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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노랑 나비

초록 등불 2014. 6. 10. 03:24

 

  [天使 이야기] 노랑 나비

 

주님께 다루심을 받으며 영적인 세계를 발목의 물을 건너고 무릎의 물을 건너고 허리의 물을 건너고 창일함의 세계를 향하여 점점 이끌리며 나아가다 보면, 성령님의 임재나 충만함으로 인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기쁨이나 열정 등의 일상적인 경험이 아닌 색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나는 생명의 음료이니 나를 먹고 마시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이 비유가 아니라 영적 실제임을 알게 되며 그 살과 피로 말미암아 피어나는 예수님의 생명 속에서 자신은 점점 잠잠해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그리고 그러한 예수님의 생명의 피어남 속에서 우리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고 예수님 안에 거하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됩니다.


요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그리고 그렇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의 영의 하나로 부르시는 영적 목마름을 따라 주와 더불어 먹으며 하나 됨을 향하여 나아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그리고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그러한 변화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자신 속에서는 그러한 본성적 생명의 변화를 이룰만한 능력이 없었음을 알고 고백하게 됩니다. 오직 예수님의 생명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의 영 안에서 싹트고 자람임을 알게 됩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러한 하나님 안에서 본성적인 변화의 다루심을 받으면 참으로 많은 것들이 변화하여 버립니다. 성격과 좋아하는 것들, 삶의 모든 것들이 변화하여 버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외적인 성령의 임재와 능력 속에서 잠시나 한시적으로 변화를 누리던 것과는 달리 자신의 본성적인 변화, 곧 자신 속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사망에 속한 육의 우리를 거룩하게 잠식하여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부활의 생명이 본성적으로 나를 정복하고 다스려 가는 실제를 보게 됩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생명의 내적인 발현은 외적인 모습으로도 여러 부분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침묵, 곧 잠잠함입니다. 혼의 세계는 언제나 분요로우나 영의 세계는 여상히 고요함 같이 고요해지고 잠잠해져 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러한 본성적인 영적인 변화는 이스라엘 광야의 40년이라는 긴 시간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단순히 기도와 말씀만으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광야라는 삶의 길고도 먼 공과를 통과하면서 일어납니다. 철저한 삶의 다루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된 것임을 삶으로 경험하게 되는 의의 말씀의 경험을 통과하게 됩니다.


히5: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히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이러한 하나님의 다루심 안에서 의의 말씀을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의 다루신 깊이만큼 그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게 됩니다.


행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삶을 돌아보면 사람들은 나름대로 밝히 본다 하며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나 우리 인간은 근원적으로 영적인 눈이 가리어져 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근원적으로 가리어져 있으며 믿는 자들도 시시로 사단의 흑암으로 빛을 잃곤 합니다. 영안으로 보면 시시로 흑암이 우리를 가리웁니다.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주님의 다루심의 관점, 곧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일은 바로 이것, 우리의 어두워진 눈을 밝히는 것입니다. 곧 소경된 우리를 천천히 흐르나 참된 생명의 물인 실로아, 곧 실로암 못에 보내어 우리의 영적인 눈을 밝혀 생명과 영광을 누리게 하려 하심입니다.


요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제가 주님께 나름 다루심을 받고 보니 우리는 대부분 영적 소경입니다. 성령을 받고 거듭나고 방언을 말하고 다양한 영적 경험과 능력을 행하며 경험하였다 할지라도 대부분 영적 소경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이 그것을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여전히 부족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어두움에서 온전히 자유 하기는 쉽지 않지만, 우리의 눈을 가리는 비늘이 벗겨지고 몸의 등불인 영적인 눈이 열리면 그 마음과 삶에 참된 하늘의 빛과 영광이 어려가게 됩니다.


마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마6: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그리고 그 영광의 빛 속에서 바라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허상입니다. 비록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필요하므로 시시로 하나님께 구하여야 하는 것들이지만, 궁극적인 의미에서는 모두 허상입니다. 오직 구하여 할 것은 보화인 천국뿐입니다.


