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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세마포

초록 등불 2014. 4. 2. 01:21

 [영성의 글] 세마포

 

제가 성경을 공부하면서 조금씩 놀라가게 되는 것은 기가 막힌 성경의 치밀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하신 말씀의 새롭게 기억해 보게 됩니다.


마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제가 조금씩 성경을 궁구해보니 성경에 기록된 어떤 숫자라던가, 성막의 각 모형이라던가, 또는 제물이나 성물에 사용된 재료 등 그 모든 것은 임의로 된 것이 아니라, 치밀하신 하나님의 뜻과 의도 곧 영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것을 알아가고 있는 한 새벽, 늘 영으로 보이는 영적존재들이 입고 있는 세마포에 대하여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영적 존재들이 입고 있는 세마포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세상의 빨래로는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희고 깨끗하며 빛이 납니다.


막9: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단순히 ‘희고 깨끗하다’라는 의미로만 알고 있는 세마포에 관하여, 이 땅에서 세마포는 과연 무엇으로 지어졌으며 또 그것으로 지어졌다면 반드시 거기에 영적인 의미가 있을 터 그게 무엇인지가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마포에 관하여 자료를 조금 조사해 보니 세마포는 ‘아마’라는 식물의 줄기에서 뽑아낸 섬유로 지은 옷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마는 습지에서 자라는데 이집트 산이 명품이라고 합니다.


이 세마포는 고대 왕들의 시신을 감싸는 천이기도 하였으며, 예수님의 시신도 이 세마포로 싸여 모셔졌지요.


구약 성경에 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하려고 갔던 정탐꾼들이 기생 라합의 도움으로 지붕 위에서 말리고 있던 ‘삼대’ 속에 숨어서 목숨을 건집니다. 그런데 이 삼대가 바로 아마의 줄기라고 합니다.


수2:6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이렇게 세마포는 아마의 줄기를 말려서 긴섬유의 실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 짧은 아마의 섬유는 램프 등의 심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는 등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세마포를 뜻하는 히브리어 원어가 여러 가지로 피쉬타(심지), 세쉬(가는 베실), 바드(실), 부쯔(섬세한 하얀 천), 싸딘(넓은 옷), 네오레트(삼, 삼오라기) 등인데 그래서 한글 성경에도 아마, 삼, 베, 세마포, 모시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세마포를 만든 식물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사용된 용도이던지, 원어라든지 하는 것들은 찾아볼 수 있었지만 정작 왜 성경에서는 그렇게 세마포가 우리의 하늘 예복을 상징하여 등장하며, 하늘 예복을 상징한다면 왜 세마포이며, 또 세마포가 아마의 줄기로 만들어 졌다면 그것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지는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잠시 기도를 드려보았지만 아무런 말씀도 없었습니다. 저는 요즘 체력은 부족하고 해야 할 일들은 많으니 오직 기도에 전념하는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합니다. 그냥 대부분의 시간 홀로 주님과 지내며 늘 주님의 낯을 구하고, 도우심을 구하니 삶이 기도인 셈입니다.


주님께 기도를 드려보아도 아무런 말씀이 아니 계시니, 그냥 다른 일을 한동안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피곤하여 자리에 누워서 조금 쉬었습니다. 그러다가 곁을 무심코 보니 늘 영으로 보이는 주님께서 선연한 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세마포는 질기다”


그것은 세마포의 영적인 의미를 묻는 저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아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묻지도 않고 그냥 누워서 무심코 바라본 것인데, 선연하게 “세마포는 질기다”라고 영적인 의미를 가르쳐 주시니 다소 놀라서 세마포 자료를 더욱 세밀하게 찾아보았습니다.


그렇게 자료를 찾아보니 주님의 말씀대로 세마포는 매우 질겨서 좀처럼 찢어지지 않는다는 자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세마포를 아마의 줄기로 엮어 만든 것에는 여러 가지 영적인 의미가 있겠지만, 주님이 제게 말씀하신 딱 한 가지는 ‘질기다’였습니다. 그 질기다라는 의미는 다름 아닌 우리 성도가 지녀야 할 흔들리지 말아야 할 믿음과 시련에 대한 강인한 인내를 의미하지요.


