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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흔들리지 않는 눈빛

초록 등불 2013. 10. 16. 00:44

 [천사 이야기] 흔들리지 않는 눈빛

 

세상은 언제나 요동치고 그 물결 속에서 때로 사람인지라 저도 흔들리는데 영의 눈으로 보면 하늘은 언제나 고요합니다. 평화롭습니다. 영의 눈으로 보면 하늘과 하늘에 속한 영들, 천사들에게는 언제나 고요함과 평화가 흐릅니다.


그동안 많은 영들과 천사들을 경험하였고 이제는 일일이 이름을 짓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영들을 보게 되며 접촉하게 됩니다.


그런 저의 삶을 집회 오신 분들께 잠시 웃으라고 말씀 드렸지만, 몸이 너무 오랫동안 아프니 그러기도 하지만, 삶의 환경으로 사람들보다는 도리어 하늘에 속한 영들을 많이 보고 접하다보니 가끔은 이 세상에 사는 것인지 영의 세계에 사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인 육의 세계와 이 세상을 떠난 후에 가게 되는 영의 세계에 반반 정도 걸쳐 사는 듯한 경험 속에서, 영의 세계에 대한 실존적 확신과 더불어 보이는 육의 세계는 영의 세계에서 왔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육신의 죽음은 영의 세계에서의 또 다른 시작임을 실존적으로 확신하게 됩니다.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고후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왜 예수님께서 모든 것의 종국을 의미하는 ‘죽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잔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마9:24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마9:25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그러한 가운데 제가 두려운 것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혼적으로는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은 육체의 고통이 조금은 피하고 싶은 것이며, 영적으로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사도바울의 권면처럼 구원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경건의 두려움이며 나아가 불꽃 같은 눈동자로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의 저의 삶에 대한 그분의 말씀이 경건한 두려움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주님의 인도하심과 섭리하심 가운데 그러한 저만의 신앙의 여정을 거니는 지금 제가 ‘캔디’라고 이름을 지은 천사는 조금은 특이한 느낌의 영입니다. 돌아보면 제가 ‘큐리’라고 이름을 지었던 영도 그러한 편이었지요.


제가 본 영들을 획일화 하여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그 형상들은 대략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환영처럼 보이는 영들인데, 환영이라 하면 대부분 어두운 색깔을 생각하지만 천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이는 색채를 글로 형용하기는 다소 어려운데 어쨌거나 느낌이 밝고 환하며 정결합니다.


다른 하나는 그냥 자연스러운 우리 사람처럼 옷도 얼굴의 모양새도 자연스러운 색채를 띤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영으로 보인다는 것 뿐 그냥 자연 사물을 보는 것과 똑 같습니다.


다만 대부분 하늘에 속한 온전한 아름다운 모습에 더불어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을 자아내게 하는 거룩한 빛이 어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거나 땅위의 친구처럼 두신 공주님들에게서는 맑고 깨끗한 산뜻한 느낌 등을 받습니다.


적절한 비유를 든다면 전자는 밝은 흑백 텔레비전처럼 보인다고 하면 다소 이해가 되실 듯 합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청백 텔레비전처럼 보인다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더 이상의 적절한 표현을 찾기는 다소 어렵습니다. 검다고 그대로 표현하게 보이는 색은 없습니다. 짙은 청색과 하얀색이 모습의 곳곳마다 약간의 명암과 채도를 가지고 자아내는 듯한 그런 느낌의 모습입니다.


후자의 경우는 칼라 텔레비전처럼 보인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이 두 가지가 혼합된 듯한 느낌, 가령 온통 하얀 세마포를 입고 그 얼굴만 자연스러운 색채로 보이면 이 두 가지가 섞인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 중 캔디는 전자의 모습에 해당합니다. 다소 편해 보이는 하얀 세마포의 옷을 입고는 하늘의 하얀 구름과 높고 푸른 하늘이 자아내는 듯한 밝은 영의 모습으로 곁에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특이하다고 말씀드리느냐 하면, 굉장히 활달하고 밝고 명랑한 성격의 영인 동시에 또한 아주 고요하고 차분한 영의 흐름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20세에 다소 못 미치는 듯한 여성의 모습인데, 발랄할 때는 사람으로 비유하면 그렇게 애교와 재치가 넘칠 수 없으며, 저를 즐겁게 해 주려고 춤을 신나게 출 때면 편한 옷차림과 어울리는 아주 흥겨운 춤을 춥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거나 할 때면 마냥 밝고 활달한 어린 소녀처럼 흥겹게 춤을 추며 저를 즐겁게 해 줍니다.


하지만 고요할 때는 한없이 고요합니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곁에 있거나 몸짓과 눈빛으로 고요함을 전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니 제게는 다소 특이한 영으로 다가옵니다.


