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고유자료/초록 영성의글

[영성의 글] 영광의 높이

초록 등불 2014. 1. 15. 16:58

  [영성의 글] 영광의 높이

 

어느 아침에 눈을 뜨니 꿈도 아니요 생시도 아니요, 그냥 비몽사몽의 꿈결처럼 제가 성경의 어떤 부분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엘리야의 삶의 무게, 엘리야의 삶의 압박감이었습니다.


비몽사몽간에 꿈결인 듯 묵상인 듯 엘리야의 삶의 무게를 생각해보고 있었는데, 얼마나 엘리야의 삶의 무게가 무거웠는지 새롭게 깨달아지고 다가왔습니다.


성경을 보면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모든 주의 선지자들이 칼로 죽임을 당하였으며 자기만 남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런 고백을 볼 때 실제적으로 선지자 중 엘리야 혼자만 남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엘리야는 실존적으로 그렇게 느끼고 그런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왕상19:10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그런 엘리야의 압박감과 그의 삶 전체가 얼마나 고되고 힘겨웠는지 그 압박감과 무게감이 새롭게 깨달아 지고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가령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에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대부분 죽임을 당하고 자신만 홀로 남아 쫓김을 당하는 그런 상황을 생각해보면 엘리야의 압박감을 조금은 헤아려 볼 수 있지요.


그것뿐만 아니라 그릿 시냇가의 고독한 피난 생활, 사렙다 과부집에서의 조금은 민망도 하였을 더부살이, 그리고 갈멜산상의 영적 전쟁 이후의 길고 긴 사십 주 사십 야의 혹독했을 고난의 긴긴 걸음 등 그 모든 것들이 새롭게 조명되어 왔습니다.


왕상19: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그러한 가운데 왜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그토록 놀라운 영광 차원의 영권과 능력을 주시고 경험하게 하셨는지 다르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자로되 그가 기도한 즉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한 즉 비가 내리는 놀라운 기도의 영권을 받은 사람이었지요.


약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약5:18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또한 그에게는 하늘 차원의 영권이 주어져서 그가 말한 대로 역사하는 장면도 볼 수 있지요. 다소 안타까운 장면이기는 하지만 엘리야가 말한 즉 하늘에서 즉시 불이 내려왔었지요.


왕하1:10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 인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오십 인을 살랐더라


그러한 묵상과 새로운 깨달음의 가운데 ‘모세의 애절했던 한 부르짖음’도 생각이 났습니다. 그것은 목이 곧고 영적으로 아직은 어두운 이스라엘의 수많은 백성들을 이끌고 가던 모세의 힘겨운 기도요, 간구요, 힘겨움의 외침이었음이 깨달아 졌습니다.


출33:18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오늘날과 같이 문명화된 시대의 사람들도 아니요, 많은 사람이라도 일괄적으로 통솔하기 편리한 의사 전달 기계 등이 잘 발달된 시대도 아니요, 얼마나 모세가 그들을 이끌고 가면서 힘겹고 고달팠을까 하는 것이 새롭게 다가오며,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는 그의 기도는 다름 아닌 “하나님, 하늘 영광으로 나를 위로하여 주소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의 길을 걸어보니 우리의 인생도 사람이 성장하고 장성하여 간다 함은 그의 삶의 책임과 무게가 커져가는 것이더군요. 어릴 적에는 부모님의 사랑 안에서 마냥 기뻐하며 즐겁게 살곤 하지만, 우리가 성장하여 가면 성장하는 것만큼 모든 조직 속에서의 책임감과 무게감이 커져 가지요.


