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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고난의 신비

초록 등불 2014. 2. 25. 23:32

 [영성의 글] 고난의 신비

 

하나님은 신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비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행하심에는 우리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는 전능자의 지혜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고난의 신비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인류의 고난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써 시작되었지만, 한편 선악과나무에 두신 또 다른 하나님의 섭리와 신비를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요. 곧 전지와 예지의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을 아셨지만 그 가운데 비밀한 하나님의 지혜,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더욱 영광된 구원을 섭리하셨다는 것이지요.


고전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더욱 영광되다 함은 첫째는 생령이었던 인간의 존재는 언제나 타락과 죽음으로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였으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영혼은 온전하고도 영원한 구원을 받기 때문이요, 둘째는 아무런 고통, 곧 생로병사와 희노애락애오욕을 거치지 않은 생령보다 육신을 입고 그 모든 고난과 고통을 겪은 이후의 누리는 완전한 생명은 더욱 환희 가득한 감동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그다지 감사와 행복을 모릅니다. 하지만 극히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다 그러한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면 진정한 감사와 행복을 알게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은 선악과나무와 그로 말미암은 타락, 그리고 그로 인한 결코 쉽지 않은 인간의 본질적인 생의 수고로움과 고난을 아셨지만, 신비이신 하나님은 그 고난 속에 당신의 신비를 만세 전에 정하시고 감추어 두신 것입니다. 이는 더욱의 우리의 영광을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고전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사람의 실존적 진리 중의 하나는 경험하지 않으면 참으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경험하지 않고 머리로만 아는 지식은 일종의 관념의 가현적 지식입니다. 참 지식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삶과 경험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알게되는 지식은 생명의 지식이 됩니다.


이러한 우리 사람의 실존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선, 곧 하나님의 말씀의 참됨을 고난이라는 신비를 통하여 알게 하시는데, 그러한 고난을 통하여 알게 된 참 하나님의 말씀을 저는 ‘생명의 불인’이라고 부릅니다.


‘생명’이라 함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참됨, 곧 의의 말씀을 경험하였기 때문이요, ‘불인’이라 함은 고난은 풀무불과 같으니 그 풀무불로 관념이 아닌 자신의 삶, 곧 몸에 불도장처럼 생명으로 새겨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실존적인 존재인지라 이 ‘생명의 불인’만이 자신에게 생명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은 생물학적인 본능으로 고난을 싫어하나 조금만 생각하여 보면 사람은 고난이 없으면 깨닫지 못하며 성장하지 못하며 생명의 참 지식을 얻지 못함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유익이요, 신비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고난을 겪어보며 그리고 돌이켜 회개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보며 행복을 누려보며 하나님의 말씀의 참됨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적인 차원을 떠나 육적인 차원을 생각해 보면, 가령 어떤 사람에게 질병이 있어 아픔으로 인하여 어떤 사람은 그 질병은 치유법을 알아내게 되어 모든 사람을 유익되게 합니다.


또한 고난을 통하여 사람은 강해지고 성숙해지며 다른 사람을 향한 이해의 폭도 넓어집니다. 또 사람은 어떤 불편함이 있어서 문명을 발달시켜 왔고 발달시켜가고 있습니다. 간단히 몇 가지만 말씀드렸지만 이처럼 사람은 고난과 어려움과 불편을 통하여 우리 스스로를 성숙시키고 발전해 왔던 것입니다. 사람은 고난이나 불편함의 사다리를 타고 더욱 상승하며 위로 나아가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에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광의적인 의미에서 온 인류가 겪는 고난이나 협의적 의미에서의 각 개인이 겪는 고난이나 그 속에는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곧 고난이 있다는 것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상향지향적인 하나님의 이끄시려는 뜻과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떤 고난이 있다면 또한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령 질병이라면 질병의 치유법을 찾아 스스로도 치유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게 하라는 뜻일 수도 있으며, 가난이라면 근면성을 길러 생을 열심히 살라는 뜻일 수도 있으며, 마음의 내적 고통이라면 참 평화에 이르는 진리를 발견하라는 뜻일 수도 있으며, 죄로부터 돌아서라는 하나님의 징계의 뜻일 수도 있으며, 무슨 연약함으로 인하여 도리어 하나님을 붙잡고 향하게 함으로써 도리어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할는 뜻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고후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성경은 즐거운 자가 있으면 저는 찬송할 것이요, 고난 당하는 자가 있으면 저는 기도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라는 것은 생각하고 살피며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발견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약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그리고 어둠은 없고 빛만이 존재하는 동양적 개념으로 말하면 온전한 하나님의 빛에 머무는 무극의 세계에서의 생명의 순환은 잘 알 수 없으나, 우리가 경험하는바 빛과 어둠, 선과 악, 양과 음이 공존하고 순환하는 태극의 세계에서는 조화와 순환이 생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흐리고 비가 내리는 날이 없이 맑기만 하면 그곳은 사막이 되고 맙니다. 가령 맑은 날이 없고 계속하여 흐리고 비가 내린다면 그곳은 늪이나 호수가 되고 맙니다. 가령 밤이 없고 낮만 있다면 이는 쉼이 없으니 만물은 지치게 됩니다. 가령 낮이 없고 밤만 있다면 이는 활동이 없으니 만물은 무력하여 집니다.


