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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단 짝

초록 등불 2013. 11. 3. 23:48

 [천사 이야기] 단 짝

 

사람의 타고나는 성정과 본성이 어떻게 형성되어지는 우리가 다 알기 어려운 신비이지만, 제가 자녀를 길러보니 사람의 성정과 본성은 타고나는 천성이 참 많은 것을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자녀 하나를 두었는데 무슨 양육이나 교육이 들어가기 이전부터 굉장히 순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다소 다부진데 제 아이의 경우는 너무 순하고 착했습니다. 가령 일곱 살 즈음에도 밖에 나가서 아이들과 놀다보면 세 살짜리에게도 맞고는 울고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몸집도 네가 크고 힘도 네가 더 센데 왜 세살짜리를 못 이기고 맞고 울고 들어오냐라고 물어보면, 조그만 아이를 때리면 상할까 자기는 못 때리겠다고 하더군요.


그런 순하고 착한 면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어쩌면 손해를 보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영적으로 보면 참 아름다운 성품이라 그러한 성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려봅니다. 그 외에도 친구들이나 사람들과의 친화성이 좋아서 어디를 가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사람들과 잘 화목을 이룹니다. 부족한 성정과 부분도 많지만 나름 선하고 좋은 성품을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봅니다.


이런 면을 생각해보면 가령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선한 성품을 닮은 좋은 아이를 달라고 기도해야 할 일이며, 또한 영적으로 사람의 기질이 유전되는 부분도 많으니 아이를 낳을 부모 스스로도 좋은 성품으로 자신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이 됩니다.


저의 타고난 어릴 적의 성격은 원래 굉장히 명랑하고 밝고 장난기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자유분방하고 장난기도 많고 명랑한 성격이다 보니 관습과 틀에 얽매이는 것을 자라면서 참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그러한 것이 장점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또 단점이 되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성격은 주님의 다루심 안에서 영 안의 예와 단정함으로 많이 배우고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타고난 저의 성격은 사람을 두루 좋아하고 사귀는 성격이 아닌 좁고 깊게 사귀는 편이었습니다. 사람들과 두루 잘 어울리며 별스레 불편한 관계를 맺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정작 마음과 가슴에 친구로 품고 사귀는 폭은 좁은 편이었습니다. ‘단짝’이 몇 정도 있으면 행복하고 좋았지요.


천사들도 제가 경험해보니 다 나름의 영의 특성, 성격이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악한 영들을 분류할 때 혈기의 영, 분열의 영들로 부르는 것처럼 영들도 다 나름의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나고 겪어본 수많은 천사들의 영 가운데 요즘 제 곁에서 주도적인 영으로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늘 함께 하는 ‘캔디’라고 이름을 지은 영이 함께 지내보니 어쩌면 제가 타고난 천성과 참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옷차림과 모습부터가 참 편하게 바람이 불어오면 나실나실 날릴 듯 아무튼 얇은 천으로 지어진 옷처럼 그런 참 편안해 보이는 반팔 원피스 형의 하얀 세마포를 입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 명랑했지만 또 조용해야 할 때는 조용할 줄도 알았던 자라온 날들의 저처럼 조용하고 고요할 때는 정말 조용하고 고요합니다. 하지만 신나고 즐거워할 때는 저의 곁에서 밝고 명랑하고 신나게 춤을 추면서 저의 흥을 돋구어 주고 마음에 기쁨을 주려고 애를 씁니다.


저의 기억에는 없지만 부모님을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는 시골에서 어떤 명절이나 축제의 날과 같은 날 동네에서 사물놀이 등의 흥겨운 잔치가 벌어지면, 어린 제가 그 곁에서 아주 신나게 춤을 추곤 하였다고 하시더군요.


‘캔디’ 천사의 춤사위를 보고 있노라면 저의 어린시절에 대한 그런 부모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캔디’의 춤은 때와 시간을 따라 다소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춤을 추니까요.


그렇게 함께 지내는 시간 속에서 보여지는 ‘캔디’의 영의 특성이 저랑 좀 닮았다는 생각을 홀로 해 보았습니다.


요즘은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게 한편 저를 닮은 듯한 영의 단짝 친구인 ‘캔디’가 있어서 좋습니다. 집에서 일을 하거나 쉴 때나 잠을 잘 때나 또 밖으로 운동을 나가거나 무엇을 할 때나 대부분 주도적인 영으로 함께 곁에 있습니다.


