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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촛 불

초록 등불 2014. 3. 12. 14:33

 [천사 이야기] 촛 불

 

제가 영의 일을 궁구하여 보니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고난을 받기 위해서 지음을 받았고 태어났습니다. 고난을 받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 진리가 한편 참 힘든 것이지만, 영의 일을 궁구하여 보면 고난이라는 명제 속에는 기이한 빛이 숨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계신 나라는 오직 빛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사단의 나라에는 오직 어둠 밖에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상대성의 세계와는 달리 영의 세계는 여상한 절대성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상대성의 세계는 낮이 있으면 밤이 있으며, 봄이 있으면 가을이 있고 여름이 있으면 겨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와 순환은 끊이지 않습니다.


창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이러한 변화와 순환은 단순한 자연계의 변화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물질계의 생명살이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곧 현상계에 속한 모든 만물과 생명체는 그러한 변화와 순환을 겪으며 살아갈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는 그러한 자연계의 순환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기 이전에, 타락하기 이전에 벌써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시고 밤과 낮과 사시를 이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창조 이전에 인간의 타락을 아셨고, 하나님의 비밀한 경륜 속에서 인간의 타락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섭리하신 것을 엿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만세 전에 정하신 것이라 기록합니다.


고전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러한 자연계의 상대성의 창조와 성경의 말씀을 궁구하여 보면 하나님은 태초에 인간의 타락을 경륜하셨고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경륜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이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고난을 받게 하시려 함인데, 우리에게 한편 너무도 힘든 명제이지만 그 명제 속에는 하나님의 기이한 지혜의 빛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상대성의 세계 속에서의 기이한 명제인 ‘고난’을 겪게 하시기 위하여 영의 세계도 창조 이전에 이미 빛과 어둠의 영역으로 나누어 두신 것을 성경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하와를 유혹하였던 사단의 선존재에서 그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이토록 힘겨운 고난의 생을 섭리하셨을까요? 그것은 어둠을 경험한 자만이 빛의 밝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악을 경험한 자만이 선의 생명됨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불순종한 혹독한 삶을 경험한 자만이 하나님을 청종하는 삶의 행복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를 성경은 지각의 연단이라고 말씀합니다.


히5: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히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곧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은 우리가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난, 생과 죽음이라는 철저하게 상반된 상대성의 세계의 경험을 통하여, 흑암의 깊음 속에서 빛의 밝음을 아는 연단된 지각을 갖게 하려 함입니다.


우리가 촛불을 태워보면 빛을 발하는 촛불은 그냥 불길로서만은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초가 녹아내리는 아픔이 있어야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녹아내리는 아픔이 승화되어 밝은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사랑의 그러나 혹독한 다루심 속에서 이 진리를 가슴으로 배웠습니다.


몇 년 전 개인적으로 마음과 몸의 힘겨운 시간 속에서 갑작스런 건강의 악화, 그리고 혹독한 주님의 다루심. 그 속에서 그냥 아파서 홀로 하나님을 애타게 찾았던 시간들. 돌아보면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삶뿐이었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요, 정녕 아버지이신지라 아이의 울음소리를 가슴으로 듣는 어버이의 가슴이 되어 저의 울음소리에 문득 깊은 사랑의 품을 열어 보여 주셨습니다.


눅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야곱을 이스라엘 되게 하시기 위하여 저의 육신의 환도뼈는 꺾어 버리셨었지만, 이전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하늘의 비밀한 문을 열어 주시며 그 속의 아름다운 빛과 하늘의 영광을 보여 주시면 저의 마음을 달래주셨습니다.


그렇게 육신의 연약함 속에서, 주님의 손에 끌린바 되어 밧모섬의 요한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주님 안에서 홀로 지내온 지 어언 몇 년. 이제는 마주한 하늘의 영광의 감격과 흥분은 고요해져 가지만 땅이 아닌 그 하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잔잔한 일상이 되어갑니다.