영적인 삶도 육의 성장과 모든 면들이 흡사한 것 같습니다. 그 중의 하나도 이런 책임감과 수고로움의 커져감입니다. 영적으로도 마냥 어릴 때에는 어머니와 같으신 성령 안에서 마냥 기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점점 성장하여 갈수록 주님의 다루시는 손길과 영적인 책임과 사명의 무게감이 커져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무게감과 수고로움의 짐이 커져가는 가운데, 주님의 인도하시는 길이 점점 더 좁고 협착해지는 것을 조금씩 더 경험하는 가운데, 저의 삶의 실존과 맞물려 위에서 적은 것처럼 어느 아침에 엘리야나 모세나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소명과 사명의 무게를 지고가신 믿음의 선지자들의 삶의 영광과 무게가 새롭게 조명되고 깨달아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나 우리들에게 하늘 영광의 권세를 누리게 하시거나 하늘 영광의 영적인 경험들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소명의 무게를 견디게 하시려는 섭리라는 것을 또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그 소명의 무게가 더욱 무거웠기에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더욱 놀라운 하늘의 영광, 곧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면하여 말하기도 하며 하나님의 실제적 형상인 등을 보는 등의 더욱 놀라운 영광을 누렸고, 엘리야도 그 소명의 무게감에 비례하는 하늘의 영권과 영광의 경험을 한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냥 사람들을 대하고 보듯이 주님과 성령님과 천사들과 영들과 지내는 요즈음의 저의 삶도, 정말 그러한 하늘의 위로가 없으면 견딜 수 없기에 그러시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처음에 하늘의 열린 문과 영의 시공과 그 속의 천사들을 비롯한 영적인 존재들을 만날 때에는 한없이 황홀하고 기쁘더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런 느낌은 잠잠해져 가는데, 여전히 아픈 몸은 힘겹고,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수고로운 삶의 무게와 걸어갈수록 힘겹고 쉽지 않은 길임을 여실히 느껴가는 신앙의 길, 목회자의 길을 가다보니, 언제나 마음엔 그 무게와 곤고함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저의 경험 가운데서도 ‘아하, 하늘의 영광의 경험은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과 사명의 길을 무게로 인하여 주시는 것이고, 보여주시는 영광이 높으면 고난도 깊으며, 소명과 사명의 수고로움과 무게만큼 하늘 영광도 주시는 것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아침의 문득의 비몽사몽간의 묵상과 함께 새롭게 조명이 되어져 왔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처음 따랐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그런 소명과 사명의 아픔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모르고, 마냥 하늘의 영광만을 구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살피고 저의 삶의 생각해보니 영광의 높이는 고난의 깊이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영광을 구한다면 고난의 깊음도 구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하늘의 영광만을 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런 수고로움과 힘겨운 삶과 사명의 길을 가게 하실까요? 그것은 수고로움이 있는 삶이 가치로운 삶이요, 아름다운 삶이기 때문이겠지요.


사람이 성장하여 무릇 책임 있는 수고로운 삶을 살지 않고 그냥 먹고 마시며 지낸다면 무슨 보람과 가치가 그 생에 있겠는지요? 마찬가지로 영적인 삶도 마냥 어린아이처럼 소명과 사명의 십자가를 멀리하고 즐거움만 찾는다면 무슨 보람과 가치가 있는 삶이겠는지요?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면 성장하는 만큼 소명과 사명의 무게를 더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는 우리의 생을 보람되고 가치 있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이며, 영원한 하늘의 반열과 상급을 주시려는 사랑의 기회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영적으로 장성하여 가는 우리는 마냥 하늘의 영광과 위로를 구하여서는 아니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장성한 육신의 자녀처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도 책임 있고 역량 있는 자녀로서의 삶의 무게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한 동안 이런저런 일들도 다로 바쁘고 힘겨웠는지 약간의 몸살기운이 찾아왔더군요. 감기를 앓아보니 약도 좋지만 일단 원기 회복을 위해서 다소 잘 먹어주어야 하더군요. 그래서 점심  나절에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몸의 곤고함을 안고 식사를 기다리고 있으니, 제가 ‘순동이 천사들’이라고 이름 지은 소년 모습의 순한 느낌의 천사 하나가 나타나서 이리저리 날기도 하고 제 앞에 앉아서 재롱도 부리고 바라보며 환히 웃기도 합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해를 닮은 해동이요, 달을 닮은 달덩이 같습니다.


그런 해맑은 순동이 천사의 웃음 앞에 저도 삶의 무게나 시름을 잊고 잠시 웃어 봅니다. 생의 무게와 사명의 길을 견디며 걷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입니다.


그러나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몸살앓이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겨울 바람이 차갑기만 합니다. 이 차가움도 영원한 하늘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의 생은 영광이 크면 고난도 크며,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고난의 깊이가 영광의 높음입니다. 그 차가운 바람처럼 우리의 생의 길의 본질은 수고로움입니다. 그런데 그 수고로움 속에는 영원한 하늘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며 소망을 잃지 말며, 감사를 잃지 말며 웃음을 잃지 말며 주님 따라 종용히 걸어가는 우리면 좋겠습니다. 여호와 샬롬 !



출33:18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출33: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출33: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출33:2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출33:22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출33: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출처 및 저작권 :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샬롬] 내용 중 상당한 부분을 인용하시거나 원본을 그대로 게제하실 경우는, 출판을 염두에 둔 글과 말씀들이니 출처 부분을 남기셔서 저작권을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카페규칙 상 스크렙 및 링크가 허락되지 아니한 게시판에 부지 중 올렸다면 먼저 죄송한 맘 전합니다. 소식 주시면 글올림을 삼가거나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카페운영에 어려움 주지 않기 위하여 저작권 유의 배경음악과 그림자료 살펴 조심하고 있습니다 / 감사 드립니다. 늘 평안하세요. 샬롬..

 

 Home  cafe

 

 

배경음악(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