전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1: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성경의 말씀대로 오직 우리에게 유일한 빛은 예수 그리스도요, 그분 안의 영생뿐이지 않습니까. 캔디와 순동이 천사의 말처럼 “주님 안의 소망” 그것뿐이지 않습니까.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우리의 마음과 감정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많이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마음에 담고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에는 썩는 양식만이 담길 뿐입니다. 하지만 성실히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그 말씀과 그 말씀 안의 소망을 여상히 담고 지낸다면 우리는 나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수고로움이 적지 않으며 낙심과 좌절의 환경이 적지 않은 우리의 생이지만, 성경이 전하고 저의 천사들이 전하는 “예수님 안의 소망, 하나님 안의 소망”을 마음의 품에 늘 품고 주 안에서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이면 좋겠습니다.


성경과 우리의 경험이 전하듯 수고로움 적지 않은 이 생의 길도 바람과 빛살처럼 쉬 지나고, 우리가 헛되이 주를 믿지 아니하였다면 참 기쁨과 영광의 그 날도 속히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오늘(2013. 10.1) 아침엔 잠에서 깨어 일어나 세면실에 가서 몸을 씻고 있노라니, 가끔 몸을 씻고 있으면 나타나 물을 틔기며 장난치는 어린 소년 모습의 천사가 나타나 물을 팅기는 모습을 보여주며 장난을 걸어옵니다.


“요놈아, 너도 물 좀 맞아 봐라. 매일 물을 튀기니 이름을 튀김이로 할까보다..”


나도 영과 마음으로 장난을 칩니다. 장난을 치면서 왜 장난을 치며 무엇을 전해주고 싶어서 저러는 것일까 영을 일치시켜 보니 다름 아닌 ‘기쁨’입니다. 그렇게도 천사들은 우리에게 기쁨을 전해주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도 주님은 우리가 기뻐하며 살아가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그 말씀과 그 말씀 안의 참된 소망을 정녕 가슴으로 깊이 알지 못하고 늘 주님이 아닌 세상 안에서 근심하고 슬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처럼 자녀 된 우리가 당신과 곧 다가올 그 말씀의 소망 안에서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참이요 유일한 기쁨의 근원인 주님 안의 소망을 늘 마음에서 잃지 않으며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며 살아가는 저와 우리면 참 좋겠습니다. 하늘 기쁨 전합니다. 샬롬!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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