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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머리 둘 곳

초록 등불 2014. 2. 3. 18:03

 [천사 이야기] 머리 둘 곳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으며 인생의 길을 걸어보니 예수님께서 나는 하나님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하시며, 또 왜 그토록 힘겨운 십자가 앞에서 고민하고 힘겨워 하시면서도 나의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며 고난의 형틀에 오르신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됩니다.


온 인류의 구원이라는 사랑의 섭리 속에서 십자가 위에 오르셨지만, 또 한편 왜 그리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라면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그 진리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우리 인간을 지으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시고 풍요와 생명을 허락하셨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다가, 우리 인류는 가시덤불과 엉겅퀴 속에서 평생 수고와 해산의 고통을 겪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고난의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창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리고 우리는 실존적인 삶 속에서 그 가시덤불과 엉겅퀴의 수고와 해산의 수고와 흙으로 돌아가는 수고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수고로운 눈물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참됨과 하나님의 말씀의 따름의 복됨과 사단이 거짓의 아비됨과 사단의 꼬이는 말을 따르는 저주 아래 놓인 삶을 아프게 경험합니다.


그러나 태초의 인간이 사단의 꼬임에 속아 넘어갔듯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사단이 내미는 또 다른 선악과 열매들을 보며 여전히 속아 넘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태초의 인간은 그 속에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광명한 빛이라도 있었건만, 이제는 타락한 본성 위에 넘겨받은 공중의 권세로 사단이 우리 사람들의 눈과 귀와 마음과 생각을 어둠으로 가리니 더 어두운 자 되고, 술 취한 자 되고, 미혹된 자 되어서 더욱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단은 믿지 아니하는 자나 믿는 자라 할지라도 할 수만 있다면 사망과 어둠으로 삼키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다니며 그 눈을 가리고 그 귀를 가리고 그 마음을 가리는 것을 봅니다.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태초의 인간은 그 삶에 수고와 고통이 없었으나 이제는 결코 가볍지 않은 필경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계명의 준엄함을 알아 모세처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 안에서 고난 받기를 경건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데, 고난과 아픔으로 인하여 도리어 잠시 죄악의 낙을 향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봅니다.


히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저의 삶을 돌아보아도 일찍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경험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이 곧 영생임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의 순종은 곧 생명이요 불순종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의 법궤를 심령 속에 모시지 못하고, 집을 나간 탕자처럼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하던 요나처럼 살아왔던 자신을 보게 됩니다. 내 생의 주인으로 하나님을 참되이 모시지 못하고 내가 주인이 되어 내 마음과 뜻대로 살아왔던 자신을 보게 됩니다.


지극하신 하나님의 그저 베푸시는 사랑의 은혜로 혹독한 고난의 풀무불을 거닐고 또 거니는 가운데 열어주신 하늘의 신령한 빛 가운데서 보니,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부끄러운 구원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얼마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는 먼 거리의 삶을 살아가며, 사단의 흑암의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그러므로 수없이 도적질을 당하며 수고 위에 수고로움을 더하는 아픈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비록 그 신령한 빛을 본다 하여도 육체의 연약한 법과 또 마음의 연약한 법 안에서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쫓아 행하지 못하는 저 자신을 보며, 십자가에서 뚝뚝 나를 위해서 흘리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붉은 보혈의 소중과 생명됨을 눈물로 알게 됩니다.


그리고 참 진리를 알게 하시려는 주님의 섭리의 손길인 듯 평범한 사람들보다 혹독한 광야의 시련의 긴긴 세월을 거닐며 그 속에서 주님의 사랑의 손길인 듯 열어주신 영의 참 빛을 조금 보고 가슴에 품고 보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전하듯 참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부귀영화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누려보며, 하나님이 주신 전무후무한 지혜로 세상의 일을 깊이 궁구한 전도자 솔로몬의 결언처럼, ‘다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 외에 모든 것이 궁극의 의미에선 무익하고 헛된 뿐임을 알게 됩니다.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그리고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기를 좋아한 자와 하나님 안에서 고난 받기를 좋아했던 자에게는 반드시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실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전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그렇지만 우리는 예수께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만이 영생임을 알아 죽기까지 순종하시며 순종의 도를 보이셨으며, 우리는 삶의 실존 속에서 혹독한 죄의 대가의 수고로운 삶을 경험하며 살아가면서도, 그리고 성경이 말하듯 세상의 모든 것들은 궁극적인 의미에서 다 스러지는 안개와 같은 헛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땅을 향하여 살고 잠시의 죄악의 낙을 좇아 살아가는 우리의 어둡고 약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죄악의 낙을 좇는 삶을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에 속한 부와 귀 그 모든 것들이 헛될 뿐인데도 말입니다.