마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이 눈의 영적인 비늘을 벗겨 주시기 위하여 강권적인 주의 손길이 임한지 어연 수 년, 그동안 많이 변해 버린 저 자신과 삶의 환경과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본시 그릇과 성정이 부족한 사람이라 아직도 나아가야 할 길 멀기만 하지만,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빛을 보며 살아가려는 저를 보게 됩니다.


대부분 밤의 시간에 경건 시간을 갖고 낮에는 자고 쉬는 일상의 하루, 그런 하루의 밤의 시간 하루는 몸이 다소 곤하여 그냥 누워 쉬었습니다. 앞에서 적은 것처럼 주님의 깊은 다루심을 받아 점점 영의 세계 속으로 마음과 삶이 들어가면 고요함이 참 좋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기도 곧 침묵의 기도를 경험하게 됩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말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기가 어미의 품 안에 안긴 것처럼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거하면 될 뿐입니다.


그렇게 다소 곤하여 주 안의 안식이 좋아서 밤의 시간을 홀로 주 안에서 가만히 누워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소리를 들으며 영을 적시며 안식의 하루의 밤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누워 쉬면서 바라보면 열어주신 영의 눈과 본래 주신 바 육의 눈으로 영의 시공과 육의 시공이 함께 보입니다. 의식을 육으로 가져오면 육의 세계가 다소 더 의식되나 의식을 영으로 가져가면 하늘과 땅은 모두 사라지고 빛의 시공인 영의 하늘과 그 속의 영들, 천사들만 보입니다. 영의 시공의 하늘 속에 주님의 품 안에 홀로 덩그마니 누워 있습니다.


그런 영적으로 보이는 느낌이 아니라도 주님의 다루신바 육신의 깨어진 마음속에서 바라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허상’입니다. 세상 속에 있으나 그 궁극의 헛됨을 알아버린 마음속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보이나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들이 만져지나 또한 만져지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주님께서 제 방에서 곁에 두신 소년 모습의 ‘청이’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이렇게 제가 고요한 날에는 하늘의 영들, 천사들도 고요합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제가, 하늘과 땅이 아무런 말없이 침묵으로 대화를 나눌 뿐입니다.


그런 고요함 가운데 있다가 ‘청이’에게 한 마디를 살며시 건네 보았습니다. “하고 픈 말 있니?” 그러니 청이가 한 마디 건네어 주었습니다.


“사랑해요”


청이의 말을 듣고 가만히 바라보니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허상이요, 헛된 것으로만 보이지만 제 곁에 실체로 향기처럼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육신의 감정과 정이 뿌리인 육의 사랑이 아닌 주 안의 영의 사랑, 그것만은 봄날의 꽃향기 속을 아름답게 날아다니는 노랑나비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느낌을 ‘지새우는 밤’이라는 제목으로 시가를 적어 보았습니다.


이전엔 무엇이 / 그리 좋았을까 / 이전엔 무엇이 / 어떻게 존재하였을까
흙빛 모든 것을 / 거두어 버린 / 물질계의 허상 속에서 / 참 세계와 참 나를 / 애틋 찾기 위하여 / 주 앞에 말없이 앉았네


참 무엇을 찾으려 / 소리 없이 뜻을 나누고 / 웃음 없이 웃음을 나누고 / 울음 없이 울음을 나누며 / 홀로 밤을 지새우네

아무 것도 없는 / 세상 속에서 / 사랑이란 노오란 나비 / 나비 한 마리만 / 조용히 곁을 날으네


이 세상에서의 영원한 것이란 사랑뿐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도 말하고 있지요.


고전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고전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13: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위에서 결론지은 보화인 천국을 사는 삶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신 참 하나님 사랑, 참 이웃 사랑의 삶이겠지요.


마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지만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주를 사랑한다 하나 복을 기원하는 자아의 자기 사랑일 뿐이요, 이웃을 사랑한다 하나 역시 감정과 정에 뿌리를 둔 자기 사랑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사도 바울처럼 흑암의 비늘이 벗겨져 진정한 영의 눈이 열리고 하늘의 빛이 열려, 참되이 보화인 천국을 품어가는 삶, 진정한 영의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삶이 점점 마음과 삶 속에서 점점 실제가 되어 가면 좋겠습니다. 샬롬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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