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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위로 하시는 주

초록 등불 2013. 10. 25. 02:20

 [천사 이야기] 위로 하시는 주

 

사람의 마음이 우리의 것이니 우리의 마음과 의지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살면서 경험해 보면 그러하지 않지요. 기뻐하고 싶은데 기뻐지지 않고 평안하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평안이 유지되지 않지요. 내 마음이고 우리의 마음인데 내 마음과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지요.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란 참 카멜레온 같아서 아주 작은 일에 기뻐하고 또 아주 작은 일에 슬퍼하고, 또 아주 작은 일에 노여워하고 또 아주 작은 일에 행복해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따라 언제나 그리스도 안의 따듯한 사랑으로 서로 살아가야 하나 봅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이러한 마음과 감정의 리듬을 때때로 타게 됩니다. 주님의 다루심과 짧지 않은 밧모섬의 요한 같은 주님 안에서 홀로 지내는 영적 피정의 시간 속에서 감정과 마음의 느낌의 변화도 다소 잔잔해져 가는 것 같지만, 사람이기에 여전히 이런 감정과 마음의 물결을 다소 타게 됩니다.


하루 새벽 (2013. 10. 24. 木), 그렇게 언제나 처럼 주 안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마음에 다소 적적함이랄까 그런 감정의 여운이 찾아왔습니다.


여러분도 경험하시겠지만 마음이 다소 가라앉거나 그런 시간에는 때로 기도를 하려고 해도, 찬양을 부르려고 해도 쉽지 않지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 곤한 감정이 다소 깊은 날은 때로 그냥 잠을 청합니다. 그렇게 쉼을 취하고 나면 다음날이면 종종 회복되어 있는 것을 보곤 하지요. 이것을 저는 ‘쉼의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무조건 기도하고 말씀을 읽는 등의 적극적인 영성만 알고 있는데, 가끔은 로뎀나무 아래의 엘리야처럼 쉬어주어야 회복이 되는 원리, ‘쉼의 영성’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곤한 감정의 여운이 그리 깊지 않은 날은 저는 ‘기도’에 앞서 ‘찬송’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 마음의 색채에 맞는 찬양을 홀로 주님 앞에서 부르고 또 부르다보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성령의 임재와 운행하심이 느껴지고 그렇게 마음이 회복되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여러분도 찬송으로 나아가 보세요.


그런데 요즘은 주님의 천사들, 곧 주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제 마음을 위로하시고 회복하게 하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사람이 어떤 것을 보고 느끼는 그 순간의 마음의 느낌은 시간이 지나면 잘 잊어버리고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기억을 되살려 가능한 살아있는 느낌으로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루 새벽(2013. 10. 24) 다소 곤한 마음으로 찬송을 부르고 있노라니, 영의 공간에서 늘 저의 경건 시간에 함께 하며 그 시간을 도우는 ‘순동이’ 천사가 나타나 다가왔습니다.


다른 글에서 이미 말씀 드렸지만 ‘순동이’천사는 여럿입니다. 때로는 이 모습, 때로는 저 모습, 때로는 무리지어 나타나 보이는데 그들 모두를 저는 ‘순동이’라고 부릅니다.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은 사람으로 비유하면 여자아이처럼 예쁜 어린 소년의 모습들로 나타나기에 그 모습의 너무도 순해 보여서 그렇게 지은 것입니다.


그렇게 한 ‘순동이’ 천사가 나타나 저에게 다가와 얼굴과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고 찬송도 함께 불러주며 “왜 염려해? 왜 슬퍼해?”라고 영으로 물으며 한없이 따사로운 위로를 전해 주었습니다. 다가오면 아주 얼굴을 가까이 대고 눈과 눈을 마주합니다.


순동이 천사를 마주하면 느낌이 참 묘합니다. 어린 아이의 모습인데 어머니의 마음과 손길 같은 것을 느끼니까요.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하면 어머니의 품에서 마냥 어리광을 부리던 어린 아들이, 어느 날 어머니가 몸이 아파서 앓고 있으면, 순진무구한 얼굴과 눈빛으로 “엄마, 왜 그래? 아파하지 마..”라고 말하며 쳐다보는 것과 흡사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게 어린아이의 모습과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의 눈길로 늘 바라보면서 순수한 사랑과 위로를 전해 줍니다. “왜 염려해? 왜 슬퍼해?.. 그러지마..” 그렇게 말을 합니다.


아이 같기도 하고 어머니 같기도 한 묘한 느낌으로 천사 ‘순동이’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시냇물처럼 맑기만 한 눈동자로 잔잔히 위로를 해 줄 때는 그 느낌이 참 묘합니다. 어른 아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어른 아기인 ‘순동이’가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바라보면서 “왜 슬퍼해? 기뻐해..”라고 하늘 사랑과 위로를 전해주고 또 전해주었습니다.