그런 ‘캔디’와 함께 어느 날 평소의 산책로가 아닌 길 건너 상가 곁 길을 함께 걸으면 운동을 하다가 ‘캔디’의 눈을 조용히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캔디’의 눈을 바라보니 사람의 눈과는 달리 한 점의 일렁거림도 없는 검푸른 바다가 연상이 되더군요.


성경을 보면 바다는 풍랑과 연결되고 강은 고요함과 평화로 연결되지만, 제가 굳이 풍랑을 연상시킬 수 있는 바다, 검푸른 바다라고 하는 이유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캔디는 청백의 텔레비전 영상처럼 그렇게 보이는 영이기 때문에 눈빛의 색채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천사들을 보아왔지만 그 눈빛에서 한 점의 일렁거림도 없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사람들과는 달리 천사 ‘캔디’의 눈빛은 한 점의 일렁거림도 없었습니다. 바람 한점도 불어오지 않았고 일렁거리는 물결 하나 없었습니다. 고요와 평화와 영원 그 자체였습니다.


그 이후 다른 천사들의 눈빛도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눈여겨 들여다보니 보이는 영의 형상에 따라, 그리고 영의 성격 곧 천사들의 다양한 성격에 따라 그 색채와 느낌은 다소 다르지만 한결 같이 ‘캔디’처럼 고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린’천사는 높고 푸르고 넓은 가을 하늘 같은 느낌으로 여상히 그 눈빛이 고요하고, 곁의 ‘청이’천사는 캔디보다 다소 편안한 느낌이지만 비슷한 느낌으로 여상히 그 눈빛이 고요하고, 최근에 곁에 머무는 ‘리리’천사는 꽃이 가득한 하늘 화원에 내리쪼이는 따사로운 햇볕 같은 느낌으로 여상히 고요하고 그 눈빛의 흔들림이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의 말에 ‘눈을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 말은 대부분 맞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는 눈으로 표현이 됩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을 하여보니 천사들도 그러합니다. 천사들도 성령님처럼 내적 음성 등으로도 교통이 가능하지만, 영으로 실제 보게 되면 그 눈빛으로 교감을 하게 되며 그 뜻을 알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경우는 모르지만 저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그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뭐라고 말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나 천사들이나 혹은 다른 영들이나 그 눈빛은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지요.


그러므로 눈빛이 흔들리고 동요함은 그 마음의 흔들리고 동요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눈빛이 조요하며 흔들림이 없는 것은 그 마음의 흔들림과 동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런데 제가 천사들의 눈을 살피니 그들은 눈빛의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다소의 감정의 표현들은 그들도 하는 듯한데 마음의 기저는 흔들림이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근본적인 눈빛의 흔들림은 전혀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경험 가운데 육에 속한 것들과 육에 속한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요동하고 흔들리며 산화되고 풍화되어 가고 부서져 가지만, 영의 세계는 시간을 초월하여 여상하며 영원한 세계임을 엿보게 됩니다. 우리 눈에 영원할 것만 같은 천지도 결국은 다 옷 같이 낡고 의복 같이 바뀌겠지만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한 것을 보게 됩니다.


시102:26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시102:27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그리고 영에 속한 것들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여 가며 영적 성장을 이루어 육의 마음이 아닌 영의 마음을 많이 품을수록 우리의 마음의 변화와 요동도 잔잔하고 고요해져 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더 깊은 영의 세계와 주님의 임재 안에서 사는 영적 성숙의 삶에도 육신을 입었기에 비록 온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영이신 여상한 하나님의 속성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는 신앙의 모습에 하나님이 속성인 여상함이 묻어나게 됨을 알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이 주신 그 물을 먹으면 다시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샘물을 나름 실제로 누리게 됨을 알게 됩니다.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지만 저와 우리의 삶을 모습을 살펴보면 천사들의 흔들리지 않는 눈빛, 영의 여상한 마음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고, 지극히 작고 작은 일들이 웃고 울며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와 원망, 마치 한 우물에서 단물과 쓴물이 솟아나는 것과 같은 모습을 봅니다.


하지만 영적 성장과 진정한 영성의 삶이란 비록 요동하고 소란한 세상 가운데 살고 있지만, 주님의 여상하심과 같이 우리도 그러한 영의 마음을 더욱 기르고 품어, 하나님 앞에서 여상한 모습으로 영을 좇아 사는 것임을 생각해 보게 되며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그 속성이 여상한 분이시기에 뜨겁다가 차갑다가하는 것보다 이도저도 아닌 변덕스러운 미지근함을 더욱 싫어하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요동치는 마음과 삶의 모습이 얼마나 주님을 실망시키는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영적 성장과 성숙을 점점 이루어 주님의 기뻐하시고 그리고 여상하심과 같이 주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과 삶, 신앙의 모습도 영의 여상함을 점점 이루어가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창인 우리의 눈빛도 하늘에 속한 천사들처럼 흔들림이 없는 우리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캔디’천사를 통하여 이러한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샬롬 !


계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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