그런데 제가 사역을 하면서 저와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들의 모습은 질긴 인내로 승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세마포를 입을 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싶습니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우리가 하는 믿음 생활은 진정한 신앙생활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복 받아 이 세상에서 조금 잘 살아보려는 것 그것이 마음의 궁극이요 전부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땅의 삶에 이런저런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대부분 믿음을 실족합니다. 신앙생활의 마음의 궁극이 이 땅에 있으니 이 땅에 조금만 바람이 불면 겨와 같이 믿음도 날아가 버립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땅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위에 그 집을 분명하게 지으라고 하셨고, 불의 시험이 나타나 우리의 공력을 시험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금이나 은으로 믿음을 짓지 못하고 풀과 짚으로 지었으니 불의 공력에 흔적도 없이 타버립니다.


고전3: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고전3: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성경은 구속함을 받아 그 이마에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을 새기고, 새 노래를 부를 하늘의 무리는 세상으로 더불어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는 정절이 있으며,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며 거짓과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14: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계14: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우리의 삶과 말세에 세상과 짐승을 경배하고 질기게 승리하고 이기지 못하면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는 둘째 사망의 화를 받음으로, 성도들의 인내의 이유를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의 마음은 이 세상에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 이상이 아닙니다.


계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관론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궁극론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삶은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우리는 그 인간의 궁극인 죽음 너머를 보며 향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절망인 죽음을 넘어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품은 자들이기에 수고로운 세상이지만, 깊은 영으로는 소망과 미소를 잃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생에 대한 긍정론자가 되는 것입니다.


가령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우리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고 가정해 봅니다. 그러면 성경은 분명히 한 번 죽은 것은 정한 이치라고 말씀하고 있고, 또한 그 죽음의 강을 건너냐 하나님의 나라에 이른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의 죽음 곧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셔서 부활과 영생을 주시려고 오셨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믿음 또한 다름 아닌 이것입니다.


그러하다면 육체와 육체의 성정을 가진 몸이기에 죽음이라는 자체에 두려움이 없을 수 없으니 두려울 수 있으며, 아픔을 느끼는 육체를 입고 있기에 물리적인 통증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수 없겠지요.


그러나 우리의 믿음과 그 고백이 참이라면 한편 우리의 마음에는 이제 이 잠시의 시간만 질기게 인내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에 받들려 아버지의 나라에 가는 구나 소망도 함께 있어야 할 터인데, 우리는 영원히 죽지 말아야 할 사람처럼 소동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가난하지 말아야 할 사람처럼 소동합니다. 아프지 말아야 사람처럼 소동합니다. 낮고 천한 자리에는 떨어지지 말아야 하는 사람처럼 소동합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믿는 믿음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무엇을 믿고 사는 것일까요. 진지하게 함께 우리 믿음의 진정성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세마포를 아마 줄기로 만든 영적인 의미를 묻는 제게 “세마포는 질기다”하셨습니다. 그것은 결코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땅의 집착으로의 질김을 말씀하는 것은 분명 아닐 텐데, 우리는 세상의 삶에 대해서는 질기고 질기나 영적인 삶의 가벼움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신앙생활이 땅의 복 그 이상이 아니니, 욥의 인내와 하박국의 노래는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성경은 천국은 밭에 감춰진 진주와 같으니 네 모든 소유를 팔아서라도 사라고 일깨우고 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저와 여러분은 몸의 등불인 눈이 어두우니 여전히 땅 그 이상을 찾지 않습니다.


마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마6: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우리 함께 몸의 등불인 영의 눈을 밝혀 성경에서 수없이 말씀하는 인내와 경주와 의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질기고 질긴 인내로 승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늘의 의와 영광의 세마포를 입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살펴보니 사람의 연약하기가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 같아서, 잠시 말씀을 들으면 눈물도 글썽이며 하나님의 진리의 도를 좇아 살아보리라 하지만 교회의 문밖을 나서면 흔적도 없이 그 마음의 감동을 잃어버립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부끄러운 구원은 얻을지 모르겠지만, 결코 영광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세마포의 영적인 의미를 묻는 물음 앞에 ‘세마포는 질기다’하셨습니다. 그런 질김의 인내 위에 세마포의 본 속성인 빛과 영광이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 모두 주님이 가르치신 질기고 질긴 믿음의 인내를 품어 세마포의 씨줄과 날줄을 한올한올 수놓아 가는 강인한 믿음의 삶을 통하여 하늘 영광의 반열을 누리는 모두면 좋겠습니다.

세마포의 질김의 속성의 인내로 믿음의 경주를 달려간 자에게, 인내를 상징하는 하늘 열 두 진주문을 통과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샬롬.



고전15: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고전15:41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고전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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