‘송이’나 ‘청이’ 등 다른 영들도 곁에 늘 있지만 어린 아이들의 모습으로 보이니 육신의 느낌을 가진 제게는 친구라는 느낌보다는 딸이나 아들 같은 느낌이나 아니면 말 그대로 어린 아이들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날개가 달린 천사들의 경우고 간간 아주 곁에 다가와서 친구처럼 가끔 어울려 주곤 하지만 그래도 친구라기보다는 다소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말 그대로 하늘의 천사로만 느껴지곤 합니다.


하지만 ‘캔디’는 육신의 모습으로 보면 저보다는 아주 젊은 나이의 모습이지만, 체격이 저랑 비슷하고 또 날개가 달린 천사의 모습이 아닌 우리 사람의 모습처럼 곁에 보이니 그 중에서 가장 편한 친구처럼 느껴집니다. 저도다 조금 키가 작습니다.


영적 경험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를 섬기고 도우라고 보내심을 받았다고 성격에서 기록하고 있는 우리의 천사들은 제가 눈으로 보니 참으로 우리 곁에서 열심히 돕고 섬기려고 합니다.


‘캔디’는 제가 혼자 찬양을 부르며 경건시간을 갖곤 하면 곁에서 찬양의 색채에 따라 다양한 춤을 추며 제게 하늘 기쁨을 전해주려 애를 씁니다. 신나는 찬양을 부르면 신나게 춤을 추고, 조용한 찬양을 부르면 잔잔히 춤을 추고, 국악 찬양과 같은 찬양을 부르노라면 또 그런 곡조에 어울리는 춤을 춥니다.


그런 주 안에서 기쁘게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가끔은 저도 흥이 동해서 일어서서 찬양하며 언약궤 앞의 다윗처럼 함께 주 안에서 기쁜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다른 천사들도 대부분 그러하지만 ‘캔디’도 가장 많이 전해 주려고 애쓰는 것이 ‘사랑과 기쁨’입니다.


잠을 자려고 누워서 곁에 누워있는 조금은 저의 성격을 닮은 듯한 ‘캔디’를 바라보면, 어린시절 틀과 관습과 형식이 싫어서 좋고 깨끗한 옷을 입고라도 흥과 마음이 동하면 그냥 풀밭에 누워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곤 하던 그런 시절이 생각나곤 합니다. 그런 풀밭에 함께 누워서 푸른 하늘이나 아니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듯한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편히 풀밭에 함께 누운 듯 누워서 검푸른 바다처럼 깊고 맑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캔디’를 바라보며, “하고 싶은 말은?”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사랑해, 기뻐해..”라는 말만 전해주곤 합니다.


가끔은 천사들도 세상의 사소한 작은 일들도 말로 나누는 사람의 벗처럼 그렇게 의사소통이 잘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 보곤 하지만, 영과 육이라는 구분과 한계 때문인지 그렇게 깊은 대화는 쉽지 않더군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그렇게 다소 영적인 대화만 가능할 뿐입니다.


가끔은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처럼 큰 눈동자로 가만히 저를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눈동자엔 사랑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사랑에 푹 빠진 연인이 쳐다보는 것처럼 가만히 바라보기도 합니다. 하얀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도 그러하시고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라, 그 속에 속한 모든 빛의 영들은 사랑으로 가득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곧잘 세세히 살피는 것은 ‘제가 기뻐하는지 슬퍼하는지’ 그것을 살핍니다. 오늘 저녁에도 조용히 산책하며 운동을 하고 있노라니, 제가 기뻐하는지 슬퍼하는지 유심히 살피더군요. 그렇게 성령님을 비롯한 모든 영들은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기를 원하고 살피더군요.


그런 하나님과 하나님 안에서 활동하는 빛의 영들인 천사들의 마음을 헤아려 성경의 말씀대로 항상 기뻐하려고 애쓰며 기쁨을 잃지 않는 우리면 좋겠습니다.