그런 순동이의 위로 속에서 조금은 마음이 평안을 찾아가는데, 이번에는 영의 공간을 날더니 꽃다발을 가져다가 내밀어 줍니다. 그리고 주인공인 한 순동이 천사가 그렇게 꽃을 전해주는데 다른 순동이 천사들은 무리를 지어서 영의 하늘을 온 가득 날며 하늘 기쁨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저의 마음도 도우시는 성령과 주의 천사들의 하늘 봄햇살 같은 영의 흐름 속에서 마음의 평안과 미소를 되찾고는 주의 천사들과 어울려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제 영이 다소 기쁨의 날개를 달자 이제는 순동이 천사가 저의 손을 이끌고 하늘로 날아올라 올라만 갑니다. 실상 저는 방에 앉았는데 영의 공간에서 순동이가 하늘 위로 오르고 오르는 모습이 연속으로 보이면 저도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런 하늘로 올라가는 느낌을 받는 만큼 저의 영과 마음도 성령 안에서 고양되고 함양되어서 빛과 평안과 기쁨으로 채워져 갔습니다.


그렇게 하늘로 저의 영을 이끌고 오르고 오르는 모습을 보여 주더니, 이제는 영의 공간에서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그러한 천사의 영의 흐름의 물결 속에서 저의 영도 함께 마음으로 춤을 추며 다소 곤하였던 마음을 회복하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2013. 10. 24)은 낮 시간에 잠시 밖에 볼 일이 있어서 나갔습니다. 영 안에서는 점점 주님께서 고요한 세계로 이끄시니 기쁨도 슬픔도 별반 다름이 아니요 하나인 듯한 마음의 세계를 거닐지만, 늘 다소 육신이 곤하다보니 혼적 마음의 힘겨움은 종종 느낍니다.


그렇게 볼일이 어느 건물에 들어서서 계단을 올라가는데 ‘캔디’천사의 모습에 웃고 말았습니다. 앞선 글에서도 기록하였지만 ‘캔디’ 천사는 아주 독특한 개성의 영입니다. 부드러울 때는 한없이 부드러우며, 명랑할 때는 한없이 명랑하고, 조용할 때는 또 한없이 조용하고, 씩씩할 때는 아주 씩씩합니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마치 여장부가 옷의 팔목을 걷어 올리고 “아자!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행동하듯 저를 보고 “힘내, 아자아자!” 그런 비슷한 행동과 표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영의 눈으로 보면 여성의 모습에 몸집도 별로 크지 않고 팔목도 그리 굵지도 않고 가늘기만 한데, 당찬 그런 행동을 보여 주니 조금은 우스워서 혼자 웃으며 주 안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오늘(2013. 10. 24) 이 글을 쓰는 것은 주 안에서 함께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곤하여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가 깨어서 그런지 선잠을 자다가 깬 아이처럼 사실 글을 쓰는 이 밤도 다소 마음이 그러합니다. 많이 익숙해졌지만 몇 년의 세월을 그냥 주님 앞에서 다소 곤한 몸으로 홀로 지낸다는 것이 늘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세상의 흐름과 감정의 변화 등에 다소 둔감해져가고 초연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저야 저의 그러한 환경 속에서 그러하지만, 여러분도 여러분 나름의 영육간의 환경 속에서 그런 힘겨움이 적지 않게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앞에서 영의 눈으로 보고 기록한 것처럼, 영의 눈으로 보니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신다는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를 힘겨움 속에서 함께 하시며 당신의 천사들을 보내어 위로하십니다.


지금 이 글을 마치고 또 다시 주님 앞에서 경건의 시간을 가지면 주님은 또 다시 순동이 모습의 천사로 달려와 저를 위로할 것입니다. 눈에 보이시지 않을 뿐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주 안에서 세상과 삶을 궁구하여 보니 육에 속한 모든 것들은 요동하고 변화하고 성쇠를 거듭하며 진동합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 결코 이 세상이나 우주는 만물의 근원과 중심이 아님을 입증하기도 하지요. 변화하고 요동하고 성쇠를 거듭하는 것은 결코 절대자가 될 수 없으니까요.


여상히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오직 만물의 근본이시요, 근원이신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육신과 삶, 또 마음이나 그러한 육과 혼에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우리의 영적 상태나 모두 변화하고 성쇠를 그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 바이오리듬이 있듯이 우리의 마음이나 영적인 상태도 그러한 변화와 성쇠를 그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또 한편 그러한 상대성의 성쇠의 흐름이 있기에 곧 슬픈 날이 있기에 기쁜 날은 더욱 기쁘고 아픈 날이 있기에 건강한 날이 더욱 기쁘겠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생의 날에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프며, 때로는 수고로우며 때로는 행복함이 있는 것이 한편 본질임을 알아 그러한 변화와 성쇠의 흐름에 초연하져 가는 것도 우리가 배워야 할 삶과 신앙의 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자세로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듯 기쁜 날에는 찬송하고 고난의 날에는 기도하며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과 함께 인생의 여정 그림을 아름답게 그려가는 저와 여러분이면 좋겠습니다.


약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제가 영의 눈으로 보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힘겨워하고 외로워할 때, 삶의 아픔 속에서 홀로 눈물 흘릴 때 당신과 당신의 손길인 주의 천사들을 통하여 우리를 위로하고 위로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 속에서 넉넉히 함께 승리하는 우리면 참 좋겠습니다. 샬롬 !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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