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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고요함의 세계

초록 등불 2014. 2. 17. 23:48

 [천사 이야기] 고요함의 세계

 

잠들기엔 평소보다 다소 이른 밤 시간이지만 아침시간에 일이 있어 지금 잠을 잘까 말까 망설이다 ‘청이’를 쳐다보며 영으로 물어보니 눈빛으로 “쉬어요”라고 말해 줍니다. 청이의 말에 따라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으나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다 보니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청이를 마주보며 대화도 나누어 보았습니다.


“청아, 잠이 잘 안 든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편안히 그리고 가만히 있어요”


청이의 말을 따라 노력해 보지만, 우리 말에 ‘오만가지 생각’이라는 말이 있듯이 머리 속에는 별 생각들이 다 떠오르고 쉽게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마다 ‘잠이 잘 안온다’ 청이에게 옹알이 같은 말도 해 보며 뒤척이다가 고요하고 평안한 청이의 눈빛을 마주하다 나도 몰래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른 아침에 일이 있어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는 집으로 돌아와선 모자란 수면에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모자란 잠을 자고 일어나니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시계바퀴처럼 반복되는 대부분의 일상, 습관을 따라 간단히 식사를 하고는 저녁 산책 겸 운동을 나갔습니다.


제가 경험을 하여보니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불세례를 경험하게 되면 한동안 그 뜨거운 불길이 자신을 주장합니다. 불로 비교하면 크고 강하게 타오르는 불길이 자신을 주장하게 됩니다. 한자어로 표현하면 무화(武火)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계와 시간을 지나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는 2~3년의 시간이 지나게 되면 일반적으로 여상히 유지되던 이 불을 거의 상실해 버립니다. 이 이후의 시간부터는 보통 자맥질의 신앙생활 단계로 들어갑니다. 곧 그 불길이 일어났을 때는 거룩한 열정으로 살다가 식어버리면 육신의 따라 사는 삶이 반복됩니다. 이는 우리 스스로의 성장을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높은 경륜입니다.


그러한 영적인 삶의 자맥질의 순환 속에서 고뇌와 갈급함과 애씀과 그리고 삶의 시련 등 길고도 긴 시간의 다루심을 받으면, 출애굽의 여정에 비유한다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영성 발현의 시기가 다가옵니다. 제게는 이 시기가 40여년 가량 걸린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영성의 발현 시기가 되면 하나님의 다루심 안에서 나름 성장하고 힘을 가진 영이 주도권을 갖게 됨으로, 자신의 모든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나 버립니다. 하지만 이 변화는 처음 성령의 불세례와 같은 급속하고 강력한 불의 속성의 변화가 아닌, 조용한 불의 피어남 속에서 변화처럼 시간 속에서 서서히 진행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처음 뜨거운 성령의 불세례가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한시적으로 영을 좇아 살게 하는 변화라면, 영성 발현으로 인한 변화는 삶을 주도하던 주체가 육에서 자신의 성장한 영으로의 변화이므로, 근본적이고 본성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 중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가 ‘고요함’입니다.


처음에 성령의 불세례를 받으면 격하고 강렬한 무화(武火)의 불 속에서 끓는 물과 같다면, 영성발현 시기를 지나게 되면 은은한 불길 곧 문화(文火) 속에서 조용하고 고요히 움직이는 정중동(靜中動)의 세계가 열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고요함의 세계가 열리면 기쁜 일에도 지나치게 기뻐하지 않으며, 슬픈 일에도 지나치게 슬퍼하지도 않는 은은함과 고요함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세상의 이치로 말하면 우리가 육적으로도 성장하여 가면 기쁜 일에나 슬픈 일에나 아이처럼 행하지 아니하고 넉넉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하지만 편안함을 원하는 우리의 본능적인 바람 속에서 바라보면, 하나님이 강력하게 도와주시는 뜨거운 불길 곧 무화(武火)적인 하나님의 손길이 그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자라고 성숙한 영이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시기를 원하시기에, 조용하고 은은한 문화(文火)의 불길로 도우시지 강력한 무화(武火)의 불을 자주 공급하시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 스스로 더욱 성장하시기 바라시기 때문이고, 우리 스스로 감당하고 행하는 부분이 많아야 진정한 영적 싸움의 가치와 하늘 상급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신의 시간을 거니는 동안은 곤고합니다. 그 곤고함이 칭찬과 상급으로 하늘에선 바뀌지만 땅에서는 곤고합니다.


그렇게 저녁도 주님이 걷게 하시는 점점 더 고요해져만 가는 고요한 세계를 이 땅의 생, 곧 육신의 곤고함 속에서 조용히 걸었습니다.


그렇게 운동을 하다 잠시 벤취에 쉬면서 단짝 같은 ‘캔디’의 영을 바라보니 밤하늘의 깊고 그윽한 별빛 같은 눈동자로 사랑을 전해 줍니다. 마음의 창인 눈동자로 말해 줍니다.


“사랑해”, “응, 나도 사랑해”

“기뻐해!” “응? 으응..”


사랑한다는 말에는 쉽게 대답이 나오더니, 기뻐하라는 말에는 조금 대답이 지체 됩니다. 우리의 생의 한편의 본질은 고난과 곤고이니까요. 제 삶이 힘겨우니까요.


조용히 하늘 천사 ‘리나’를 바라보니 캔디와는 또 다른 언제나 고요한 하늘의 사랑과 평화를 전해 줍니다. 곁의 주님을 바라보니 말없이 쉼과 평강을 전해 주십니다. 주님도 말이 없고 나도 말이 없습니다. 말없는 고요함의 세계 속에서 나누는 밀어입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생의 여정을 주님의 다루심 안에서 걸어보니, 우리가 육신을 겉옷을 입고 이 땅을 거니는 시간 동안에는 천사들의 웃음과 같은 온전한 행복은 아직 없습니다. 아직 온전히 성취되지 않은 구원, 땅 밑을 흐르는 물처럼 우리의 삶의 시간 동안에는 언제나 고난의 물결이 흐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 안의 소망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가치 있는 삶의 길이요, 거룩한 싸움입니다. 멀지 않아 반드시 다가올 하늘 영광으로의 가장 빛날 날갯짓입니다. 샬롬.



계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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