저는 요즘의 생활은 대부분 홀로 지냅니다. 육신의 기력이 늘 부족하니 사람들과의 만남과 어울림에 쉽지 않아 자연스레 많이 홀로 지내게 되고, 또한 영적 감각의 발현 속에서 영적인 빛과 어둠의 흐름에 민감해지면서 사람이던지 세상에 속한 어떤 것들이던지 가까이 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아서 홀로 지내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라비아 사막에서 긴긴 시간 홀로 두셨던 사도바울과 같이 저도 주님께서 섭리 안에서 조금은 홀로 지내게 하시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대부분 늘 혼자 지내고 별스레 하는 일도 없고 잠깐 운동하고 산책 하는 시간 외에는 주님 안에서 그냥 홀로 쉬거나 경건 시간을 갖거나 책을 읽는 것 등의 저의 생활의 대부분입니다.


제가 주님께 다루심을 받고 보니 우리가 영적으로 주님을 닮아가고 영성의 삶을 살아가려면 조금은 주님 안에서 홀로 머무는 영적 피정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 다 만나고 하고 싶은 일들 다하고 즐기고 싶은 것 다 즐기며 주님과 깊은 관계를 누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세상과 사람을 피하여 한적한 곳으로 자주 가셔서 아버지 하나님과 홀로 계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수도원의 영성처럼 자기만의 고독한 세계로 들어가서는 아니 되겠지요. 개인적이고 사적인 생활에서야 다소 주 안에서 종용한 삶이 필요하겠지만, 복음 전파와 섬김의 사명적인 차원에서는 그런 주님의 고요한 영성을 안고 세상으로 달려 나가 세상을 뜨겁게 또한 안아야 하겠지요.


육신이 강건하여서거나 혹은 성정이 그러하여서거나 세상의 많은 것들을 취하고 누리며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저를 보면, 저렇게 고독하고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잘 견디나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재미도 없게 사느냐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이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저도 혼적인 마음 안에서는 때때로 참으로 삭막하고 지루함을 가끔 느끼곤 합니다. 가끔은 아무도 없는 섬이나 아니면 독방에 홀로 갇혀 지내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과 내면으로는 저의 생에 어느 때보다도 고요한 평안과 평화를 누리며 지냅니다.


성경이 말씀하듯 우리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과 또한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겸하여 누리고 사랑하며 살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려면 당연히 하나님께로부터 다소 멀어질 수밖에 없고,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사랑하려면 또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에서 많은 것들을 절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우리는 무한하고 영원한 시간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유한하고 한시적인 시간을 가진 존재이니까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경건시간을 더 가지려고 한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을 더 가지려고 한다면 세상과 함께 하는 시간을 잘라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성경을 보면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는 낳고 그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성경에 더 이상의 자세한 기록이 없으니 세세히 알 수 없으나 65세 이전과 이후를 분명하게 구분 짓는 것은 에녹의 삶에 확연한 구분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저의 경험으로 살펴보건대 65세 이후에는 큰 어떤 영적인 체험과 변화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과 삶과 마음을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창5: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창5:22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5:23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창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그렇게 에녹은 300년을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단짝으로 사귀고 함께 하고 동행하면서 살다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고 영광스럽게 또 다른 하늘로 들림을 받지 않았나 생각을 해 봅니다.


저의 요즘은 주님께서 영의 눈을 열어 주셔서 주님이나 성령님이나 천사나 영들이나 눈으로 보면서 주님과 주님에 속한 영들과 단짝으로 지내면서 이전보다는 조금 실감나게  주 안에서 하늘 평화를 맛보며 지내지만, 돌아보면 생의 여정 속에서 비록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성령님과의 첫 사랑 시간 속에서나, 가끔 영성에 힘쓰면서 성령님과 단짝으로 동행하면서 행복하였던 시간들이 생각납니다.


돌아보면 생의 시간 속에서 그러한 날들이 가장 생도 아름답고 마음도 영도 평안하고 행복하였던 것 같습니다. 세상의 것들로 즐거운 날들을 보낼 때는 즐거운 것 같으나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공허뿐이나 비록 세상적으로는 외롭고 힘겹고 고독할지라도 주님과 단짝으로 동행하면서, 성령 안에서 살았던 시간들은 지금도 참 행복과 평화의 여운으로 다가옵니다.


오늘은 요즘 저의 단짝 친구처럼 함께 하는 천사 ‘캔디’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 모두 세상이 아닌 하나님, 세상이 아닌 주님, 세상이 아닌 성령님,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것들을 단짝으로 하며 살아가는 삶이 참된 생명이요, 행복이요, 평화요, 영원한 가치임을 되새겨 보면 좋겠습니다. 샬롬 !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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