물론 저의 이러한 글을 통하여 생에 대하여 비관적이거나 하는 마음에 빠져서는 아니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 슬픈 일을 당하거나 기쁜 일을 당하거나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소망 안에서 기뻐할 수 있으므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 우리의 이 생의 삶과 우리가 머무는 땅에 궁극적인 소망과 기쁨이 있어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 말씀을 좇아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려 애쓰되, 본질과 비본질, 궁극과 비궁극, 실상과 허상을 분명히 알아, 본질과 궁극인 하나님의 말씀, 곧 영의 소욕을 좇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거니실 때 한 서기관이 “선생님 어디에 머무시며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때 주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지만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지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상으로부터 처절하게 외면당하시는 현실, 당신이 참으로 이 땅에 머무시고 쉬실 곳이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낙원을 잃어버린 우리 인간의 실존에 유비해보면 여우나 새는 영이 없는 땅의 존재임으로 땅에서 먹고 배부르면 그나마 쉼을 누릴 수 있으나, 하나님의 품에서 나온 생기로 생령이 되었던 영이 있는 우리 인간에게는 하늘이 아닌 땅에는 쉴 곳이 없다는 이야기로도 제겐 실존적으로 다가섭니다.


주님이 열어주신 영의 참 빛 속에서와 육신의 고단한 삶의 여정 속에서 영의 눈으로 바라보니, 참으로 이 세상에는 궁극적으로 머물 곳도 없으며 쉴 곳도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과 영혼에 만족을 주는 참된 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머리 둘 곳이 없어 영생이신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오르시고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 하나이다”라고 온전히 아버지께 맡기시고 주님이 운명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영의 빛을 가슴에 품어갈수록 머리 둘 곳, 마음 둘 곳은 하늘뿐인 것을 알아가게 됩니다.


저의 요즘은 삶은 육신의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곤고합니다. 육신의 삶의 모든 기초가 되는 건강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 대부분의 시간 홀로 주님 앞에서 조용히 지낼 뿐입니다. 매일의 일상이 단조로운 다람쥐 쳇바퀴입니다. 그런 단조로운 일상을 견디게 해 주는 것은 주님이 열어주신 하늘과 그 속의 빛뿐입니다.


시간의 지배를 받는 육을 덧입고 있다보니 처음 하늘이 열릴 때의 감흥은 많이 잠잠해져 버렸고, 요즘은 주님이 더욱 강하게 마음을 단련하시려 그러시는지 영적 기쁨도 많이 잠잠한 시간을 거닐게 하시지만 그래도 하늘과 그 속의 빛만이 소망이라, 그러므로 그 빛 속을 묵묵히 걸어가려 애를 씁니다.


하루 저녁과 밤과 새벽도 그렇게 주님 앞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에 기도와 찬양의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경건 시간이면 언제나 함께 하는 ‘순동이’ 천사들이지만, 조금은 맘이 힘들었던 새벽이었던지 평소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따뜻하게 제게 사랑과 기쁨을 전해 주었습니다.


시련의 긴긴 세월 속에서 땅의 실상을 알아버렸으니 그곳엔 마음 둘 참된 곳이 없고, 열린 하늘을 보았으나 아직은 육신의 옷을 입고 있으니 한편 마음의 곤고한 가운데, 훅훅한 꽃향기처럼 순동이 천사들이 전하는 영의 사랑의 메시지는 제게 따뜻한 봄바람이 되어 주었습니다. 순동이 천사들은 평소보다 따뜻한 하늘의 메시지를 전해주었습니다.


“사랑해요. 기뻐해요”


경건시간이면 늘 대하는 순동이 천사들이지만 그날 새벽만큼은 따뜻한 어머니의 위로로 제가 다가왔습니다. 그 위로 속에서 세상과 삶의 곤고함을 잠시 잊고 저의 마음도 하늘로 날아올라 하늘의 참 생명과 쉼을 잠시 누렸습니다.


요즘 들어 새삼 새롭게 생각하고 깨닫게 된 것이지만 천사는 다름 아닌 주님의 손길이요, 본질적으로 주님이시더군요. 왜냐하면 주님이 지으신 피조물이요, 주님의 뜻 안에서 움직이는 영적 존재이니 곧 주님이요, 주님의 지체요, 분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주님은 그렇게 저를 위로하시며 힘주셨습니다.


그렇게 순동이 천사를 통한 주님의 따뜻한 위로 속에서 땅에는 없는 머리 둘 곳, 하늘의 품에 머리도 두고 마음도 두며 쉼을 누려보았습니다.


제가 주님께 긴긴 다루심을 받으며 생을 걸어보니 우리 그리스도인의 참된 쉼터, 머리 둘 곳은 땅에 없으며 없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는 땅에서는 이미 죽었고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감추어졌기 때문입니다.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그렇게 땅에는 머리 둘 곳 없어 언제나 하늘에 머리와 마음을 두려 사모하며 애쓰는 자에게는 영생인 하나님의 말씀이 그 심령에 머물려, 마침내 하늘과 영생을 얻게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영적인 삶이 곤고하다 하여 땅에 머리 둘 곳과 마음 둘 곳을 찾는 자에게는 잠시의 죄악의 낙 뒤에 더한 수고와 곤고, 그리고 마침내의 사망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머리 둘 곳을 하늘에 두고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길 바래봅니다.



마8: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마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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