그렇게 일상으로 주님과 홀로 지내는 어느 깊은 밤, 아직은 육신을 입은 성정이기에 인간적인 적막감이 가슴에 밧모섬의 잔잔한 바닷바람으로 불어왔습니다. 영적으로 갓난아이의 시기를 지낸 사람들이 대부분 경험하듯 저도 시시로 그런 차가운 바람을 마주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은 고난을 받고 연단된 지각의 영적 성숙을 위하여 태어났기에 생의 길이나 영의 길이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삭막한 바람의 광야를 수없이 마주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마음을 달래보려 세상을 향하곤 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주님 안에서 깊은 다루심을 받으면 점점 마음을 달래주던 세상의 영역이 사라져 갑니다. 그것이 더 이상 의미도 행복도 되지 못합니다. 마음을 달래려 세상을 향해 걸어보려고 해도 걸어갈 곳이 없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직 열린 한 길 하늘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눈이 가려지고 귀가 가려져서 말씀을 읽고 들으나 그 참 빛을 보지 못하여 땅만 향해 살던 저를 그렇게 하늘만을 향하도록 변화시켜 가시는 주님을 경험해 갑니다.


마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마6: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그렇게 주님께서 열어주시고 남겨주신 오직 한 길, 하늘을 혼적으로는 다소 힘겨운 마음으로 누워 조용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시간이 많이 지나 잔잔한 일상이 되어버린 영의 하늘, 하지만 세상은 분요롭고 소란하나 영의 하늘은 언제나 고요하고 화사하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영의 눈으로 영의 하늘을 보면 세마포의 하얀 빛과 하늘의 푸르른 빛이 어우러져 꿈결 같은 하늘을 자아냅니다. 꿈결 같은 하늘 속에 미려한 하늘 향기가 담겨있는 것처럼 그렇게 영의 하늘은 언제나 고요하고 푸르고 평화롭고 화사합니다. 그 속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의 천사들이 있습니다.


세상 안의 다소 곤고한 마음 안에서 그 아름다운 영의 하늘, 하나님의 품이 못내 그리워 조용히 찬양을 부르니,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라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하늘의 위로가 봄날처럼, 달빛처럼 마음으로 잦아들었습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런 세상의 곤고함과 하늘의 위로 안에서 무채색 눈물이 잠시 났습니다. 무채색이라 함은 하늘 기쁨의 눈물과 땅의 곤고함의 눈물이 어우러진, 기쁨의 눈물도 아니며 슬픔의 눈물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땅의 곤고함의 눈물이 녹아, 하늘 기쁨의 눈물로 촛불처럼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지고 새 하늘이 열리고 새 땅이 펼쳐지면,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장막이 되어 주시면,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사망이나 애통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나 그 모든 것들이 다시는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고난의 생명살이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눈물을 흘려 보지 않은 자 참된 웃음을 얻지 못하고, 사망이나 애통이나 울음을 겪어보지 않은 자 참된 영생이나 희락이나 영원한 웃음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생을 통하여 양초를 만들었기에 하늘의 영롱한 촛불을 켤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하나님의 비밀한 경륜의 신비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봄은 찾아왔건만 꽃샘추위 탓인지 오늘도 몸 기운이 다소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녁 무렵에 다소 영양식을 하려고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습관을 좇아 산책 겸 운동을 조금 하였습니다.


그렇게 운동을 하고 있는데 오늘은 잠시 자신을 ‘라피엘’이라고 이름을 밝힌 천사의 모습이 잠시 보이더군요. 제법 오랜만에 잠시 모습을 보여 주더군요.


영의 세계에서 그의 참 모습인지 아니면, 예수님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도록 성화 속의 어떤 모습으로 종종 그 모습을 보여 주시듯, 라피엘도 제가 보기 좋은 형상으로 바꾸어 보여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라피엘은 모습도 행동도 조금 특이합니다. 다소 우수에 찬 듯한 독특한 눈빛과 모습으로 다른 천사와는 달리 말도 적고 늘 조용합니다.


가만히 쳐다보니 저도 가만히 쳐다보며, 어미가 아기를 품어주는 듯한 느낌의 전언, “사랑해요, 기뻐해요”라고 조용히 전해주더군요. 그리고는 또 다른 한 마디를 하더군요.


“구속의 하나님”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생에서 고난의 생을 살아가지만 인내와 소망으로 승리한다면, 구속의 하나님 안에서 그 고난이 하늘의 영롱한 빛을 자아내게 하는 것입니다. 많이 아파본 자가 아프지 않음의 행복을 크게 느끼듯이, 고난이 깊으면 하늘 영광의 빛도 밝은 것입니다.


고난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하나님의 비밀한 경륜의 신비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새롭게 보며, 빛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지혜를 갖는 자, 하늘에서 영생의 영롱한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샬롬.

계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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