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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붙 드 심

초록 등불 2014. 6. 18. 17:31

 

  

  [영성의 글] 붙드심

 

상대성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상승과 하강의 성쇠를 거듭하듯이, 우리의 영적인 상태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과 영적인 생활도 사소 상승과 하강의 변화를 겪는 것은 한편 자연의 순리입니다.


저의 경우도 이러한 영적인 변화의 곡선을 탑니다. 때로는 맑은 가을 하늘일 때도 있으며, 때로는 비가 내리고 흐린 날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에게 있어서 가장 영적인 상태가 빛으로 함양되고 좋아야 하는 시간은 다름 아닌 예배의 인도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으로 빛의 하늘을 날아야 할 때에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은혜로 하늘을 날개 해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붙드심’입니다.


그러므로 때로 목회자들이 때로 설교 준비를 충실하게 잘하지 못하였거나 다소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단에 올라와도,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은혜롭고 진리가 충만한 예배를 인도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붙드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붙드심의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막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이러한 붙드심의 역사는 직임과 소임과 상황과 때를 다양한데, 우리는 이러한 붙드심의 경험을 통하여, 비록 눈에 보이시지는 않으나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보시며 도우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곧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붙드시고 도우시고 계신 것입니다.


저의 경우 집회를 인도하는 경우 이러한 붙드심을 많이 경험합니다.


어느 집회였습니다. 그 집회는 평소에 비하여 적은 소수의 사람들이 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하지만 먼저 교회에 도착하여 조용히 기도와 침묵으로 하나님을 대면하는 고요한 시간, 하나님은 어느 때보다도 평화롭고 맑은 청명한 영의 하늘을 펼쳐 보여 주시며, 주의 영과 천사들도 평소보다 맑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저의 마음에 하늘 위의 하늘을 심어 주었습니다.


저의 경우 집회를 인도하는 날 어쩌면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 등의 사람들이 시내산에 강림하신 하나님을 보니 그 발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 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는 말씀처럼, 집회날 홀로 하나님 앞에 앉아 있으면 그러한 청명한 영의 하늘을 펼쳐 보여 주십니다.


출24:10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그렇게 청명한 영의 하늘을 마주하고 그 안에 안겨 있으면 물 속의 물고기가 생기를 얻고 맑은 공기 속에서 새들이 마음에 평화를 얻듯이 저의 영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집회 날이면 저는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와 홀로 대면하고 있는 고요한 이 시간이 참 좋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손길이 저의 마음을 어루만지면, 사람들의 참여의 많고 적음이 별스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천하의 범사에 때가 있듯이 많을 때가 있으면 적을 때도 있는 것이 순리이며, 사람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청명하게 펼쳐 주시는 영광어린 영의 빛의 하늘 속에서 천사들과 함께 찬송하고 예배하며, 오직 하나님 앞에서 책임있고 성실히 행하려 애쓸 뿐입니다.


요즘은 무엇에나 사람들에게 다소 강권적으로 어떤 것을 행하게 유도하지 않습니다.


네 눈이 어두우면 네 행함이 어두울 것이요, 네 눈이 밝으면 네 행함이 밝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의 참됨을 알았으니까요. 눈이 뜨이지 않고 귀가 열리지 않은 사람들을 억지로 이끈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고 아무도 판단하지 않습니다. 저도 여전히 부족함이 많으며 저 역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덧입기 전까지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였으니까요. 그런 영적 성장도 실제라 시간과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한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라나 그리 길지 않은 생, 속히 누구나 더욱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서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지 말며 듣지 말아야 하는 것은 듣지 말고, 참으로 보아야 하고 들어야 하는 복된 눈과 귀가 우리에게 있었으면 싶습니다. 성경은 참 소경이 누구인지 은유로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요9: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사람이 적든지 많든지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며, 무한한 사랑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여 말씀을 전하고 집회를 인도하면 하나님은 다양한 모습으로 도우시고 붙잡아 주십니다.


때로 육체의 연약함으로 힘겨움이 느껴지면 마주하는 천사의 환한 미소로 힘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제가 경험하며 생각해보니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연약함 가운데 두시는 것은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그 연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머물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 연약함 때문에 더욱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니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에게 머물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라면, 그 연약함 속에서 힘겨워할 때 환한 천사의 미소로 힘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붙드심’입니다.


때로 예배가 깊어가고 영적 상태가 깊어 가면 스데반이 보았던 것처럼 열린 영의 하늘에 주님이 친히 나타나셔서 임재와 함께 하심을 보여 주시기도 하시며, 때로는 생시의 사람처럼 앞에 영으로 오셔서 저를 바라보시며 전할 메시지를 주시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메시지가 주의 영에 붙잡혀 강력하게 흘러나가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붙잡으시는 주님의 역사입니다.


때로 집회를 마칠 즈음이면 육신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영적으로 기력이 소진하여 다소 힘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늘이 맡긴 소명의 시간을 다 걷고 나면, 시시로 하늘 천사들을 통하여 저와 집회에 참여하신 분들에게 하늘 꽃다발을 안겨 주십니다.


수고에는 힘겨움을 느끼는 우리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도우시는 붙드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돕고 지키시며 붙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연약함이 많을 지라도 우리에게 능력 주시고 붙드시는 하나님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며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맡겨진 소명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글을 쓰는데도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냥 천상에서 흘러오는 물결처럼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글자가 적혀갑니다. 주의 영을 통한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며 붙들어 주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지금 그리고 여기, 그리고 언제까지나 함께 하시며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 도우시는 하나님 안에서 함께 승리하는 우리 모두면 좋겠습니다. 샬롬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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