또 가령 사시의 계절의 변화와 순환이 없다면 만물은 아름다운 봄날도 없으며 무성한 여름도 없으며 풍성한 가을도 없습니다. 생명을 응축하는 인고의 겨울이 있으므로 더 성숙한 생명의 싹이 돋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면면을 생각해보면 고난이란, 역경이란, 어려움이란 우리가 싫어할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성장과 성숙이 없으며, 우리의 삶과 생명은 죽음으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의미를 아는 지혜로운 자는 결코 고난을 마냥 싫어하지 않으며 의미 없게 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난과 시련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바다에 바람이 불어오는데 돛의 방향을 잘 정하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지만, 잘못 정하면 배가 전복하게 되듯이, 시련과 역경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그 시련과 역경을 태하는 우리의 태도에 따라 고난과 시련은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디딤돌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양 편안하고 행복한 날을 보내면 타락하는 본성을 아시기에 고난의 날을 두셨고, 또한 고난의 날만 계속되면 우리가 견딜 수 없기에, 고난의 날과 행복의 날을 병행하게 하사 우리로 하여금 조화 속에서 생명과 성숙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와 신비를 알았던 사도바울은 그러므로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 곧 어떤 형편에라도 자족하고 초연하는 지혜를 배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고난의 날에나 순경의 날에나 하나님 앞에서 한결 같은 믿음의 삶, 곧 여여일심(如如一心)하는 성숙한 신앙의 지혜와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두신 고난과 시련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본성을 지닌 우리에게는 그것이 없으면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배우며 성장하고 성숙하고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고난에는 인류전체를 향한 광의적인 의미에서나 개인을 향한 협의적인 의미에서나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뜻과 섭리가 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생명과 지혜를 얻게 하는 신비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고난의 시간에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신비와 생명을 지혜와 생명으로 자아냅니다.


저는 수십 년을 고난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고난 받은 것이 도리어 유익이라는 다윗의 고백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고난이 없었더라면 제게 이런 작은 영적인 성장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육신이라는 몸을 입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난을 당하는 그 시간은 괴로움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겠지요.


어제는 조금 많이 심신이 곤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잠시 내려놓고 그냥 조용히 그리고 침묵 속에서 주님 안에서 머물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눈을 뜨니 여전히 심신은 곤고한데, 나의 천사인 ‘리나’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가까이 있었습니다. 녹보석 푸른 눈으로 하늘의 생명과 평화를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고난 속에 갇히지 말고 그 속에 담긴 하늘의 뜻을 붙잡고 일어서라는 주님의 배려이겠지요. 그 배려 속에서 결국은 썩고 쇠할 땅이 아닌 영원한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연약하나 주의 능하심을 의지하며 오늘도 일어섭니다.


고난에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선한 뜻과 섭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모두 언제나 고난에 주저앉지 말고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일어나 고난 속의 신비를 성숙과 생명으로 품는 진주조개가 되길 바래봅니다.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샬롬!



시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빌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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